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베트남 적응기
분기에 한번 일주일 내외로 갔던 한국길이 막혔다.
마치 군대시절 휴가 나오는 기분이랑 매우 흡사했는데 휴가가 통제되는 느낌까지 소름 끼치게 흡사했다.
어느 정도 적응도 했겠다. 이번에 가면 A에게 밥이라도 한 끼 같이 하자고 하려 했기에 내심 설레어하며 한국행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우한폐렴이라는 단어가 나오더니 이게 사태가 점점 심해지며 covid-19라는 게 공표되고 뉴스만 틀면 난리도 아니었다.
확진자가 우후죽순 생기니 톨게이트에는 공안이 총을 들고 검문을 했으며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한국인 감염자수가 높아지는 뉴스는 현지에서도 큰 이슈였으며 시내에 나갈 때면 이따금 한국인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종종 받았다. 박항서 감독님의 업적에 엄치를 치켜들던 손가락이 검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물론 이런 행위는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당분간 한국에 가긴 글렀다. 심해지는 확진자 뉴스에 안부인사라도 전하자는 마음에 잘 지냈냐는 말을 필두로 마음을 눌러 담아 메시지를 보낸다. 얼마 후 온 답장은 텍스트로만 봐도 당신의 밝은 텍스쳐가 비쳐 보이는 거 같았다.
“잘 지내?? 코로나가 요즘 난리던데.. 별일 없지? “
물어보니 바로 답장이 온다.
“진즉 걸려서 2주 격리했지!! 아~자택근무할 때가 좋았는데… 그건 그렇구 빨리도 물어본다!!”
나는 얼리어답터냐며 장난 섞인 답변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굳어버린 가쓰오부시 같은 딱딱한 시작은 금세 타코야키 위 대패로 갈아낸 가쓰오부시처럼 살랑살랑해진다.
오랜만에 오가는 텍스트였지만 왜 그 있지 않는가. 오랜 친구사이에서 오는 공백의 기간이 무색한 친근함. 지금이 딱 그러했다. 몇 마디가 오가고 나니 나는 베트남에 거주 중임을 밝히게 되었고 여행을 좋아하는 너는 화색이 돌았다. 이미 베트남 여행경험이 있는 너였지만 여행과 거주는 다른 개념이기에 나의 일상이 퍽 흥미로운 듯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하노이에서 주말에 바람 쐬러 하롱베이를 다녀온다는 것과 서울에서 주말에 강릉으로 바람 쐬러 가는 것. 근교로 바람 쐬러 가는 일은 행위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지만 너는 이런 상황이 번번이 해외여행 가는 것 같을 거라며 즐거워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시간이 남았다.
주말마다 받던 베트남어 과외는 코로나를 핑계 삼아 중단했다. 게다가 타인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종종 가방이나 잡다한 걸 만들었던 가죽공방도 점점 피로감이 몰려왔다.
마침 뭐라도 할게 필요했던 차 여행을 좋아하는 네가 사파(SaPa)에 가봤냐는 너에 질문에 나는 평소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나에게 몇 없는 사진을 보내주며 물었다.
"사파는 왜? 거기가 맘에 들어?"
라는 질문에 본인은 베트남 방문시마다 가고 싶었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아 못 가봤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사진 몇 장으로는 아쉬웠는지 다른 사진은 없냐고 묻는다. 없는 걸 만들어 줄 수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떠도는 내가 마주하지 못했던 사진을 보내주기도 싫었다.
그렇기에 바로 다음 주 주말일자 사파행 버스를 찾아본다. 물론 여러 번 가봤다. 처음 맞는 베트남 여름 혼자 가서 8시간 넘는 하이킹 코스를 돌면서 정말 고생했던 기억도 있지만, 더위와 업무에 지칠 때면 홀연히 다녀오는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좋은 곳임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얼마 뒤 예약을 마쳤다.
더위에 약한 내게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으며 호텔방에서 보이는 구름들과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보이는 절경들은 내가 베트남의 추억을 미화시키는데 가장 큰 요소를 담당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금요일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토요일 아침 이른 아침. 사파행 버스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