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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말하는 ⟪진보⟫

"This storm is what we call progress."

by KEN

발터 벤야민은 유럽에서 파시즘이 일어나고 세계 전쟁의 조짐이 보이던 1940년에 그가 소유하고 있던 파울 클레의 그림 〔Angelus Novus〕(New Angel, 새로운 천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는 에세이 "역사 철학에 관한 테제"(1)의 9번째 논제에서 Angelus Novus를 "역사의 천사"(angel of history) 이미지로 묘사합니다.


파울 클레(Pau Klee)의 작품 가운데 ⟪새로운 천사 Anelus Novus⟫라는 그림을 보면, 한 천사가 꼼짝 않고 생각에 잠겨 무엇인가를 바라보다 막 떠나고 있다. 그는 입을 벌린 채로 뭔가를 응시하고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꿰뚫어 보는 천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일을 볼 때 그는 단 하나의 일, 재앙만을 바라본다. 이 재앙은 파멸의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쌓고 있는데, 천사는 이 잔해를 자기 발 앞에 던져놓고 있다. 천사는 계속 머물러서 죽은 자들을 깨우고 부서진 것을 원상회복하길 원한다. 낙원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폭풍우가 너무 격렬하게 몰아쳐서 천사는 이미 편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폭풍우는 천사의 등이 향하고 있는 미래로 천사를 꼼짝없이 내몬다. 한편 그 앞에 있는 잔해 더미는 계속 하늘 높이 쌓인다. 이 폭풍이 우리가 말하는 진보이다.


스크린샷 2025-04-02 오전 8.18.52.png 파울 클레(Pau Klee)의 ⟪새로운 천사 Anelus Novus⟫


1933년 독일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던 발터 벤야민이 스페인 국경에서 붙잡혀 1940년 9월 자살하기까지 숱한 고난의 여정을 겪으면서도 "역사 철학에 관한 테제" 글을 썼고, 그 글 안에 위에 같은 감상을 남겼습니다.


"낙원에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폭풍우가 너무 격렬해서 천사는 이미 편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고. 폭풍우는 천사의 등이 향하고 있는 미래로 천사를 꼼짝없이 내몬다고. 한편으로는 그 앞에 있는 잔해 더미는 계속 하늘 높이 쌓여만 간다고. 바로 그 폭풍이 우리가 말하는 진보라고"


역사의 잔해들은 계속 우리 앞에 쌓여만 갑니다. 그것이 업적이든 실패의 잔해이든 상관없이 쌓여만 갑니다. 더불어 우리는 그 폭풍우로 인해 '꼼짝없이' 미래로 떠밀려 갑니다. 역시 '좋든 싫든 상관없이...'


이번 주 중대한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도 있습니다. 마치 새로운 천사 앞에 쌓인 잔해처럼 우리에게는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 침탈로 인한 시절동안 영혼을 팔아버린 매국노의 잔당을 '반민특위'로 청산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잔류세력의 역공을 맞아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그 누더기 역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그 매국의 대가로 얻은 부와 권력과 지식과 지위를 지속하고 있고, 대부분의 애국자들은 그들의 권력 앞에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형국입니다.


그 결과가 윤석열 등극이고, 그 결과가 극우 집단의 광화문, 여의도 집회의 당당함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믿어보고자 합니다.

"진보(進步)"라는 '말의 뜻'에라도 기대보고자 합니다.


진보(進步)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진보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다음 주를 기대합니다.

"역사의 천사"(Angel of History)가 앞을 보고 능동적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 Benjamin, "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Illuminations, Harry Zohn 역, New York: Schocken Books, 1969. ("역사 철학에 관한 테제", 1940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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