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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 바이허니 Sep 17. 2021

책방지기로 이끈 책 몇 권

'책세권' 입문기 2

'책세권'을 꿈꾸게 한 것들 




  내 영혼의 비밀 장소는 어디인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아름드리미디어. 2003)


   힘들 때마다 저절로 손이 가는 책이 있어요. 가끔 펼쳐보면 책갈피에 메모도 군데군데 있어 추억에 잠기기도 좋더라고요. 제게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그런 책 1순위입니다.  

  이 책의 속지엔 이 책을 읽을 당시의 제 상황이 메모되어 있네요(사진 참고). 원래 제목은 『작은나무를 위한 교육』, 북미 원주민 꼬마 ‘작은나무’가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여윈 뒤 조부모와 함께 숲속에서 살며 성장하는 이야기이에요. 


   할아버지는 작은나무를 억지로 깨우지 않고 마당에서 소란을 떨어요. 작은나무가 잠들어있는 방 벽을 온몸으로 부딪치기도 하고요. 쿵쿵거리는 소리에 작은나무가 부스스 눈을 뜨고 나오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는 처음 봤노라며 너스레를 떨어 줘요. 

  할머니는 가끔 과자 반죽에 귀하고 비싼 설탕을 엎지르는 실수를 해요. 덕분에 작은나무는 달콤한 과자를 먹을 수 있고요. 설탕을 실수인 척 쏟을 줄 아는 할머니는 작은나무에게 사람들은 몸을 꾸리는 마음과 영혼을 가꾸는 마음이 있다고 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에게 “I kin ye”라고 말하는데 kin은 ‘이해하다’라는 뜻, 곧 사랑한다는 말이지요. 

  할머니는 이런 말도 해요. 체로키인디언이라면 누구나 비밀의 장소가 있다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영혼의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비밀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이에요.


   살아오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았어요.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미웠고 변하지 않는 그들이 답답해서 거리를 두거나 연락을 끊기도 하였어요. 제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소설에서 작은나무 할머니의 말을 만났어요.


  “몸을 꾸리는 마음을 많이 쓰면 영혼의 마음은 밤톨만큼 작아진다.” 

  그 순간 저도 깨달았답니다. 그동안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영혼의 마음이 밤톨만큼 작아졌기 때문이었다고요. 밤톨만큼 작아진 영혼이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던 거예요. 춥고 외롭고 슬프다고…….


  할머니는 또 말했어요.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도 같아서 쓰면 쓸수록 크고 튼튼해질 수도 있다.” 

  이 문장을 통해 드디어 저도 ‘쓰면 쓸수록 튼튼해지는 영혼의 마음’을 경험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책을 만난답니다. 





  받은만큼 돌려주는 자연 법칙대로 사는 삶

 『통섭적 인생의 권유』 (최재천, 명진출판, 2013)


   과학자 최재천 아시지요? 그의 글이 아주 인문학적이라는 것도 아시나요? 인간의 삶이 자연의 원리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최재천 교수는 자연으로부터, 동물로부터, 개미로부터 세상살이 이치를 발견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통섭학자라고도 일컬어져요. 

  ‘통섭’이 뭘까요? 통섭은 원효대사의 말에서 인용한 단어로 ‘모든 것을 다스리다’라는 의미라고 해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연기론)과도 맞닿아 있겠지요.


   그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태도예요. 인간도 결국 지구 위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으니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의 일부로 겸허하게 살자는 거죠. 둘째는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삶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거예요. 

  이를테면 공이 날아올 때마다 너무 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단타도 치고 때로는 만루 홈런도 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피카소도 그런 얘기를 했는지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라고 덧붙였군요.


   저는 그가 제안하는 통섭적 삶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저 역시 인간은, 자연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우주 속의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흙을 딛고, 흙과 가까이 살며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싶어요. 지나가는 길냥이와도 눈 맞추며 함께 행복해지자고 눈인사 나누며 살고 싶어요. 또한 ‘피카소처럼’ 살기를 꿈꿉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새로운 장소에 가보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새롭게 뭔가를 배우고 따라 해보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추진력은 있으나 지구력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평가를 받기도 했지요. 그게 저의 한계이자 단점인 줄 알았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피카소와 최재천을 만나며, 마음이 편해졌어요.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제가 오래 할 수 있는 일도 찾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국어 선생을 그만두었어요. 이웃들은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아쉬워하더군요. 물론 교직도 나쁘지 않았어요. 

  십 대의 활기찬 기운 속에서 진행했던 수업은 즐거웠고, 동료들과 힘을 합쳐 학교를 변화시키는 일도 보람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좀 다르게 살고 싶더군요. 재지 않고, 날아오는 공을 이것저것 쳐보고 싶었어요.


  최재천 교수가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2005』라는 책에서 했던 얘기도 있어요. 오십 이후의 인생은 ‘환원 인생’이라더군요. 오십이 되기까지는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를 시기라면 오십 이후에는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산에서 내려가는 여정이라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도 그동안 교직에서 배웠던 많은 것들을 이제 자연 가까이에서 환원하면서 살고 싶은 거예요. 이것이 제 인생 이모작 꿈이랍니다.






  이게 빨갱이 맛이라구요?

 『백석의 맛』 (소래섭. 프로네시스. 2009)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누굴까요? 한 문예 잡지 설문 조사에 의하면 백석이라네요. 그런데 저는 대학에서 백석을 배우지 못했어요. 현대문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백석이란 이름을 분필로 무수히 찍으며 말끝을 흐렸던 기억만 있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백석의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걸렸던 시절의 이야기에요. 백석은 6·25전쟁 후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부끄럽지만 그런 때도 있었답니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그의 시에는 평안도 사투리가 곳곳에 배어 있어요. 가족과 고향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고요. 무엇보다 그의 시에는 무려 100가지가 넘는 평안도 음식이 등장한답니다. 메밀국수, 떡국, 가자미, 나물지짐, 멧돼지고기…… 

  북한에서 백석의 시는 반혁명적이라고 비판받았으며, 그는 결국 귀양지 중의 귀양지 ‘삼수’에서 모든 창작활동을 금지당한 채 죽었어요. 백석은 과연 ‘남한’을 버리고 ‘북한’을 선택한 것일까요? 그저 가족들과 오순도순 국수를 나눠 먹던 ‘고향’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요? 백석 시를 읽을 때마다 빠져드는 상념이랍니다.  


   울산대학교 소래섭 교수가 『백석의 맛』을 출간했어요. 백석의 시에 담긴 고향, 고향의 사람들, 고향의 음식을 정리한 책이지요. 내용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래, 못할 거 없지.’ 


  당장 실행에 옮겼답니다. 저를 포함한 울산의 국어 선생들이 소래섭 교수와 함께 ‘백석의 맛’을 소환한 거죠. 산꿩을 삶는 평안북도 정주의 맛을 읽으며 ‘지금, 울산’의 맛을 펼쳤어요. 

  텃밭 채소를 솎아 비빔국수를 만들어온 정숙, 부모님이 농사지은 옥수수를 삶아온 수은, 땡초전과 막걸리를 가져온 희정, 수제 요거트에 온갖 과일을 담아온 지영, 소문난 맛집 김밥을 사 온 자취생 수현…… 

  각각의 이야기와 손맛이 담긴 음식을 펼쳐 백석의 시와 함께 먹었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눠 먹은 음식이 훗날 친구들의 ‘고향의 맛’이 될 것이라 느끼며 평소 지론이었던 ‘한솥밥 먹기’의 힘도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던 멋진 시간이었어요. 

  저는 가족보다는 식구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식구란 ‘함께 밥을 나누는 관계’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많은 사람을 밥으로 만났어요. 지금도 다르지 않고요.

  



  

  편리함보다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좋아

 『지적자본론-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마스다 무네아키, 민음사, 2015)


   책 제목이 딱딱하지요? 소제목이 아니었다면 저도 지나치고 말았을 거예요. 운명적으로 만난 책이기도 하고요. 어느 날 제가 갑자기 쓰러져서 뇌 수술을 받았거든요. 

  치료와 회복을 위한 휴직 중에 이 책을 만났고, 이 책을 읽으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책방카페 꿈을 더는 미룰 수 없게 했고 실질적인 도움도 많이 받은 책이에요.

 

  이 책은 일본 서점계에 혁신을 이루어낸 <츠타야 서점>의 경영철학이 담겨있어요. 지적자본은 다름 아닌 ‘삶의 방식을 제안해내는 능력’이라는군요. 

  세상의 재화와 정보는 이미 넘쳐나고 있으니 그중에서 각자의 삶에 적합한 재화와 정보를 제안해주는 능력(큐레이팅)이 미래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고, 그 능력이 바로 지적자본이라는 것이지요.


   츠타야 서점은 편리함보다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을 추구합니다. 서점 건물을 지을 때 부지 안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베지 않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몇 채의 건물을 이어서 지었다네요. 

  물론, 효율적인 공간 배치와는 거리가 멀지요. 하지만 효율성보다는 그 느티나무가 주는 행복감을 선택했다고 해요. 이른바 ‘휴먼스케일’입니다. 소비의 패턴이 점점 바뀌고 있다는 진단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업사회 초기의 상품은 실용성이 충족되면 잘 팔렸지만, 이후엔 디자인으로 부가가치를 높인 상품이 잘 팔렸대요. 지금은 디자인이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어야 팔리는 단계라고 하고요. 

  그래서 츠타야 서점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담긴 삶을 제안’하는 책방이라고 해요.


   책은 어떤 사람의 가치나 경험이 담겨있는 보물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책이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너무 많이 쏟아지기도 하구요.

  츠타야 서점은 책 속에 담겨있는 삶을 꺼내서 책방에 온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것이 책방의 새로운 역할이라고 강조하더군요.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북큐레이터의 지적자본이구요. 공공도서관처럼 십진분류법에 따라 일관되게 배치하는 대신에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책들을 고르고 모아서 삶의 스타일을 제안해주는 것이 새로운 서점이 할 일이라는 거지요. 

  이런 자본이라면, 이런 자본주의라면 꽤 멋지지 않나요?





   앞으로도 그 길을 갈 거죠?

  『보노보 혁명』 (유병선, 부키, 2007년)


  『보노보 혁명』은 읽는 내내 저를 생각했다며, K가 선물한 책이에요. 사람의 본성은 침팬지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라고 하더군요.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그 본성이 ‘자본주의’와 만났으니 현대사회의 탐욕과 무한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거죠. 승자독식과 인간소외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 책, 『보노보 혁명』은 다르게 말하고 있어요. 보노보는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또 다른 친척인데 서로 평등하고 평화롭게, 낙천적으로 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사람의 본성 역시 보노보에서 비롯한 것도 있겠지요? 

  맞아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이 세상엔 침팬지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에요. ‘보노보 원숭이’의 본성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은 “침팬지 경제학의 돈독을 씻어 내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활의 손길을” 내밀어요.

 

   예를 들어 존 우드라는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사 간부 자리를 버리고 가난한 나라에 도서관과 학교를 지었어요. 비영리활동에 기업가방식을 접목하는 데이비드 그린도 마찬가지라 그는 인공수정체와 보청기를 개발하여 싼값에 공급한답니다. 

  가난한 농민에게 관개용 펌프, ‘머니메이커’를 저가 판매하는 마틴 피셔도 있고 가난한 이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그라민 은행, 노년층을 대상으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시빅 벤  처스도 있네요. 모두 돈도 벌고 세상도 구하는 보노보 기업, 보노보 기업가네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의 유전자 중 보노보 원숭이로 상징되는 공감적 사회성에 환호했어요. 막연하게나마 그려왔던, 협력하고 배려하는 삶이 그저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요. 

  저는 다 읽은 책 표지 안쪽에 ‘어느 날 K가 숙제처럼 주고 간 책’이라 적고 안방 서재에 꽂았답니다. 가끔 책등을 쓸어보거나 보노보와 눈을 맞추기도 했고요. 그럴 때마다 태생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제게 보노보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어요.

 

  ‘여태껏 공감하고 연대하는 삶이 행복했지요? 앞으로도 그 길을 갈 거죠?’ 

  저는 보노보의 말을 들으며 오늘도 책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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