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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edictus』_축복이 필요한 시기

첼로(HAUSER), 자그레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즈베즈디체 합창

by KEN

잠에서 깨어나 무심코 꺼내든 책에서 한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의로운 분노가 우울의 안개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주 1)


누군들 아니겠는가 싶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분노를 느낄 순간이 있다.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폭발인지, 아니면 어떤 내면의 전환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흐릿한 안갯속에서 뚜렷한 무언가가 떠오른다.


책장을 덮고 잠시 숨을 고르며 방을 둘러보았다. 모니터에는 연주 영상이 흐르고 있다. 종종 무언가를 읽거나 생각에 잠길 때, 음악을 배경으로 둔다. 가볍게 깔리는 선율이 공간을 채우며 내면의 흐름과 맞물린다. 오늘은 유독 음악이 강하게 다가온다.


첫 곡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화 시네마 천국을 위해 작곡한 『Cinema Paradiso』(주 2)다. 요요마의 첼로와 크리스 보티의 색소폰이 조화를 이루며,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그리고 이어진 곡이 바로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Benedictus』.

지금도 스피커에서는 HAUSER의 첼로 선율이 흐르고 있다.


이 곡은 느낌이 묘하다. 평온함과 슬픔, 그리고 어딘가에서 솟아나는 희망.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주 3)의 12번째 곡으로 작곡된 이 곡은 본래 전쟁과 평화라는 거대한 주제 속에서 탄생했지만, 오늘 내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듯한 무언가와 함께.


의로운 분노가 우울을 뚫고 나오는 순간,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격한 감정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변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음악이 흐르는 이 순간, 그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곡에 이런 해설이 뒤따른다.

칼 젠킨스의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 (주 3) 중 "Benedictus"는 평화를 위한 미사곡의 일부로, 깊은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음악적 구조 : 『Benedictus』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AABA 형식이다.
- A 부분: 현악기와 첼로 솔로
- B 부분: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클라이맥스
- 마지막 A: 합창과 첼로가 함께 연주

주요 특징
① 첼로 솔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음역대의 첼로 솔로로 시작된다. 이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로 착각할 정도로 독특한 음색을 만든다.
② 화성 구조: D장조와 E장조 화음이 번갈아 나오며, 베이스에서는 D음이 지속된다. 이는 긴장감을 조성하게 된다.
③ 타악기 사용: 베이스 드럼, 타이코 드럼, 탬탬, 수르도 드럼(브라질 삼바 드럼) 등 다양한 타악기를 사용하여 독특한 음향을 만든다. (극적 긴장감과 클라이맥스 같은 효과이긴 하나, 이런 너무 급작스런 전개는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_편역자 주)
④ 합창: 『Hosanna in excelsis』를 부르는 합창(주 4)은 곡의 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젠킨스는 이 곡을 통해 전쟁의 공포와 평화의 소중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단순한 멜로디와 화성 구조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악기 조합과 음색으로 깊은 감동을 전달한다.

『Benedictus』는 The Armed Man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악장 중 하나로, 많은 연주자들과 청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HAUSER와 2 CELLOS의 연주 영상(주 6)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감동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현대 클래식 음악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하우저의 첼로를 특별히 즐기는 편은 아니다. 다만, 유튜브 뮤직이 무심히 들려주는 수많은 곡 중 하나일 뿐. 일종의 알고리즘이 선택한 배경 음악(BGM) 같은 것.


그런데도 가끔, 아주 드물게, 한 곡이 유독 마음에 걸리는 날이 있다. 마치 책을 읽다 한 문장에 사로잡히는 순간처럼. 오늘은 그 곡이 칼 젠킨스의 『Benedictus』였다.


(다른 글들과 반복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런 음악을 들으며,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을 읽으며, 조용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그저 심심한 나날일지라도.


그렇게 무너진 일상도 곧 정리될 거라 기대하며, 음악의 흐름을 따라간다.




편역자의 변
하나의 주제에 꽂히면, 연계된 다양한 것을 함께 살피는 감상법을 활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아래의 내용은 그것의 흐름(의식의 흐름과 감상의 흐름)을 차례로 기술한 것이다.


(주 1) 『나라, 권력, 영광』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rory)

_ 팀 엘버타, 2024, 비아토르

팀 앨버타의 책 『나라, 권력, 영광』은 종교와 극우 정치의 결합이 현대 미국 정치의 중심부를 어떻게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저자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극우파와 결합해 정치적 권력을 움켜쥐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파헤친다. 특히, 트럼프와 복음주의자들의 동맹이 단순한 정치적 제휴가 아니라 신앙적 정당화라는 강력한 프레임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설명한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그를 지지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는 그를 ‘하나님의 불완전한 도구’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서사가 트럼프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이러한 결합은 미국 내 인종 갈등을 격화시키고, 극단적인 정치적 의제를 종교적 신념으로 포장해 내놓았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는 종교와 정치의 위험한 결합이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지난 4년 동안 복음주의의 핵심 기관인 리버티대학교를 비롯해 미국 곳곳에서 열린 교회 모임, 정치 유세, 연례 총회, 각종 콘퍼런스 등 미국 전역을 누비며 취재하는 한편,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거래와 종교적 타협의 실체를 직접 목격한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한 분석을 넘어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기록을 통해, 복음주의와 극우 정치의 결합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지, 그로 인한 위험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애썼다. 나아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진정한 의도와 정치적 전략을 면밀히 파악해 독자들에게 미국 정치의 민낯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는 미국 정치와 사회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가치가 어떻게 충돌하고 타협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 기독 세력—전광훈, 손현보를 비롯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폭력적 세력화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 세력 간의 결탁, 그리고 대선에서의 영향력 행사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윤석열과 그의 지지 정당 및 관련 인사들의 행보를 분석하는 데에도 해석적 사실을 제공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적극 추천할 만하다.


(주 2) 『Cinema Paradiso』 _ Chris Botti (feat. Yo-Yo Ma) in Boston


(주 3) 칼 젠킨스의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

우리나라 개신교 현실에서 이런 주제를 가진 음악은 “<종교다원주의>를 숭상한다”는 이유로 배척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주제를 떠나, 이 음악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고 장엄하다. 감상해 보시길...

칼 젠킨스의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는 2000년에 초연된 현대적인 미사곡으로, 전쟁의 공포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배경
- 1999년 영국 왕립 무기박물관의 의뢰로 작곡
- 코소보 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헌정
- 밀레니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제작

구성과 특징
- 13개의 악장으로 구성 (유튜브에 전 곡이 오픈되어 있다. Karl Jenkins, composer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The National Youth Choir of Great Britain _ 편역자 주)
- 가톨릭 미사곡의 일부(Kyrie, Sanctus, Agnus Dei, Benedictus)를 포함.
-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텍스트를 활용
.. 성경, 코란, 힌두교 경전
.. 일본 히로시마 생존자의 시
.. 키플링, 테니슨 등의 시

음악적 특징
- 15세기 프랑스 민요 『L'Homme Armé』(무장한 사람)(주 5)를 주제로 사용
- 행진곡 리듬, 군악대 음악, 이슬람 기도 소리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포함
-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위한 대규모 편성으로 연주

주요 주제
1. 전쟁의 위협과 준비
2. 전투의 공포와 파괴
3. 전쟁의 여파와 슬픔
4. 평화를 향한 희망

작품의 의의
- 20세기의 전쟁과 폭력을 반성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에 평화를 희망하는 작품
-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텍스트를 활용하여 평화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
- 강렬한 음악적 표현을 통해 전쟁의 공포와 평화의 소중함을 청중에게 전달

공유하는 곡은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 전체 13곡 중,
세 번째 곡 『키리에 엘레이송』(Kyrie Eleison)이다.

『키리에 엘레이송』은 그리스어 Κύριε ἐλέησον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뜻은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Lord, have mercy)이다. 이는 기독교 전례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기도문이자 음악적 요소로, 동방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 예배에서 모두 사용된다. (가급적 전 곡을 감상해 보시길 추천한다.)

(주 4) 『Hosanna in excelsis』



(주 5) 15세기 프랑스 민요 『L'Homme Armé』(무장한 사람)

칼 젠킨스의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의 첫 번째의 곡에 이 테마가 사용된다. 둘을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원곡]

[칼 젠킨스의 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의 첫 번째 곡에서 사용된 연주 : 『L'Homme Armé』]


(주 6) 『Benedictus』

_ HAUSER와 2 CELLOS의 연주 영상 (라이브 영상으로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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