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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 바이허니 Sep 24. 2021

‘터 무늬’를 만들어 가며

‘책세권’ 조성기 1

 바이허니 둘레길에서 내려다 본 동네 전경






  치술령 아래, 치산서원 옆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IMF 이후로 ‘언제 짤릴지 모르는’ 회사원이었던 남편은 수시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큰소리쳤지요. 마누라가 ‘철밥통’ 공무원이니 언제든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요. 맞아요. 고상한 척했어요. 반쪽 월급으로 살아갈 일이 두렵기는 했지만 어떻게 되겠거니 싶었어요.

  남편이 퇴사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던 즈음, 회사를 그만두면 좁디좁은 아파트에서 온종일 지내야 할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남편의 삶이 시들어갈 것 같았어요. 주변에 하나둘 전원주택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바이허니 땅을 살 무렵 주변 모습

  

  하지만 우리는 둘 다 도시출생, 과연 시골 생활을 해낼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더군요. 친하게 지내는 정 선생님 부부가 우선 농사일부터 배워보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때부터 남편은 주말마다 정 선생님 소나무농장으로 갔어요. 채소와 잡초 구별도 못 했지만 정 선생님은 땅을 잘 판다, 씨를 고르게 뿌렸다며 수시로 남편을 칭찬했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남편은 농사일에 재미를 붙여가더군요. 이제 시골 생활도 가능할 것 같다 싶더군요.      


  소나무농장에서 주말을 보낸 지 3년째, 우리도 드디어 땅을 샀어요. 박제상유적지에 와 보셨어요? 치산서원이라고도 하죠.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아내인 치술공주를 기리는 사당 말이에요. 우리집이 바로 그 옆이에요. 울산시 두동면 만화리, 박제상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200여 평의 반듯한 땅이었어요. 

  귀촌 욕심이 밀려올 때마다 들렀던 문원예술촌 아랫마을이고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전원주택들이 도란도란 모여드는 곳이었어요. 박제상기념관을 동쪽에 두고 남쪽엔 개울, 북쪽엔 산을 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이었고요. 누가 뭐라건 우리에겐 명당이었답니다.      

바이허니 둘레길 밤산책 중 따라걷게 되는 박제상 유적지 담벼락


  그때 저는 신나게 국어 선생을 하고 있었고, 정년퇴임때까지 학생들과 뒹굴거려볼 예정이었어요. 남편 또한, 관두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으면서도, 회사에 충실했고요. 그러니까 만화리 이 땅은 미래의 남편 놀이터였지요. 

  그런데 K는 다르게 말하는 거예요. 땅을 보자마자 살림집으로 쓰기엔 아까운, 찻집이라도 열어 함께 나누면 좋을 터라는 거예요. 땅이 그만큼 좋은가보다 여기며 웃어넘겼죠.

 

  그런데 참 이상했어요. 그 이후 K의 말이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거예요.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제 뇌리 어느 곳에 꽂혔나 봐요. 무의식의 세계로 깊숙이 잠겼는지도 모르겠네요.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서 말들이 움직이는 거예요.

  ‘엉? 참말로? 진짜 그래 볼까?’

   저 멀리서부터 공이 날아오고 있었고 제 무의식은 이미 타석에 섰던 것일까요?          

 

  


  남천 사백 그루가 할 일


  2011년 오랜 소원 끝에 마련한 터전, 그러나 휑하기만 했지요. 도로 바로 옆이라 사생활 보호가 안 되었고요. 우선 마당을 아늑하게 감싸줄 울타리가 필요했어요. 자연 속에 살고자 했으니 가장 자연스러운 울타리, 생울타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나무는 남천이었어요. 봄날의 연둣빛 새잎, 여름의 앙증맞은 꽃송이, 늦가을 붉게 물드는 잎, 겨우내 빨갛게 눈 속을 지키는 열매…… 게다가 쭉 곧은 몸매 또 얼마나 기품이 있는지요? 그러니 다른 나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나무젓가락만한 크기의 남천을 심는 모습

  

  주문한 남천이 드디어 도착했어요. 무려 400포기! 이날 따라 비가 제법 많이 내렸지만, 주말 농부인 우리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어요. 당장 제자리에 모시지 않으면, 일주일을 방치하게 되고 저 많은 나무들이 죽지도 모르니까 말이에요. 

  일회용 비닐 우비를 걸치고 호미질을 했지요. 큰놈은 앞줄에, 중간 놈은 뒷줄에, 어린놈들은 사이사이에 촘촘히 심었어요. 들뜨지 말고 잘 자라길 바라며 꼬옥꼭 눌렀어요.

 

  다 심고 돌아보니 음, 너무 멋진 거예요. 암요, 자뻑이야말로 살아가는 힘이지요. 어떤 이는 문화유산을 감상할 때 '상상하며' 보라고 하더군요. 

  남천을 다 심은 저는 생울타리를 ‘상상하며’ 보았어요. 이 어린 남천들이 제 어깨높이로 무럭무럭 자라서 마당을 지켜주는 모습을요. 아, 팔에 돋는 작은 소름들, 감동의 다른 표현이겠지요.


  그 이후 마당에 묘목이 하나둘씩 들어왔어요. 농사 멘토 정 선생님이 자립 기념으로 준 용송, 그동안 정 선생님 밭을 빌려 심어두었던 앵두나무, 단감나무, 음나무, 오가피나무, 호두나무. 

  백준 할아버지가 만화리 입성 환영으로 준 금송과 체리, 이웃 텃밭지기 소 아저씨가 나눠준 모과나무, 대철과 K의 줄장미, 미향의 수국, 정숙의 미니장미, 그리고 우리 부부가 틈틈이 보탠 꽃치자, 헛개나무, 포도나무, 다래 넝쿨……. 

  남편과 제가 ‘상상하며’ 보는 풍경도 점점 다채로워지더군요.           

남천이 자라서 울타리가 된 모습

  

  여름 해는 길어 정시 퇴근길에도 햇살이 길게 남아 있어요. 살고 있는 아파트를 지나쳐 두동 마당으로 내달았어요. 전날 심은 호박, 수세미, 여주, 나팔꽃, 장미, 봉숭아 모종이 첫날밤을 잘 지냈는지부터 살폈지요. 

  아니나 다를까 비실비실, 흐물흐물 모종들이 말이 아니더군요. 모종들이 기운 차리고 일어나길 바라며 물을 흠뻑 적셔주고, 무섭게 쳐들어오고 있는 잡초들도 뽑았어요.

  두동 터에 시간이 내려앉아 쌓이고 있어요. 저의 상상 또한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요. 보세요. 지팡이처럼 가늘었던 나무들이 몸을 두툼하게 키워 울타리를 그득하게 채우고 있잖아요.         

           

   


  영혼이 따뜻해지는 '컨테이너’    

   

  컨테이너를 개조한 이동식주택, 농막이라 하더군요. 마당에 나무와 꽃이 늘어날 때 우리도 농막 한 채 장만했습니다.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아래서 먼 산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거든요. 

  그 막연하고도 아릿한 느낌으로 방부목을 사서 처마를 만들었어요. 툇마루를 만들고 마당에 놓을 탁자와 의자도 만들었고요.

  그런 것도 다 할 줄 알았냐고요? 하하, 당연히 몰랐지요. 이웃이 없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거예요. 길 건너 사는 귀촌 스승 소 아저씨가 총감독이었어요. 

  소 아저씨가 누구냐고요? 밤낮, 새벽 가리지 않고 삐뽀삐뽀…… 출근하면 소방관, 퇴근하면 우리의 응급구조대이랍니다.

 

  드디어 완성! 이제 비가 내리면 툇마루에 앉아서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 한옥 툇마루에 앉아서 듣던 장맛비 소리를 소환해 봐야겠어요.      

별장이라고 우기던 컨테이너 농막

 

  컨테이너하우스 처마 위로 노랗게 앉은 꽃 보이나요? 수세미에요. 노오란 꽃이 조롱조롱 열리기 시작하면 여름이고요, 기다란 수세미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리면 늦가을이에요. 그동안 수세미는 꽃으로 열매로 존재감을 뿜뿜 내뿜지요.

  그뿐인가요? 수세미는 떠나는 길도 아름다워요. 수확한 수세미오이를 손바닥만 하게 자르고 삶아 햇빛에 바짝 말립니다. 바느질로 테두리를 마감하고 고리까지 달아주면 끝! 이렇게 완성한 천연 수세미를 정겨운 벗들에게 나눠주니 모두가 반색하더군요. 지금도 수세미는 부엌이나 욕실에서 저를 대신하여 벗의 벗으로 생을 이어가고 있겠지요. 저는 마음이 뿌듯하고요.


  저에게 컨테이너하우스는 ‘컨테이너이지만 영혼이 따뜻해지는 하우스’의 줄임말이에요. 이곳을 찾는 친구들에게도 이 뜻을 강요하지요. 듣는 이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저의 낱말 사전엔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예? 자뻑이라고요? 제가 말했잖아요. 자뻑은 살아가는 힘이라고요.          




  소 아저씨와 모과나무 연대기           


  쿵, 또르르. 방금 잘 익은 모과 하나가 치산서원 마당에 떨어집니다. 벌레의 포식과 박테리아의 잔치 끝에 씨앗만 남는군요. 가을부터 봄까지, 시간 위에 시간이 쌓여, 쉿! 어느 날 씨앗이 발아해요. 햇빛과 바람, 땅의 기운을 받아 드디어 몸을 얻는군요.

  텃밭 스승, 소 아저씨가 모과 묘목을 가져왔어요. 씨를 받아 키웠다고 해요. 돈이 아니라 인내와 정성이네요. 인사를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황송한 선물입니다.


  유년기에 사랑을 받은 사람은 크면서 나쁜 상황이 와도 씩씩하게 이겨낸다고 하잖아요. 소 아저씨 묘목도 마찬가지라 마당 한쪽에서 나날이 잘 자랍니다. 

  몇 해 지나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렸어요. 조금씩 기둥이 굵어지고 적갈색 수피가 떨어져 나가며 보기 좋은 얼룩이 생기더군요. 이제 7년 만에 첫 수확, 매끈한 기름기가 손에 느껴집니다. 향기가 거실과 서재, 자동차를 점령하는군요.

  다른 쓰임도 있어요. 열매를 맺기까지의 시간을 알기에 벌레 먹었다고 선뜻 버릴 수도 없어 모과청을 만듭니다. 아시겠지만 모과 과육은 몹시 단단해요. 저런, 칼질하는 남편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네요. 저는 못 본 척, 오히려 치산서원 마당에서 주워온 모과 몇 개를 더 얹습니다.      


  인내와 정성은 마음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지난가을 남편은 모과에서 씨를 받았어요. 새 이웃이 생기면 남편은, 소 아저씨처럼, 모과 묘목을 건네겠지요. 그러면 치산서원 모과나무 자식은 우리 마당에 살고, 우리 마당 모과나무 자식은 이웃 마당에 뿌리 내리겠지요.

  보세요. 씨앗 하나의 힘, 참 세지요? 무엇이든 만들고 북돋우는 소 아저씨 힘은 더 세고요. 소 아저씨 바라기, 따라쟁이 남편도 점점 세지고 있어요. 그런데 저만치 앉은 시간이 빙그레 웃습니다. 그래봤자 나 없으면 안 되는 일이야. 맞소, 맞소. 당신 힘이 제일 세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버려진 자식의 효도법          

   

  땅을 뒤집습니다. 흙을 털어가며 무스카리 알뿌리를 모아요. 어머나, 꽃대 하나가 7년 동안 수백 개 뿌리로 식구를 늘렸네요. 양파처럼 보관했다가 겨울이 시작되면 다시 심어야겠어요. 그때는 책방카페 정원도 자리를 잡겠지요? 그 생각에 마음은 붕붕거리고 손은 더 빨라집니다. 바구니가 금방 차네요.

  “자잘한 건 버릴까? 너무 많다.”

  “재작년이었나? 저 앵두나무 밑에 버렸는데, 아휴, 이듬해에 엄청나게 올라오더라.”

  “버린 자식이 효도하는 거야.”

  “던져두어서 잘 된 거지.”

  “뿌리잖아. 근본이 튼튼하면 아무도 못 이겨.”


  희영, K, 그리고 저, 각자의 경험에서 사유가 생기네요. 사유는 말로 흐르고요. 제각각의 상징을 줍는 동안 햇살이 숙지근해집니다. 

  다음은 튤립 뿌리 캐기입니다. 호미질로 어림없어 삽을 깊게 찔러요. 꽃 하나에 뿌리 하나, 살림이 단출해요. 히아신스 뿌리는 겉이 푸석하고 겹이 느슨하네요. 그래서 꽃이 층층이 피는가 봅니다. 뿌리이면서 알! 함께 놓고 보니 모양이 다양합니다. 다른 삶을 품었으니 당연할 수밖에요.                

 



  두근두근 조마조마 키워낸 바이허니 대표나무는?      

    

  세상의 모든 처음은 두근거림과 함께 와요. 처음 두 발로 서는 아기, 처음으로 학교 가는 아이, 첫 데이트를 하는 남과 여…… 누구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낯선 세계 앞에 서게 되죠. 세계는 세계로 이어지고 아이는 무수한 ‘처음’을 통과하며 어른이 되어가고요.

  어느 순간 누군가의 처음을 지켜보는 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저는 첫 시험을 치르는 학생을 지켜보고, 후배 교사의 첫 수업을 보고, 자식의 첫 패배도 보았어요. 대견한데 애잔하고, 흐뭇하면서도 쓸쓸한 기분으로 나이를 먹어가겠지요.

 

  길게 재는 성격이 아닌 데다 몸이 빨라 저의 자리는 늘 앞쪽이었어요. 오지랖도 넓어 제가 대표로 있는 단체는 늘 사람이 끓었고요. 혼자 판단으로 일을 밀어붙이기도 했고, 개개인을 살피지 못한 순간도 많았답니다. 

  대표 자질은 조금씩 키워졌을지 몰라도 고단함과 쓸쓸함의 부피도 만만치 않았어요. 그렇게 어른이 되어왔나 봐요.  

 

  첫 자식, 첫 제자처럼 첫 나무도 있어요. 우리 마당의 첫 나무는 체리예요. 제가 문수고 근무 시절, 반에 부모가 이혼하고 시골 조부모집에서 다니는 아이가 있었어요. 조용하고 우울한 아이라는 견적(?)이 딱 나오더군요. 아이의 환경도 살펴야겠지만 조부모가 얼마나 힘들까 싶어 가정방문 갔답니다.

  가 보니 갓 매입한 우리 땅이 있는 동네였고, 얘기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그 동네 땅 부자, 나무 부자였어요. 손자 보살핌도 지극했고요. 아차,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입견으로 타인을 재단했나 싶어 아찔하더군요. 챙겨간 두유 박스가 민망할 정도였는데 할아버지는 며칠 뒤 귀한 묘목으로 갚아 주셨어요.

  

  그 나무가 바로 우리 마당의 첫 나무, 체리고요. 이팝나무 가로수에 치이는가 싶어 햇빛 쪽으로 옮겨 주었더니 쑥쑥 자랐어요. 저는 첫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듯 흐뭇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체리를 살폈어요.

   책방카페 설계도를 받았을 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중정이 있었어요. 설계자가 중정에 카페 대표나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할 때 저는 망설임 없이 체리를 꼽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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