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방 바이허니 Oct 01. 2021

‘없애고 치워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시공의 원칙

‘책세권’ 조성기 3





  낮에는 공사판 밤에는 영화판, 반전왕 시공사 사장님     


  설계가 끝나자 시공사 사장님이 왔습니다. 현장을 완전히 갈아엎고 평탄화 작업을 한 후에 공사를 시작할 거라 하는군요. 현장에 이런저런 적치물이 있으면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니 컨테이너도, 나무도, 상자 텃밭도, 그 어떤 것도 걸리적거리면 안 된다고 하네요. 그 모든 것들을 없앤다고요. 


  만화리 땅을 산 지 7년, 아시다시피 우리 부부는 컨테이너 농막을 ‘만화리 별장’이라 부르며 마당을 가꾸어 왔잖아요. 그동안 이웃들에게 선물 받은 나무들, 정 선생님 밭을 빌려 키우던 나무들, 경주산림환경연구소와 인근 시장에서 사 온 묘목들……. 


  그뿐인가요? 밭을 일구면서 나온 바윗돌을 경계석으로 쌓기도 하고, 보도블록 교체공사장에서 버리는 블록을 몇 차례나 승용차로 실어 마당에 깔고 상자 텃밭의 울타리도 만들었어요. 시멘트와 타일을 사서 은근 화려한 수돗가와 야외주방도 꾸몄고요. 방부목을 사서 처마를 달아내고 탁자와 의자도 만들었어요. 

  이웃집 아저씨는 멋들어진 정원 등을 손수 만들어서 세워주셨지요. 봄여름가을겨울이 일곱 번 바뀔 동안 만들고, 만들고, 만들면서 놀았던 곳이에요.  

시공팀에게 배관의 방향을 설명하고 있는 허니 님과 옮겨야할 나무를 분류중인 나

  

  그랬건만 회자정리! 이별의 순간이 왔습니다. 자기 땅에 자기 집을 짓는 일이지만 공사가 시작되면 공사현장의 모든 책임과 권한은 시공사 사장님께 있어요. 이런 순간이 오리라 각오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몹시 섭섭하고 아쉬웠어요. 무엇보다 7년 동안 심고 가꾼 나무들은 살리고 싶었어요. 

  마당 한쪽 귀퉁이를 조금만 내주면 모든 나무를 그곳으로 모아서 관리하겠다고, 제발 나무들을 살려달라고 시공사 사장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사정하고 애원했답니다. 


   “안 됩니다.” 

  시공사 사장님은 단호하더군요. 하지만 더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하여 집터로 들어와 있는 동쪽 도로를 포함해서 약간의 귀퉁이를 얻어냈습니다. 모든 나무를 옮기기에는 턱없이 비좁았지만 말이에요. 

  다시 결단의 순간, 반 이상의 나무를 이웃에 나눠주고 꼭 필요한 나무들만 남기기로 했어요. 작은 나무와 화초들은 삽으로 파서 화분에 옮겨 심었고요. 몇 날 며칠 삽질이 이어졌답니다. 제법 자란 큰 나무들은 삽으로는 어림없었어요.


  지켜보던 시공사 사장님이 소형 포크레인을 몰고 왔어요. 장비 몇 번 오가더니 이런, 한나절 만에 작업이 끝나네요. 

  “장비 만세!”

  이렇게 도와줄 거면서 그렇게나 안 된다던 시공사 사장님……. 원망은커녕 눈물 나게 고맙더군요. 울면 젖 준다는 옛말, 통했나 봐요. 


  안 사장님은 그 후에도 안 돼요, 안 됩니다, 소리치고는 나중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줬어요. 노가다는 맥심이라더니 드립 커피 말고는 안 마시는 분, 낮에는 공사판에서 일하고 밤에는 영화동아리를 운영하는 분, 반전 왕 안 사장님!              


 


  

  골조의 숲을 산책하다


  이제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현장에는 평탄화 작업의 위력이 보이더군요. 지난날의 그 어떤 흔적도 없이 누런 황토밭에 사각 구덩이 세 개만 있네요. 본관 1층, 서관 지하, 별채의 기초바닥이라고 해요. 황토를 파낸 자리에 시멘트가 얇게 부어져 있으니 마치 ‘누가크래커’처럼 보이더군요. 저 조그만 곳에 설계도의 그 많은 공간이 들어갈 수 있을지 의심도 들었고요.


  며칠이 지났습니다. 누가크래커 위에 철골이 세워졌어요. 1층 카페 공간은 층고가 4m 정도로 높거든요. 그곳에 철골이 높고 빽빽하게 세워진 모습을 보니 마치 대나무숲 같더군요. 빽빽하게 세워진 철골 사이로 걸어보았어요. 

  마치 태화강 대숲을 걷는 듯했어요. 믿지 않겠지만, 대나무 향처럼 철골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어요. 비좁은 철골 사이를 걸으며 화장실, 로스팅실, 주방, 홀, 서가, 계단을 짐작으로 찾아보았어요. 제가 잘하는 상상 말이에요.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어요. 철골은 나무 갑옷을 입었고 그 틈새로 콘크리트가 부어집니다. 한참 뒤 나무 갑옷을 벗겨내니 골조가 우뚝하니 섰어요. 우람했어요. 멋졌어요. 설계도에서도, 조감도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위엄이 느껴졌어요.      

공사중인 건물을 둘러보는 '무늬들'

  후배들도 관심이 많았어요. 마치 자기 집 짓는 것처럼 기뻐하고 응원하였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들('무늬들')과 함께 골조만 지어진 현장을 걸어보았어요. 저는 주인의 생활 동선으로 걸었지만, 후배들은 손님 동선을 상상하였겠지요. 

  1층 본관으로 들어가서 지하 서가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관 1층으로 올라서 돌아가 보면 중정, 그 건너편엔 별채 좌식 방이에요. 우리는 좌식 방 문턱 골조에 나란히 걸터앉았어요. 


  북쪽 창틀을 통해 들어온 시원한 바람이 중정을 건너 불어와 한여름 늦더위가 날아가네요. 다시 중정으로 나와서 계단을 오르면 북스테이로 사용할 방이고 그 위는 옥상이에요. 

    별채와 본채를 잇는 작은 구름다리를 건너면 본채 살림집입니다. 아주 단순하여 우리 부부가 생활할 방과 주방 겸 거실, 화장실이 전부예요. 


  자, 이제 실내계단을 올라볼까요? 뼈대만 놓인 계단을 조심조심 밟고 다락 층으로 올라갑니다. 다락은 딸이 사용할 공간이에요. 건축 규정상 3층을 지을 수 없어서 생각해낸 옹색한 공간이지요. 그런데 다락에 오른 후배들은 탄성을 질러요. 다락방 창을 통해 치산서원 정원이 통째로 들어오기 때문인가 봐요.  

  이제 다락에서 내려갑니다. 살림집으로 내려와 주거 전용 계단으로 내려오니 다시 본관 카페 현관 앞이에요. 집 하나 구경했을 뿐인데, 동네를 산책한 기분이 듭니다. 후배들도 그렇게 말해주니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몸은 만들었다. 어떤 옷을 입힐까?           


  저는 건축구조에 욕심이 많았어요. 6개월에 걸친 설계 회의에서 이것저것 많이 요구했어요. 골조가 올라가는 동안 여러 차례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골조가 끝나고 외장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시공사 의견에 고분고분 따르기로 했답니다. 튼튼한 뼈대를 뜻대로 세웠으니 외장은 유행을 타지 않는 실용적인 자재로 해달라는 부탁만 드렸어요.


  골조를 감싸는 외장재 종류도 참 많더군요.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콘크리트, 한 층 한 층 쌓는 벽돌, 석고를 주재료로 만든 도포제 스타코, 알루미늄 강판을 재료로 한 징크, 흙을 구워 만든 세라믹타일…….

  골조가 무엇이 되었든 외장재로 집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어 건축주들이 매우 고심하게 하는 단계이기도 해요. 대부분 물건이 그러하듯, 멋있으면 비싸고 싸면 멋이 없어요. 

 

 고민하던 우리 설계자, 드디어 저렴하면서도 ‘쫌’ 멋있는 외장재를 찾아냅니다. 벽돌 중에서 가장 싸다는 시멘트 벽돌로 본채 2층과 별채 외벽을 쌓고 본채 1층과 중정까지는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 건축 공법상의 노출콘크리트는 시공비가 비싸니까 골조를 그냥 드러내는 방식을 쓰자고 합니다. 우리는 설계자의 판단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어요. 


  지붕은 사람으로 치면 헤어스타일이에요. 옷과 함께 첫인상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지요. 우리는 동쪽 치산서원의 한옥 기와는 물론 옆집 지붕과도 어울리도록 단정한 징크 지붕을 쓰기로 했어요. 남쪽 지붕에 올릴 태양광전지판과도 잘 어울리겠더라고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다지요. 겪어보니 건축도 반은 하늘이 짓더라고요. 5월에 착공하고 골조가 올라가는 동안 장마가 왔어요. 비가 내리면 부어놓은 콘크리트가 더 단단하게 굳을 거라 위안하며 장마 기간을 견뎠지요. 7월엔 극심한 무더위가 시작되더군요. 

   연일 열대야가 이어지고 날마다 최고온도를 갱신하는 날들이었죠. 한낮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경보가 매일 날아왔어요. 별수 없이 쉬어야 했어요. 2주일이나 공사를 멈췄어요. 마을 사람들은 건축 중에 부도가 났을 거라 수군거리기도 했다네요. 


  더위가 한풀 꺾이고 드디어 외장벽돌을 쌓습니다. 6명의 전문가가 손발을 맞춰가며 쌓아가는데도 덩치가 크니까 시일이 제법 걸렸어요. 그런데 이런, 그 와중에 가을장마가 오네요.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이 옵니다. 비가 오면 벽돌쌓기를 멈추고 건축자재들은 비닐을 덮어야 해요. 일하는 분들이 짜증을 내고 우리 부부는 애가 탔어요.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말이에요.          













이전 05화 ‘삶’을 디자인하는 건축 설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