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에 층간소음을 대하는 자세
우리집은 서울 변두리의 작고 오래된 아파트다. 여기서 산지는 이제 2년정도가 되어간다. 오래됐지만 그래도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위아래로 층간소음 때문에 말이 나온적은 없었다.
그러다 몇달전부터 갑자기 윗층에서의 소음이 전해져온다.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 물건이 쿵쿵 떨어지는 소리. 처음엔 '그래도 이정도 뛰어다니는데 이만큼 소음나는거면 아파트가 잘 지어지긴 했나봐!'하며 넘겼다. 그러다 며칠전, 한밤중에 쿵쿵 울림과 함께 소음이 전해져온다. 이렇게 조용한 아파트에, TV소리에 방해가 될 만큼 소음이 난다고? 이사온 초반에는 어느정도 소음이 흡수되는지 몰라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그날따라 심하게 느껴지는 소음에 큰 마음을 먹고 관리실에 연락을 했다. 자다 일어난 관리인은 '네, 가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관리인의 잠을 깨운 것도 죄송하고, 얘기가 어떻게 전해질지 몰라서 또 걱정스러워하면서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이틀 후였나? 집 현관문에 쇼핑백 하나가 걸려있다. 그 안엔 롤케잌과 작은 메모지가 들어있었다. 메모의 내용은 당연히 죄송하고, 앞으로 더 주의하겠다는 내용. 이걸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싶은데 가져다 주면 또 '괜찮습니다' '받아주세요'의 실랑이가 오갈것같아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집에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안그래도 불편한 마음에 한겹 불편함이 가중된다. 아무래도 민원까지 넣은 건 그랬나, 싶어 윗집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로 했다. 간단히 메모로 주려고 했는데, 글씨가 너무 안 예뻐서 타자로 치다보니 투머치토커답게 말이 길어졌다.
안녕하세요, ***호입니다.
남겨주신 쪽지와 간식, 그리고 당일부터 지금까지 아무 소음도 없이 조용한 걸 보니 마음이 되려 무겁습니다.
사실 아파트가 오래된 덕분에(?) 층간소음이 다른 아파트에 비해 많지 않습니다. 그 전에도 아이가 뛰어노는듯한 쿵쿵거리는 울림이 있긴했으나, 크게 신경이 거슬릴 정도도 아니었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간이라 그저 '아이가 있는 집이 이사왔나보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늦은시간에 유독 큰소리로 울려 관리실에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요즘 출근시간이 빨라져서 저희 부부가 취침시간이 당겨진 탓에 ****호에서 너무 늦은시간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10시정도)
아이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조금씩 소음을 내며 살아가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 조금 더 시끄럽다고해서 그 자체로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들은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하는 시간이고요. 특히 요즘같이 외출 조차 쉽지 않은 때에 실내에서나마 자연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지키는 것을 어른들이 어떻게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문제제기를 했던 당일에도 저희 부부는 많이 망설이기도 했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우리 민원으로 아이의 행동이 너무 위축되진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역시나 집이 너무 조용해지니 우리가 좀 더 신중하게 말씀드렸으면 좋았겠다 싶네요.
아이가 있는 집의 모든 소음이 통제될 순 없고, 어느 정도는 이웃으로서 마땅히 감수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다행히 아파트가 튼튼해서 과하다 싶은 소음이 많지도 않고요. 그러니 평소처럼 어느정도의 실내 활동까지는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늦은 시간 혹은 너무 큰 동작만 피하도록 지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의 민원으로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한 것만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부디 가내 평안하시길 바라며, 아이 또한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신 간식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나름 긴장하며 윗집의 우편함에 넣어뒀다. 그리고 다음날 편지가 없어진 걸 확인했다. 조금은 설명이 되었기를 바랐는데 그 덕분인지 다시 소음이 생겼다. 아무래도 적당한 소음을 통제하는 게 아예 무소음으로 통제하는 것보다 쉽진 않은지, 예전보다 소음이 조금 커진 느낌.. 남편은 왜 편지까지 보냈냐며 타박.. 그래도 아이가 있는 가족이 소음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진 않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더 크다. 어디가서 뛰어놀수도 없는 시국에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윗층의 가족이 부디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주기를..
잠시잠깐 지나갈 줄 알았던 코로나가 길어지니 이런 문제까지 생기는구나 싶다. 코로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좀 더 피해보고 누군가는 좀 덜 피해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더 양보해야하고, 누군가는 더 양보받아야 한다. 이걸 손해라 생각하면 손해일테고, 딱히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무작정 희생을 바랄 수도 없다. 그치만 조금 더 손해보는 게, 결과적으로 가장 덜 손해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다시 안정을 찾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 조금씩, 더 배려하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대책이라 생각한다.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서로 예민하고 힘든 시기지만, 타인에게 날을 세우는 방식으로 버텨내진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힘일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