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0대가 되어 정리하는 평범한 20대의 연애기록

가위! 바위! 보!

by 외노자O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2월 무렵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


동료 A: 그거 들었어? 우리 부서에서 해외파견 나가야 한다던데..

O: 그래요? 얼마나 가는데요? 에휴 누군지는 몰라도 뺑이치겠네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물론 뭐 저는 아닐 테고…그래서 후보가 누구래요?

파트장: 처음엔 3개월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걸 보면 1년은 있어야 하지 싶다. 아! 그리고 너도 있어 임마~ 후보는 총 5명인데 그중 하나가 너야. 아무튼 다음 주까지 각자 면담 후 한 명 차출돼서 파견 갈 거야 그런 줄 알아.

O: 잘 못 들었습니다????

파트장: 아니~너 잘 들었어~ 마저 먹고 와~


이 짧은 대화를 시작으로 피 말리는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는 곧 천하제일 측은대회로 번졌으며 긴급히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후보 1: 나 알잖아… 올해 결혼하는 거 내 나이가 몇인데… 이 사람 놓치면 나는 뒤가 없어… 니들은 젊잖아 이것들아! 나 진짜 안 돼. 죽어도 나 못 가…

후보 2:아니 형! 그건 아는데 내 사정도 알잖아요… 저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제가 어떻게 갑니까! 안 그래도 와이프 임신한 마당에 저 이혼당하는 꼴 보고 싶어요? 이거는 저도 안 돼요 정말…

후보 3:저 이번에 청약돼서 드디어 이제 집 들어갔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가요! 가면 못 온다는 괴담도 있고 지금 얘기 들어보니 3개월이 아니라 일단 계획이 1년이라는데

O:그럼 만고불변의 진리인 가위바위보로 하시죠. 불만 없이 단판으로. 이렇게 다들 안된다는 의견만 나열하다 밤 셀 거 같은데. 어차피 핑계 없는 무덤 없고, 다 기피하는 지역 아닙니까! 나만 아니면 되는 거지 뭐

후보 5: 하… 이게 맞나..? 골 때리기는 하는데 일단 나는 찬성...


이렇게 각자 마른세수를 두어 번씩하고

각자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주 몇 잔을 연이어 부딪히고 마시며 이 안건의 종국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떨리는 목소리로 가위 바위 보를 외치며 각자의 무기를 내밀었다.


가위! 바위! 보!!


그 순간

단말마는 내 입에서 나왔다.


아… 하늘이 노랗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그저 지나가는 일처럼 가위바위보에 져서 낙담해하는 사람을 안주삼아 술 한잔 맛있게 털어 넣을 생각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안일했던 나의 현실에 닥친 고민은 집에 가는 길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선 나의 팔자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던 나의 안일함과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잠들고 다음날 팀장님의 호출에 불려 갔고 현지 상황이 좋지 않으니 서둘러 준비하라는 일장연설을 숙취와 함께 흘려들었다.

그 후 2주일 내로 준비를 마쳤고 가족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떠났다.

떠나면서도 마음 한편에 A에게는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섣불리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가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고 배워서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리라. 그리고는 재회의 날에 편의점에서 새콤달콤을 사 먹는 일처럼 이 무용담을 덤덤히 얘기하리라.

이런 생각에 가기 전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베트남으로 떠났다.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가서 보니 웬걸 입사 초기의 막연함이 새록새록 재현되는 현지 분위기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를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왜 나의 이런 시련의 주기는 타인보다 짧은지…

막연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가위바위보는 졌고, 나는 이미 이곳에 와있으며, 나의 임무는 명확한 것을…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하나 둘 적어나갔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서둘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거대했으니까



우선 백 투 더 베이직을 모티브로 하되 모든 업무를 전산상으로 강제성을 부여했다. a-b-c순서로 업무가 진행되어야 안정성과 효율을 기대할 수 있으나 본인 생각에 티가 크게 안 난다면 a-c로 가려는 성향이 강한 현채인들이었기에 a, b, c 각 순서의 시작과 끝에 전산처리를 하지 않으면 업무가 진행되지 않게끔 하는 일을 우선 적용했다.

이런 기본적인 업무 순서와 스파게티 다이어그램으로 동선을 재정립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심화적인 프로젝트를 TFT뺑뺑이와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효율중심의 마인드로 개선해 나갔다.

물론 이 한 문장으로 해결될 만큼 쉽지 않다. 일이 일을 만들어내고 그 일들은 많은 우여곡절을 항상 동반했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서 피어나는 고통들이 아물어가며 조금씩 이곳을 안정화시켜 나갔다.

그렇게 외노자생활이 일 년을 채울 때쯤 현지 법인 측에서 이곳에 남지 않겠냐는 권유 아닌 권유를 받게 된다.


평소에 그렇게도 싫어했던 이곳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당시의 나는 이렇게 두고 귀국을 하려니 뭔가 아쉬웠다. 이럴 때 써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스톡홀름 증후군인지 나도 이미 그들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잘 마무리하고 싶었고, 관리를 조금만 더 잘해서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게끔 만들고 싶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가장 뛰어난 관리자는 본인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을 만든다고. 그렇게 고심 끝에 남게 되었고 파트장의 직책을 받았다.


외노자 생활의 프롤로그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