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권' 성장기 1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평균 독서량은 하위권이라는군요. 2018년엔 정부에서 ‘책의 해’로 선포하고 책 읽기를 특별히 권장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동네서점이 사라졌어요. 산책길에 슬며시 들렀다가 책 한 권 사던 일도 추억이 되어버렸어요.
책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에요. 책은 저자의 오랜 경험과 삶의 철학을 응축한 것이라 한 권 한 권이 모두 현재를 드러내고 미래를 준비할 콘텐츠지요. 책을 만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깊숙이 만나는 일,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일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책은 우리 일상의 바로 곁에 놓여 있어야 해요.
아이와 함께 나간 잠깐의 산책길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던 귀갓길에서,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가, 버스를 기다리던 동안에…… 잠깐의 자투리 시간에 만나는 새로운 콘텐츠들, 동네마다 마트가 있듯이 동네마다 서점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라도 우리 동네에 서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책을 사고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통해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도 나누는 곳, 책방을 만들어가야겠어요. 거기에 따뜻한 차와 달콤한 간식이 함께 한다면 누구라도 쉽게 마음을 열고, 조금 더 오래 머물고 다양한 책 놀이가 벌어지지 않겠어요?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어쩌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도 생길 수 있겠지요. 그래서 바이허니는 책방+카페로 운영합니다.
책방+카페로 운영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도 있어요. 책만 팔아서는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아닌 거지요. 공간운영비는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충당하고 책방 수입은 서가를 유지하는 비용 정도만 보장된다면 해볼 만하겠다는 계산속이 있었어요.
운영해보니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책방만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책방+카페로 운영하는 것이 서로 도움이 되고 있어요.
책방을 열기로 결심했지만 참으로 막막하더군요. 일단은 동네책방을 많이 다녀봤어요. 책방의 서가를 구경하다보면 책방지기의 취향도 보이고 서가의 배치도 보이고 책방의 프로그램도 보이더군요.
저 많은 책은 어디서 얼마에 사 오는 걸까? 몹시 궁금했지만, 쉽게 물어볼 수는 없는 영업비밀이겠지요. 저는 대전 <우분투북스> 도움을 받았어요.
우분투 주인장답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도매처 - 송인서적, 북플러스, 북센 등등을 주르륵 설명해주셨어요. 책방 창업 과정이 모두 정리되어 있는 책방지기 블로그 도움도 받았고요. 우분투 만세!!
알려주신 도매처에 순서대로 전화를 걸고 동네책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봤어요. 반응이 어찌나 시큰둥하던지, 혹여라도 책을 안 준다면 어쩌나…… 착잡해지더군요. 도매처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서점도 문을 닫는 현실인데, 서점 경영에 대해선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신용도 없는 책방에 어떤 기대를 하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도매처의 영업담당자가 방문하고는 계약조건으로 천만 원 선입금하면 그 금액 내에서 일차적으로 책을 보내주기로 했어요. 그 이후엔 책을 먼저 받고 다음 달에 결재하는 걸로 융통이 되더군요.
좋은 책을 고르는 일, 그 책을 적절히 소개하는 것은 책방지기의 고유하고도 고상한 일이랍니다. (서가 사이사이의 먼지를 털고, 간밤에 생을 다한 하루살이 사체들을 치우고, 손님이 흘린 먹거리 부스러기를 훔쳐내는 것들 또한 피할 수 없는 책방지기의 일이니까요.)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은 역시나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저에겐 ‘책 쫌 읽는’ 친구들이 많아요. 라경은 학교도서관을 운영해본 몇 안 되는 과학선생님이지요. 평소 그녀의 독서 이력을 알고 있으니 책을 고르는 안목이야 한 치도 의심할 것 없고요.
마침 그녀도 동네책방을 준비하는 상황이라 “서로 돕자”고 꼬드기기도 좋았어요. 기대했던 대로 라경은 영역별로 좋은 책들을 쏙쏙 골라 구매리스트를 만들더군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나도-북큐레이터를 부탁했어요.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이 끝나면 그 책을 적절하게 소개하는 것 또한 책방지기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우선 책들을 종류별로 구획해 배치해야 독자들이 책을 찾기가 수월하겠지요.
바이허니에서는 십진분류법을 따르지는 않지만, 나름 규칙을 가지고 서가를 분류하고 있어요. 예술-여행-라이프스타일-초록세상-반려동물-과학/의학-문학-철학/심리학-울산작가코너-그림책 순으로 진열했구요, 중앙에는 기획도서 코너가 있어요.
바이허니에서는 주문과 반품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거의 매일 책을 주문하고 월 1회 정도 반품을 합니다. 자본도 부족하고 공간도 부족해서 많은 책을 진열할 수 없기에 신간은 최대한 빨리 주문하고 3개월 이상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 책은 반품하고 있지요.
물론, 책방지기가 아주 좋아하거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은 매출과 상관없이 서가를 지켜주고 있고요. 거기서 책방 고유의 색깔이 나오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기존의 동네서점이 책을 사고파는 상점이라면, 요즘 새로 생기는 동네책방은 책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만들어내는 문화공간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망하지 않고요. 저도 학교도서관 담당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해온 다양한 책 놀이를 바이허니에서 풀어놓고 있어요.
우선 책방지기인 저의 성향과 역량에 맞는 몇 개의 책모임을 운영해요. 우선 책모임 참가자들은 바이허니에서 대상 도서를 구매하는 걸 원칙으로 해요. 책모임에서 선정한 도서는 기획코너에 따로 진열하고 있어요.
그러니 회원이 아니더라도 그 책을 구매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러다가 책모임에 가입하거나 새롭게 모임을 꾸리기도 하니, 그 번짐이 아름답더라고요.
SNS를 활용하기도 해요. 동네책방에서 흔히 쓰는 인스타그램은 익숙지 않아 저는 온라인밴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바이허니에서 운영하는 밴드 회원님들은 매우 적극적이에요. 일반적인 온라인밴드에 비해 구독률과 댓글 반응이 높아요.
출판사에서 동네책방 전용으로 만들어내는 책들은 밴드를 통해 소개하고 공동구매하기도 합니다. 인기 작가의 책을 동네책방 전용 표지로 디자인해서 한정판으로 제공하기에 아주 인기가 많지요.
책방을 해보니 알겠어요. 왜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당차게 시작한 동네책방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문을 닫게 되는지. 흔히들 자영업이 수익을 내려면 재료비 40%, 임대료와 공과금 30%, 인건비 30%를 잡아야 한다는데, 동네책방의 책(재료) 구입비는 75%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거기다가 임대료와 부대 경비까지 빼야 하니 책방을 지속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안되는 것이지요.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의 할인율은 꿈꿀 수도 없고요. 이러니 동네책방은 운영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가능해요. 손님은 할인과 적립금을 포기해야 하구요.
온라인서점보다 배송이 늦기도 해요. 고맙게도 바이허니에는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 주는 손님층이 꽤 두텁습니다. 동네책방의 가치를 알아주고 운영에 힘을 보태 주시는 그분들이야말로 동네책방의 숨은 운영진인 거죠. 숨은 운영진의 발굴과 확장은 제가 할 일이고요.
그런데 많은 분이, 자주 와 주셔도 개별 구매는 한계가 있습니다. 책(재료) 구입비가 75% 내외이니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 인건비와 부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거죠. 한꺼번에, 많이 팔아야지요.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안> 제정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 조례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는 지역서점의 책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동네책방 살리기 정책이라 반갑고 고마운 법령이랍니다.
지역서점이란 ‘지역 안에 방문매장을 두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도서를 전시 판매하는 서점’이라고 명시하고 있어요. 그동안 공공기관에 대량으로 책을 팔아온 업체는 서점이 아니라 창고를 가진 유통사업자가 많았거든요.
지역 공공기관에는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 지자체 소속 작은도서관 등이 있는데 조례안을 실천하게 되면 기관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고 해요. 그러니 지역 공공기관에서도 상생 파트너로 동네책방을 받아들이게 되고요. 이런 좋은 제도를 놓칠 수 없잖아요.
저는 학교에 오래 근무해온 사람이라 아무래도 학교도서관 쪽으로 홍보를 많이 했어요. 학교장터나 나라장터 같은 전자조달시스템에도 들어가 입찰에도 도전했어요. 성공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차근차근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일 년 남짓 책방+카페를 운영해오다가 책방 사업자를 분리했어요. 공공기관에 책을 납품하려니 ‘책방카페’라는 업종형태를 낯설어하며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거든요. 카페에서 부업으로 책을 파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도서납품 능력을 의심하더군요.
그래서 책방의 정체성을 좀 더 확실히 다지기 위해 책방을 독립시킨 거죠. 책방카페 바이허니의 북마스타였던 제가 책방 바이허니의 대표가 된 거예요. 그러면서 덤도 생겼어요.
‘여성 기업 인증제’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공공기관에서 물품을 구매할 때 여성기업 물품을 우선 구매한다는 우대책이에요.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 가지 우선권을 장착하였으니, 꾸준히 도전하여 대량 납품을 늘려나갈 것입니다.
통계상으로 동네책방은 2년 안에 절반이 망한다고 해요. 이제 절반 안에는 들었습니다만 저는 앞으로 망하지 않도록, 생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우리동네 문화사랑방인 책방이 동네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동분서주, 열심히 책을 팔 거예요. 더불어 또 다른 동네에서 나름의 색깔로 동네책방을 꿈꾸는 분이 계신다면 제게 연락해 주세요. <우분투북스>에 이어 이번엔 바이허니가 모든 경험치를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