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6일.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썼던 날이다.
그 무렵은 지금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알지 못해 더 큰 불안과 공포를 겪었던 때이기도 하고, 마스크 안으로 덥고 습한 공기가 차오르던 무더운 여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정신과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고,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둔 직후이기도 하다.
왜 그 이후로 글을 쓰지 않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이후로도 몇 번 글을 쓰다 말고 서랍에 묵혀둔 걸 보면, 아예 할 말이 없어서 안 쓴 건 아닌 것 같다.
그즈음에서 얼마간은 메모장에 간단한 생각들을 남겨둔 흔적들이 있고, 머릿속으로 여러 번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 붙였던 것도 같다. 그러다 뜸해졌고, 휴대폰 메모장이나 카카오톡 내게 쓰기 조차 아무런 문장도 남기지 못한 시간들이 길어졌다. 그러다, 아무 글도 내보이지 않은 채로 1년 하고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난 평소에도 말이 많은 사람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할 말이 차고 넘친다.
똑같이 지나다니는 출퇴근길이라도 유난히 하늘이 좋은 날, 구름이 많은 날이 있고,
못 보던 꽃이 피어있기도 하고, 지고 있기도 하다. 오늘 마신 커피가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평소와 같은 양의 커피를 마셔도 유독 잠 못 드는 날도 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시킨 김치찌개가 평소 같지 않다던가, 햄버거를 먹으려다 초밥을 먹었는데 역시나 초밥은 옳았다던가. 이런 생각들은 평소에는 머릿속에서 재생이 된다. 내가 보고 있는 장면과 내가 늘어놓은 문장들이 녹아져서 때론 드라마의 한 장면 같고, 때론 웹툰의 한 장면 같다. 그러고는 사라진다.
그런데 한동안 그런 일들이 많이 없었다. 매일 보는 장면들에서 어떤 할 말도 떠오르질 않았고, 하늘을 보는 일도, 바깥공기를 마시는 일도 현저히 줄었었다. 심리상담을 통해서 많이 건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지난 직장을 답습한 직전 직장으로 인해 상처는 트라우마로 덧씌워졌고, 난 무너져 내렸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혼자 감당하기에 벅찼고, 심리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겠다 싶었고,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상담은 대단한 설루션을 주지 않았지만 나를 멍하게 만드는 약이 통제 범위 밖의 스트레스를 흐릿하게 해 주었고, 어찌 보면 약을 받기 위해 1년 반을 병원에 다녔다. 한 달에 한두 번, 2-30분 가서 떠들고 약 받아오고, 스트레스받거나 받을 게 예상되는 때에 받아뒀던 약을 먹고, 플라시 보인 것 같지만 어쨌든 약에 속아 얼마간의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반복하고 나니 정말 괜찮아져서!는 아니고 귀찮음에 미루고 미루다 한 달 넘게 병원을 가지 못하고, 약이 떨어졌다. 그렇게 약을 안 먹고 지낸 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약 대신 곱씹으며 그런대로 괜찮게 지낸다.
"그 사람은 쓰레기를 던진 거예요. 쓰레기는 내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내가 쓰레기를 품을 필요는 없어요. 그냥 '아 저 사람이 나에게 쓰레기를 던졌구나' 생각하고, 그 쓰레기를 내 안으로 가져오지 마세요."
나를 해치는 말들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연습은 꽤나 효과적이었고, 남이 주는 대로 아니 그 몇 배로 속으로 키워내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밀어낼 수 있게 됐다. 그거 그냥 화풀이잖아요, 내 잘못 아니잖아요.
1년 반의 치료로 100% 온전은 아니더라도 나를 돌아볼 정도의 정신을 회복한 덕분에, 지금 다니는 직장이 1년 조금 넘어가며 조금은 능숙해져 심리적인 여유를 찾은 덕분에, 다시 머릿속에 내레이션이 흐른다. 잊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지나가고, 이야기가 꿰매어진다.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친구들을 만나 밥상머리 토크를 벌인다든가, 귀가 후 남편과 안주삼아 떠드는 것으로 일정 부분 해소한다. 그래도 마음속의 모든 말들이 입 밖에 내어질 순 없고, 조카의 말을 빌리면 나는 5초 기억력을 가진 금붕어라서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곧잘 잊어버리고 만다. 너무 사소한 이야기라 그래도 누구 하나 아쉬워한다거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런데 왠지, 아깝다. 바로 이 순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생각들이니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지금의 나는 한 시간 아니 십 분 뒤의 나와도 다르니까.
어릴 때부터 자린고비 기질이 강해서 무엇 하나도 허투루 털어버리지 못한 탓인지, 소심한 관종이라서인지, 그 소소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어딘가에 내놓고 싶다. 취미로 하는 뜨개질이나 매듭짓기처럼 내 하릴없는 생각들을 나란히 꿰매어 정갈히 차리고 싶다. 두고두고 꺼내어 먹는 초콜릿 같은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글재주는 없지만, 너무 없지만, 너무 보통의 이야기라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그 첫 이야기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그야말로 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브런치가 내게 그런 공간이어서인지, 돌아온 재회의 인사말은 집에 관한 이야기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벼루다 드디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얼마나 부지런히 글을 남길지는 모르지만, 싸묵싸묵 돌아오리다.
다시 만나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