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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수 Jul 31. 2024

[소소한 경험] 2. 파워포인트 최초 적용

30여년 전, 회사 최초로 당시 명예회장에게 파워포인트로 보고서 작성

"보고서는 앞으로 V연구소만 같으면 되겠다"
명예회장의 보고 후 코멘트였고, 변화의 시작 신호였다.

    1995년 5월. 지난 2월에 물러난 구OO 명예회장의 이 한 마디로 인해, 그 후 내 사무실의 전화는 불이 났다. 무엇으로 작업했느냐? 보고 내용이 뭐였느냐? 보고서를 보내 줄 수 있느냐? 어떻게 작성한 것이냐? 등등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해 2월 명예회장은 장자에게 회장을 물려주었다. 다만 평소의 지론처럼 연구개발은 지속적인 관심 범위에 있었다. 사업 마다에서 개발 중이던 신상품 개발 현황은 비록 현업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놓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그해 5월 역시 점검회의는 속개되었고, 당시 내가 재직 중이던 연구소 또한 보고 대상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임OO 연구소장의 현황 보고가 끝나자 좌장이었던 명예회장이 했던 코멘트가 위의 것이었다. "앞으로 보고서는 V 연구소처럼 작성 해 달라"라고.           




     1995년 당시 회사에서는 주로 워드프로세서 '장원' 혹은 당시 금성소프트웨어사가 개발한 '하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했었다. 도스나 혹은 윈도 OS 환경에서 작동되는 워드프로세서였으나 문제는 사선이나 곡선 등을 표현하지 못했다. 마치 타자기를 PC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장원을 사용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출력하여 사선이나 곡선 등은 자나 컵 등을 이용하여 별도로 그려 넣던 시절이었다. 


    보고가 있던 그 몇 주 전, 당시 PC 연구실에서 근무 중인 동료를 찾아갔었다. 이러저러한 대화 중에 책상에 놓여있던 보고서가 눈에 띄었다. 너무나도 멋지게 원과 삼각형 더구나 섀도까지 적용된 출력물을 보게 된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맥으로 작성한 건가?"
"아니 윈도 PC로 작업한 거야"
"그래? 이게 가능해?"
"당연하지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면 돼"
"정말? 그거 카피해 줘"

    PC가 개발되면 호환성 테스트를 거치게 되어있다. 이를 위해 그 시점까지 발매된 수많은 주요 SW를 개발실 혹은 품질관리 부서에서 시험을 한다. 그 동료가 사용하던 것 또한 호환성 테스트를 위해 구입하여 사용하던 파워포인트였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카피를 부탁하면서 사내에서만 사용하겠다, V연구소에서 보유하고 있던 여러 PC 또한 테스트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는가? 백 워드 테스트(기존에 발매된 낡은 PC에서의 호환성 체크 방식)를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카피본을 받았다. 그게 나의 파워포인트 삶의 시작이었다. 


    혼자서 사용법을 익히기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용산의 PC 판매상 중에 매뉴얼을 판매하는 곳이 있음을 알고 구입을 시도했다. 여기서 아주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          


영문 매뉴얼은 한 권 판매는 불가하고 반드시 짝수의 권수로 판매 가능하다는 연락이었다. 책을 양면 복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권씩 복사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타 연구실, 설계실 등을 포함하여 보고서 작성이 많은 부서들에게 연락하여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매뉴얼의 공동 구입을 제안하였으나,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매뉴얼 두 권을 주문했다. 그 구입 비용을 회사에 청구했던 기억이 없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구입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비용 처리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었다. 아무튼 그렇게 구입한 매뉴얼로 사용법을 익혀 드디어 1995년 5월, 명예회장에게 보고되는 발표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 하나, 파워포인트 문서의 출력 속도였다.


    현재처럼 LCD 프로젝터나 대형 모니터를 통한 프레젠테이션은 한참 뒤의 일이다. 당시에는 오버 헤드 프로젝터(OHP)를 통해 반사막에 필름을 투사하여 보고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작업된 내용은 종이로 출력하여 검토를 거치고, 완성된 출력물을 OHP 용 필름에 복사하여 사용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아래 OHP 형태 이미지 참조)


"아직 안 나왔나?"
"네, 인쇄 걸었는데 장당 5분씩 걸리네요"
"왜 이렇게 느린 거야?"
"우리 레이저프린터가 느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
"PC 연구실은 HP 프린터를 사용하더군요. 장당 30초도 안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 당장 하나 사라"

    보고 전날, 그러니까 5월 어느 일요일 낮에 연구소의 내 자리에 마주 앉은 연구소장과의 대화 내용이었다. 연구소장은 다음날 보고 내용의 최종 점검을 위해 나와있었고, 보고서 작성을 했던 나와 둘이서 출력을 기다렸던 프린터 앞에서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당시에 금성 레이저프린터는 '장원'이나 '하나 워드'에서는 매우 빠른 출력이 가능했었으나, 파워포인트처럼 그래픽 기반 문서를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 대화로 인해 나는 연구소 최초로 HP 프린터를 장만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었다. 1995년도에, 그것도 사내에서 프린터 사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여곡절을 거친 문서는 다음날 명예회장에게 보고되었고, 회의 당시에 들었던 코멘트로 인해 회사뿐만 아니라 그룹 내에 소문이 났었던 것이다. 추정컨대 그전에는 어느 조직에서도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보고를 명예회장에게는 하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보고 이후 내가 받았던 수많은 전화 와 이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했었던 것이 그 반증이었으리라. 사내에서의 '최초 타이틀'(남들이 뭐라고 평가든지 내 해석은 그랬다)은 그렇게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보고 전 매뉴얼 구입 제의를 거절했던 부서는 어찌 되었느냐고? 사용법 설명 요청에 가장 후순위로 대응하는 것으로 아주 소심하게 복수했었던 듯하다, 무척 고소해 하면서.




    이제는 파워포인트가 대부분의 보고서뿐만 아니라 회의자료 작성에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가끔은 문서용 보고서를 작성하면서까지 프레젠테이션 툴인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등 오 사용되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문서작성의 표준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5년 이후, 나 또한 대부분의 문서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하였다. 아직까지도 서술식의 워드보다는 핵심만 요약하는 파워포인트 사용이 훨씬 편리하게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ppt로 작성하는 문서는 누구보다도 빠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모든 것들이 돌아보면 행복한 기억만 남았다. 즐겁게 몰입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초'에 대한 인증을 누군가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억하는 것은 근거 없는 혼자만의 일들은 아님이 확실하다. 당시의 동료 선배들이 필요하면 증언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나의 최초 타이틀은 앞으로도 계속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누구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을지라도.^^            




오버 헤드 프로젝터 (OHP)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kcs1055



이미지 출처: https://cafe.naver.com/i8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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