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술된 진정한 군주의 거울
#고전을 통해 살펴보는 리더십 시리즈
페리클레스(Pericles)는 기원전 495년경,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수 귀족 세력의 중심인물이었던 키몬과 대립하며, 민중파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기원전 461년부터 429년까지 약 30년간, 그는 아테네 정치를 주도하며 델로스 동맹을 이끌어 아테네를 도시국가에서 제국적 패권국가로 발전시켰다.
그는 아크로폴리스 재건과 함께 파르테논 신전 등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해, 예술·철학·정치가 융성한 문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시기의 아테네는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를 “아테네의 제1시민”이라 부르며, 지성과 품격을 겸비한 이상적 지도자로 평가했다.
- 탁월한 설득력: 페리클레스는 비범한 연설 능력을 바탕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며, 시민권 확대·직접 민주정·법 앞의 평등을 강조했다.
- 민주적 리더십: 그는 정적들과의 권력 투쟁 속에서도 포퓰리즘이 아닌 신뢰 기반의 정치를 펼쳤으며, 자신의 재산을 아테네의 공공사업에 기꺼이 투입하는 등 검소하고 책임감 있는 지도자상을 보여주었다.
- 전쟁과 최후: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그는 스파르타와의 충돌을 피하지 않고 아테네를 전쟁으로 이끌었으나, 전쟁 초기 역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도시를 최전성기로 이끈 지도자로 기억된다.
페리클레스(BCE 495~429)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좌절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 지도자였다. 그는 고대 그리스 역사상 ‘가장 탁월한 군주의 거울’로 불리며, 역사가들이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를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이끌던 시기에는 3대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그리고 철학자 소크라테스 등 위대한 인물들이 활동하며 그리스 문명이 찬란히 꽃피었다. 특히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건축 미학의 정수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을 직접 발주하고 막대한 경비를 지원한 인물 역시 페리클레스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아테네를 이끌어냈을까?
이제 그의 리더십 속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살펴보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앞둔 아테네 시민들은 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그들은 출정 전날 밤 포도주를 마시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전쟁의 열기로 도시 전체가 들끓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전쟁에 필요한 자원과 비용을 꼼꼼히 계산하며,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대비했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과 페리클레스의 태도는 아래 표에서 보듯,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페리클레스는 감정이 아닌 ‘재정’, 즉 돈의 논리를 바탕으로 전쟁의 승패를 예측했다.
그가 아테네의 승리를 확신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두 가지 핵심적인 재정 요인이 그 근거였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동맹국들로부터 거둔 막대한 동맹금을 자국에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전쟁이 장기화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비상 재정을 확보하고 있었다.
반면 스파르타는 각 동맹국들로부터 임시로 분담금을 거둬야 했기에, 전쟁이 길어질수록 재정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페리클레스는 이 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러한 냉철한 계산을 마친 페리클레스는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연설에 나섰다.
그는 스파르타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단호한 거절이야말로 상대에게 아테네를 대등한 존재로 인식시키는 길이었다.
“여러분이 양보하면, 그들은 여러분이 겁이 나서 물러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곧 더 큰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단호히 거절하면, 그들도 여러분을 대등하게 대하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겠지만,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대항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은 답변이며, 우리 도시가 취해야 할 당당한 태도입니다.”
이처럼 페리클레스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충동이 아닌 계산으로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전쟁의 첫 결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첫 전투였던 아르키다무스 전쟁은 아테네의 참혹한 패배로 끝났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도시 전체가 비통에 잠겼고, 분노의 화살은 자연스레 전쟁을 이끈 페리클레스를 향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페리클레스는 전사자들을 기리는 장례식 연단에 올라, 후대에까지 전해지는 명연설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을 남겼다. 이 연설의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전사자들의 죽음을 명예로운 것으로 승화
그는 아테네가 얼마나 위대한 도시인지를 역설하며, 그런 도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논리적으로 설파했다. 그 결과 전사들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위대한 공동체를 위한 명예로운 헌신’으로 승화되었다.
(2) 남은 자들에게 용기를 부여
그는 슬픔에 잠긴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이겨낼 힘을 주는 위로’를 전했다.
명예롭게 생을 마친 전사들을 본받아, 남은 자들 또한 용기를 내어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격려했다.
연설의 감동은 다음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페리클레스는 행복의 근원이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시민들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여러분은 이제 마땅히 이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 앞에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중략) 자긍심을 지닌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이 자신의 비겁함으로 인해 굴욕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이 연설은 패전의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그는 시민들에게 다시금 자신감과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아테네는 그 힘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추도 연설이 시민들의 상처를 잠시 달래주었을 뿐, 전쟁의 지속에 대한 불만과 반발은 여전히 거셌다.
페리클레스는 결국 이 거센 여론의 파도를 또 다른 연설로 정면 돌파해야 했다.
첫 전투의 패배 이후, 전쟁이 가져올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자 시민들은 전쟁을 계속하자는 페리클레스에게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일부는 공개적으로 그의 집안 전체를 모욕하기도 했다.
지도자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이런 인신공격과 비난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연단에 올라,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밝히며 시민들을 설득했다.
그가 스스로 갖추었다고 자부한 네 가지 덕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식견(Foresight)
사태의 흐름을 꿰뚫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다. 이는 참모에게 맡길 수 없는, 지도자만의 고유한 임무이며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역량이다.
둘째, 소통 능력(Communication)
자신의 식견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소통이 결여된 지도자는 ‘자신만 옳고 타인은 틀리다’는 독선에 빠져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셋째, 애국심(Patriotism)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구성원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 없이 권력만을 탐하는 지도자는 결국 불행한 ‘권력의 노예’로 전락한다.
넷째, 청렴함(Integrity)
재물과 사익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마음이다. 지도자가 부패하면 그를 따르는 이들 또한 이를 본받아, 공동체 전체가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비난하는 시민들을 향해,
“나는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오히려 여러분이다.”
라고 단호히 말하며, 진정한 지도자는 위기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은 당대의 역사가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감정이 아닌 이성과 원칙, 권력이 아닌 책임으로 나라를 이끌었던 그는, 이후 ‘탁월한 군주의 거울’로 남게 되었다.
동시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시대를 이렇게 평했다.
“이름은 민주정이었으나, 실제 권력은 한 사람, 제 일인자의 손에 있었다.”
이 말은 페리클레스가 단순히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탁월한 식견과 판단력으로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이끈 지도자였음을 의미한다.
투키디데스의 평가를 통해 드러나는 페리클레스 리더십의 핵심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을 이끄는 리더십
그는 시민들의 뜻에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때로는 그들의 감정과 여론을 거스르더라도, 국가의 장기적 이익과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결단을 내렸다. 즉, 그는 대중의 ‘거울’이 아니라 대중을 이끄는 ‘나침반’이었다.
둘째, 균형을 잡는 리더십
시민들이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질 때는 냉철한 언행으로 경계심을 일깨우고, 반대로 좌절과 패배감에 빠질 때는 따뜻한 언어로 용기와 희망을 북돋웠다. 이러한 감정의 균형 감각이야말로 그가 ‘지도자 중의 지도자’로 불린 이유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던 이 위대한 지도자도 역병 앞에서는 무력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에 발진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창궐해 3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결국 페리클레스 자신도 그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곧 아테네의 몰락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한 역사가의 말처럼,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의 존재로 인해 일어섰고, 그의 부재로 인해 무너졌다.”
이 문장은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사람의 리더십이 한 문명의 흥망을 결정지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페리클레스의 이름이 깊은 울림으로 남는 이유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요구되는 리더십의 방향은 분명하다.
우리는 지난 정권의 혼란과 분열을 견뎌냈고, 이제는 새로운 리더십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는 단순한 권력의 관리자가 아니라, 식견과 소통 능력을 갖추고, 국가와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청렴함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지도자가 대중을 선동이 아닌 설득으로 이끌고, 극단이 아닌 균형 잡힌 사고와 행동으로 공동체를 안정시켜 주기를 바란다.
그런 리더와 함께라면, 국가와 시민이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시대, 즉 모두가 안녕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1.
2.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 박현태 역, 동서문화동판, 2016.
3.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09.
4.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박문제 역, 현대지성, 2023.
5. ⟪군주의 거울⟫(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21세기북스, 2021.
6.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밀러 & 헤이스, 제14장 페르시아 제국 시대, CH북스, 1996.
7. '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1/5), 박정수 브런치 매거진, 2025.9월
8. 커버이미지) 네덜란드 화가 로런스 알마타데마의 1868년 그림. 파르테논 신전 재건을 맡은 아테네의 유명 조각가 페이디아스(왼쪽에서 세 번째)가 페리클레스(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일행들에게 공사 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테네의 ‘민주적 권력자’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재건을 추진했고, 아테네 정치와 문화는 이곳을 중심으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