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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 바이허니 Oct 23. 2021

친구들, 그들의 꿈도 여기 · 함께

Thanks to_책세권으로 이끈 사람들 1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바이허니에 모인 독도랑 식구들






  문희네, 무늬들


  저와 ‘무늬들(상숙, 인지, 문희, 경춘, 성, 썬)’은 울산중앙고 2003년 전입 동기였어요. 그때 저는 서른아홉 살, 무늬들은 이십 대였어요. 

  제가 지나온 이십 대처럼 무늬들도 결혼을 앞두거나, 신혼이거나, 갓 출산한 여교사들이었지요. 학교 일만으로도 하루가 짧은데 집으로 돌아가면 옷 갈아입을 시간조차 없었어요. 

  우리는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만 했어요. 안은 곪아도 밖으로는 완벽하게 보여야 했으니까요. 성장기를 모범생 틀 안에서 살았고 나이는 어려도 명색 ‘선생’이니 그래야 한다고 여겼던 거예요.


  빛 좋은 개살구 그만하고 싶을 때, 그러나 혼자는 어찌할 수 없을 때, 숨구멍이 간절할 즈음 우리는 같은 책을 읽었어요. 책과 관련한 활동도 만들어서 함께 했고요. ‘교사들끼리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싶어 놀랍고 즐거웠어요. 

 『내 생의 아이들』을 읽고는 ‘우리 생의 아이들’을 위해 매달 돈을 모아 교내 장학회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다달이 돈을 모아 졸업할 때까지 후원했지만 대상이 누구인지는 몰랐어요. 총무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의 담임만 알면 되는 일이잖아요.

 

  무늬들은 함께 놀기도 했어요. 시험 기간 오후에 산과 바다를 찾고, 제가 차린 밥상에 둘러앉아 시시덕댔어요. 그 순간만큼은 다들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해요. 저 앞에서는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고 마음껏 놀자 하니 좋았다고 해요. 

  제가 먼저 선생을 했고, 먼저 결혼했고 먼저 자식을 키웠으니 저 나이가 되면 저런 삶을 살겠구나 여겼대요. 4년 지나 여러 학교로 흩어진 후 ‘문희’가 가끔 불러냈어요. 

  바쁘다 하면서도 다들 문희의 호출을 기다렸고요. 풀무질이 되는 숨구멍이니 놓을 수가 없었던 거죠.

소나무와 맥문동이 어우러진 숲을 보고 있는 무늬들


  선생 아니고 싶을 때, 엄마 노릇이 버거울 때 무늬들은 울산을 떴어요. 기껏 제주도일 줄 알았는데 말레이시아, 부탄, 북유럽까지 날았어요. 

  점점 학교 일에 손때가 묻고 자식들이 자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선 자기검열이 줄어서였을 거예요. 선생들의 자기검열, 거참 고약하거든요.


  각종 모임이 난무하는 시대에 선생이라고 예외일 리 없죠. 4~5년마다 이동하는 공립학교 교사들은 특히 더해 단체 이름을 정하고 회장과 총무를 뽑은 다음 다달이 회비도 모아요. 

  그래야 모임이 유지된다고요. 그런데 ‘무늬들’은 여태까지 회장은커녕 모임 이름도 없어요. 그저 발음 편한 대로 ‘문희네-무니네-무니들-무늬들’로 흘러왔을 뿐이네요.


  어느덧 사십 대에 접어든 무늬들의 총무는 문희예요. 키는 작은데 그림자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에요. 문희가 고양이처럼 스윽 지나간 자리엔 많은 문제가 스윽 해결되어 있답니다. 회장은 공석이에요. 무늬들은 저더러 회장 맡으라고 한 적 없어요. 저도 싫고요. 

  그래도 말이에요. 참 좋을 때가 있어요. 가끔 무늬들이 하는 말인데요. 제가 아니었더라면 무늬들은 진작에 흩어졌을 거라고 해요. 뻔한 인사치레겠거니 여겨야 하는데 저는 오줄없이 그 말이 참 좋았어요. 물론 지금도요.




  20년을 함께, 독·도랑 놀자


  시간만큼 가차 없이 공평한 게 있을까요? 사람뿐 아니라 모임에도 시간은 내려앉지요. 시간 아래 많은 것이 고이고 썩지만 어떤 것은 흐르고 곰삭아요. <독·도랑 놀자>가 그래요. 

  ‘독·도’는 독서, 도서관의 준말이에요. 울산국어교사모임 중의 하나이지요. 2001년 저와 정숙, 경춘이 시작했어요. 


  함께 근무할 때 배우고 의지한 분, 정숙은 퇴직 이후에도 모범을 보여주고 계세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잘 노는 시골 할매로 말이에요. 경춘은 국어 선생이자 그림쟁이예요. 얼핏 보면 날라리, 오래 보면 교육 정신과 예술혼이 투철한 장인이지요. 

  <독·도랑 놀자>는 열 명 안팎의 국어 선생들이 꾸준히 모여 한 달에 두 번, 책을 매개로 삶을 이야기하는 모임인데 저는 이곳에서 단련한 책의 뼈로 책방지기까지 하게 되었네요.


  어느 날 모임을 살짝 엿볼까요? 이야기 나눌 책은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어크로스, 2018)이네요. 말이 칼이 된다는 게 무시무시하지만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책에 나오는 혐오 표현과 대항 표현에 관한 생각들이 오가고 따뜻한 수건이 되는 말들을 하자고 다짐도 해봅니다. 

오랜만에 바이허니에서, 사람들이 모이길 기다리는 독도랑


  중간중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다고요? 아니에요. 사람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야말로 시간이 쌓인 독서 모임의 전형이요, 유지되는 힘이니 당연한 흐름이에요.

  위에 제목이 붙은 사진 속에 둘러앉은 회원 중에 상희는 특히 책임감이 강하고 진지해요. 마음공부를 많이 한 덕순은 내공이 깊고요. 바른생활 국어 교사 현조는 출산과 양육으로 십여 년을 쉬었다가 다시 나왔어요. 

  구멍 많은 완벽주의자 선미는 말과 행동이 착하고 부지런해요. 짧은 머리칼, 자유로운 영혼 경춘도 앉아있네요. 몇 년 만의 신입회원인 혜경도 보입니다. 영자 따라왔지만 저와 혜경과의 인연도 십 년이 넘었어요.


또 한 명의 십년지기 K가 취재차 나왔다며 저에 대해 말하라 하니, 이런! 다들 신이 났네요.     

  “에너지가 넘치고 입담이 좋아요. 어떤 일이든 재밌게 풀어내요.”

  “빈틈이 많은데 사람이 늘 끓어요. 독도랑 버팀목, 추진력 짱.”

  “관리자가 조심하는 평교사였어요. 대항 표현, 안전한 그녀의 그늘이 좋았어요.”

  “학교 일이 안 풀릴 때만 샘에게 전화해요. 마음이 헐거워져서 일도 가벼워지거든요.”

  “샘은 내게 말했어요. 너는 능력 없어, 하지 마, 중요한 사람 아니야, 포기해…… 그 말로 얻은 행복과 자유가 많아요.” 

  에구, 민망하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제게는 그들이 그런걸요. 근묵자흑, 유유상종. 뭐 그런 사자성어도 있잖아요. 저를 어떻게 봤든 그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곰삭은 향기를 내거든요. 제 친구 영자의 경우만 해도 그래요.


  영자는 스무 살에 대도시로 처음 나갔어요. 소망대로 시골을 벗어났지만 가난한 집 기둥 하나쯤이 늘 가슴께에 얹혀있었대요. 반면 저는 도시 여자였어요. 우리는 같은 과 동기였지만 공통점이 없었어요. 흔히들 하는 말로, 노는 물이 달랐던 거죠.

 

  영자는 밀양 골짝의 국어 선생이 되었어요. 동생 같은 학생들과 전을 부치고 나물밥을 해 먹었대요. 시를 읊고 형용사, 동사도 가르쳤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영자는 은행에 들렀다가 제 해직 소식을 들었대요. 나중에 제게 말하길, 시골집으로 갈 돈이 쭈뼛거렸고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더군요. 

  학교 다닐 때는 과대표 하면서 자기를 기죽게 하더니 이번엔 해직으로 빚쟁이로 만드는 거냐고 생각했대요. 나쁜 여자라며 혼잣말도 했대요.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나쁜 여자, 저는 중앙고등학교에서 영자를 다시 만났어요. 저는 ‘내 친구 영자’와 수업, 밥, 책, 여행, 독·도랑을 함께 했어요. 어느 날 영자는 제게 말했어요. 

  가끔 빚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제는 연연하지 않는다고요. 영자 또한 단단한 세계를 가졌기 때문이란 걸 저는 알지요. 물론 독·도랑 사람들도요.

     

     


  풍경을 만드는, 혜숙  


  혜숙은 울산국어교사모임에서 처음 만난 후배 교사예요. 그때 혜숙은 저를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라고 생각했대요. 허 참, 제가 조직 리더답게 강단 있고 명쾌해서였다나요. 자기 성향과는 안 맞는 사람으로 여겼대요. 

  사람의 인연이 거기까지였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다행히 혜숙과 저는 중앙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어요. 영화와 책, 커피와 여행 이야기를 종횡무진 나누며 혜숙의 마음이 제게 많이 다가왔고요.       


  혜숙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요. 책 좋아한다는 국어 선생의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죠.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저자를 찾아다니기로도 유명해요. 

  강신주, 고미숙, 이계삼, 엄기호, 송승훈……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혜숙이 먼저 찾아가 관계가 깊어진 저자들이 많아요.


  “글쎄요. 덕질? 책보다 사람에 대한 매혹, 따르고 싶은 욕망이 제게 있었을 거예요.”

  “책은 매개였다?”

  “앞서가는 분들에 대한 존경이 기본이었고요. 책을 통해 제 삶을 끌어올리자는 거죠.”

  덕질이라는 표현에 웃음이 나오네요. 일본어 오타쿠(otaku)에서 유래한 말이지요. 맞아요. 혜숙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그에 관련된 것들을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지요.

 

  K와 혜숙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제가 끼어들어 봅니다.

  “책 읽기든 저자 탐방이든 혜숙의 힘은 나누는 데 있지.”

  그래요. 혜숙은 혼자 읽지 않아요. 십여 년 넘게 학생들과 ‘풍경’이라는 독서토론모임을 해왔고 근무하는 학교마다 ‘교사독서모임’을 꾸렸어요. 

  사실 사람 모으고, 책 선정하고, 한자리에 모여 책 이야기를 하는 일은 웬만한 에너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혜숙은 읽기 모임에 머물지 않았어요. 

  풍경 학생들의 저자방문 나들이를 기획하고 ‘희망 찾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유명 저자들을 울산으로 불러들였어요.

필기구를 가득 채워준 혜숙의 선물


  혜숙의 선물이 생각납니다. 혜숙은 십여 년 전부터 저의 필통을 책임져 왔어요. 필통이 낡듯 낡은 선생이 되어간다 싶을 때마다 혜숙은 저를 새롭게 무장하게 했네요. 

  후배의 무시무시한 압박 혹은 격려로 저는 낡을 뻔한 몸과 마음을 일으킬 수 있었고요. 글 쓰는 K가 받았던 선물은 두꺼운 공책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K에게도 혜숙은 긴장하게 만드는 후배 교사인 거죠.


   책방카페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혜숙은 ‘바이허니’ 공사현장을 자주 찾았어요. 비계에 올라가기도 하고 중정(中庭) 자리에 서 보기도 하더군요. 저와 함께 건축 책을 넘기고, 여러 책방과 카페를 방문했으며, 설계를 바꾸거나 시공에 관여했어요. 

  책방을 오픈하자 날마다 찾아와서 수정할 사항을 공책 한 바닥씩 적어놓기도 했어요. 그러니 책방카페는 가장 먼저 혜숙이 노는 멍석이 되겠지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혜숙은 다시금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겠지요. 저는 그 풍경 안팎에서 혜숙을 환호할 거고요.




  분나 마프라트, 화봉식스  


  교사의 발령지는 희망과 상관없어요. 저도 원해서 봉화중학교로 간 건 아니었거든요. 다음 학교, 그다음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지내다 보면 이 학생을, 이런 동료를 만나려고 이 학교에 왔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운명으로 여기게 되는 거죠.

 

  순옥, 희영, 부애, 소정은 마지막 학교인 화봉고에서 만난 동료들이에요. ‘독도랑’을 함께 만든 정숙은 더 깊은 인연이고요. 그녀들은 특히 손이 부지런했어요. 이야기하며 학생들 과제를 점검하고, 커피를 마시며 학습 도구를 뚝딱뚝딱 만들어냈어요. 

  그 학교에서 저는 아침마다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렸어요.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숙이 복도에 커피 향이 가득하다고 말해줄 때 기분이 좋았거든요. 동료들이 모이면 저는 ‘분나 마프라트’를 주관하는 주인의 마음으로 커피를 돌렸어요. 

여름 아침의 마당 브런치

  그게 뭐냐고요? 에티오피아어로 분나는 커피, 마프라트는 의식을 뜻해요. 

  전통의상을 입은 주인이 생두를 즉석에서 볶고 빻아 커피를 끓여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에티오피아의 커피 의식인 거죠. 

  주인은 가족과 손님들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첫 잔, ‘나의 이야기를 하며’ 두 번째 잔, ‘조화를 염원하고 축복’하며 마지막 잔을 비우게 한다 해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커피로 하루를 준비했던 거죠. 동료들은 저의 커피로 하루를 살 힘을 얻는다고 하고요. 분나 마프라트의 힘이었을까요? 

  힘든 학생을 대하고 더 힘든 관리자를 상대해야 할 때는 저절로 서로의 언덕이 되더군요. 

  ‘어떻게 이곳에서’ 서로를 만났는지, 운명에 감사하게 되었고요.


  두동에 땅이 생기고 터 무늬를 일구어 나가던 시절, 그녀들이 텃밭으로 모이곤 했어요. 식구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휴일 아침에 말이에요. 

  약속 없이 저절로 모여 챙겨온 커피와 먹거리를 펼쳐놓는 거죠. 다른 시간을 빼기 어려운 직장맘이라 아침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몇 해 이어지다 보니 남부럽지 않은 ‘조찬회동’이 되던 걸요. 



  이야기하면서 푸성귀 다듬는 거야 기본, 텃밭에서 나온 콩도 까고 생강껍질도 벗기지요. 한 사람이 특별난 요리를 해오면 그대로 해보고, 텃밭에서 갖가지 먹거리를 채집했어요. 채집의 대가는 단연, 지금은 조매니저로 거듭난 희영이에요. 

  책방을 해야 한다고 저를 살살 꼬드긴 죄가 있는 그녀는 지금 책방카페의 모든 것을 고민하고 홍보하고 있지요. 희영과 저는 식용이다 아니다, 땅 주인이 임자다 수확한 사람이 임자다, 시시덕대길 즐겨요. 톰과 제리처럼 말이에요. 모인 사람들은 재밌다며 깔깔거리고요.


  그 시절 마당에는 철 따라 꽃이 피고 졌어요. 그리고 휴일 아침이면 피크닉 가방을 든 여인들이 모였답니다. 어느 날, 희영이 새벽부터 만들었다며 ‘두부밥’을 내놓네요. 북한에서 유행하는 길거리음식이라는데 유부초밥보다 부드럽고 촉촉했어요. 

  조금씩 뿌려 먹는 간장 맛도 상큼하고요. 먹어봤으니 집에 돌아가면 각자 실습해볼 거예요. 여태 그래왔듯 단톡방은 그 사진들로 시끄러울 테고요. 그날의 커피는 문블랜딩, 특별히 분나 마프라트 주재자로 허니 님이 나섰어요.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충만한 감정, 커피를 마시는 얼굴들이 환하게 피어나네요. 아침 햇살이 내려앉는 마당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답니다.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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