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가 ㅣ 존 재릭 John Jarick, 구약학자
전도서의 중심 주제는 "헛됨"입니다.
전도서는 서두(1:2)와 결말(12:8)에서 반복되는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 허무함을 주제 진술로 내세웁니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 상급 표현 구조로서, 극단적인 허무를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아가”나 “지성소”처럼 가장 높고 깊은 개념을 표현할 때 쓰이는 구조인 것이죠.
‘헛됨’이라는 핵심 단어는 히브리어 ‘헤벨(hebel)’에서 온 것입니다.
‘헤벨’은 문자적으로는 ‘숨’, ‘증기’를 의미하지만, 전도서에서는 비유적으로 덧없음, 무의미함, 실체 없음, 공허함을 나타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대개 “vanity”(헛됨)로 번역하지만, 이는 자만이나 허영이 아닌, 무익함(in vain)과 목적 없음(purposelessness)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헤벨’은 전도서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어로 볼 수 있습니다.
교사는 삶의 성취(2:11), 죽음 앞에서의 평등함(3:19), 인간의 끝없는 욕망(5:10), 세상의 불의(8:14) 등을 모두 ‘헛됨’으로 규정하며, 전도서 전반에 걸쳐 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반복은 이 단어가 교사의 관점을 대표함을 보여줍니다.
‘헛됨’과 가장 자주 연결되는 표현은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바람을 잡는다”는 표현은 실체 없는 것을 헛되이 추구하는 인간의 무익한 노력과 갈망을 상징합니다(1:14; 2:11).
이는 인간의 지혜 추구(1:17), 재물 축적(2:26), 권세에 대한 기대(4:16) 등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인간의 ‘수고’ 또한 본질적으로 무익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수고’라는 단어는 전도서에서 반복되며, 교사는 인간의 모든 노동이 궁극적으로 이익이 없음을 지적합니다(2:22; 3:9; 5:16).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운명이 모든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생존과 번영을 위해 수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계 또한 헛된 순환의 틀 안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1:3-11의 시적 서문에서는 태양, 바람, 강물 등의 자연이 쉼 없이 반복되고 있으나 그 어느 것도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모든 자연의 활동은 “헛됨”과 “지루함”의 구조 속에 묶여 있습니다.
유명한 ‘때를 따라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시(3:1-8)도 허무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출생과 죽음, 파괴와 건설 등 인간 행위의 양극단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며, 이처럼 반복되는 순환의 시간 속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없음을 시사합니다(3:9). 모든 행위는 소용없는 반복이며, 항구적 만족은 없습니다.
‘해 아래’의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인간 경험의 영역인 것입니다.
‘해 아래’(under the sun)라는 표현은 전도서에서 인간의 현실 세계를 지칭하며, 여기에서의 모든 활동은 헛됩니다. 교사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인정하지만, 그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분이며(8:17), 그 뜻은 인간의 지혜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부정합니다.
교사는 죽음 이후의 생명을 인정하지 않으며(3:20; 9:5,10), 사람과 동물의 운명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창세기 2:7을 반영하지만, 여타 지혜 전승에서 강조되는 내세 신앙과는 대조됩니다.
교사는 전통적 신앙과 율법의 틀에서 벗어난 관점을 제시합니다.
전도서에는 하나님의 이름 ‘야웨’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희생제사나 율법 순종의 가치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라고 조언하며(11:9), 의로운 삶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기존 신학을 부정합니다(7:15; 8:14).
전도서는 전통적 지혜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교사는 자신을 지혜의 탐구자로 규정하면서도, 그 탐구가 헛되었음을 고백합니다(1:17; 2:15).
지혜가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전통적 기대는 실망으로 귀결되며, 오히려 지혜는 고통을 증대시킨다고 그는 말합니다(1:18).
전도서 전체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테제(正, Thesis)의 변주인 것입니다.
1:2과 12:8의 포괄 선언 사이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이 주제의 다양한 변형이며, 인간의 모든 노력, 지혜, 욕망, 의로움조차도 결국에는 덧없음이라는 진리에 수렴됩니다. 전도서는 이러한 통찰을 통해 전통과 종교, 지혜의 허상을 통렬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삶에의 적용
“헛됨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라”
전도서는 우리 삶의 진실을 직면하게 합니다. 화려한 성공도, 부지런한 수고도, 정교한 지식도, 결국은 모두 “헛됨”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는 전도자의 탄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애쓰고, 세상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분투합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은 무상하며,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왜일까요? 그것들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잠정적인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원의 감각을 가진 존재이기에, 순간적인 성취나 쾌락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단지 절망을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초대합니다. 전도자는 수많은 질문 끝에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내 수고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그 모든 것을 아시고 다스리시는 분 앞에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알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믿음의 여백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일 때, 하나님만이 참된 반석이심을 신뢰해야겠습니다. 지혜조차 우리를 완전히 인도하지 못할 때, 경외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하루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복됩니다.
아무리 작고 평범한 일상이라도,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안에서 감사함으로 누리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헛됨을 뚫고 피어나는 경외의 삶, 그것이 전도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믿음의 길임을 배웁니다.
참고서적
『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_고든 웬함, 존 골딩게이, 로널드 클레멘츠 외 지음, 2023,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