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and Righteous Nation』_ 2021, HUP
2017년 하버드 강연 이후, 이를 바탕으로 4년 후 발간한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의 저서 『제국과 의로운 민족』(Empire and Righteous Nation)에 대한 내용을 간단리 요약하며 리뷰해 봅니다.
2017년 하버드 강연 영상은 앞의 포스팅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2025년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한국민에 대한 폭거를 목도하며, 저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한때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한미 친선 관계가 파탄 난 지금, 우리는 이 격동의 시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해야 합니다.
본 글은 그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단편적 시도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이 리뷰는 노르웨이의 저명한 역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 교수의 저서 『제국과 의로운 민족: 한중 관계 600년사』(Empire and Righteous Nation: 600 Years of China-Korea Relations)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베스타 교수의 이 책은 한반도와 중국 간의 길고 복잡한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현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베스타 교수의 중심 논지는 중국의 '제국'적 정체성과 한국의 '의로운 민족' 정체성 간의 역사적 상호작용이 과거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재 한반도의 지속적인 분단 상태를 이해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관계를 전통적인 책봉 체제,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 그리고 재통일 논쟁이 이어지는 현대에 이르는 세 가지 뚜렷한 역사적 시기로 나누어 추적한다.
이 리뷰는 책의 핵심 개념을 해체하고, 세 가지 주요 시기에 걸친 역사적 서사를 자세히 다루며, 학계의 균형 잡힌 비판적 평가를 추가한다. 비록 이 책이 "통찰력 있고 흥미로운 입문서"라는 찬사를 받고는 있지만, 2차 자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특히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에 대한 주목할 만한 누락 등 타당한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베스타 교수의 저작이 전쟁과 평화라는 국제적 문제의 핵심에 놓여있는 중대한 관계의 깊은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필수적인 출발점이 된다고 결론짓는다.
1.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용광로와 책의 시의성
현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지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시에 깊은 역사적 유산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관계는 이 지역의 핵심적이며, 한반도의 긴장 상황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이러한 관계를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관계 중 하나”로 규정하며, 그 역사적 뿌리를 파헤치는 작업을 통해 그 시의성을 증명한다. 여러 학계 전문가들은 이 책을 “시의적절하게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자 “핵심적인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토대”를 제공하는 저서라고 평가하며, 이는 이 책이 현재와 미래의 정책 입안자들과 학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님을 시사한다. 베스타 교수의 이 간결하고 날카로운 개요는 한중 관계가 어떻게 관리되고 전개되는지가 두 국가의 국익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전쟁과 평화 문제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질문임을 강조한다.
2. 저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학문적 성과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노르웨이 출신의 저명한 역사학자로, 냉전과 현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전문가이다. 그는 예일대학교의 역사학 및 글로벌 문제 교수이며, 그 이전에는 런던정경대학(LSE)과 하버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권위를 쌓았다. 그의 주요 저작인 『냉전의 지구사』(The Global Cold War)는 권위 있는 밴크로프트상을 수상하며, 제3세계에 대한 초강대국의 개입이 어떻게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베스타 교수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국가 정체성과 국제 분쟁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전문가이다. 그의 저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거대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분석하며, 이는 그의 학문적 관심사가 단순히 사건의 연대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과 사상의 충돌을 분석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배경은 『제국과 의로운 민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베스타 교수는 이 책에서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라는 개념을 냉전 시대 초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적 충돌을 분석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가 단지 힘의 역학 관계가 아니라, 두 국가가 자신들의 정체성과 국제적 역할을 정의하기 위해 채택한 이데올로기적 틀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즉, 그는 제국의 '포용적' 본질과 의로운 민족의 '자주적' 본질을 두 개의 상호작용하는 이데올로기 시스템으로 간주한다. 과거의 지정학적 패턴이 20세기에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재현되었음을 주장하는 그의 연속성 논지는, 과거가 단순히 기록이 아닌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청사진임을 강조한다.
1. '제국' 개념: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자기 인식
베스타 교수는 이 책에서 '제국'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영토를 확장하는 실체로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를 "후대 왕조들이 고대 중국 제국을 수사적, 실용적으로 소환하여 자신들의 권력 주장을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중국의 제국적 정체성은 무력에 의한 정복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이 중국의 문화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틀 안에서 한반도는 "중국 사학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존재"였으며, 중국 제국의 "포용적 본질을 확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이 문화적 가치를 수용하는 "모범적 책봉국" 역할을 함으로써, 이웃한 중국 제국에 흡수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통찰 중 하나로, 한반도가 책봉 체제의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조선은 중국의 지배가 무력이 아닌 문화적 우월성에 기반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귀중한 상징적 가치를 제공했다. 이러한 상호 정당화의 역학은 조선의 주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중국의 제국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동인이 되었다.
2. '의로운 민족': 한국의 정체성과 자기주장
베스타 교수는 '의로운 민족'이라는 개념이 한국인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대신, 이 용어는 수백 년간 한반도 민족이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심 원리로 삼았던 유교적 덕목인 '의'(Righteousness)에 초점을 맞춘다.
책의 중요한 부분은 주희(朱熹)가 해석하고 재구성한 성리학이 '문화적 연결고리'로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의 책봉 관계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한국의 독자적 민족 자의식(national self-assertion)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토대는 상하관계이면서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제공했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영토 상실과 문화 파괴에 대한 민족적 담론이 형성되면서 서구의 민족 개념과는 다를지라도 배타적인 한국적 정체성이 발현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핵심 개념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책의 핵심 개념
제1장: 중국과 조선의 관계 형성 (1392–1866)
책의 첫 번째 장은 몽골 제국의 쇠퇴와 함께 명(明)과 조선 왕조가 각각 들어서면서 시작된 전통적인 책봉 관계를 다룬다. 이 관계는 공유된 성리학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베스타 교수는 이 관계를 강제적인 복종이 아니라 '스승'이자 '보호자'와 '책봉국' 간의 관계로 설명한다. 그는 특히 조선 엘리트들이 중국 제국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지식'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독립을 유지했다고 강조한다. 이는 한국이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은 스스로를 '의로운 민족'으로 규정하는 한편, 중국 제국의 틀 안에서 행동함으로써 양측의 체제를 안정시키고 상호 이익을 창출했다.
제2장: 동아시아의 국제화 (1866–1992)
이 장은 19세기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로 진출하며 전통적인 질서가 붕괴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베스타 교수는 프랑스 군대의 강화도 상륙 사건이 발생한 1866년을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는다. 국내 문제로 혼란에 빠진 청나라는 더 이상 한반도를 보호할 수 없었고, 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재평가와 일본의 식민지배로 이어졌다.
이후 베스타 교수는 "참혹한 영향"을 남긴 한국전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이 전쟁을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표출로 해석하며, 이로 인해 한반도는 영원히 분단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또한 공산주의는 중국과 북한 사이에 새로운 종류의 '친밀감'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두 국가의 '날카로운' 민족주의로 인한 '불편함'을 동반했다고 지적한다.
제3장: 오늘날의 중국과 한반도
책의 마지막 장은 1992년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 관계 정상화 이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베스타 교수는 역사적 교훈이 현재의 한반도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책의 헌정 문구를 “평화와 통일을 이룬 미래의 한반도를 위해”로 명시하며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베스타 교수는 과거의 인식이 오늘날의 현실 정치에 지나친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신중하게 결론 내린다. 궁극적인 해법은 "현재와 미래의 정책 입안자들과 지도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 대안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지만, 명확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표 2: 역사적 시기와 주요 사건
책의 강점과 기여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저명한 학자들과 서평가들은 이 책이 “통찰력 있고 흥미로운 입문서”이자 “간결하고 날카로운 개요”라고 평가한다. 특히 비전문가들에게 복잡한 서사를 접근 가능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라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하며,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사상과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한중 관계의 역학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학술적 비판과 논쟁의 여지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러 학술적 비판에 직면해 있다.
첫째, 일부 비평가들은 베스타 교수의 작업이 2차 자료에 크게 의존하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또한, 책이 “선형적이고 진보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어 “서구 중심적 역사관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1866년 프랑스 원정 사건을 한중 관계의 근대적 전환점으로 삼는 것이 한국 중심적 관점보다는 서구의 영향력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드러난다.
둘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판점은 바로 중국 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등 고대 한국 왕국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국가 주도의 학술적·정치적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대중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양국 관계의 대중적 인식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는 베스타 교수가 정의한 "제국" 개념의 완벽한 현대적 사례이다. 즉, 과거의 제국적 주장을 "수사적, 학술적으로 소환"하여 현재의 정치적 목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동북공정을 다루지 않은 것은 단순한 정보의 누락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제시한 이론적 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보여줄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중대한 결함으로 지적된다.
표 3: 학계의 평가 요약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한중 관계의 역사적 연속성을 우아하고 간결하게 주장하며, 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중요한 기여를 한다. 600년에 걸친 두 민족 간의 복잡한 역사를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틀로 풀어낸 베스타 교수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이 책은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로서 그 가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베스타 교수의 작업과 그에 대한 비판을 고려할 때, 정책 입안자들과 독자들은 오늘날의 한중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서사와 '문화적 전유'의 역할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는 과거의 갈등이 현재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베스타 교수 자신도 언급했듯이, 통일된 한반도가 미래에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궁극적인 교훈은 '제국'과 '의로운 민족' 사이의 역사적 관계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 민족의 정체성과 운명, 그리고 국제적 역할을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는 살아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평화와 통일을 이룬 미래의 한반도를 위해"라는 저자의 헌사는, 이 책이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현재의 도전 과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하는 것임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관련 서적
- 영문판: Empire and Righteous Nation: 600 Years of China-Korea Relations (The Edwin O. Reischauer
- 한글 번역본: 제국과 의로운 민족 - 한중 관계 600년사_하버드대 라이샤워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