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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 바이허니 Oct 23. 2021

마당 깊은 집,
웅숭 깊은 엄마손

 Thanks to_책세권으로 이끈 사람들 3

 엄마를 보내드리는 마지막 길, 빗속에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던 흰나비





  엄마는 일남 오녀를 두었는데요, 친구이자 올케언니인 은학이 그러더군요. 시누이 다섯 중에서 엄마를 가장 많이 빼닮은 이가 저라구요.      

  엄마는 중풍을 앓으신 할머니를 모시고 육남매를 키우며 아버지의 장사 뒷바라지까지 하셨어요. 아침이면 아홉 식구 아침밥을 차리며 열 개가 넘는 도시락을 줄지어 싸내셨지요. 

  그리곤 대여섯 명 되는 직원과 거래처 손님들까지 여남은 명의 점심밥을 차려내시고, 종종 걸음으로 시장에 가서 저녁 반찬거리를 사와서 식구들 저녁밥을 지으며 마당의 직원들 새참을 또 차려내고. 그런 하루하루를 혼자서 감당해내셨지요.


  엄마는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를 좋아했어요.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거래처 사람들과 식당에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게 되면 꼭 엄마를 데려가서 먹어보게 했어요. 

  그러면 그 다음날 우리 집 밥상에는 그 음식이 올라오는 거지요. 그 음식들은 주로 아저씨들이 먹는 ‘어른 맛’인지라 동생들은 좀 거북해하기도 했지만,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 자체를 아주 좋아했어요. 


  엄마는 동동주도 집에서 담갔어요. 한 해에 열 번이 넘는 제사가 몰려있는 겨울이 되면 안방 아랫목엔 동동주 익어가는 소리가 자글자글 끊이지 않았지요. 

  동동주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에 당원을 살짝 섞은 간식을 수시로 먹은 우리 다섯 자매들은 주량으론 어디서도 밀리지 않지요.


  엄마는 해마다 봄이면 딸 다섯을 데리고 강변으로 소풍을 갔어요. 온 식구가 한나절 뜯은 그 쑥으로 쑥국을 끓이기도 하고 쑥버무리를 만들기도 했지요. 대도시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저에겐 쑥을 뜯는 동안 등에 내려앉은  햇살의 그 따뜻함이 고향의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여름 동안엔 비슬산 계곡으로 몇 번씩이나 물놀이를 가요. 어린 동생들의 목과 엉덩이에 돋아난 땀띠를 삭이는데 찬 계곡물이 효과적이라는 핑계가 아주 잘 먹혔지요. 

  가을이면 팔공산 둘레길을 걸으며 은행을 줍고, 겨울이면 짚불을 붙여 돼지고기를 구워먹기도 했지요.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어쩌면 계절마다 어울리는 소풍을 그리 잘 찾아내고 잘 실행하셨는지.


  엄마는 식구들의 옷을 손수 지어 입힌 게 많아요. 직물공장과 거래를 하던 아버지라 집안에 자투리천이 넘쳐났거든요. 같은 천으로 크기만 다르게 만든 여름 원피스를 저와 동생들이 나란히 입고 다녀야할 땐, 친구들이 입고 다니는 ‘시장에서 산 옷’이 부럽기도 했지요. 

  어른이 된 후에는 소소하게 가리는 커튼이나 홑이불, 식탁보 등을 만들어서 전국의 딸들 집으로 배송하더군요. 지금도 여름이면 전국 곳곳의 형제들 집에는 어머니가 만든 삼베홑이불이 깔리곤 하지요.

할머니 영정사진을 들었던 손녀딸 민경이 남긴 마지막 인사,  49재 기간에  며느리, 딸들과 추모여행을 다녀온 젊은 날의 엄마


  여든이 넘은 엄마. 재봉틀을 돌릴 기력은 없으시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우리엄마가 아니지요. 아침이면 아들내외가 딸기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마당의 풀을 뽑고, 빨래를 걷어 가지런히 개고, 허기진 배로 돌아올 아들내외를 생각하며 밥을 짓곤 하셨지요.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지난 봄날, 장독대를 돌보러 나가셨다가 미끄러져 팔과 다리에 골절을 당한 엄마, 병원에 입원해서 여러 차례 수술도 하셨건만 결국 소천하신 엄마. 

  우리 형제들은 빗 속에 장독대로 나가신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아쉽고 안타깝지만 마지막까지도 일손을 놓지 않고 일상을 보살피다 가신 우리 엄마. 그것이 엄마의 인생이니까요.

'안녕, 엄마.'


49재를 끝낸 후 희한하게도, 서울로 돌아가던 막내딸부터 시작해 다음날 새벽 성주, 그날 저녁 춘천... 전국 각지의 자식들이 무지개를 보았노라는 제보가 이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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