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장
성경연구주석 구약
■ 주석가 ㅣ 캐서린 델 (Katharine J. Dell), 구약학자
욥기 3장은 산문 내러티브(1–2장)에서 시적 논쟁(3–27장)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며, 욥이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한 순간입니다. 이는 욥의 심정이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절망에 이르렀음을 시사합니다.
구조 및 문학적 특징
욥의 첫마디는 탄식이나 탄원, 혹은 기도가 아닌 저주(3:1)입니다. 이는 히브리 시문학에서는 드문 방식으로 보입니다.
이 단락은 창조 질서의 해체를 소망하는 시적 반역으로, “빛이 있으라”(창 1:3)에 맞선 “그날이 캄캄하였더라면”(욥 3:4)이라는 선언으로 표현됩니다.
낮과 밤이 의인화되어 저주의 대상이 되며(3:3–5), 자연 질서에 내재한 선함 자체에 대한 거부를 드러냅니다.
신학적 함의
욥은 자신의 탄생일을 저주함으로써 삶 자체에 대한 거부를 표현합니다. 이 저주는 단지 특정한 날이 아닌 자기 존재의 기원에 대한 부정이기도 합니다.
욥은 직접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지만, 창조 질서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도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핵심 주제
“어찌하여…”(3:11, 12, 16)는 히브리적 탄식 시의 전형적 도입이지만, 욥의 탄식은 하나님께 바라는 간구가 아닌 현실을 비판적으로 되짚는 절망의 외침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차라리 출생 직후 죽었거나 낙태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3:11, 16).
스올(שְׁאוֹל)에 대한 묘사
스올은 죽은 자들의 어두운 안식처로 그려집니다. 욥은 스올을 고통의 종결지, 왕과 노예, 고관과 포로가 모두 평등해지는 장소로 묘사하며(3:13–19), 삶의 불합리함을 이 죽음의 평등성으로 대조합니다.
이는 욥이 현재의 고통이 단순히 물리적인 고난을 넘어 존재의 위계 구조 자체의 모순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및 전도서와의 연관성
이 단락은 시 88편(주1)이나 전 9:2, 10의 정서와 유사하게, 죽음을 삶보다 나은 것으로 간주하는 전복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시편의 탄식이 하나님께 응답을 요청하는 반면, 욥의 탄식은 응답 없는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침묵 속의 외침인 것입니다.
구조 및 내용
3:20–23에서는 욥이 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진 “빛”을 저주합니다. 이는 삶과 창조의 은총이 욥에게는 형벌처럼 느껴진다는 정서적 반전입니다.
3:24–26은 욥의 내면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나의 탄식이 음식 앞에 이르고”(3:24),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3:25)라는 표현은 고통과 공포가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학적 메시지
빛은 본래 창조와 생명의 상징이지만, 욥은 그것을 피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창조 자체에 대한 신뢰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울타리를 두르셨으므로 나는 나아갈 수 없고”(3:23)는 1:10에서 사탄이 말한 하나님의 울타리가 이제 욥에게는 감금과 억압의 상징으로 역전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예레미야 20:14–18과의 비교
예레미야도 자기 탄생을 저주하고 자기 부모까지 언급하지만, 예레미야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소명과 분노 사이에 서 있는 선지자로서 발언합니다.
반면, 욥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단절당한 채, 자신의 존재 전체를 향한 절망으로 응축된 언어를 펼치고 있습니다.
패러디와 전복
욥은 전통적인 저주 시문(시편, 신명기 저주들)과 탄식 장르를 패러디하면서, 기존 신앙 언어의 기능을 전복시킵니다. 그의 언어는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을 내포하지 않으며, 절망을 언어로 성역화하는 시적 실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립/전복
3장은 창조 질서의 핵심인 “빛”과 “어둠”의 이원적 도식을 뒤틀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빛은 형벌, 어둠은 해방의 상징으로 바뀐 것이죠. 이는 욥의 세계가 신학적 재정렬의 과정 중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욥기 3장은 단순히 고난의 서술이 아니라, 신학과 언어의 경계를 시험하는 장입니다. 욥은 신앙의 언어, 즉 탄식, 저주, 기도라는 장르들을 의도적으로 전복함으로써,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간극을 드러냅니다. 그의 저주는 결국 창조 이전의 혼돈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시도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비극적 고찰이자, 언어를 통한 고통의 형상화입니다.
이 장은 이후 친구들과의 논쟁을 촉발시키는 서곡으로 기능하며, 욥기의 전체적인 신학적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욥기 3장은 욥이 “왜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고통의 심연 속에서 발화된 존재론적 시편으로 독자 앞에 서 있습니다.
참고서적
『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_고든 웬함, 존 골딩게이, 로널드 클레멘츠 외 지음, 2023,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16
(주1) 시편 8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