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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 바이허니 Oct 22. 2021

바이허니 활용법(중급편2)
-나눔과 보탬

'책세권' 성장기 4




  #나도_북큐레이터            


  하루는 경춘이 새벽에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김연수의 『시절일기』 출간을 손님들에게 알려주라고요. 굿 아이디어! 밴드에 홍보 글을 올렸고,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은 예약 주문을 하고서 며칠을 설레며 지냈답니다. 

  그때 다시 알았어요. 바아허니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곳이었더라고요. 바이허니 서가도 함께 만들어 가면 참 좋겠다 싶었고요. 


  <나도 북큐레이터> 코너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 뼘 더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책을 밴드를 통해 올려달라고요. 

  나중에 검색하기 좋도록 #나도북큐레이터를 머리글로 달아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소개한 좋은 책에 댓글로 10권 이상 주문이 들어오면 그 책이나 그 책의 금액에 상응하는 다른 책을 선물하겠다는 약속도 드렸어요.

       

함께 만들어 가는 바이허니 서가

 

  최병한 선생님이 첫 북큐레이터로 글을 올려주셨어요. 교단에서 30년 헌신하시다가 경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바흐> 음악카페를 운영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의 평생 친구인 음악 나눔 실천을 보며 저 또한 평생 친구인 책 나눔 공간을 일굴 수 있었으니, 저의 롤모델이시기도 하지요. 

  큐레이팅한 책은 『밥 하는 시간』(김혜련, 서울셀렉션, 2019)이었는데 추천 글은 물론 앞뒤 표지와 차례까지 세심하게 올려주었어요. 


  다음은 라경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 동아시아, 2018)를, 혜숙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돌베개, 2019)를 그들의 언어로 큐레이팅했어요. 책방카페에 들일 책을 고르고 주문하고 정리했던 라경의 안목이고, 오랜 세월 아이들과 독서동아리 <풍경>을 운영해왔던 혜숙의 선택이었으니 완벽했지요. 

  바통을 이어받는 릴레이 선수처럼, 은정, 은, 미진, 수엽, 선미, 혜숙, 주희, 진혜, 혜경, 희영…… 벗들이 자신이 발굴한 책의 정보와 감상을 조목조목 올려주고 다른 분들은 댓글로 답하고 있으니 저는 이 선한 영향력과 번짐에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지요. 

             


   

  저자와 함께 하는 북토크      

    

  학교에 근무할 때 늘 마음 뿌듯했던 일이 작가초청 강연이었어요. 수업 시간에 읽고 토론했던 문학책이나 시대를 진단하고 실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문학책 작가를 직접 만난다는 건 아이들에게 또 다른 경험세계이니까요. 동네책방을 구상하면서부터 책모임과 함께 지속해서 추진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어요. 


  첫 북토크의 주제는 ‘곁을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의 ‘곁’이 되고 싶은 바이허니의 마음을 콕 집어준 듯하여 멋지더군요. 그동안 손님들은 댓글로 참석 희망을 달고 대상 도서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나무연필, 2018)을 구매하여 읽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2월 27일, “믿고 읽고, 믿고 보는” 엄기호 작가가 달려와 주셨어요.     


  두 번째 북토크는 제가 강력하게 추천했어요. 지루한 강의, 의미 없는 강의는 못 참는 제가 매월 1회씩, 2년에 걸쳐 들었던 클래식 강의를 손님들과 꼭 나누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안면도 틔어 놓았고, 강의 내용을 모은 책도 출판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어요. 

 『베토벤의 커피』(조희창, 살림, 2018)는 커피와 클래식에 대한 인문학적 에세이로, 책을 읽으며 해당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QR코드도 부착된, 좋은 책이에요. 강의 집중도를 위해 댓글 순서로 40명으로 한정했는데 금방 마감될 정도였어요. 강의는 어땠냐고요? 5월 봄밤을 재밌고 황홀하게 포박당했지요. 

  

북토크에 함께하는 표정들, 바이허니 영업견 탄이의 팬인 최연소 참석자 유찬이도 있네요.


  세 번째는 출판 기획자인 동시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훈의 시대』의 저자이기도 한 김민섭 작가와 폭신폭신, 몽글몽글, 선물 같은 시간도 보냈어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와 노동자 김동식이 저자가 된 이야기도 좋았지만 “노동으로 버티는 몸에는 글이 쌓인다, 나를 닮은 사람에게 화를 내지 말자,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같은 말도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금요시읽기>에서 함께 읽었던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의 소래섭 작가, <나도북큐레이터>를 통해 손님들이 많이 읽은 『밥하는 시간』의 김혜련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여행학교 선생님인 남교용 작가의 『아이들, 길에서 행복을 배우다』 북토크 때는 엄마와 아들이, 아빠와 딸이, 혹은 온가족이 함께 모여 학원 대신 배낭여행을 꿈꾸기도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저자를 초청하는 방법과 북토크의 형식도 다양해지더군요. 동네책방을 지원하는 출판사 프로그램 혜택을 받아 『미래공부』(박성원, 글항아리, 2019)의 저자와 독자가 함께하는 미래워크숍을 열기도 했고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남해의 봄날, 2019)은 조희창 선생님의 해설을 통해 깊은 울림의 시간을 가졌어요. 

  아, 『조강의 노래』 북토크도 있었네요. 이 책을 함께 쓰고 있는 K가 신작을 내자마자 바로 청했지요. 소설도 역사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책을 선보이며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우리 손으로 스토리텔링하자고 제안하는 자리였어요. 




  손바닥 장터         

 

  책방과 카페에 손이 익어가던 봄날, 커피 한 잔 들고 마당 테이블에 앉았어요. 자칭타칭 바이허니 매니저인 희영과 함께요. 뇌가 말랑말랑한 우리의 조 매니저, 문득 제안했어요. 우리만 봄볕을 즐기기 아까우니 장터를 열자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마당 곳곳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사이에 둔 사람들의 환영이 보이는 거예요. 

  어쩝니까? 바로 시작해야지요. 손과 손이 만나는 장터, 소중하게 간직했던 내 물건을 팔고 상대의 사연까지 건네받는 자리, 단박에 손바닥 장터라 이름 붙이고 밴드에 글을 올렸지요. 수납장 속에서 질식해가고 있는 애장품을 볕 좋은 마당에 내놓자고요. 


  우선 판매자를 모집했지요. 댓글로 참가 의사와 함께 판매할 물품도 올려달라고 했어요. 예쁜 빈티지 찻잔과 핸드메이드 머리핀, 천아트 가방, 리넨 스카프, 퀼트용 조각천과 바틱, 손수 만든 도자기와 쿠키와 비건빵 들이 올라왔어요.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인지는 퀼트용 조각천과 바틱을 비롯한 이국적인 물건들을, 연리지 농사꾼 은학은 텃밭 채소와 참외장아찌를 가지고 온다 하고요. 

판만 벌여놓으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되는 <손바닥 장터>


  주인과 물건을 연결해 상상하며, 살 항목들을 미리 정해 보며 며칠을 보냈어요.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6월 30일 오후 2시! 판매자들이 가판대 앞에 늘어서서 자기 물건들을 광고합니다. 온 가족이 매달려 쿠키와 마카롱을 만들어온 초등학생은 엄마보다 수완이 좋고, 은근한 경쟁은 역할 놀이하는 연극 무대 같기도 했어요. 

  이쪽에선 판매자가 되었다가 저쪽에서는 손님이 되고, 책정한 가격이 너무 싸다느니 아까워서 못 판다느니 온갖 사연도 흐르더군요. 시작과 마무리 시간을 함께 지키고 판매 후 남은 물건은 되가져가자는 원칙을 미리 정해두었기에 뒤끝도 깔끔했습니다. 


  10월 20일 두 번째 손바닥 장터, 업그레이드가 있어야겠죠? 우선 오프닝 공연을 넣었어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트리오에 ‘미용카페 섭’의 사장님 협연이 아주 멋졌습니다. 반응이 좋아 어린이 트리오는 막간공연도 가졌고요. 

  두 번째 업그레이드는 헌책방이었어요. 참여할 사람들에게는 새 책 같은 헌 책으로, 뒷면에 희망 가격표를 붙여서 가져오게 했어요. 홍보에서 정리, 판매까지 귀한 손을 빌려준 라경과 문희가 없었다면 추진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세 번째 손바닥 장터에는 또 어떤 물건이 오갈까요? 어떤 사연이 넘나들까요?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달빛 극장 & 포트럭 파티        

  

  마당을 누리고 사는 기쁨과 고마움은 끝이 없어요. 특히 여름밤의 마당에서 만나는 부드러운 바람은 온종일 에어컨 냉기에 지친 몸에 평안과 위로를 주지요. 구름 사이로 흐르는 달빛 아래 개구리 울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앉아있노라면, 이런 시간과 공간을 혼자 누려도 괜찮은지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더군요.


  이 마당의 평안과 여유를 나누어볼까? 오밤중에 오실 분이 있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식구끼리 보더라도, 공간은 열어두자는 마음으로 온라인밴드에 공지를 띄워봤지요. 이렇게 여름 동안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바이허니 달빛 극장이 열리게 되었어요. 상영작은 가족이 마당에서 즐길 만한 평화로운 작품으로!

친구, 이웃, 마당, 간식, 수다, 난로, 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 영화 그리고 달빛까지. 뭐가 더 필요할까요? 다음을 기대해 봅니다.


  공지 이후 첫 토요일이에요. 친구끼리, 가족끼리, 이웃끼리 삼삼오오 모여드네요. 근데요, 오시는 분마다 먹을거리를 들고 오셨어요. 고구마, 떢볶이, 과일 , 도너츠가 이 탁자에서 저 탁자로 건네집니다. 이쯤 되면 ‘포트럭파티’라 해야겠지요? 

  먹거리가 오가는 바이허니 마당엔 달빛마저 풍성하게 내려앉더군요. 평소에도 외부음식을 허용하는 바이허니지만 달빛극장에서는 외부음식을 더욱 환영하게 되었답니다. 그다음부터는 아예 달빛극장& 포트럭파티로 공지했으니까요. 


   바이허니에서는 앞접시와 시원한 물만 준비하면 됩니다. 손님들이 들고 오신 음식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각자 조금씩 나눠 먹는 거지요. 덕분에 달빛극장이 열리는 토요일에는 바이허니 식구들도 다채로운 저녁을 즐기게 되었어요. 

  먹거리로 가득했던 접시들이 비워질 무렵 마당엔 짙은 어둠이 내려앉고 스크린엔 영화가 흐르기 시작하지요. 삼삼오오 둘러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뒷모습, 영화보다 아름다운 그 뒷모습을 저는 한참이나 감상했더랬지요. 




  탄이와 냥이들          


  바이허니 마당엔 탄이가 살아요. 집 지킬 마음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어 낯선 사람이 와도 끔벅끔벅 눈인사나 하는 검둥개예요.

  작년 추석 전날이었어요. 카페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검둥개 사진을 남편이 식구들 단체카톡방에 올렸더군요. 그때 저는 딸들이랑 대구 시댁에서 차례상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뉘집 개인지 물었더니 그냥 줄 없이 풀려서 저렇게 와있다고 하더군요. 명절 무렵 시골에 버려지는 개인가보다 생각했어요. 창 너머 웃고 있는 검둥개의 표정이 너무 해맑고 귀엽더군요. 딸들은 유기견으로 신고하면 안락사당할 거라고 우리가 키우자고 했어요.

이제는 바이허니 매출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게 된 탄이. 둘째딸 민경이가 사준 이모티콘 속 탄이. "탄아~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닮았나요?  어린이 화가 지원의 모델로도 데뷔.


  하지만, 우리집 마당에는 이미 끼니때마다 들러서 밥을 먹고 가는 길냥이들이 있어요. 바이허니 건물이 지어지고 있을 때부터 올망졸망 드나들며 빵이랑 우유를 훔쳐 먹던 아기냥이들이었지요. 어미 잃은 아기냥이들 같아 빵과 우유를 건축현장에 넉넉히 남겨두고 돌아오곤 했어요. 

  황야의 무법자처럼 카리스마 넘치게 홀로 다니는 무법이도 있었고 집에서 키우는 집냥이 - 여울이와 만두도 가끔 마당에 내려와 산책하거든요. 커다란 검둥개가 마당에 있으면 길냥이들이 못 드나들 것 같아 개를 입양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지요. 

고등어 얼룩이는 (온두)라스예요. 발라당 드러누워 광합성 중인 노랑이는 (만)델링이. 네, 스페셜 원두의 이름을 딴 것 맞습니다. 커피집이쟈나요. 빨간 끈의 덩치는 여울이고요


  다행히 끈 풀린 검둥개는 뒷마을에 주인이 있었어요. 시내 사는 어르신이 가끔 들어와서 밥이랑 물을 줄 뿐 빈집에 개만 묶어둔다더군요. 속절없이 묶여있을 검둥개를 생각하니 그 녀석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수시로 생각나더군요. 

  어느 날 이 녀석이 또 탈출해서 동네를 떠돌아다녔고 개 주인이 들어와서 붙들어가는 걸 보게 되었어요. 짠한 마음이 들어서 개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께 여쭈었어요. 평소엔 우리집 마당에서 보살피다가 들어오시는 날에 데려가십사 하고요. 그런데 일언지하 거절당하고 말았어요. 개 버릇이 나빠진다고요.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 카페 마당으로 검둥개 주인이 오셨어요. 앞으로 두동에 들어올 형편이 안돼서 이 개를 처분하려는데, 혹시 키울 의향이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결연한 표정을 보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어요. 무조건 키우겠노라고 말씀드렸지요. 

  이 개는 시바-블랙탄이라는 견종, 검은 털을 가진 시바견이에요. 경자년 첫날에 들어왔으니 이름을 경탄이라고 지었어요. 애칭으로는 탄이라고 부르지요. 경자년 첫날에 바이허니에 들어온 탄이, 복덩이겠지요? 

  하염없이 순둥순둥한 이 녀석을 카페 손님들도 무척이나 이뻐해 주시니 복덩이가 맞죠?

엄마와 대화중인 라스. 라스는 엄청 수다쟁이예요. 내외중인 라스와 여울이, 둘이는 암컷과 수컷인데도 별로 안 친해요, 대면대면.


  길냥이들은 어찌 되었냐고요? 무법이는 ‘사나이답게’ 밥보다는 자유를 택해 인근 마을을 쏘다닙니다. 그래도 다치거나 굶주리는 상황이 되면 며칠씩 머무르며 몸을 추스르고 가지요. 

  둥이와 짱이는 마당에서 밥도 먹고 햇볕도 쬐며 겨울을 넘겼어요. 새봄이 오는 무렵, 둥이는 뒷마당 창고 선반 꼭대기에서 며칠을 보내더니 자취를 감추었어요. 


  대신 짱이는 꾸준히 시간 맞추어 나타나지요. 사료를 주며 말을 걸면 밥을 먹으면서도 냐옹냐옹 말대답을 해줘서 한참씩이나 서로 안부를 나눕니다. 

  거기까지예요.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중성화 수술도 해주고 진드기약도 발라주고 싶은데, 길냥이답게 더 다가서기는 허용하지 않아요. 길냥이로서 터득한 삶의 지혜일 터이니 바라볼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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