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s Loussier Trio | 바흐 음악의 재즈적 해석
8월의 마지막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힘차게 시작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바흐의 음악을 골랐습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음악을 재즈적으로 해석한
'자크 루시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명확히 하는 것,
'성공의 방정식'과도 같은 그것을
대부분의 생활인이라면 염원하게 되죠.
자크 루시에는 그 자신만의 색깔에
'바흐'를 입혔습니다.
우리들 모두 또한,
각자의 색깔을 좀 더 선명하게 가꿔가는
평안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의 음악은 단순히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는 수 세기를 가로지르는 두 세계를 하나의 음악적 대화로 엮어내며, 서로 다른 전통이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창조합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연주 가운데,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프렐류드 1번 다장조, BWV 846을 재해석한 연주는 그의 예술적 비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바흐의 치밀한 구조미가 담긴 고전적 작품이자, 동시에 루시에의 즉흥성이 자유롭게 드러나는 음악 작업이 되었습니다.
1934년 프랑스 앙제에서 태어난 자크 루시에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모양입니다. 15세의 나이에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포레, 드뷔시, 생상 등 여러 대가들의 작품을 배우며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았던 것이죠. 학교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의 음악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고 합니다. 한 경연에서 바흐의 전주곡을 연주하던 중 악보가 기억나지 않자, 루시에는 당황하지 않고 즉흥 연주로 곡을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이 우발적 경험은 그에게 즉흥 연주의 매력을 일깨워 주었고,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색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학교를 떠나 중동, 라틴 아메리카, 쿠바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악을 직접 체험하고 견문을 넓혔습니다. 특히 쿠바에서 1년간 머문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리듬과 감각을 심어 주었고, 이러한 방랑과 실험의 정신은 훗날 그가 선보일 독창적인 음악 세계의 토대가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1950년대 후반, 루시에는 인기 샹송 가수들의 반주자로 활동하다가 재즈의 즉흥성과 그루브를 클래식에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실험 대상은 바로 바흐의 작품들이었습니다. 1959년, 그는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켈로프와 드러머 크리스티앙 가로와 함께 ‘플레이 바흐 트리오(Play Bach Trio)’를 결성하고, 바흐의 곡에 재즈적 색채를 입힌 첫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Bach: Toccata & Fugue In D Minor)
이 앨범은 시리즈로 이어지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루시에는 단숨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트리오는 전 세계에서 3천 회가 넘는 공연을 펼쳤으며, ‘바흐’ 음반만 7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77년 트리오가 해체된 이후, 그는 영화와 TV 음악 작업에 몰두하며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1985년 바흐 탄생 300주년을 맞아 다시 트리오를 재결성했고, 이후에는 베이시스트 뱅상 샤르보니에와 드러머 앙드레 아르피노, 그리고 1997년부터는 베이시스트 브누아 뒤누아 드 세공작과 함께 루시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루시에의 음악적 여정을 되돌아보면, 그의 즉흥 연주 스타일은 단순한 상업적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바흐의 전주곡을 연주하다 악보를 잊은 순간에 우발적으로 터져 나온 즉흥 연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앞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경험은 그의 내면 깊숙이 잠재된 창조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근원적 사건이었던 것이죠. 훗날 그의 연주에서 즉흥성이 결코 인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바흐의 작곡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처럼 들리게 되는 이유랄 수 있겠습니다.
자크 루시에의 음악은 미국의 작곡가 군터 슐러(Gunther Schuller)가 명명한 ‘제3의 흐름(Third Stream)’으로 분류됩니다. 이 용어는 클래식을 ‘제1의 흐름’, 재즈를 ‘제2의 흐름’으로 규정하고, 두 장르가 융합된 새로운 음악을 일컫습니다. 비록 이 장르가 한쪽에서는 클래식으로는 “유치하다”, 다른 한쪽에서는 재즈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종종 한계를 지적받았지만, 루시에는 이러한 비판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제3의 흐름’을 대중적 성공과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획득한 예외적 성취의 장르로 이끌어낸 선구자였던 것입니다.
바흐 '프렐류드'
루시에의 천재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재해석한 원곡, 곧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24개의 모든 장조와 단조로 구성된 프렐류드와 푸가의 쌍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작품집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렐류드 1번’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놀라운 화성적 깊이가 담겨 있다는 평인 거 다들 알고 계시죠. 뚜렷한 선율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오른손의 16분 음표 아르페지오와 왼손의 지속음으로 직조된 화음 진행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17세기 프랑스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의 ‘브로큰 스타일(broken style)’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달이 없던 하프시코드의 특성상 음을 이어가기 위해 펼침화음을 사용했던 연주법과 연결된다는 것이죠. 결국 이 곡은 “화성만으로 구성된 음악”이라 할 수 있으며, 바흐의 탁월한 화성 진행은 오늘날 재즈 화성 표기로도 분석될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감각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프렐류드 1번’ 연주는 원곡의 화성적 뼈대를 온전히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루시에는 “바흐 음악의 핵심은 대위법”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연주는 원곡의 멜로디나 화성 구조를 대체하거나 변형하지 않고, 그 위에 재즈의 언어를 덧입히는 스타일이라고 하더군요.
그이의 연주 매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흥 연주
루시에는 바흐의 테마를 즉흥 연주의 기반으로 삼아, 마치 바흐의 작품 그 자체에서 재즈 솔로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는 재즈의 ‘코드 톤 솔로잉(chord tone soloing)’—화음의 구성음을 기반으로 새로운 멜로디를 창조하는 기법—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리듬과 그루브
원곡의 정적인 아르페지오 위에 베이스와 드럼이 유려한 워킹 베이스 라인과 섬세한 퍼커션을 더해, 생동감 넘치는 스윙 리듬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바흐의 정밀한 구조에 경쾌한 활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트리오의 폴리포니
피아노의 즉흥 연주에 더블 베이스가 대위법적 선율을 더하고, 드럼은 그루브와 미묘한 강약을 조율하며, 세 악기는 유기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이들의 연주는 재즈의 자유와 바로크적 대위법의 구조미가 결합된 사례로 평가됩니다.
루시에가 ‘프렐류드 1번’을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군요. 멜로디 없이 순수한 화음 진행으로만 이루어진 이 곡은 재즈 즉흥 연주의 기본이 되는 화성적 그리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루시에의 통찰은 바흐의 이 프렐류드가 이미 재즈 연주자에게 이상적인 코드 차트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연주는 단순히 바흐를 재즈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구조와 즉흥성이라는 두 음악적 본질을 탐구하며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대화를 실현한 것입니다.
자크 루시에의 음악은 시대의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바흐를 재즈화 한 것이 아니라, 바로크의 엄격한 대위법적 구조와 재즈의 자유로운 즉흥성이 본질적으로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크로스오버의 할아버지라 불리며, 장르 융합이 지닌 상업적 가능성과 예술적 잠재력을 동시에 입증한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트리오 활동 외에도 루시에는 미사곡, 바이올린 협주곡, 발레곡 등 다양한 클래식 작품을 남겼고, 프랑스 남부에 미라발(Miraval)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개인적으로 중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하던 팀입니다.^^)와 같은 전설적인 록 밴드들의 레코딩 작업에도 기여했습니다. 또한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매년 한국을 찾아 활발한 공연을 이어가며 꾸준한 음악 활동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결론적으로, ‘프렐류드 1번’ 연주는 자크 루시에의 예술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것입니다. 이 연주는 바흐의 정교한 구조가 재즈의 자유로운 언어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구조와 즉흥성, 긴장과 해소라는 음악의 보편적 원리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해 관통함을 증명했다고 할 것입니다. 루시에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이러한 음악적 보편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클래식 음악이 결코 고루한 박제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창조될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보여준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클래식이건 재즈건 혹은 트로트일지라도, 행복과 평안을 추구하는 그 어떤 음악이라도 즐기며 여유를 찾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