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Apr 28. 2020

바람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리며

a thousand winds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작자 미상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in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softly falling snow.
I am the gentle showers of rain,
I am the fields of ripening grain.
I am in the morning hush,
I am in the graceful rush
Of beautiful birds in circling flight,
I am the starshine of the night.
I am in the flowers that bloom,
I am in a quiet room.
I am in the birds that sing,
I am in each lovely thing.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o not die.

내 무덤 가에 서서 눈물 흘리지 마세요
난 거기에 없어요. 난 잠들지 않아요
나는 흩날리는 수천 개의 바람이에요
나는 눈 위에 보석 같은 반짝임이에요
나는 여문 곡식 위에 햇빛이에요
나는 보드라운 가을 비에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 깨어났을 때
나는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평온한
새들의 재빨리 솟구치는 비상이에요
나는 밤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들이에요
내 무덤 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난 거기에 없어요. 난 죽지 않았어요

[출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달라스한인문학회) |작성자 인수


삼성반도체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급성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다 돌아가신 고 황유미씨의 추모제에서 불러진 노래. 희망의 나무 합창단이었나? 너무 아름다워서 찾아보니 시에 노래를 붙인건가보다.

죽은 자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던데, 가삿말이 참 예쁜데 마음이 너무 아리다.

반도체, 전자산업 등 화학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수년간 집요하게 밝혀낸 반올림이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주로 삼성계열사의 피해자들이 많이 접수되고, 알려진 사망자만 100명이 가깝다. 재해자가 아닌 사망자의 숫자다. 그런데도 세간에 그리 잘 알려져있지 않고, 오히려 '경제성장에 희생은 불가피하다'며 경제만능주의를 시전한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그걸 성장이라 불러도 되는걸까.


난 유독 이 문제에 애착(?)을 갖고 있다. 대학을 재수로 들어오기 전, 고3 2학기, 19살, 만 18세였던 때에 나는 삼성LCD 탕정사업장에서 근무했다. 나름 번듯한 사무직을 갈 수도 있었고, 학교에선 사무직을 보낸 게 더 큰 성과여서 왜 생산직을 가느냐며 몇날며칠을 괴롭히기도 했다. 잠깐 사무직이 좋아보여 그럴까도 싶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돈벌어서 나오자는 마음에 교대근무를 하는 생산직을 자원했다.  


입사 직후 전국에서 모인 300명(정확히 기억이 안난다.)의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군대식 OT가 진행됐다. 기본 유니폼은 분홍색 작업복이었다. 꼭 자색고구마같아서 우리들은 스스로도 고구마라고 불렀다. 어쨌든 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선망인 무-려 삼성에 입사했다는 자부심에, 그 고구마 옷을 받아들던 때에도 어깨가 으쓱했었다. 한 달 정도는 큰 강당에 모여 삼성의 역사, 업무관련 지식 등을 교육하고 시험을 봤다. 밤마다 교관 같은 선배들이 방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는지 체크하고, 점호도 했다. 윽박지르고 깔아뭉개는 게 딱 예전 학교 수련회 분위기였다. 집체교육 마지막 날 순위를 매겨 시상도 했고, 그 뒤로는 OJT가 시작됐다. 나는 나름 교육성적이 좋아 원하는 업무에 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하필 내 직렬은 근 2-3년간 신입사원이 없던 곳이라 선배들의 텃새가 만만치 않았다. 뭐, 여자들만 있는 곳의 텃새라면 고등학교 내내 했던 아르바이트에서도 많이 겪어봤던터라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눈물나게 서러운 날도 많았지만, 그냥 울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요구한 생활비를 보태주기 위해 여길 그만둘수는 없었고, 텃새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배치를 받고 한 두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인가 갑자기 머리가 울리면서 어지러웠다. 내 몸에 수백배는 되는 크기의 기계를 상대하니 처음에는 기계소리가 울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소리가 크게 느껴지고 어지럼증이 심해지면서, 입고 있는 옷 때문인가 싶어졌다. LCD패널은 작은 입자들로 이뤄져서, 생산 단계에선 털끝만한 먼지도 들어가선 안된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방진복이라고 하는 상하일체형 옷을 입고 마스크에 장갑, 장화까지 끼고 일을 한다. 펄럭이지 않게 고무줄로 여기저기 되어있어 피가 잘 안통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도저히 머리가 너무 아파 서있기 힘들고 의도치않게 눈물이 주룩 흘렀다. 네시간을 울고도 삼십분을 더 울고나서야 담당 선임이 병원에 다녀오라고 조퇴를 시켜줬다.


그길로 내과를 갔는데 담당 의사가 공황장애가 염려되니 정신과로 가보라고 했다. 야간근무중이라 근처 열려있는 정신과가 없기도했고, 그때만해도 지금보다 천배쯤 보수적이었어서 정신과는 이상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가기가 꺼려졌다. 어쨌든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니 다음날 과장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그러곤 돌아온 답변. "여기선 공황장애니 소화불량이니 수면장애니 그런건 별거 아니다. 괜히 휩쓸리지 말고 하던거나 해라.". 그 말을 들으니 더는 정붙일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한달쯤 버티면서 무단퇴사 계획을 세웠다.


짐을 싸서 버릴 것 버리고, 많은 짐을 한번에 들고 다니면 오해할 수 있으니 남들 다 짐을 들고 오가는 명절로 시기를 맞췄다. 그리고 남는 짐들은 다른 친구에게 부탁해서 택배로 붙여달라고 했다. 지금이라면 힘들어서 더는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명절을 기다린 것도 있지만, 학교 졸업식을 기다린 것도 있었다. 당시 학교 선생들은 '너희가 못 버티고 학교로 돌아오면 그만큼 후배들 TO 줄어드는거야. 괜히 엄한 생각하지말고 꼭 붙어있어.'라고 가르쳤었다. 나는 1년에 4명 뽑히던 삼성LCD의 학교 TO가 나때문에 3명으로 줄어들까, 혹시나 선생들한테 혼이날까 싶어 겁이 났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 들어왔을때 봤던 교같은 선임들이 내가 그만둔다고하면 '얼마 버티지도 못할 거 왜 들어와서 사람들 힘들게 하느냐'고 타박할까봐, 과장이다 조장이다 불려다니며 혼이날까봐 무단퇴사를 감행했던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의 풋내도 못 버린 신입사원들이 그들에겐 똑같은 동료가 아니었다. '어린애'였고, 혼내고 타이르는식의 훈육을 했다. 난 그들이 무서웠고, 무단퇴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1시간에 10분 쉬라던 안전권고는 상사의 눈치로 당연히 지켜지지 못했다. 커녕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방진복을 전부 벗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무리 잠깐 볼일을 보더라도 15분은 족히 걸리는데, 그만큼이나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용자가 어딨나. 교대근무로 인해 벌건 대낮에 억지 잠을 청해야했고, 불면증은 기본이었다. 내가 겪어본 교대근무는 기계를 위해 사람이 움직이는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화학약품에 노출되면 백혈병, 희귀병이 안 걸리는 게 더 신기한 일 아닌가?


그 공장안 누구도 삼성의 가족이지 못했다. 좋은 대학나와 엔지니어를 한다고 얘기가 다르진 않다. 삼성이 일류기업이라고 한들 노동자는 삼류도 되지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반올림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국정감사에까지 부회장이 소환되었는데도 여전하다. 베트남에 지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또 희귀병이 발발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삼성의 입지만큼, 세계적으로 희생자가 늘어나는 형국이다. 언제까지 그럴것인가. 언제까지 이윤을 위해 인간을 희생시킬 것인가. 더이상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체에 유해한 것들로 품질을 높이지말고, 위험한 화학물질을 접하는 노동자들에겐 충분히 물질에 대해 이해시키고 주의시켰으면 좋겠다. 알아야 조심하지않나.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다른 제조업 종사자들, 조리원들,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안전권보장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강력한 처벌을 했으면 좋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에 대해 모두가 좀 더 관심 가지기를.

작가의 이전글 처음이라 막막하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