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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환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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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Dec 15. 2020

1. 식기 전에

당장 내일 죽어도 좋으니까,


“오늘 우주를 마음껏 비행시켜주는 대신

내일 너의 목숨을 값으로 바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어, 내 가족, 친구의 목숨도 아니고 내 모숨 하나라면, 나에게 이 제안은 너무 충분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저녁식사를 앞두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어제 먹다 남은 찌개요리를 데워서 내 앞에 내밀고 밥을 크게 한술 떠서 내 앞에 올려둔 후 크게 한숨짓는 소리로 운을 떠서 입을 열었다.
“의미가 무슨 소용이 있어, 우주를 가봐서 네가 뭐하게, 그러고 죽는다니 안정을 좀 취해 넌 차분해질 필요가 있어, 엄마한테 속상하게 그게 무슨 말이니.”

“난 그곳에서 뭘 할 수 없겠지,
그곳에서는 공무원 시험 준비나, 스펙을 위한 경연대회나, 주택청약 같은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할 필요도 없을 거고 결혼도 자식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도 없겠지, 그렇지만 우주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진 전부, 그 이상을 준다 해도 거긴 갈 수 없어. 나에겐 기회조차도 안주 어질지 몰라 그러니까 내 말은 곧 죽어도 우주를 간다가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의미와 경험을 하고 싶어. 지금은 내가 아무것도 없지만 무언가 생겨서 세상에 환원할 게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주에 떠있는 것처럼 가장 사치스러운 고독에 젖어들며 삶을 마무리 짓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한 최고의 삶이야.”

엄마는 근심의 무게에 잔뜩 쳐진 눈두덩이를 힘겹게 들쳐 올리고 나를 걱정스럽고 애잔하게 쳐다보다 싱크대 쪽으로 등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국 식는다, 어서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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