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볼컴의 "Graceful Ghost Rag" 세 가지 연주 형태
희뿌연 여름빛이 감도는 하늘입니다.
지난밤 열대야로 앓은 몸살처럼,
아직은 여름이 쉽게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창문 사이로 스치는 바람결은
어느새 다가올 가을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오늘은 재즈의 태동을 예감케 했던,
클래식 속 레그타임(Ragtime) 연주를 들어보려 합니다.
왼손의 정박 베이스 위에 오른손 혹은 현악기의
싱코페이션으로 얹혀지는 계산된 리듬은
묘한 흔들림과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춤곡이 지닌 독특한 흔들림이 배어 있는 곡,
그러나 그것이 작곡가가 아버지를 기리며 쓴 곡이었다는 점은
더없이 흥미롭습니다.
"Graceful Ghost Rag" 작품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1970)은 작곡가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며 작곡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래그타임의 당김음(싱코페이션)과 낭만파적 서정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현대 클래식의 걸작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곡은 복잡한 화성 구조 위에 단순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담은 멜로디가 흘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이죠.
⟪래그타임 리듬⟫
래그타임의 가장 대표적인 리듬적 특징은 오른손으로 연주되는 싱코페이션(분절된 리듬, 당김음)입니다. 이로 인해 음악이 ‘ragged’(불규칙하거나 들쑥날쑥한)하게 들리며, 전통적인 규칙적 박자와 대비되는 것이죠.
왼손이 규칙적인 박자를, 오른손이 싱코페이션 된 선율을 연주하여 두 손의 리듬이 서로 어긋나면서 독특한 리듬감을 만듭니다. 이 조화가 래그타임만의 경쾌하고 활기찬 느낌을 형성합니다.
‘래그타임’이라는 명칭은 이름 그대로 ‘ragged time’ 즉, ‘불규칙한 시간/박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리듬이 규칙적이지 않고, 음이 미묘하게 밀리거나 당기는 느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익히 많이 알고 있는 스콧 조플린의 ‘Maple Leaf Rag’, ‘The Entertainer’ 등에서 래그타임의 리듬을 뚜렷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연주
본 포스팅은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 래그(Graceful Ghost Rag)'에 대한 세 가지 상이한 연주를 비교하며, 각 연주가 원곡의 본질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주요 내용을 담아 보고자 합니다. 그 매력의 세계에 함께 들어가 보시죠.
윌리엄 볼컴과 '우아한 유령 래그(Graceful Ghost Rag)'
작곡가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 1938-)은 20세기 후반 미국 음악계에서 재즈, 래그타임,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창적인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 〈Graceful Ghost Rag〉는 1971년에 작곡된 세 개의 ‘유령 래그’ 가운데 첫 번째 곡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쓰인 곡입니다. 볼컴은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마치 주위에 “자비로운 영혼이 맴도는 것을 느낀다”라고 종종 언급하곤 했답니다.
특히 제목의 Ghost는 현대적 의미의 ‘유령’이라기보다, 17세기적 어법에 가까운 ‘영혼(spirit)’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Graceful Ghost'는 '작곡가의 아버지'를 의미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더구나 추모곡을 춤곡으로 작곡한 것은 생시에 아버지가 춤을 무척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작곡가에게 있어 우아한 유령은 확실히 그의 아버지임을 읽을 수 있죠.
윌리엄 볼컴의 "3 유령 래그(3 Ghost Rags)" 연작
(1) 우아한 유령 래그
(2) 폴터가이스트: 래그 판타지(The Poltergeist: Rag Fantasy)
(3) 꿈의 그림자(Dream Shadows)
일반적으로 래그타임은 활기차고 경쾌하며 춤추기 좋은 음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곡은 작곡가의 깊은 정서적 배경으로 인해 전형적인 래그타임의 특성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대신 성찰적이고 애잔하며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볼컴 자신도 이 작품이 “매우 느린 춤곡처럼 연주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이 곡의 리듬은 ‘곧게(straight)’ 연주할 수도 있고, ‘스윙(swung)’으로 해석할 수도 있도록 명시되어 있어, 연주자에게 상당한 해석상의 유연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교감상
〈우아한 유령 래그〉의 핵심적인 비교 감상 포인트는 곡에 내재된 ‘래그’적 요소 즉 싱코페이션과 리듬적 추진력을 어떻게 살리면서 동시에 멜로디가 지닌 서정성, 애잔함, 애가적 특성과 균형을 이루는가 하는 해석적 과제에 있습니다. 세 연주팀의 해석은 바로 이 균형점을 각자의 방식으로 탐색하고 드러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양인모의 바이올린 : 서정성 강한 'Graceful Ghost Rag' 연주
1979년, 볼컴은 이 곡을 직접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콘서트용 이중주 버전으로 편곡했습니다. 이 편곡은 특히 바이올린의 서정적 특성에 초점을 두며, 주로 메조 피아노의 느낌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훌륭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긴밀한 해석적 공감을 전제로 하는 편곡이라 전해집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양인모는 연주에서 흠잡을 데 없는 기술적 통제력과 심오한 몰입을 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의 바이올린은 소위 '달콤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노래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매우 유려하게 포착하죠. 군더더기 없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2) 손열음의 피아노 : 특히 원곡의 깊이와 섬세함을 극도로 표현한 'Graceful Ghost Rag' 연주
원곡이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된 만큼, 피아노는 볼컴의 구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악기라 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는 래그타임의 핵심인 싱코페이션 멜로디와 끊임없는 반주를 동시에 구현해내지요.
손열음은 정확하고 치밀하며, 강렬한 몰입과 세부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연주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녀의 연주에는 맑고 순수한 음색, 섬세한 우아함, 그리고 상상력 넘치는 다이내믹과 아티큘레이션이 늘 따라붙습니다.
이번 연주에서도 그녀는 온건하고 통제된 템포를 유지하면서, 곧고 엄격한 박자 해석을 통해 원곡의 클래식적 구조와 명료함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특히 스타카토에 가까운 음의 분리는 래그타임 특유의 리듬적 선명함을 한층 두드러지게 만듭니다. 그렇게 들리시지요? ^^;
(3) LAYERS의 3중주: 앙상블의 조화와 풍부한 음향, 리듬감으로 연주한 'Graceful Ghost Rag'
바이올린(JAY/본명 김재영), 첼로(김대연), 피아노(DMK/본명 강대명)로 구성된 전형적인 피아노 삼중주 앙상블은, 첼로의 깊고 풍부한 저음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음향적 가능성을 열어 보입니다. 이로써 독주 피아노나 바이올린/피아노 듀오에 비해 훨씬 확장된 음색 팔레트와 더 큰 대위법적 잠재력을 제공하는 듯합니다.
LAYERS CLASSIC은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팀으로, 전통적인 클래식 요소에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해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려는 연주자들입니다.
그들의 〈Graceful Ghost Rag〉 해석은 특히 ‘스윙’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즈적 유연성을 잘 드러냅니다. 볼컴이 이 곡에서 리듬을 곧게 혹은 스윙으로 연주할 수 있음을 명시해 둔 점을 고려할 때, LAYERS의 크로스오버적 배경은 순수 클래식 앙상블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스윙’ 해석을 탐구하는 듯합니다.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 래그〉는 단순한 래그타임을 넘어, 깊은 서정성과 복잡한 화성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또한 다양한 악기 편곡을 통해 그 본질이 다채롭게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에 비교 감상한 세 연주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며, 이 곡이 가진 해석의 폭과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가치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어떤 악기와 해석을 거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볼컴의 작곡 의도와 더불어, 연주자의 해석적 자유가 작품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는 것이죠.
멋진 음악으로 가는 여름을 흔쾌히 보내고, 다가오는 풍성한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