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권’ 조성기 4
막히지 않는 공간, 건축적 산책로
콘크리트 구조와 배관설비를 그대로 노출하는 구조를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라고 하더군요. 벽체에 아무것도 덧대지 않으니 공간이 넓어 보이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으면서 세련된 느낌까지 드니 여러모로 좋았어요. 우리도 전체적으로는 그 장점을 살리기로 했어요.
대신 손님을 맞이하는 입구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나무로 감싸기로 했어요. 천장, 주방, 테이블도 나무로 했는데,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콘크리트와 원목의 질감이 잘 어우러질까 염려가 되더군요. 하지만 설계자의 안목을 믿고 추진했어요.
실내 공간 벽마다 문이 있어요. 어떤 문으로도 출입할 수 있으니 카페 안팎으로 산책이 가능합니다. 앞마당을 가로질러 주출입구로 들어오면 아래층의 책방과 위층의 카페가 동시에 보이는, 이른바 ‘스킵플로어’ 구조입니다.
책방을 먼저 둘러보고 카페 층으로 올라오면 유리온실로 나가는 문이 있어요. 그 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나가 텃밭 구경을 하다 보면 중정으로 올라오게 되지요. 중정에서는 다시 카페로 들어올 수 있는 유리문이 있고, 중정 계단을 내려오면 앞마당을 통해 다시 출입문으로 연결됩니다.
바이허니 건물의 안과 밖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작은 길들.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가 강조한 ‘건축적 산책로’를 바이허니 방식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바이허니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카페와 책방을 함께 배치하려니 한 뼘도 아쉽네요. 하지만, 어차피 이 집은 친구들의 꿈까지 함께 펼쳐보기로 한 곳,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에 따라 공간을 나누어 봅니다.
가장 아래층은 책방이 우선이고 중심입니다. 이곳에서는 책 표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즐겁고 편안해지면 좋겠어요. 비용이 좀 많이 들지만, 서가를 전부 나무로 짰습니다.
서가의 구조도 책의 앞면이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표정훈 출판평론가가 말한 ‘표지 독서’의 유용성을 따랐지요. 표지에 실린 제목과 저자를 접하고 표지디자인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요.
그뿐이겠어요? 책 한 권 한 권이 전문가가 공들여 쌓아온 콘텐츠니, 표지를 수시로 살피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지요.
바이허니 책방에 내려가시면 계단 아래를 살펴봐 주세요. 손바닥만 한 공간이지만, 힘들고 지친 이들을 위한 쉼터도 마련했어요. 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해요.
분나 마프라트를 함께 한 화봉식스가 선물한 커다란 공의자에 기대, 책 읽는 척하다가 스르르 한숨 자고 나오는 공간으로 딱 맞춤이에요. 조용히 혼자서 책방에 오신다면 계단 아래로 내려가 보세요.
책방 한쪽 벽면은 비웠어요. 이름도 붙였답니다. <바이허니 갤러리>. 바닥은 마룻바닥으로 단을 살짝 높이고 마룻바닥의 끄트머리엔 피아노를 놓아두었어요. 평소엔 책방과 갤러리를 구분하는 경계 역할도 하면서 공연이나 강연의 공간으로 변신시키기도 좋거든요.
책방 위층은 카페입니다. 바이허니 커피를 마시며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지요. 이웃이 만든 소품을 구경하고 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계단 벽면엔 도마가 걸려 있어요. 미술 교사이면서 목공예를 취미로 하는 동갑내기 진환이 만든 ‘화니 도마’예요.
계단에 올라서면 연태가 한 땀 한 땀 정성껏 깎아낸 서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방하착 – 내려놓기’, ‘바쁠 게 머있노’ 등으로 새겨진 글에 연태의 철학이 담겨있네요.
그 옆으로는 공유서가랍니다. 읽고 싶은 책을 누구라도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책장이지요. 먼저 바이허니의 공식 북큐레이터 ‘라경의 서가’를 소개합니다. 라경이 참여하는 여러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들이 색색의 띠지로 감싸 안긴 채 꽂혀있네요. 띠지에는 책에 대한 소개 글이 라경의 예쁜 손글씨로 적혀 있고요.
그 옆에는 ‘태숙의 서가’가 있어요. 책방카페를 준비하면서 제가 참고했던 책들 - 생태와 시골살이, 건축, 책방 운영, 커피와 차 등에 관한 책들이 꽂혀있어요. 동네책방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무엇이든 돕고 싶어 골라둔 책들이에요. 바이허니와 비슷한 동네책방이 동네마다 생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말이에요.
서가 옆으로는 툇마루를 재해석한 공간이 나란히 있어요. 카페 안 이동통로를 따라 신발을 벗고 올라앉거나 걸터앉을 수 있는 자리지요. 소설가이자 국어교사인 ‘강미의 서가’가 보이네요.
청소년을 위한 책들이 가득하군요. 물론 강미가 쓴 청소년소설들도 꽂혀있고요. 『길 위의 책』, 『밤바다 건너기』, 『안녕, 바람』 등의 책을 찾아보셔요. 맞아요. 눈치채셨군요. 강미 작가가 바로 K예요.
그 옆엔 ‘유미의 서가’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꽂혀있어요. 유미는 중등 국어교사이지만 그림책의 가치와 역할을 소중히 생각하는지라 그동안 모은 책도 아주 많군요. 실제로 이 툇마루 좌석은 바이허니에서 매우 인기 있는 자리랍니다. 특히, 어린 손님들에게요.
체리 나무 중정 건너엔 별채 방이 있어요. 별다른 장식 없이 널찍한 방에 공의자 몇 개가 무심히 놓여 있네요. 그 위로 몸을 부려놓으면 일상의 긴장이 툭! 풀리는 곳이지요.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와 함께 편안히 쉬고 싶다면 별채 1층의 공의자에 둘러앉아 보셔요.
한쪽 벽면은 흰색으로 비워두었어요. 스크린이랍니다. ‘방구석 1열’처럼 영화관람을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좌식탁자에 둘러앉아 책 모임을 하고, 프랑스자수 모임도 하고, 뜨개질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지요. 드러누워 하늘만 봐도 되는 곳, 무엇이든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곳이 별채이니까요.
별채의 서쪽엔 숨어있는 공간이 하나 있어요. 별채 손님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외부화장실이지요. 그런데 이 화장실의 구조가 특이하고 재미있어요. 외부화장실은 필요한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은 한 평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궁즉통! 안동 병산서원의 ‘달팽이 뒷간’이 생각났어요. 우리도 그 뒷간처럼 벽체를 달팽이처럼 두르고 변기 위치에만 지붕과 문을 달았어요. 세면대 공간은 지붕 없이 개방했고요.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없는 불편 한 화장실이지만 나름 운치가 있어요.
바이허니 별채 2층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어요. 다른 지역에 살면서 가끔 내려오는 작은딸 방으로 설계했던 곳이에요. 거의 비어 있게 된 공간을 아까워하다가 괴산의 <숲속 작은책방>에 갔을 때 다락방을 북스테이로 쓰던 게 기억나더군요. 딸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방을 내주었고요.
3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편안하고 쾌적한 곳, 재미난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궁리 끝에 침대는 다락 형태로 천장에 매달았어요. 난간도 없는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누울 수밖에 없는 수면 전용 공간이지요.
그 아래는 동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창문을 기역 자로 길게 넣구요, 창문턱 따라서 책상 겸 탁자를 좁고 길게 짜 넣고 바퀴 달린 의자를 두었어요. 동쪽 창문에서 남쪽 창문으로 굴러다니며 바깥 구경하시라고요. 동쪽으로는 치산서원과 치술령이, 남쪽으론 넓은 하늘과 벚나무 군락에 시야가 황홀할 거예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자투리까지 안으로 들였으니 남쪽 벽이 세로로 잘렸어요. 다락방 느낌이 살짝 나면서 은밀하기도 한 공간이 만들어졌네요. 높다랗게 작은 창을 내어 늘 환기가 되도록 했으며, 쾌적한 욕실도 마련했어요. 욕실 앞에는 수납을 함께 할 수 있는 전신 거울과 미니 화장대도 두었어요.
텔레비전은 처음부터 넣고 싶지 않았어요. 오롯한 휴식, 책과 함께 하룻밤 쉬어가는 곳이 되길 원해서예요. 취사는 안 되지만 가져온 음식으로 파티는 즐기실 수는 있어요. 달빛과 별빛 가득한 정원을 마음대로 쓰실 수 있으니까요. 주변에 근사한 밥집들이 많으니 식사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요. 다음 날 아침엔 햇살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빵과 과일, 드립 커피를 드실 수 있어요.
별채 옥상에도 올라가 볼까요?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이웃들은 바이허니 책방지기를 고위층인사라고 부른다지요. 매우 가파른 계단이지만, 올라가면 보람이 있어요. 탁! 트이는 전망이 보이거든요. ‘만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두동면 만화리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이에요.
옥상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몸을 한 바퀴 돌려봅니다. 몽실몽실 혹은 뭉실뭉실한 산들이 에워싼 형상이 마치 연꽃 속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제 난간 턱에 기대어 앉아 보세요. 해 질 녘 서쪽으로 길게 물드는 노을을 따라 눈길을 보내면 고헌산과 가지산까지, 크고 작은 산들이 겹쳐 서 있는 능선이 마음을 아득하게 만들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