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43] 느헤미야 (11-12장)

예루살렘 재정착과 낙성식

by KEN

성경연구주석 구약

느헤미야


■ 주석가 ㅣ 레스터 그랩 (Lester L. Grabbe), 유대교 역사 및 히브리 성경학자




느헤미야 11장 –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



문맥과 구조


느헤미야 11장은 성벽 재건 완성 이후, 예루살렘의 인구 부족 문제(느 7:4)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은 7장의 문제의식과 직접 연결되며, 중간에 삽입된 듯한 8-10장과 다소 독립된 맥락을 가집니다.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06.32.png


7장의 귀환자 목록이 페르시아 초기에 만들어진 기록이라면, 8-10장은 성벽 완공 이후의 헌신 의식을 묘사한 것으로 편집자가 적절한 위치라 판단하여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앞서 살펴 봤습니다. 비록 내러티브 흐름에는 혼란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성벽 재건과 백성의 헌신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거주민 목록의 성격 (11:1-3)


예루살렘의 주민 수가 적어 도시가 공격에 취약했기 때문에 인구의 10분의 1을 예루살렘에 강제로 정착시키는 조치가 취해졌습니다(11:1-2). 지도자들도 도시 내에 거주해야 했던 것이죠.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08.16.png


총독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강제 정착은 경제적 손실(농지 관리 문제)을 감수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때 예루살렘에 거주한 주민 수는 약 3천 명으로, 당시 예루살렘의 규모를 감안할 때 적절한 수로 보여집니다(11:3 이하 참조).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11.04.png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11.58.png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12.32.png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13.01.png



성전 조직의 시사점


목록에 제사장과 레위인이 명시되었고,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도 언급되지만(11:3), 이후 상세 목록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문지기들과 성전 종사자들, 노래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노래하는 자들은 레위인의 한 범주로, 왕의 명령에 따라 특정한 임무가 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11:22-23). 이는 성전 조직과 예배의 제도화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15.35.png




느헤미야 12장 – 성벽 봉헌식과 추가 족보 목록



성벽 봉헌식의 맥락과 의미


성벽 재건 이후의 봉헌식은 느헤미야서 내러티브의 자연스러운 절정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벽 재건은 주로 기존 성벽의 손상된 부분을 수리한 수준이므로, 지나치게 성대한 행사라고 여겨질 수도 있었겠습니다.


원래 성벽 봉헌식은 느헤미야 8-9장의 율법 낭독과 회개의식 및 초막절 행사들과 연관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12장은 이를 모르는 듯이 성벽 봉헌 자체만 독립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승의 점진적 발전과 편집의 결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추가 족보 목록 (12:1-26)


예수아와 스룹바벨 시대에 귀환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족보가 페르시아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제시됩니다. 이 족보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까지 내려온다고 언급되나(12:26), 일부 학자들은 이 언급을 편집자의 추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19.49.png


족보에 언급된 ‘바사왕 다리오(다리우스)’(12:22)는 다리오 1세(주전 522-486년)가 아니라 다리오 2세(주전 424-404년)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한 명과 다리오 두 명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스크린샷 2025-04-07 오전 6.21.13.png



제사장 목록의 역사적 신뢰성 문제 (12:10-11)


이 목록이 페르시아 시대 전체(약 200년 이상)를 망라한다는 주장은 이름의 숫자상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점을 갖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인물들로 인해 필사상 누락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현재 본문에는 중복된 이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족보는 필사상의 오류가 일부 있을 수 있지만 다리오 2세 시대까지 내려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학자들 중 일부는 이 족보가 저자의 창작물이며 역사적 자료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벽 봉헌식의 묘사와 편집 문제 (12:31-43)


성벽 봉헌 의식의 서술은 느헤미야가 직접 1인칭으로 기록한 비망록 형식으로 되어 있어, 느헤미야서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함께 등장하는 유일한 구절입니다(8장 제외).


그러나 에스라의 이름이 목록에서 어색하게 등장하는 점, 두 행렬의 대칭 구조에서 에스라의 이름이 오히려 불균형하게 위치하는 점에서 후대 편집자의 추가라는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성전 제도의 확립 (12:44-47)


성벽 봉헌 후 성전과 관련된 다양한 조직과 제도(십일조, 헌물 등)가 다시 강조되는데, 이는 이미 느헤미야 10:35-39에서도 논의된 바 있습니다.



정리


느헤미야 11-12장은 성벽 재건의 실질적 완성 이후 이루어진 인구 재배치와 성벽 봉헌 의식을 다룬다. 본문은 느헤미야 본래의 기록에 후대 편집자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족보 목록은 성전 조직과 예배 제도의 확립을 강조하고자 추가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벽 봉헌식의 위치와 의미는 편집 과정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제사장 목록은 역사적 신뢰성의 문제가 제기되지만 전반적으로 페르시아 시대 예루살렘 공동체의 조직과 종교적 생활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겠습니다.



참고서적

『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고든 웬함, 존 골딩게이, 로널드 클레멘츠 외 지음, 2023,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42] 느헤미야 (8-1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