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권' 성장기 6
책방카페 바이허니는 울산과 경주가 맞닿아 있는 시골, 두동면에 있어요. 울산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인구 또한 울주군에서 가장 적어요.
그런데, 요 몇 년 사이에 주민이 많이 늘었답니다. 젊은 부부들이 쏙쏙 이주해오고 있거든요. 이곳 두동초등학교가 아주 괜찮은 학교로 입소문 났기 때문에요. 인근 초등학교를 통폐합하면서 교사가 새로 지어지고, 지자체의 지원도 넉넉해서 교육프로그램이 아주 훌륭하다는군요.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젊은 사람들과 그 아이들로 마을 분위기도 젊고 활기차졌어요. 두동초등학교가 번듯해지니 지역 안의 두광중학교도 더불어 자리를 잡더라고요.
공동체 교육 분위기도 고스란히 이어지고요. 두 학교를 중심으로 학부모연대도 만들어졌어요. 거기다가 이 지역주민인 교사들이 두동초와 두광중으로 전입해 오니 교육의 3주체가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네요.
때마침 학교와 연계하는 마을 교육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니 교사-학부모-지역주민이 함께하는 모임도 생겼어요.
혁신학교에 관심이 많은 교사, 마을방과후 활동을 하는 학부모, 이주민 자녀와 함께하는 토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머니, 미취학 어린이를 키우면서 건강한 생태 마을을 꿈꾸는 젊은 부부, 이웃끼리 더불어 사는 마을을 설계하려는 건축가 부부, 그리고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우리 부부까지, 제각각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어요.
모임의 이름은 <터무니 잇는 마을>. 주로 ‘터무니없다’라는 표현으로 쓰이는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의미한다고 해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각자가 살아가는 공간이나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터무니를 새겨왔으니 그 다름을 존중하자는 취지를 살리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어져서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자’는 지향점을 이름에 담은 거죠.
우리는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도 연어처럼 돌아와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자급자족 마을로 가꾸고 싶어요.
그 일을 위해 우선 롤모델을 찾아 함께 공부해보기로 했어요. 역시 책으로 시작했답니다.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을 탐색해가고 있어요.
『이토록 멋진 마을』,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학교협동조합 함께 만들기』 등을 함께 읽었네요. 책방카페를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세상엔 앞장서서 일구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 지혜는 책으로 퍼뜨려지는 거고요.
책으로 안내를 받았으니 이제 우리에게 필요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려고요. 우선 학교협동조합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마을 안에서 일할 사람을 찾아내고, 마을 안에서 필요한 일거리를 찾아내어 학교와 연결하는 일을 하려는 거예요.
그 일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연대하고 온 마을이 나서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우리 마을 아이가 마을에서 나는 유기농 달걀 넣은 빵을 굽고, 저는 그 빵을 우리 커피와 함께 내놓게 되겠지요.
은학의 마을, 성주에서 온 딸기청과 함께 이웃에도 돌리고요. 청년 농부는 자신이 생산한 먹거리를 봄가을 손바닥 장터에서 팔아 그 돈으로 책을 사갈 것이고요. 꿈꾸어 볼 만한 일이지요?
하루는 마을 사람이자 두동초등학교 교사인 상열이 왔어요. 얼마 전에 사 갔던 『조강의 노래』 감상을 말하며 우리 지역 이야기도 책으로 펴내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쳐야 하는데 마땅한 학습 자료가 없다는 한탄과 함께 말이에요. 며칠 뒤 K와 커피를 마시는데 그 말이 떠올랐어요. 당장 전화했지요.
“『조강의 노래』 작가가 지금 바이허니에 왔어요. 만나볼래요?”
제 특기가 사람 엮는 거잖아요. 곧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상열이 왔어요. 이웃 지기이면서 두광중학교 교사인 성우와 함께요.
이름 정도만 알던 세 사람은 울산의 역사문화를 공부하고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금방 의기투합하더군요. 상열이 두동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K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겠다네요.
두어 번의 회의가 더 오가면서 초등 고학년 교재로 삼을 만한 이야기책을 쓰기로 했어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말이에요.
발 빠른 성우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교와 마을을 이어주는 마을씨앗동아리’ 사업에 응모해 예산도 확보했고요. ‘터무니 잇는 마을’에서 만난 정민, 영두, 춘봉, 진희, 지나, 윤미가 모였어요.
이번엔 책이 아니라 강연으로 시작했답니다. 우선 우리가 두동을 알아야 했으니까요. 지역사 공부를 오래 한 이현호 역사선생님, 신형석 대곡박물관장님, 배성동 영남알프스학교장을 모셔 두동의 역사, 문화유적, 종교, 인물 이야기를 넘나들었습니다.
두동에 있는 대곡박물관과 대곡천을 답사하기도 했고요. 그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 알면 알수록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곳이더라고요.
공부하고 알았으니 이야기 창작으로 들어가야겠지요. 우선 K의 안내에 따라 쓸 만한 제재를 정리해 봤습니다. 대상 독자를 염두에 두면서 각종 사이트를 열람하고 영상과 구술 자료도 공유했어요. 그 과정에서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제재를 하나씩 택했고요.
이제 쓰는 과정이 남았는데 다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창작 경험이 없고 글쓰기가 두렵기만 하니까요. 주춤거리는 우리에게 K는 그래서 함께하는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네요.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엉덩이 싸움이라고 덧붙이면서요.
저 말 믿어도 될까요? 잘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새로운 영역 도전,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