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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만 듣자"고 펼쳐들었다가...

보사노바의 상징, 〈Manhã de Carnaval〉그 시대를 초월한..

by KEN

아침, 한 곡만 듣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음악이란 게 그렇다. 한 곡만 듣겠다고 다짐해도 어느새 붙잡혀버리는 것이 일상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다.


그렇게 오늘의 감상도 시작되었다.


무작위로 한 곡을 듣겠노라며 장난스럽게 책장을 펼쳤다. 『재즈를 듣다』(주1), 테드 지오이아(주2)의 The Jazz Standards 번역서다. 사실 이 책을 펼쳐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1년쯤은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관련 곡들을 찾아 듣다 보니, 어느새 출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나가야 하는데, 음악이 발목을 잡는다. 어쩔 것인가?


안 되지…

아이들과의 (마음속) 약속이 있으니, 이 글은 다녀와서 마무리하자.

스크린샷 2025-02-19 오후 1.05.14.png 도서관 내, 어린이 도서실 서가 정리 가는 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그 자체가 좋다.

책을 읽으며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힐링이 뭐 거창한 게 있을까. 이렇게 소소한 순간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쉼이지.


이러저러한 자료들을 찾아보니, 이 곡 역시 흥미로운 역사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관련 자료를 탐색하고 찾아진 음악을 감상하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일 테지만, 결국 내가 그토록 추구하던 것 바로 그것!!!




보사노바의 상징, 〈Manhã de Carnaval〉: 시대를 초월한 명곡


1959년, 영화 흑인 오르페(Orfeu Negro)(주3)가 개봉되면서 전 세계에 소개된 곡이 있다. 바로 〈Manhã de Carnaval〉(카니발의 아침)이다. 이 곡은 브라질 음악의 대표적인 멜로디 중 하나로, 이후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팝 아티스트들에 의해 재해석되며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이 곡은 여전히 다양한 이름과 혼동 속에서 언급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제목은 원제인 Manhã de Carnaval 혹은 영어 제목인 “Morning of the Carnival”이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칼 시그먼(Carl Sigman)이 새로운 가사를 붙여 “A Day in the Life of a Fool”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후, 잭 존스(Jack Jones)의 히트곡이 되면서 이 명칭 역시 널리 쓰이게 되었다.

“Morning of the Carnival” _ Carl Sigman

또한, The Theme from Black Orpheus라는 제목으로도 자주 녹음되었으며, 심지어 Samba de Orfeu와 혼동되는 경우도 많다. (Samba de Orfeu는 같은 영화에 삽입된 곡이지만, 완전히 다른 멜로디를 가진 곡이다.)

he Theme from Black Orpheus _ Paul Desmond
Manhã de Carnaval _ Luiz Bonfa

조빔이 아닌 보사의 명작, '루이스 본파'의 걸작


많은 재즈 팬들은 이 곡을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주4)의 작품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Manhã de Carnaval〉의 작곡자는 기타리스트 루이스 본파(Luiz Bonfá)(주5)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의 본파는 기타 연주자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였으며, 보사노바 음악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파의 섬세한 멜로디 감각과 전통적인 브라질리언 삼바 리듬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한 〈Manhã de Carnaval〉은 보사노바뿐만 아니라 재즈 연주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부드럽고 우아한 기타 선율과 서정적인 멜로디는 곡이 탄생한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보사노바 스타일의 정착과 초기 연주들


1959년 흑인 오르페의 성공 이후, 〈Manhã de Carnaval〉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이 곡을 레퍼토리로 삼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보사노바 스타일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 녹음들은 오리지널 보사노바 스타일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는 1960년 발표한 Jazz Impressions of Black Orpheus 앨범에서 이 곡을 연주했지만(두 번째 트랙), 보사노바라기보다는 서부 해안 재즈(West Coast Jazz)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에 가까웠다.

Manhã de Carnaval _ Vince Guaraldi Trio

◼︎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는 라틴 비트를 강조한 버전을 녹음했으나, 당시 쿠바와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하바나 카지노의 느낌을 연상케 하는 편곡이 되었다.

Manha De Carnaval _ Dizzy Gillespie

◼︎ 스탄 게츠(Stan Getz)는 1960년대 초 이 곡을 연주하며 보사노바 사운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빅밴드 편곡이 다소 무겁게 가라앉는 인상을 주었다.

Manha De Carnaval _ Stan Getz


보사노바 본연의 감성을 가장 잘 전달한 버전은 1959년 주앙 질베르투(João Gilberto)의 연주와, 1963년 세르지우 멘데스(Sérgio Mendes)가 녹음한 버전이었다. 멘데스의 버전은 Quiet Nights 앨범에 수록되었지만, 보사노바 붐이 한풀 꺾인 후에 발매된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주앙 질베르투(João Gilberto)의 연주
세르지우 멘데스(Sérgio Mendes)가 녹음한 버전


완성된 보사노바 스타일과 후대의 해석


1960년대 중반 이후, 재즈 뮤지션들은 보사노바의 독특한 리듬과 감성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고, 〈Manhã de Carnaval〉의 연주 스타일도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했다.


1. 정통 보사노바 스타일을 유지한 연주

• 폴 데스먼드(Paul Desmond)의 Toronto Bourbon Street Club 실황 녹음(1975)
•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의 협연(1980)
• 터크 안드레스(Tuck Andress)의 솔로 기타 연주(1990, Reckless Precision 앨범 수록)


2. 보사노바 형식을 일부 변형하거나 독창적인 해석을 가미한 연주

• 빌 에반스(Bill Evans)는 1970년대에 이 곡을 연주하며 더욱 서정적인 색채를 더했다.
정확한 1970년대 발표곡을 찾을 수 없어 빌 에반스 참여 다른 서정적 연주곡 ...
• 니콜라스 페이튼(Nicholas Payton)은 2000년대 들어 재즈 트럼펫의 서정성을 강조한 버전을 선보였다.


보사노바와 재즈의 경계를 허문 명곡


〈Manhã de Carnaval〉은 단순한 영화 OST를 넘어 보사노바와 재즈의 교차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곡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삼바의 리듬을 기반으로 한 이 곡은 보사노바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9년 발표된 이래 수많은 재즈 뮤지션과 팝 아티스트들이 이 곡을 연주하고 편곡했으며, 지금도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보사노바의 감성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위에 링크한) 원곡자인 루이스 본파(Luiz Bonfá)의 연주뿐만 아니라, 주앙 질베르투(João Gilberto)와 세르지우 멘데스(Sérgio Mendes)의 버전도 필수적으로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보사노바의 영원한 클래식, 〈Manhã de Carnaval〉.

이 곡이 들려주는 낭만적인 선율 속에서 브라질의 따뜻한 햇살과 리우의 공기를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




(주1) 『재즈를 듣다』 - 불후의 재즈명곡 완벽 해설서, 테드 지오이아, 꿈꿀자유, 2023

스크린샷 2025-02-19 오전 9.11.15.png


(주2) 테드 지오이아: 음악 역사학자, 평론가, 그리고 재즈 피아니스트

테드 지오이아(Ted Gioia)는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역사학자이자 문화 평론가, 재즈 피아니스트, 그리고 저술가다. 1957년 10월 21일, 캘리포니아 호손에서 이탈리아계와 멕시코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오이아는 스탠퍼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의 활동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 저술 활동: 12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그의 저서들은 1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대표작으로는 Music: A Subversive History, The History of Jazz, The Jazz Standards 등이 있다.
• 학술 활동: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재즈 연구 프로그램 설립에 기여했다.
• 음악 활동: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여러 앨범을 발표했다.
• 비평 활동: New York Times, Los Angeles Times, Wall Street Journal 등 주요 언론 매체에 기고하며 음악과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평론을 제공했다.

지오이아의 저작들은 단순한 음악 분석을 넘어, 음악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의 대표작 Music: A Subversive History는 25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음악이 어떻게 사회 변화를 이끌어왔는지를 조명한다. 그는 음악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혁신과 저항, 문화적 전환의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재즈에 대해 “재즈는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자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연구는 음악이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분석하며, 특히 성, 마법, 트랜스, 치유, 사회 통제, 세대 갈등, 정치적 불안과 같은 요소들과 음악의 연관성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테드 지오이아는 광범위한 지식과 독창적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음악 역사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와 평론은 현대 음악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음악을 단순한 예술이 아닌 사회적 변혁의 도구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음악이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인간의 삶과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3) 흑인 오르페(Orfeu Negro) : 신화와 리우 카니발의 만남

《흑인 오르페》는 1959년 제작된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 합작 영화로, 마르셀 카뮈(Marcel Camus)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현대 브라질, 특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을 배경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줄거리
카니발 축제 기간, 전차 안내원 오르페우스와 시골에서 온 에우리디케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의문의 남자에게 쫓기며 리우에 도착했고, 오르페우스에게는 이미 미라라는 약혼녀가 있어 갈등이 생긴다. 신화 속 이야기처럼, 사랑과 비극이 얽힌 이들의 운명은 카니발의 열기 속에서 펼쳐진다.

수상 경력
- 195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1960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1960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1961년 BAFTA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보사노바(Bossa Nova)의 세계적 인기에 기여한 명반으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과 루이스 봉파(Luiz Bonfá)가 참여했다. 특히,
- 〈Manhã de Carnaval〉(카니발의 아침)
- 〈A Felicidade〉(아 펠리시다지)
이 두 곡은 지금까지도 보사노바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의 문화사적 평가
-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 그리스 신화를 브라질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 흑인 문화 조명: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흑인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워 브라질 흑인 공동체의 삶과 문화를 조명했다.
- 카니발의 상징성: 브라질의 카니발은 억압된 욕망의 분출과 사회적 전복을 표현하는 중요한 무대로 등장한다.
- 음악적 영향력: 영화의 음악은 이후 보사노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흑인 오르페》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문화적·음악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여전히 보사노바 팬들에게 필수적인 작품이며, 현대적 신화 해석과 영화음악의 교과서로 남아 있다.
영화 전편이 우리말 더빙본으로 공유되어 있다.

(주4)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 보사노바의 전설

안토니우 카를로스 브라질레이루 지 알메이다 조빔(Antô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 1927년 1월 25일 - 1994년 12월 8일)은 브라질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작사가, 편곡자, 그리고 가수로, 보사노바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음악적 업적
보사노바의 아버지: 삼바와 재즈를 융합해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주요 작품: The Girl from Ipanema (가로타 지 이파네마), Desafinado (데사피나두), Corcovado (코르코바두), Wave 등 400여 곡의 명곡을 작곡하였다.
국제적 성공: 1964년 스탠 게츠(Stan Getz), 주앙 질베르투(João Gilberto)와 함께 발표한 앨범Getz/Gilberto는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영향과 유산
음악적 혁신: 브라질 전통 음악에 재즈의 세련된 화성을 접목하여 독창적인 사운드를 창조했다.
국제적 협업: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등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보사노바를 전 세계에 알렸다.
수상 경력: 그래미상 9회 수상, 라틴 그래미상 2회 수상, 아카데미상 2회 수상

음악적 특징
자연에서 얻은 영감: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과 숲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섬세한 화성 진행: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복잡하고 세련된 코드 진행이 특징이다.
시적인 가사: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와 협업하며, 시적이고 감성적인 가사를 담아냈다.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은 여전히 재즈와 브라질 음악의 거장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그의 음악은 전 세계 음악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주5) 루이스 본파(Luiz Bonfá, 1922년 10월 17일 ~ 2001년 1월 12일)

브라질의 저명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보사노바 장르의 선구자 중 한 명

생애와 경력
•1922년 10월 1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생
•11세부터 우루과이 출신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사이아스 사비오에게 기타를 배움
•1947년 리우의 라디오 나시오날에 출연하며 브라질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
•1950년대 후반 미국으로 진출해 활동했으며, 1962년에는 유럽 순회 공연을 했음

주요 업적
•영화 《검은 오르페》(1959)의 음악을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 함께 작곡
•“Manhã de Carnaval”(카니발의 아침)은 그의 가장 유명한 곡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주되는 스탠다드가 됨
•400여 곡을 작곡했으며, 24편의 영화 음악을 만듬

음악적 특징
•클래식 기타 기법을 바탕으로 삼바 리듬과 재즈를 융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
•정확하고 아름다운 연주로 유명했으며, 작곡과 연주에서 로맨틱한 색채가 강했음

유산과 영향
•보사노바의 세계적 인기에 크게 기여했으며, 브라질 대중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음
•그의 음악은 현재까지도 여러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 사용됨

루이스 봉파는 2001년 1월 12일, 78세의 나이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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