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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 바이허니 Oct 15. 2021

마침내 완성된 마당놀이터

‘책세권’ 조성기 5





  뒤늦은 정원 설계           


  집을 지어보니, 설계란 그 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맞게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더군요. 편리함을 극대화하면서 군더더기를 들어내면 아름답기까지 한 디자인이 되겠지요.

  처음 건물을 구상할 때였어요. 개인 주택을 건축사에게 설계 맡기는 것에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어요. 시공사가 설계해주는데 왜 별도의 설계비를 들이냐는 거죠. 하지만 바이허니가 완공된 후, 책방카페에 딱! 어울리는 공간이 여기저기 만들어진 걸 보고는 다들 감탄하더군요.


  하지만 저도 정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네요. 정원은 그냥 나무와 꽃을 적절히 심고 가꾸면 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살아보니 그 ‘적절히’가 왜 그리 어려운지요.

  7년간 나무와 꽃을 가꾸며 터 무늬를 만들어오긴 했으나, 우리 손은 아마추어일 뿐, 정원을 관리할 능력은 없었어요.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카페 공간인 만큼 정원에도 좀 더 세심한 공간분할이 필요했어요.

정원 공사를 하기 전 바이허니 마당


  아차차, 그때야 깨달았답니다. 정원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걸요. 다시 큰맘을 먹었습니다. 정원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분을 물색해보았어요. 이번에도 주변 반응은 뜨악했어요. 우리 지역에서 정원디자인 업체를 찾기가 어렵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저는 전문 설계의 힘을 체험한 사람이잖아요.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정원 가꾸기 잡지 들을 뒤지다가 정원에 관한 가치관이 저와 비슷한 설계자를 만났어요.


  경기도 안성에서 정원 마을을 만들어 가는 ‘정원친구 이오’와 몇 번의 상담을 거친 다음 이오의 살림집과 작업장을 품고 있는 정원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경기도 안성까지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장미꽃 그득한 이오의 정원도 좋았지만,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꾸며내는 마을 전체가 인상적이었어요. 동행했던 라경, 연이, K도 안목이 키워지는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이오도 우리 카페를 방문해 마당을 직접 보고 동선에 따라 걸어보며 대화를 나누었어요.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의 연관성을 살피며 정원을 어떻게 꾸밀까 구상했던 거죠. 건축설계와 정원 설계를 함께 시작했다면 참 좋았겠더라고요.

정원설계도와 뒷마당 텃밭에서 강의 중인 이오 사장님, 완성되어가는 정원


  ‘코로나19’라는 세계적 감염병 앞에서 속절없이 일상이 무너지는 시기, 그에 대비한 공간 배치도 절실했어요. 카페 안에서도 정원에서도 ‘거리 두기’를 염두에 두면서 공간을 재배치해야 했어요.

  앞마당 너른 테라스에는 나무와 꽃으로 여러 탁자를 슬쩍슬쩍 가리며 분리하고요. 아예 테라스 자체를 작게 만들어 나누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뒷마당 텃밭도 공간을 쪼개서 일행끼리 오순도순 대화할 수 있도록 계획했고요.


  건축 설계 과정이 가슴 뛰는 상상 놀이였듯이 정원 설계도 똑같은 과정을 밟았어요. 바이허니의 생활 패턴에 적합한 설계도를 만드는 거지요.  ‘정원은 지붕 없는 거실’이라는 정의에 공감하면서 여기저기 사람이 머무르기 좋은 공간을 꿈꾸면서 말이에요.

  카페를 계획하시는 분은 저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걷고, 앉고, 눕기도 하는 바이허니 산책로, 완성되다!      


  정원 설계에서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바이허니 건물 안과 밖을 이어주는 건축적 산책로를 완성하는 것이었어요. 도로와 맞닿은 입구부터 바이허니 현관문까지 이어지는 주 통로를 먼저 그리구요, 입구에서 별채 방향으로 건물을 크게 돌아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보조 통로를 정리했어요.

  뒷마당에서 중정을 통해 앞마당으로 다시 내려오거나 직진해서 유리온실도 들어간 다음 바이허니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산책로이지요.             

입구에서 현관까지 들어오는 주 통로


  주 통로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직선형 길이라 소재에 변화를 주었어요. 간판이 있는 시작 부분은 도로와 같은 소재인 콘크리트로, 마당 영역부터는 정원과 부드럽게 어울리는 나무데크로, 건물이 시작되는 곳부터는 건물의 콘크리트와 어울리는 현무암 판석으로 소재를 분리했지요.

  별채 방향으로 이어지는 보조 통로는 가든하우스 테라스와 별채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나무데크로 이어줬어요. 별채 건물 시작점부터는 같은 소재의 나무로 툇마루를 주욱 이어가다가 외부 화장실과 만나는 코너는 제법 넓은 평상으로 마무리했어요.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서만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지요. 앞마당은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나무들과 테이블, 야외스크린 등이 놓여 있어요. 공공의 기능을 지닌 정원이지요. 정원에 피어있는 계절 꽃과 눈 맞추며 건물의 왼쪽으로 걸어보세요.

별채 방향으로 이어진 나무테크길을 따라 붙은 툇마루와 노을맞이 평상, 유리온실에서 내다본 뒷마당 텃밭


 평상이 놓인 이 공간은 건물 서쪽의 구석진 자투리땅이라 쓸모를 못 찾던 곳이었는데 눈 밝은 정원 설계자, 이오가 그 공간의 쓸모를 기막히게 찾아낸 것이지요.        

. 바이허니 갤러리 상설 화가인 소양과 경춘이 그린 고양이들이 놀고 있는 이곳은 선선한 여름 저녁에 길게 넘어가는 노을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에요. 어두워지면 드러누워 별바라기 하기도 좋지요.

 벽화에 걸린 고양이와 생선을 따라 벽체를 한 바퀴 돌면 뒷마당 텃밭이에요. 손바닥만 한 텃밭이지만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들이 철 따라 여물어가고요, 모과, 석류, 개암 열매도 익어가지요.

텃밭에서 앞마당으로 넘어올 수 있는 체리나무가 있는 중정 테라스와 오른쪽으로 덧붙인 가든테라스


  텃밭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체리 나무가 서 있는 중정이에요. 열매가 익어가는 봄에는 사람들도 계단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체리를 따 먹는답니다. 중정 쪽으로 난 유리문을 열면 본채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계단을 걸어 앞마당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요.

  텃밭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유리온실이예요. 거기서 오른쪽 문을 열면 바이허니 본채로 들어갈 수도 있구요, 뒷쪽 문을 열고 장독대가 놓인 뒷마당으로 나갈 수도 있지요.    




  정원을 즐기는 가든하우스와 논 풍경을 즐기는 유리온실     


  앞마당을 지나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뒤뜰 테라스가 있어요. 생활을 위한 여러 도구를 보관하기도 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처리하는 곳이지요. 그래서 직원 전용 구역이기는 합니다.

  그 옆은 오가피나무, 참죽나무, 머위 등이 자라는 봄나물 텃밭이에요. 그 앞은 꽃과 채소를 함께 키우는 텃밭정원이에요. 텃밭정원을 지나 온실로 들어가거나, 중정으로 올라와서 앞마당으로 내려올 수도 있지요.       

어느날 스스로 찾아와 식구가 된 바이허니 영업부장 탄이

  

  참죽나무 아래 장독대를 지나면 다시 유리온실로 들어갈 수 있어요. 유리온실을 지나 디딤돌이 놓인 텃밭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체리 나무 중정을 만나요. 중정을 통해 앞마당으로 나오거나, 중정을 지나쳐 별채 벽을 따라 돌아 나와도 앞마당이 연결되고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혼자서 천천히 돌아보는 저의 아침 산책길 종점은 카페출입문 옆에 걸어둔 그네지요. 아침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그네에 앉아 탄이와 아침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커피잔이 비어 있습니다. 제 일터인 책방카페로 출근할 시간이네요.         

  정원 공사 후 가장 인기 있는 놀이터는 앞마당 가든하우스와 뒷마당 유리온실이네요. 앞마당에 설치한 가든하우스는 그야말로 정원을 누리는 공간이에요. 삼면의 접이식 문을 모두 열면 정원 속에 앉아서 꽃과 바람과 햇살을 몸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지요.

  손님이 뜸한 오전에 우리 부부가 즐겨 차를 마시는 곳이기도 하고 바이허니에 오신 분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기도 해요.

본태에서 내다본 앞마당과 가든하우스, 가든하우스 내부, 비오는 날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는 뒷마당 유리온실


  가든하우스는 카페뿐만 아니라, 일반 주택에서도 아주 유용한 공간이에요. 마당 일을 하다가 잠시 앉아서 쉬거나 근처를 지나가던 이웃들이 가볍게 방문했을 때, 굳이 신발을 벗지 않고도 둘러앉아 차 한 잔 나누기에도 너무 편한 공간이거든요.

  근처에 사시는 이웃들이 우리 집 가든하우스 공사 내용을 많이 물어보시고 실제로 마당 한 켠에 가든하우스를 만들기도 하셨어요.    


  뒷마당에는 벽면은 물론, 천장까지도 투명한 유리온실을 넣었어요, 유리온실 뒤로 펼쳐진 푸르른 논은 별 기대 없이 들어온 손님들이 탄성을 지르는 풍경이지요. 앞뒤로 달아둔 접이식 창문을 모두 열어두면 건물 사이로 흐르는 바람결이 좋아 웬만한 여름 날씨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지요.

  하지만, 사실 이 공간은 겨울을 나기 위해 만든 곳이에요. 한겨울 추위를 피해 들어온 파초, 커피나무, 수국 등의 화분들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을 나누며 해바라기 하기에 딱 좋은 겨울 쉼터이지요.    




  지붕 없는 거실, 마당 놀이터          


  현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는 주택 정원을 ‘지붕 없는 거실’이라더군요. 그가 설계한 ‘작은집도 마당을 생활에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를 아주 세세하게 배치해서, 건물은 작아도 생활은 풍성해지도록 만들었더군요.

  저는 마당에서 노는 게 좋아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커피를 한 잔 내려 마당으로 나갑니다. 가운데엔 제법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어요. 땅을 사자마자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만든 첫 작품, 십 년 가까이 눈비를 맞으며 마당을 지켰던 나무 탁자지요.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이허니 마당과 1호테이블 '나무탁자'

 

  그곳에 앉아 여린 햇살이 비치는 국수봉을 바라봅니다. 단정하게 흘러내리는 산자락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시골집들이 아주 편안하고 다정해 보여요. 그래서일까요? 카페 손님들도 이 탁자를 아주 좋아해요. 널찍하니 펼쳐진 탁자에서 두동반점 짜장면도 시켜 먹고, 손수 싸 들고 온 간식도 펼치곤 하지요.

  점심나절 한바탕 손님을 치르고 나면 향긋한 허브차 한 잔 들고 중정의 체리 나무 아래로 갑니다. 본채와 별채 사이에 있는 곳이라 바람이 아주 잘 통하는 여름정원이지요. 체리 나무가 슬쩍 뒤를 가려주는 탁자에 앉아서 앞마당을 내려다보노라면 부드러운 바람이 등을 쓸어주곤 해요.

밤풍경이 아름다운 바이허니


  날이 저물고 마당에 어둠이 내리면 정원 곳곳에 등불이 켜집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낮은 높이에 설치해서 부드럽게 바닥을 비추는 불빛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근처 사는 이웃이 저녁밥을 먹고 슬슬 산책하다가 들르는 시간, 바람이 잘 통하는 마당에서 누가 손님인지 누가 주인인지 가리지도 않고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하늘과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지요.

어린 날의 짱이와 델링이의 아빠가 된 짱이


  그러는 와중에 정원 어디선가 ‘야옹야옹’ 소리가 들립니다. 서럽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길냥이들이 먹을 걸 나눠달라고 집사를 부르는 소리지요.

  얼른 일어나 밥과 물을 갖다 주고 자리를 피해 줍니다. 항상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길냥이들이라 쉽게 몸을 내주지 않거든요. 이렇게 냥이들과 ‘따로 또 같이’ 마당의 밤이 깊어갑니다.          




  하루를 열고 갈무리하는 그네의자     

  

   바이허니 정원 공사 중 사심 가득한 공간이 하나 있어요. 본채 출입구 옆에 설치한 그네의자. 가든하우스나 유리온실이 손님을 먼저 염두에 둔 공간이라면, 이 그네의자만은 저를 위해 만들었어요.


  아침이면 그득하게 내린 커피를 한 잔 들고 걸터앉는 곳, 새싹들을 어루만지는 봄날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어깨가 펴지는 곳, 손님 뜸한 평일의 오후에 슬그머니 책 한 권 들고 걸터앉는 곳, 바로 그네의자예요. 살랑거리는 그네에 몸을 맡기고 책을 읽노라면 꽤 멋진 책방주인이 된 듯해 저 혼자 으쓱하기도 해요.   


 이렇게 모든 순간이 좋지만, 특히 최고의 위로와 휴식을 주는 때는 하루의 일과를 갈무리하는 시간이랍니다. 손님 접대하느라 고단해진 영업견( 탄이 보러 왔다는 가족들이 은근 많아요) 탄이와 산책을 기다려온 집냥이 여울이, 바이허니 뒷마당에 깃들어 사는 마당냥이 라스와 델링이가 평화로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정원을 즐기거든요.

  '그래, 우리가 이 마당에 기대어 사는 식구들이지……'


  오늘도 흔들리는 그네의자에서 석양빛을 바라봅니다. 한결 차분해진 정원도 눈길로 쓰다듬어 봅니다. 제 마음도 한껏 누그러지네요. 하늘과 땅이 조화롭고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평화롭습니다. 충분하고 충만합니다.


동물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맞이하는 여기는, '만물이 조화로운' 만화리 바이허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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