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 회사 명함에 이메일 주소 최초 넣기
"박정수 씨 명함에 이걸 넣으면, 모든 직원들 명함에도 삐삐번호 넣어줘야 해요."
"규정상 개인적인 것(e-mail)은 넣어줄 수 없습니다."
1990년인가 91년인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명함 인쇄를 대행해 주던 회사 총무 팀에서의 대화 내용이다. 명함에 'e-mail 주소'를 넣어달라는 나의 요청에 대한 담당자의 답변이었다.
당시에는 소위 이메일이라는 것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Hi-8mm 캠코더를 개발하고 있던 나는 당시 연구망을 사용하고 있던 중앙연구소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할당받았다. 일본 기업과 이러저러한 논의가 필요했던 연구개발 현장에서는 필수는 아니었지만 이메일의 보유는 소통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회사의 명함 제작 규정에 이메일을 넣는 항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담당자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겠다. 다만 어렵게 얻은 이메일 주소를 명함에 넣어야 하는 내가 답답할 뿐.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겁니다"
"아무튼 규정에 없어서 안 된다니까요"
"그럼 연구소장 승인을 받아오면 될까요?"
"그래도 안됩니다. 규정에 없다니까요?"
"그걸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우리 팀장님과 얘기해 보세요"
등등의 지루한 대화 끝에 결국 명함에 이메일 주소를 넣을 수 있었다.
당시 총무팀장을 만났던 기억은 명확한데, 연구소의 팀장이나 소장의 결재를 확보해서 제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시 재직했던 V연구소를 포함하여 P단지에서는 내가 유일한 이메일 기입 명함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최초' 타이틀은 시작되었다. 당시 가장 앞서가는 전자회사 연구원이었던 나의.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는 우스운 일이었지만 당시의 IT 환경에서는 그랬다. 단지 35년 전의 일이다.
지난 7월 19일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친 '정보통신기술(IT) 대란' 영향으로 미국 주요 항공사인 델타항공이 나흘 연속 운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뉴스가 전송되었다. 7월 22일 하루에만 델타항공에서만 총 항공편의 11%인 421편이 취소되고 67편이 지연됐다는 기사다. IT 보안 소프트웨어SW 회사인 크라우드 스트라이크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OS와의 충돌에 따른 영향으로 아직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일간 총 3천768편을 취소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항공 대란이 야기됐다는 평가다.
이렇듯 IT는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환경이 된 것은 사실 그다지 오래지 않았다. 이메일 하나를 명함에 넣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에서 35년 만의 일이다.
앞으로 35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기술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지 우려보다는 기대되는 마음이 더 크다. 모든 기술계 인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