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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과 영화들

by KEN


장르를 넘나드는 문화 감상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연관된 그림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음악에 영감을 준 시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음악이나 그림, 혹은 영화나 소설에서의 활용 사례를 찾아보게 됩니다.


이렇듯 ‘음악 – 미술 – 영화 – 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감상 방식은 어느 순간 스스로 깨우친 나만의 감상법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영화 ⟪라이프 리스트⟫(The Life List, 2025, 넷플릭스)로부터 시작된 '드뷔시의 ⟪달빛⟫'은 그렇게 깊이를 더해가는 나의 감상 놀이가 되었습니다. (자료를 search 하여 살펴보고, 그 내용을 재정리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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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1.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Clair de lune)'은 그의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드뷔시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 작곡가로, 전통적인 화성학과 작곡법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자 대표자라고 하더군요.


그의 음악은 빛과 색채,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려는 인상주의 회화와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아, 화성은 모호함, 감각적임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음색은 자유롭고 다채롭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음계 활용법도 다체로워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들 합니다. (찾아보니 제가 잘 모르는 '온음음계', '5음음계' 등을 사용하여 그런 느낌을 표현한다고는 합니다만, 제 학습 영역 밖의 것들이라...^^;;;)


그는 피아노곡 '달빛' 외에도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판화', '영상', '어린이 차지' 등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집니다.


'달빛 (Clair de lune)'

'달빛'은 드뷔시가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의 4개 악장 중 세 번째 악장입니다.

[참고]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
- 1악장: 프렐류드(Prélude)(F장조, Moderato tempo rubato): 활기차고 유려한 선율
- 2악장: 미뉴에트(Menuet)(A단조, Andante): 고전적인 미뉴엣 형식이나 독창적인 분위기와 장식음이 특징
- 3악장: 달빛 (Clair de lune)(D♭장조, Andante très expressif):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
- 4악장: 파스피에 (Passepied)(F♯단조, Allegretto ma non troppo): 빠르고 경쾌한 춤곡으로, 왼손의 지속적인 8분 음표 반주와 폴리리듬이 특징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드뷔시가 젊은 시절인 1890년경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그가 만족하지 못하고 수정을 거듭하여 15년이나 지난 1905년에야 출판되었습니다. '달빛' 역시 이 시기에 함께 완성되고 출판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목 그대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밤,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의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아르페지오(펼침화음)가 곡 전체를 감싸며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서정적인 주선율은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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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특유의 모호하면서도 풍부한 화성이 사용되어 독특한 색채감을 더합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이지만, 크게 세 부분(A-B-A')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점진적으로 고조되었다가 다시 조용히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 여리게(pianissimo, pp) 연주되어 섬세하고 투명한 달빛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음악 이야기 및 배경

'달빛'이라는 제목과 곡의 분위기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 '달빛(Clair de lune)'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시는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축제(Fêtes galantes)』(1869)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는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특히 '달빛' 악장에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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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는 젊은 시절 작곡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오랫동안 출판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초기 작품에 대해 비판적이었거나, 더욱 성숙해진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 맞게 수정하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특히 '달빛' 악장은 초기에는 다른 제목(예: '감상적인 산책길 Promenade sentimentale')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최종적으로 '달빛'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곡의 이미지를 명확히 하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달빛'은 모음곡의 일부이지만,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으로 인해 독립적으로 매우 유명해졌습니다. 오늘날 드뷔시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지고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며, 영화, 광고,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대중들에게 특히 친숙해진 듯합니다.


'달빛'은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리기보다는, 달빛 아래 느껴지는 순간적인 인상과 분위기, 감정을 소리로 포착하려는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영화에 풍부한 느낌을 덧입히는 음악 '달빛 (Clair de lune)'


드뷔시의 '달빛'은 특유의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곡이 사용된 주요 영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션스 일레븐 (Ocean's Eleven, 2001)

영화의 마지막 부분, 팀원들이 벨라지오 호텔 앞 분수 앞에서 흩어지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 버전의 '달빛'이 흘러나옵니다. 영화적 여운을 더욱 깊이 있게 남기게 하는 유명한 장면으로 기억되게 합니다. https://youtu.be/Cfu9s89C-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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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Twilight, 2008)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피아노로 '달빛'을 연주해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상의 5분쯤 경과된 후 연주가 시작됩니다) https://youtu.be/zubWdNmNzzc?si=HRDGV3LvBLaX4N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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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톤먼트 (Atonement, 2007)

영화 속 특정 장면의 다수에 포함되어 극의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https://youtu.be/jWG8H-0MnsQ?si=MgmpGbuRf1KoDeYG

https://youtu.be/DOF69zvaRUI?si=TPoaj4mpQ_bRCXMC

https://youtu.be/YmAcjQi7KNM?si=hWlmYhdHI1iXhu_H

https://youtu.be/6w5MjKIjR5g?si=JvzUFqlbjigEeI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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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와 쟈니 (Frankie and Johnny, 1991)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며, 특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https://youtu.be/dpISjrqUQuM?si=4IJHOkWX8W3Hfe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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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온 파이어 (Man on Fire, 2004)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속에서 잠시 감성적인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https://youtu.be/sEMhhY1F_3A?si=frNYHUGddfSDzJBO


1년여 쯤 전 나의 다른 글에서, 이 장면에 대한 감상을 적었던 적도 있습니다.

https://brunch.co.kr/@xpert/51



티벳에서의 7년 (Seven Years in Tibet, 1997)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서정적인 느낌을 더합니다. (오르골을 통해 음악이 연주됩니다)

https://youtu.be/48WGhAZEd0Q?si=EJsTYtBfb7hRCUyr

https://youtu.be/kj-U6yc2KqE?si=OmCjAIj9Jnod_f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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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나타 (Tokyo Sonata, 2008)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피아노 콩쿠르에서 '달빛'을 연주하며 긴장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3분 이후 곡에 연주됩니다)

https://youtu.be/dnYGxdWpk0c?si=-j1M-XU0EyJNiq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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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여러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서 드뷔시의 '달빛'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곡은 듣는 이에게 평온함, 아련함, 신비로움 등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영상 매체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클래식 곡 중 하나입니다.


- 필사의 도전 (The Right Stuff, 1983): 특정 장면에 사용되어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다양한 음악이 사용된 이 영화에서도 '달빛'이 인상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 라운드 업 (La Rafle, 2010): 프랑스 영화로,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장면에서 감정을 증폭시키는 데 쓰입니다.



3. 이름도 같은 클로드 모네의 그림들 연계 감상 (인상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라고 평가되는 드뷔시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제가 인상주의와 관련하여 학습한 대표적 인물들은 대부분 화가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로는 익히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르누아르, 드가, 모네 등등이 있습니다.


연계 감상의 하나로 오늘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를 살펴봅니다. (관련 자료는 ⟪진'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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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동일한 대상이라도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빛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사물의 고유색보다는 빛에 의해 반사되고 변화하는 색채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눈에 비친 '인상'을 빠르게 그려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상, 해돋이>에서 잘 드러나며, '인상주의'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스크린샷 2025-04-10 오전 9.09.03.png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빛의 효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리기 위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빠르고 짧은 붓 터치를 사용하여 빛의 반짝임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동일한 주제를 다양한 시간대와 날씨 조건에서 반복해서 그린 연작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를 통해 빛의 변화무쌍한 효과를 깊이 탐구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 및 연작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인상주의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작품입니다. 르아브르 항구의 아침 풍경을 뿌옇고 순간적인 느낌으로 담아냈습니다.


<수련 (Nymphéas)> 연작 (1899-1926): 모네의 말년을 대표하는 작품군입니다. 지베르니(Giverny)에 있는 자신의 정원 연못에 핀 수련을 다양한 구도와 빛 아래에서 그렸습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거대한 파노라마 벽화가 특히 유명합니다.


<건초더미 (Meules)> 연작 (1890-1891): 다양한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건초더미의 빛과 색채를 탐구한 연작입니다.


<루앙 대성당 (Cathédrale de Rouen)> 연작 (1892-1894): 루앙 대성당의 서쪽 정면을 아침, 한낮, 저녁 등 여러 시간대와 날씨 속에서 관찰하며 빛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그린 연작입니다.


<포플러 나무 (Peupliers)> 연작 (1891): 강둑에 늘어선 포플러 나무들을 다양한 빛과 계절 속에서 그린 연작입니다.


<양산을 쓴 여인 (Femme à l'ombrelle)> (1875, 1886 등): 그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 혹은 양녀 쉬잔을 모델로 그린 작품들로, 야외에서의 인물과 빛의 조화를 잘 보여줍니다.


<생 라자르 역 (La Gare Saint-Lazare)> 연작 (1877): 기차역 내부의 증기와 빛, 철골 구조물 등을 주제로 한 연작입니다. 근대 도시의 풍경을 인상주의적으로 담아냈습니다.


런던 시리즈: 템스강, 국회의사당, 차링크로스 다리 등을 안개와 빛 속에서 그린 작품들입니다. (<런던 국회의사당> 연작 등)


<일본식 다리 (Le Bassin aux nymphéas)> (1899 등): 지베르니 정원의 일본식 다리와 연못을 그린 작품들로, <수련> 연작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모네는 평생 동안 빛과 색채의 변화를 포착하는 데 몰두한 듯합니다. 자연과 빛에 대한 깊은 느낌을 전하고자 애썼던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많은 인상을 남겨줬니다.


이상으로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Clair de lune)'으로부터 시작된 감상의 여정을 마칠까 합니다.


다양한 일상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것은 문화와 예술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도 풍성한 마음에 가득 감동을 담는 하루 되시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참조 자료

- AI Gemini / Perplexity를 통한 자료 서치

- 유튜브 영상 서치

- 위키백과

- 베로니크 부뤼에 오베르토의 <인상주의 Impressionism>

- 장승용의 <빛을 그린 인상주의 개척자 "클로드 모네"> 미술과 영화 그리고 음악이 만나다.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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