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욥기 (욥-세 번째 주기 발언)

by KEN

주석가 ㅣ 캐서린 델 (Katharine J. Dell), 구약학자


욥의 세 번째 주기 발언 (욥기 23:1–24:25; 26:1–27:12)



이 세 번째 주기에서는 대화 구조의 붕괴가 감지됩니다. 발언의 순서와 내용이 뒤섞이며, 양측(욥과 친구들) 모두 피로하고 단절된 대화를 보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 신학적 프레임을 찾고자 고군분투합니다. 동시에 전통적 지혜의 패러다임과 싸우며, 때로는 그 전통으로 회귀하기도 합니다. 친구들은 점점 짧은 발언만을 이어가며, 설득력이 상실되는 반면 욥은 더욱 명확하고 힘 있는 확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욥의 사법적 열망 (욥기 23:1–17)


욥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 목적은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기 위함인 것이죠.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오른쪽에 계셔도, 왼쪽에 계셔도...”).

욥은 하나님의 시험과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그분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신비로 느낍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복이라는 시편적 이해와는 반대로, 부재와 침묵에 대한 탄원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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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번성과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성찰 (욥기 24:1–25)


욥은 하나님께서 왜 악인들의 형통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제기합니다.

악인들은 경계표를 옮기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며, 밤에 악행을 저지르지만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욥은 18–25절에서 악인들의 종말을 간결하고 서늘한 언어로 묘사합니다(“구더기가 그들을 삼킬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잊힐 것이다”). 전반부는 현실 관찰, 후반부는 이상적 심판을 향한 소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일부 구절은 문맥상 욥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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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 대한 조롱과 하나님의 무서운 권능에 대한 묘사 (욥기 26:1–14)


욥은 친구들의 조언을 조롱적 어조로 평가절하하며, 그들이 무익하다고 비판합니다. 이후 하나님의 전능성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시편처럼 그 권능이 위로가 아닌 공포의 원천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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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절은 자연 질서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힘을 찬양하는 듯하면서도,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비의 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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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에 대한 맹세와 악인의 운명 (욥기 27:1–12)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권리를 박탈하셨지만, 자신은 결백하다는 맹세를 합니다. 그는 죄책감도 후회도 없이, 결코 불의에 무릎 꿇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후 악인의 운명을 묘사하는 전통적 어조로 자신의 원수들—친구들로 추정됨—에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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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절은 일부 학자들이 친구들의 발언으로 보기도 하지만, 욥의 발언과 크게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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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요점


욥은 하나님의 이중적 모습—자신을 공격하는 하나님과 자신이 여전히 신뢰하려는 하나님—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은 점점 더 비정통적이며 개인적, 그리고 내면화된 신앙의 실존적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악인의 형통에 대해 점점 복잡한 시각을 보이며, 전통적인 보응 교리의 절대성을 의심합니다. 동시에, 죽기 전에 정당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대화의 가능성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삶에의 적용
우리는 번영과 평안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삶의 모든 것이 '은혜'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질병, 실직, 관계의 파괴, 사회적 낙인 등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 속에서, 욥처럼 “왜?”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입니다. 그 물음은 믿음의 부정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고난을 통과하는 과정입니다.

의문을 품는 신앙은 더 성숙한 신앙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때때로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끈질기게 묻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에 고통과 불확실성이 있더라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합니다.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무조건적인 순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대화입니다. 슬픔과 고통 앞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묵묵히 견뎌야 한다’는 식의 강요는 신앙의 왜곡입니다. 정직한 질문과 탄식, 심지어 항의조차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거룩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윤리와 자비는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그 삶이 곧 고난을 막아준다는 단순 보응 신학적 입장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내가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욥의 이야기처럼, 도덕적인 삶이 즉각적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윤리적 삶은 그 자체가 삶의 당연한 내적 태도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존재의 의미는 ‘성과’나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외적 성공이나 사회적 인정이 아닌, 내면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에 근거해야 합니다. 실직, 이혼, 실패, 은퇴 등으로 인해 정체성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욥처럼 자신을 다시 정의하려는 내면의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그 작업은 고통스럽지만, 영적 성숙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서적

『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_고든 웬함, 존 골딩게이, 로널드 클레멘츠 외 지음, 2023,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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