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비워버린 잔>
아직도 가득 차 흘렀다. 한모금조차 청량하고 톡톡 쏘았다. 너무 달고 톡 쏘는 맛이 입안 상처에 살짝이라도 스칠 때는 미친 듯이 쩌릿쩌릿하고 아파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나 달콤할 수 있나 싶어 한모금 아끼기도 했다.
사실 상대의 잔이 처음부터 얼마만큼 채워져 있었는진 모른다. 내가 맛볼 수 없던 그것은 정확히 치수를 잴 수도, 무게를 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목이 말랐던 상대가 한가득 찰랑거리던 것을 나보다 빨리 다 마셔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저 김빠진, 메말라 버린 상태였을 수도 있다. 나에게 있는 그것 또한 언젠가는 김빠져버린 미적지근한 맛이 될 수 있겠지.
Digital Drawin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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