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보고, 남의 집 구경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책부터 찾는 사람들이 있지요. 저도 책으로 먼저 만나야 안심이 되고 비로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쪽이에요. 그래서 책방 하겠다는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네요.
땅 산 지 7년 뒤, 우리는 책방과 살림집을 겸할 건물을 짓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럼 뭐부터? 당연히 건축 관련 책이겠죠?
구본준이 쓴 『마음을 품은 집』이 좋더군요. 특히 강릉 ‘선교장’은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집이었어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공고한 조선 시대에 여성의 결단과 문화적 소양을 존중하면서 일으킨 집, 문화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가풍으로 손님 접대를 후하게 하는 집,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는 가진 자의 의무를 충실히 실천하는 집…….
『집을, 순례하다』는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지은 집을 둘러보며 쓴 책인데 읽을거리가 많았어요. 그중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작은집’은 살림집의 구조와 쓰임에 대해 눈을 새롭게 뜨게 해주더군요.
현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는 ‘집이란 주거를 위한 기계’라는 건축 철학으로 외관보다는 편리함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요.
동선에 막힘이 없는 집, 실제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는 뒷마당의 중요성, 마당은 단순한 빈터가 아니라 ‘지붕 없는 거실’이라는 인식, 심지어 함께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의 생태를 반영한 깜찍한 구조물 등 생활을 위한 집이 어떤 구조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해주었어요.
오시마 겐지가 지은 『집짓기 해부도감』 시리즈도 도움이 많이 되었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집을 구석구석 해부해서 일러스트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가족관계나 집의 위치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서 어떻게 쓰이는 공간인지를 설명하고 있어 초보자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을 그려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 시리즈를 바탕으로 백 번도 넘게 ‘책방카페, 바이허니’를 짓고 허물었답니다. 물론 연습장 위에서 말이에요.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는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빵집 주인 진 도모노리와 함께 쓴 책이에요.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건물의 주인공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라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은 진 도모노리가 가족이 평화롭고 검소하게 살아갈 빵집을 지어달라고 손편지로 설계를 부탁했다네요.
주로 살림집을 짓던 건축가는 빵집이라는 새로운 내용을 담을 집을 위해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몇 번이나 찾아가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곳에 살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했고요. 그 후 나카무라는 의논하고 또 의논하면서 빵집을 설계해 나갔어요. 집을 완성해갈 무렵, 나카무라는 도모노리에 대해 의뢰자이자 공동 설계자였다고 편지에 씁니다. 책을 덮으며 저도 깨달았지요. 집이란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걸 말이에요.
“건물의 주인공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화봉고등학교는 울산택지개발지역에 위치한 신설학교였어요. 도시 외곽이라 학교 주변에는 멋진 전원주택이 많았고, 날마다 새로운 집이 지어지고 있었어요.
저와 동료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 주변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곤 했지요. 집 외관을 살펴보며 내부구조를 짐작해보기도 하고, 집주인이 마당에 있으면 내부까지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어요.
집 구경도 단계가 있더군요. 처음엔 집의 외관에 눈길이 갔어요. 붉은 기와에 하얀 벽체 집은 마당의 초록 정원과 어우러져 동화의 한 페이지가 튀어나온 것 같았어요.
아름드리나무 기둥이 우뚝하고 지붕 선이 날아갈 듯한 한옥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품격까지 높아 보이더군요. 재료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콘크리트 주택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멋이 있었고요.
집을 구경하는 횟수가 거듭되자 이제 집의 외관보다 구조에 눈길이 갔어요. 특히 주방의 위치와 쓰임새를 세밀하게 봤어요. 무릇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일상생활에서 그 마당을 최대한 누리도록 하는 설계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보니 집의 내부와 마당을 유기적으로 이어줄 수 있는 전이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내었는지 유심히 살피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발견한 건축회사가 있었어요. ‘어반건축’! 그 이야기는 잠시 뒤에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는 마음에 드는 집에 작게 붙어있었던 상호일 뿐이었어요.
이상이 높아서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설계
결혼한 후 아파트를 두 번 옮겼는데 살 때마다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요. 직장과 가까운 위치, 경제력에 맞는 평수만 고르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주택은 그럴 수 없었어요. 오십여 년 만에 처음 지어보는 ‘우리 집’이잖아요. 잘 짓고 싶었어요. 처음 소망은 3층의 상가주택이었어요.
1층은 제가 꿈꾸던 책방카페, 2층은 가족을 위한 살림집, 3층은 임대주택으로 구성하고 싶었답니다. 남편의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당분간 혼자 살아야 했기 때문이에요. 무섭기도 할 것 같아 약간의 생활 소음이 있는, 아이가 딸린 가족에게 내주고 싶었어요.
상가주택이겠지만 직육면체의 몰개성적인 건물에 살고 싶지 않았어요. ‘방2, 거실, 주방, 욕실’을 넣은 그저 그런 방을 임대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틈틈이 구상하고 그려보던 건축 관련 메모와 건축 평면도
어느 날 정기구독하던 건축 잡지에 실린 집 한 채가, 그야말로 뇌리에 딱 박혔습니다. 간결한 구조와 외관이 ‘르코르뷔지에’의 ‘작은집’과 닮았는데 심지어 울산에 있는 집인 거예요.
저는 망설이지 않고 설계자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어요. 외국에서 건축을 배우고 돌아온 젊은 건축사였어요. 서울에 설계사무실을 개업한 동업자 역시 외국에서 건축을 배웠다고 하고요.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야말로 ‘글로벌한 드림팀’을 만나서 설계를 시작했어요. 우리 부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렜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설계 회의를 진행할수록 ‘글로벌한’ 설계방식이 우리와 맞지 않는 거예요. 설계자는 너무나 훌륭해서 건축상을 받았다는데, 우리 집도 멋지게 지어 건축상을 받자고 하는데, 그가 그려주는 집 구조는 대문 위치부터 제가 꿈꾸던 생활양식과 거리가 멀었어요.
제가 살 집이니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제 견해를 밝혔지요. 그럴 때마다 설계자는 자신의 전문 영역임을 내세우더군요. 우리 부부는 수업 아닌 수업을 들어야 했고요. 헤어져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마음은 더 무거웠고, 머리는 말할 수 없이 복잡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설계자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어요. 건축법규 상 우리 집은 3층으로 지을 수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거예요. 바로 옆에 있는 치산서원이 문화재라서 인근 건축물 높이는 2층으로 제한되어 있다네요.
‘헐, 그러면 여태까지 법규도 확인하지 않고 설계를 진행했다는 말인가.’
급히 휴가를 내고 내려온 남편과 함께 군청에 들어갔어요. 건축과, 도시계획과, 문화관광과를 돌면서 건축법규를 직접 확인해보았더니 문화관광과에서 내민 서류에 관련 규정이 명시되어 있더군요.
“문화재 500미터 안에서 건축할 경우 평지붕은 8m, 경사 지붕은 12m로 제한한다.”
아뿔사! 도로아미타불……. 글로벌하게 아름다운 건축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건축규정부터 확인했어야 하지 않나요? 설계자에게 전화하니 3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네요. 3층으로 설계하여 문화재 심의에서 동의를 받거나, 아니면 행정소송을 하면 된다고요.
‘으아아아! 그렇게 갈등과 투쟁으로 집을 짓고 싶지는 않다구요!’
일단, 설계를 멈추었어요. 집 설계만 멈추는 게 아니라 삶의 설계도 일단 멈추어야 했지요. 밤이면 인적이 끊어지는 시골집에서 혼자 지낼 걸 각오하고 집을 지어야 할지, 남편이 퇴사하고 내려올 때까지 건축을 미루어야 할지 판단이 필요했어요.
‘글로벌한 드림팀’의 ‘글로벌한’ 설계방식은 제 삶의 양식에 맞지 않는 '뜬구름' 같기만 했답니다.
짓고 부수고를 반복한 끝에 얻은 설계도
설계를 중단한 후, 두어 달이 금방 지나갔어요. 고민하고 의논한 결과 남편이 직장을 접고 울산에 내려오기로 했어요. 이제 부부가 함께 카페를 운영하기로 하고 새로이 설계사무소를 찾았어요. 친하게 지내는 후배 교사가 실력 있는 건축사를 소개해주더군요.
마침 후배의 지인이 그분께 설계를 의뢰해서 집을 지었다길래 그 집을 구경해보기도 했어요. 역시 전문설계자가 설계한 집이라 요모조모 실용적이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건축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다르다는게 느껴지더군요.
그러던 중,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반건축> 간판을 보았어요. 아하! 화봉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눈여겨봤던 그 건축회사 말이에요. 우리 부부는 대뜸 안으로 들어갔어요.
긴 시간 질문을 쏟았는데 건축사는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고 진지하게 상담해 주더군요. 미덥고 흡족했지만, 실패 상처가 있는지라 좀 더 고민해보겠노라고 말한 뒤 일단은 그냥 나왔어요.
며칠을 재다가 우리 부부는 결심했습니다. <어반건축>에 설계를 맡기기로 하고 설계자에게 편지를 썼어요.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의 ‘진 도모노리’처럼 우리 가족이 원하는 모습을 A4용지 7쪽 정도로 적었어요. 설계자의 답은 그것을 바탕으로 공간구획을 그려낸 기초배치도였고요.
설계사가 보내준 건축 외형스케치와 설계 회의에 제시한 세부적인 메모
저는 그 배치도에 따라 생활 동선을 상상해보았어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보고, 저쪽에서 이쪽으로도 걸어보고, 어느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할지도 상상했어요. 그러면서 수정할 점과 보완할 점을 색깔 펜으로 메모해서 다시 의논했고요.
공간에 대한 희망 사항이 너무 많았을까요? 옆에서 지켜보던 K는 설계자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공간에 대한 욕심을 거둘 수 없었어요.
다행히 설계자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가성비 등을 설명해주더군요. 그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렸으므로 추천하지 않는 공간은 즉시 포기했어요. 그럴 만큼 신뢰가 쌓여 나갔던 거죠.
집짓기는 봄에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도 3월 착공을 계획했어요. 그런데 설계가 점점 늦어지는 거예요. 눈치를 보아하니 설계 일거리가 많이 밀려있는 듯했고 우리 집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더군요.
3월에 시작해서 7월 장마가 오기 전에 집을 완성하고 싶었기에 조급증이 나더군요. 설계를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재촉도 해봤어요.
하지만 설계도는 결국 4월이 넘어서야 완성되었고, 건축허가까지 받아야 해서, 5월 중순에야 비로소 착공하게 되었어요.
설계 기간이 예정보다 두어 달 길어져 버린 거예요. 하지만 설계도를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어요. 이런저런 요구를 버리지 않고 구석구석 꼼꼼하게 반영해 주었기 때문에요.
완성된 설계도를 받았으니 이제 시공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 설계자님, 집 짓는 와중에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네요. 전문설계자니까 가능하겠지요.
집을 지을 거면 전문설계자에게 맡기시라는 제 말이 이해되시지요? 집짓기를 계획하신다면 자신에게 맞는 설계자부터 찾아야 해요. 가족의 생활방식이나 자신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되고요. 그 이후는 설계자의 전문적인 판단을 믿으시면 됩니다.
이제 기초는 마련했고... 바이허니, 시작합니다. ⓒ재홍의 모래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