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권' 성장기 2
철들고 난 이후로 가장 많이 한 일이네요. 커피 마시며 책 읽기 말이에요. 바쁘고 힘든 일상의 틈새에서 누리는 커피와 책은 때로는 휴식, 때로는 위안, 때로는 발견의 기쁨, 때로는 슬픔의 연대였지요. 뽀빠이의 시금치도 아니면서 힘든 일상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힘도 주었고요.
어디 저만 그랬을까요? 당신, 당신, 또 당신에게도 책과 커피가 만나는 시간은 단순히 좋아한다고만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지요? 그래서 ‘바이허니’에서 제일 우선하는 일도 커피와 책입니다. 간판 이름부터 ‘책방카페’이잖아요.
책방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바이허니’의 책방은 두 군데로 나눠 있어요. 아래층은 책을 파는 곳입니다. 서가는 제재 중심으로 배치했어요. 문학, 반려동물, 가드닝, 심리학, 과학 등으로 말이에요.
책은 주로 앞표지가 보이도록 세워 두었고 신간은 입구 쪽 판매대에 뉘어 놓았어요. 책 얼굴을 한눈에 보시라는 의미로요. 사람은 첫 만남 3초 만에 사랑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고요. 책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름 뿌듯한 공간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울산작가코너예요.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를 다루거나 우리 지역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둔 곳이지요.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제니 하면서 말들은 많지만 우리는 의외로 발 딛고 사는 곳을 잘 모르고 있잖아요. 중앙을 중심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주변부로 격하시키는 경향도 있고요.
그러니 울산작가코너는 동네책방의 의무이기도 하더라고요. 동네책방을 하면서 우리 지역에 이렇게 많은 작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뻤고요. 작자들이 자신의 책을 들고 찾아오기도 하니 보람도 큽니다.
책방을 둘러보는 동안 바리스타가 주문하신 음료가 나왔다고 하나요?
그러면 아이컨텍에서 강한 끌림을 받은 책을 들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앞에서 저는 전국의 책방을 다니면서 동네책방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권이라도 꼭 산다고 그랬지요? 이제 우리 손님들도 그렇게 하시네요. 온라인서점과 달리 적립금은커녕 할인도 못 해주는데도 말입니다.
2층 창가 자리들은 그야말로 커피 마시며 책 읽는 곳입니다. 넓은 창으로 바깥 풍광이 그대로 들어오니 가끔은 멍하니 앉아있어도 좋아요. 텅 비어가는 머릿속이나 자연풍경이 책이 되는 순간도 더러 있으니까요. 2층의 서가들은 흔히들 말하는 ‘북카페’ 형태입니다. 판매용이 아니라 읽기용이란 거죠.
있던 책들 모아서 꽂아두었냐고요? 아닙니다. 독서에 관한 한 무림고수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서가 하나씩을 채웠답니다. 그들의 전공과 취향이 달라서 어린이, 청소년, 과학과 환경 등으로 특화되어 있기도 하니 찬찬히 보시기에 좋을 거예요.
바이허니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책들도 서가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니 책방이나 카페를 계획하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
이제 주방 쪽으로 넘어갈까요?
커피를 배우며 황홀한 개미지옥을 경험한 바리스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책방지기인 제가 보조합니다. 손님 스스로,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른 잔에 향기 가득한 커피가 내려앉고 우리나라 제철 과일로 만든 수제 차들이 제 빛깔대로 쟁반에 놓입니다.
카페 음료 재료가 다 나온다고요? 예, 그렇긴 하더라고요. 카페 시작했을 때 재료판매처에서 간편 제조법을 일러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몸이 좋아하는 마실 거리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료를 고르고 다듬는 것부터 시작하는 힘센 집밥처럼, 바이허니의 음료는 건강한 재료에 시간과 정성을 더했어요. 그 마음 헤아리시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드셨으면 해요.
전국의 책방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욕심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대개 꿈꾸기에서 시작하여 땅과 돈에 발목이 잡히면서 끝나곤 했어요.
최소한의 예산으로 공간을 최대치로 활용하기 위해 가상의 공간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온갖 아이디어를 내야만 했어요. 설계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 와중에서 책방과 주방이 크기 다툼을 하고 서가와 테이블 위치도 몇 번이나 바뀌었어요. 하지만 갤러리는, 비록 5.5평밖에 확보할 수밖에 없었지만, 언제나 그 자리였어요.
포기하지도 않았고요. 3면에 작품을 걸 수 있도록 조명과 와이어를 설치했어요. 북토크 같은 행사를 고려하여 정면 벽은 스크린을 내릴 수 있도록 미리 고려하였고요.
갤러리 느낌을 내기 위해 책방보다 바닥을 높이고 원목을 깔았어요. 피아노까지 놓으니 갤러리는 살짝 숨고 책방과도 열린 듯 닫힌 듯 경계가 지어지더군요.
하얀 벽면의 첫 주인공은 경춘의 그림! 저는 국어선생 다음에 책방지기지만 국어선생이면서 화가인 경춘의 단독 전시회였지요. 골방에 갇혀있던 유화 십여 점이 관객을 만났어요.
헤르만헤세 초상화부터 바나나우유를 마시는 강아지 그림까지, 잔잔한 공감을 준 경춘의 그림이 내려지고 다음으로 소양의 그림들이 걸렸어요. 저는 해바라기가 지기 직전의 모습을 포착한 그림이 좋더군요.
꽃과 과일을 즐겨 그리는 줄 알았는데 큰 화폭에 슬픔을 머금은 소 그림과 농약 치는 아저씨까지 담아와서 그 다채로움이 놀라웠어요. 손님으로 왔던 부부 예술가가 번갈아 그림과 사진을 전시하고 김광석 화가와 그 제자들의 그림도 걸렸어요.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지요. 형이상학이 뭐 별건가요. 밥으로 채워지지 않는 욕구 혹은 욕망이 있다는 거겠죠. 문화생활이 뭐 별건가요.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좋은 풍경을 찾아 떠나는 걸음이 모두 문화생활이죠. 향유의 기쁨도 있지만 창조의 환희도 있겠지요.
취미에 몰두하다 보면 점점 한 분야 전문가가 되고 나중엔 인생 이모작을 풍성하게 하는 업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마련한 게 공유 진열대입니다. 취미에서 직업으로 가는 길목의 인큐베이터를 원하는 분들에게 벽면 코너를 내드렸어요.
지금은 화니 도마, 연태 서각, 꼬마 화가 지원의 작품이 있고, 곧 만화리 예술가의 목공예품을 입고할 예정이에요. 벗이나 가족에게 혹은 애쓰며 사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사는 손님들이 많아요.
게다가 물건이 팔렸다고 연락하면 작가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수백, 수천만 원을 버는 사람들이 불과 몇만 원에 이토록 뿌듯해하는 모습이라니요. 그건 아마도 존재의 확인, 예술가로 격상되는 느낌 같은 것이겠지요. 이래저래 참 재밌고 보람 있는 코너입니다.
사방이 꽁꽁 얼어붙고 산도 들도 추위에 지쳐 간절히 봄이 기다려질 때, 바이허니 손님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게 있지요, ‘연리지 딸기’.
대형마트 매대에 딸기가 존재감을 뿜기 시작해도 연리지 딸기는 좀 더 기다려야 해요. 별도의 가온 시설 없이, 비닐하우스로 바람을 막고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의 힘으로만 키워내는 딸기라 성장이 더디거든요.
매서운 추위 속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뽀도시’ 자라난 연리지 딸기라 과육이 단단하고 향이 응축되어 있어 한 입 베어 물면 아찔하게 맛나지요.
그래서 자주 먹고 싶다고들 하고요. 하지만 쉽지 않아요. 작은 농장에서 오빠와 은학 둘이서 딸기를 보살피느라 울산까지 들고 오기 힘들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땐 바이허니 손님들이 직접 성주 연리지 농장으로 딸기를 가지러 가기도 합니다.
본인이 필요한 딸기는 고작 한 통이면서 전체 주문 개수만큼 자동차에 그득 실어 오지요. 운송료는 어떻게 받냐고요? 글쎄요…… 상품 가치 떨어진 허드레 딸기 한 통쯤 받으셨을까요?
소 아저씨는 블루베리를 키우고 있어요. 소방관 이후의 인생 2모작 꿈인 블루베리 농원을 꾸준히 준비하고 계신 거죠. 얼마나 부지런히 정성을 쏟는지, 손수 삽목으로 길러낸 블루베리 나무가 밭에 그득한데요. 햇살이 퍼지는 봄날이면 종 모양의 작고 하얀 블루베리꽃들이 조롱조롱 피어나지요.
이맘때 저는 소 아저씨네 블루베리 화분을 바이허니 입구에 주르륵 세워 둔답니다. 앙증맞고 귀한 꽃을 보시라고요. 집에서도 보고 싶다며 사 가는 손님들을 위해 가정용으로 작게 키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답니다.
소 아저씨 밭에서 생명을 얻고 바이허니 마당을 지켰다가 어느 가정을 환하게 밝힐 블루베리꽃, 모두에게 좋은 선순환입니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유월 말쯤, 블루베리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습니다. 이때 검보랏빛 블루베리가 손님들의 발목을 또 잡아채지요. 나무에 달린 블루베리를 따 드시는 기쁨이 쏠쏠한가 봐요. 이 싱싱하고 맛있는 블루베리를 사 먹을 수 없냐고 물어들 보세요.
책방지기, 전화기를 듭니다. 소 아저씨께 전화를 거는 건 아니에요. 소 아저씨는 소방서 근무 중이라 오실 수도 없고 열매를 파는 게 업은 아니시거든요.
대신 이웃 마을에서 정성껏 키우고 있는 엄지블루베리를 주문해드립니다. 두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아저씨와 서울서 나고 자란 멋쟁이 아줌마가 정성을 다해 키워내는 블루베리는 제가 괜히 으쓱해지는 맛과 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바이허니는 울산과 경주의 경계인 두동면에 속해요. 역사적으로 보면 경주군 외남면이다가 1906년에 울산시로 편입된 곳이에요. 그러니까 두동면 이웃 마을이 경주시 내남면인 거죠.
그 내남면 틈수골로 귀농해서 버섯 농사를 짓는 부부가 계셔요. 우연히 바이허니에 놀러와 버섯을 맛보여 주셨는데, 쫄깃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더군요. 맛보신 손님들도 한 봉지씩 사셨고요. 드신 분들이 다시 주문하니 그 이후 틈수골 버섯은 수시로 공동구매하는 품목이 되었어요.
시골에서 책방카페를 하는 재미는 또 있어요. 제가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제철에 나는 먹거리들을 때 놓치지 않고 얻어먹어요.
봄비가 자주 내리고 텃밭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날 때면 건넛집 기린 씨가 상추를 한 양재기 솎아 오구요. 마늘 수확철이 되면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숙이 언니가 마늘 한 꾸러미를 슬그머니 놓아두고 가지요. 여름엔 깻잎 농사 지으시는 안마을 할머니가 상품 가치 떨어진 거라며 깻잎을 한 보따리 던져주시고요,
앞집 두부마을 아저씨는 닭장 텃밭에서 키운 튼실한 복숭아를 손수레에 실어다 부려놓고 가시네요. 안마을 이쁜 정원 주인장, ‘미생가’아저씨는 산에서 주워온 밤이나 바다에서 잡아 온 생선들을 툭, 안겨주고요. 텃밭농사 초보자 박원 선생도 상추, 고추, 오이는 물론 우엉잎에 감자까지 부려놓습니다.
이걸 우리 부부가 다 먹을 수 있냐고요? 당연히 못 먹지요. 누구랑 나눠 먹냐고요? 제철 채소니 제철에, 그 때 그 자리에 있는 손님 누구랑도 나눠 먹지요.
이제 찬 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는군요. 곧 고구마 수확철이랍니다. 앞집 두부마을 아저씨가 닭똥 거름으로 키운 건강한 고구마가 나오겠지요. 달큰하게 구워지는 가을 고구마, 맛보러 오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