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주석 구약
■ 주석가 ㅣ 캐서린 델 (Katharine J. Dell), 구약학자
서론과 후기를 한 단위로 취급해야 할 이유
문체적, 구조적 연속성
욥기의 서론(1–2장)과 후기(42:7–17)는 전체 본문 중에서 유일하게 산문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문체로 된 중심 대화부(3장–42:6)와는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이 두 단락은 함께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 구조를 이루며, 욥기의 '이야기틀'을 구성합니다.
이 내러티브는 욥기의 ‘드라마’를 해석하는 결정적인 열쇠로 작용합니다.
- 욥의 경건함(1:1)
- 시험(1:6–2:10)
- 친구들의 등장(2:11–13), 그리고 마지막
- 회복(42:10–17)으로 이어집니다
문체 상, 고대 산문 서사의 전형적 특징을 보이며,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 전통과도 연결됩니다.
신학적 긴장과 문학적 불일치
그러나 서론과 후기를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 어려운 문학적 불일치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불일치는 욥기가 하나의 단일한 구성체가 아니라, 여러 전승과 문서가 통합된 결과물임을 암시합니다.
친구들의 발언 유무:
서론(2:11–13)에서 욥의 친구들은 침묵한 채 등장하지만, 후반부(42:7–9)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았다”고 책망받습니다. 이는 중간에 있었던 대화(3–31장)가 이미 본문 속에 전제되어 있음을 시사한 것이죠.
질병의 언급 부재:
후기에서는 욥의 질병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욥이 고난에서 회복되며 재산과 자녀를 다시 얻는 장면(42:10–17)은 등장하지만, 고통의 핵심이었던 피부병(2:7–8)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탄의 부재:
서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탄(1:6–2:7)이 후기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는 사탄 본문이 후대의 삽입일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만일 사탄의 역할이 처음부터 이야기의 일부였다면, 후기에 그의 ‘퇴장’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일부 학자들은 하늘의 장면(사탄과의 대화)을 이차적 구성 요소로 간주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본문은 하나님을 초월적 재앙의 배후자로 제시하며, 욥이 그의 고난을 사탄이 아닌 하나님께 돌리는 본문 전체의 시신학적 통일성과도 부합합니다.
신학적 효과: 하나님 중심성 강조
사탄의 제거는 신학적 메시지를 강화시킵니다.
욥의 고난은 우주의 이중적 권력 투쟁의 부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권을 가지신 상황 아래서 벌어집니다. 이는 욥이 고난 중에도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3장–31장)과도 일관됩니다.
전승사적 관점: 욥기의 수용사와 서론·후기의 지위
고대부터 ‘이야기 욥’에 집중된 전통
역사적으로 욥기의 해석은 서론과 후기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중세기 미술과 음악에서 욥은 고난 가운데 인내하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예:
- 브뢰헬의 《욥을 찾아온 그의 아내》(주1)
- 본 윌리엄스의 무용극 《욥(Job), a masque for dancing》 (주2)
초기 교회와 중세 성도들은 욥기를 주로 산문적 구조, 곧 이야기 중심의 텍스트로 읽었습니다.
신약 성경 야고보서 5:11 역시 “욥의 인내”를 언급하며, 욥의 덕성과 인내를 전형적 신앙인의 모델로 제시합니다.
‘인내하는 욥’ vs. ‘하나님과 논쟁하는 욥’
전통적으로 욥은 도덕적 인내의 모범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 성서비평이 발달하면서, 욥기의 시부, 곧 욥의 항의와 탄식, 친구들과의 논쟁, 하나님의 응답 등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었습니다.
- 욥기의 신학적 무게중심은 이제 인내보다도 신정론과 인간 고통의 의미를 묻는 데로 옮겨집니다.
- 그러나 여전히 ‘인내하는 욥’은 예배, 교육, 문학, 예술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리: 이야기틀의 기능과 전체 욥기 해석에서의 위치
서론(1–2장)과 후기(42:7–17)는 욥기의 극적인 전개를 열고 닫는 문학적 격자를 형성하며, 전체 본문의 이해를 규정짓는 해석학적 좌표로 작용합니다. 이 둘은 본문을 ‘시적 논쟁’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고난과 정의, 신정론의 문제를 스토리의 틀 안에서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서론과 후기는 단순한 도입과 결말 이상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것은 욥기를 지혜문학의 정수이자 신학적 성찰의 장으로 형성하는 기반이 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를 향한 인간의 물음을 대표합니다.
참고서적
『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고든 웬함, 존 골딩게이, 로널드 클레멘츠 외 지음, 2023,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16
[참고]
(주 1)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욥을 찾아온 그의 아내》(Job Visited by His Wife)
1568년에 제작된 유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구약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고난당하는 욥과 그의 아내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욥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며 앉아 있고, 그의 아내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욥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짓은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권유하는 듯 보입니다. 욥의 주변에는 그의 고난을 상징하는 듯한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브뤼헐 특유의 사실적이면서도 풍자적인 화풍을 잘 보여줍니다.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 그리고 세밀한 배경 묘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성서 속 이야기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욥의 고난과 그의 아내의 절망적인 모습은 인간의 실존적인 고통과 믿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을 남깁니다.
이 그림은 현재 독일 쾰른의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Wallraf-Richartz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니다.
다만, 불행하게도 그림과 관련한 이미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래 다른 사람의 욥과 그의 아내 (욥을 조롱하는 그의 아내) 그림을 대신하여 공유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주 2)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의 무용극 《욥(Job), a masque for dancing》
《욥, 춤을 위한 가면극》은 랄프 본 윌리엄스가 작곡하고 1931년에 초연된 1막 발레입니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욥기를 바탕으로 제프리 케인즈가 시나리오를 썼고, 니네트 드 발루아가 안무를 맡았습니다.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가 삽화를 그린 욥기 판본(주3)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본 윌리엄스는 이 작품을 "발레"라는 명칭 대신 "춤을 위한 가면극"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는데, 이는 그가 발레라는 장르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 평론가 프랭크 하우즈는 가면극의 본질은 연극의 모든 예술의 결합이며, 노래와 대화가 없는 가면극은 진정한 가면극이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1930년에 콘서트 형태로 먼저 공개되었고, 발레로서의 초연은 1931년 7월 5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영국인 창작진에 의해 제작된 최초의 발레였으며, 빅-웰스 발레단(Vic-Wells Ballet)과 그 후신 단체들의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습니다.
작품의 구성:
발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 순서를 느슨하게 따라 총 9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면의 줄거리에는 성경 구절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본 윌리엄스는 악보에 18개의 부분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사라방드"("네가 내 종 욥을 생각해 보았느냐?") - 서곡. 목가적 춤. 사탄의 하나님께 대한 간청. 하나님의 아들들의 사라방드.
"사탄의 승리의 춤"("이에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니라.") - 사탄의 춤.
"욥의 아들들과 아내들의 미뉴에트" - 욥의 아들들과 딸들의 미뉴에트.
"욥의 꿈" - 역병, 질병, 기근 그리고 전쟁의 춤.
세 명의 전령들의 춤.
욥의 위로자들의 춤 - 욥의 저주 - 사탄의 환상.
엘리후의 젊음과 아름다움의 춤 - 새벽의 아들들의 파반.
새벽의 아들들의 가야르드 - 제단의 춤과 천상의 파반.
에필로그.
《욥, 춤을 위한 가면극》은 욥의 고난과 그에 대한 믿음의 시험을 웅장하고 극적인 음악과 섬세한 춤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독특한 예술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무대 디자인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래 연주 현황 장면을 보시면, 그 안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욥에 대한 삽화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습니다.
https://youtu.be/78LxRhrgQco?si=nHpfLKBFbYd0y3Fk
(주 3) 윌리엄 블레이크는 욥기에 대한 여러 판본
윌리엄 블레이크는 욥기에 대한 여러 판본의 삽화를 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826년에 출판된 22점의 판화 연작입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블레이크는 욥기에 대한 초기 작업으로 두 개의 수채화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하나는 1806년경에, 다른 하나는 1821년에 그려졌습니다.
1826년 판화 연작: 22점의 흑백 판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블레이크의 독특한 스타일과 성서 이야기에 대한 심오한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이 판화들은 다양한 형태로 재출판되어 현재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806년경 수채화 연작 (Butts Set): 토마스 버츠(Thomas Butts)의 의뢰로 제작된 19점의 수채화입니다.
1821년 수채화 연작 (Linnell Set): 존 린넬(John Linnell)을 위해 버츠 세트를 복사하고 채색하여 제작된 21점의 수채화입니다. 이 세트에는 두 점의 새로운 그림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블레이크의 욥기 삽화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성서 이야기와 블레이크 자신의 통찰력을 결합한 독특하고 심오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