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잔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이 인사를 필두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속에 있는 심연은 꺼내지 않았지만 현재 삶이 힘들고 쉴 곳이 필요해서 찾아왔다는 게 눈에 보였다.
항상 빛이 나는 성격이 지금은 비를 맞아 소화되는 모닥불처럼 사그라드는 게 선명했다. 나는 음식을 준비하고 따듯한 위로를 건네며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하나 둘 풀어놓았다.
본인이 그리던 청사진이 산산이 깨어져 거기서 오는 박탈감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그리고 가족과 믿었던 지인과의 불화.
이 3박자가 들려주는 어두운 곡조는 하루하루를 불협화음으로 가득 메웠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설레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A는 빌어먹을 하루하루도 버티기가 숨이 차 미래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쳐있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전혀 힘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말 한마디 던져서 끝나는 쉬운 위로란 세상에 없다. 그저 함께 속상해하고 울며 진정하며, 또다시 울며 진정하며 그렇게 반복되는 상처가 아물어가는 따듯한 시간들을 보냈다.
너는 푸르게 우울한 배경이었지만 나는 보랏빛으로 기억되어 있다. 나는 그저 퇴근하고 와서 여느 때와 같이 식사준비를 하되 수저 하나를 더 놓고 같이 식사를 하며, 가볍고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때로는 얽힌 실타래를 같이 풀었다. 이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늘 다른 성향으로 대조되지만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며칠간 속에 있는 울화를 게워내고 어느 순간 홀연히 떠났다.
조금은 후련해진 너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듯하였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다시 떠났다.
예상했던 결과였고 결말이었다.
다만 그 시기를 정확히 예견하기 어려웠을 뿐.
막상 A를 눈에 담고 있던 시간은 꿈같았으며 종종 꿈에서 깨기 싫어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회상의 이미지는 여름의 더위와 함께 빛바랜 사진처럼 점점 탁해져 갔고
그렇게 겨울이 왔다.
그 해 겨울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이미 틀어져버린 연인은 깨져버린 유리잔 같다.
애를 쓰고 이어 붙여도 결국 사용할 수 없고, 바라만 보는 게 전부인 것을.
그렇게 살아가던 와중
회사 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