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1/5)

김상근 교수의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통한 길 찾기 노력

by KEN

연초,

금년도 독서토론을 함께할 멤버들이 각자 한 해 동안 읽고 논의해 보고 싶은 책을 추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포함한 몇 권을 추천했습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집단착각' 등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책 중심으로...)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L전자 혁신 조직을 이끌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모든 혁신의 근본은 ‘사람’에게 있으며,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역량이 아니라 리더십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성장이 정체된 조직의 흐름을 되살리고 다시금 혁신의 불씨를 지펴야 하는 절박한 시기였던 겁니다.

그때 만난 이 책은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던져주었고, 저는 즉시 당시의 리더였던 부사장을 통해 부문 내 모든 리더들에게 이 책을 함께 읽을 것을 권했었습니다.

...


이 책을 금년도 독서토론 모임에 추천했던 시점은,

전 정권의 친위 쿠데타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심판의 공개 변론이 한참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며, 언제 제2의 계엄이 선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팽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아포리아(즉, 길 없음)”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보이지 않던 그 막막한 시기에, 이 책이야말로 길을 잃은 시대의 리더십에 대한 작은 단서를 줄 수 있으리라 믿고 추천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 이 책을 논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탄핵은 완결되었고, 권력은 새로운 민주 정권으로 이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트럼프가 촉발한 국제적 혼란의 여파가 여전히 전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언제쯤 이 땅에 평화와 공존·공영의 시대가 도래할까요.

오늘 다시 이 책을 펼치며, 저는 그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만 그 시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내용을 정리합니다.



아포리아(Aporia): 길 없음의 시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고대 그리스인들은 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절망적 상황을 ‘아포리아’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리더십의 부재’라는 탄식, ‘각자도생’과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담론은 바로 이 아포리아의 현대적 모습일지 모릅니다.

저자는 이 책의 핵심 화두로 '아포리아'를 제시한다. '아포리아'는 '길 없음'의 상태, 즉 더 이상 나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다. 흥미롭게도 고대 그리스는 세 차례의 아포리아를 겪었는데, 이는 현대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 놀랍도록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는
첫 번째 아포리아로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외부 제국의 침략에 맞섰다.
이는 현대 한국이 일제에 의한 침입을 경험한 것과 유사하다.

두 번째 아포리아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다.
이는 한국전쟁의 비극과 정확히 닮아 있다.

마지막 아포리아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이한 사건으로, 이는 아테네 내부의 자생적 위기가 낳은 비극이었다.
저자는 이를 현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내부적 아포리아, 즉 총체적 리더십 부재와 사회적 병폐에 비견한다.


저자가 이처럼 고대 그리스와 현대 한국의 유사성을 조명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가 이러한 아포리아의 시기를 거치며 오히려 찬란한 문화와 철학적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기 상황이 단순히 고통스러운 시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성찰과 혁신이 촉발되는 '창조적 고통'의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고대 그리스인들이 절망 속에서 인문학을 통해 길을 찾았듯, 현재의 한국 역시 책이 제시하는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모색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책의 근본적인 저술 의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현대적 마비 상태에 대한 강력한 해답이 최신 경영 이론이 아닌,

왜 하필 2,600년 전 고대 페르시아 군주의 삶 속에서 찾는 것일까요.


김상근 교수의 저서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은 키루스 대왕의 삶을 재해석하며, 우리가 리더십에 대해 가졌던 통념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강력한 통찰을 제공하려 시도합니다. (그의 리더십 특징은 리더십 시리즈(2/5~5/5편)에 연속으로 공유되어 있음)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이며, 일반적으로 기원전 559년부터 530년까지 치세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루스는 기원전 600년경에 태어나 530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치세는 약 29년간 지속되었다.


먼저는 자질 없는 리더에 의해 멸망의 길로 들어선, 소위 실패한 리더의 전형

저자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원전) 헤로도토스의 『역사』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는 단순히 페르시아 전쟁의 진행 과정을 나열한 연대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의미 없는 전쟁은 왜 발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한 깊이 있는 '탐사 보고서'입니다.

헤로도토스는 이 보고서의 중심에 세 명의 리더를 세워, 『역사』를 후대 지도자들을 위한 거대한 '군주의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들을 통해 '본받지 말아야 할 리더'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 크로이소스: 리디아의 왕으로, 자신이 누린 부와 권력을 행복의 기준으로 착각했습니다.


- 크세르크세스: 페르시아의 왕으로, 어리석고 쓸데없는 과시욕에 사로잡혀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 테미스토클레스: 아테네의 영웅이었지만, 권력욕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리더의 자리에 오를 때,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사회 전체가 아포리아에 처하게 됩니다.


헤로도토스의 주장은 한마디로,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함량 미달인 자는 함부로 리더의 위치에 오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실패한 리더들의 중심에는 하나의 공통된 치명적 결함, 바로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총 9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역사』는 놀라운 반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전쟁의 주인공인 크세르크세스가 아니라, 무려 한 세기 전 인물인 페르시아의 건국자 '키루스 대왕'의 일화로 마무리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키루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하고 영토를 넓혀가자, 한 신하가 제우스 신이 키루스에게 거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선물로 주었으니 "지금 차지하고 있는 이 울퉁불퉁한 곳을 떠나 더 나은 곳을 차지하도록" 침략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간언 합니다.

그는 정복 전쟁이 '지배 민족에게 당연한 일'이라며 제국의 확장을 부추겼습니다.

122. 책형에 처해진 이 아르타윅테스(역. 페르시아 왕)는 아르템바레스의 손자로, 아르템바레스가 내놓은 제안이 페르시아인들의 동의를 받아 퀴로스 앞에 제출된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우스께서 페르시아인들에게, 그리고 남자들 중에서는 퀴로스여, 그대에게 통치권을 주셨으니, 그대가 아스튀아게스(역. 고대 메디아 왕국의 마지막 왕)를 정복한 지금 우리는 지금 차지하고 있는 이 좁고 울퉁불퉁한 곳을 떠나 더 나은 곳을 차지하도록 합시다. 우리 이웃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고, 더 먼 곳에도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중 하나를 취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배 민족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민족과 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언제 오겠습니까?" 퀴로스는 이 제안을 듣고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나 그 제안대로 밀고 나가라며, 그럴 경우 지배 민족에서 피지배 민족이 될 각오를 하라고 경고했다. "부드러운 나라에서는 부드러운 남자들이 태어나는 법. 놀라운 곡식들과 용감한 전사들이 같은 땅에서 태어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오."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페르시아인들은 그의 말이 옳음을 인정하고 물러났고, 자신들의 견해가 퀴로스의 견해보다 못하자, 평야를 경작하며 남의 노예가 되느니 척박한 땅에 살며 지배자가 되기를 택했던 것이다. _ 헤로도토스의 <역사> 천병희 역. 마지막 122장 전문, (괄호는 편역자가 설명을 추가한 것)


위의 전문에서 보다시피,

키루스 대왕은 그 제안을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일단 허락하면서 다음과 같은 준엄한 경고를 남깁니다.

"그럴 경우 지배 민족에서 피지배 민족이 될 각오를 하라"


헤로도토스는 왜 이 일화를 책의 가장 마지막에 배치했을까요?

그는 이를 통해 페르시아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다름 아닌 '리더의 오만'이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침략을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오만함이 결국 페르시아를 패전으로 이끌었고, 무고한 백성들만 고통받게 했다는 것이 헤로도토스가 내린 최종 결론인 것입니다.


원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붉은색이 델로스 동맹, 파란색이 펠로폰네소스 동맹, 회색은 중립 도시

투키디데스가 그의 저서에서 내놓은 진단은 스파르타의 창끝이 아닌, 아테네 권력의 심장부를 정조준합니다.

바로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 사후 완전히 붕괴해 버린 리더십의 공백이 그것입니다.


페리클레스의 뒤를 이은 지도자들은 그의 역량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보다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며 대중의 기분에 따라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각자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적인 욕망에 눈이 멀어, 공동체의 안위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들의 권력 다툼과 내부 분열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로를 견제하고 음모를 꾸미느라 정작 전쟁을 수행 중인 원정대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을 막았고, 결국 아테네는 역사상 처음으로 극심한 내부 파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10b)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후계자들은 수준이 그만그만했으며, 서로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국가 정책조차 민중의 기분에 맡겼다. (11) 그런 태도는 제국을 다스려야 하는 큰 도시에서는 여러 가지 실수를 유발하게 마련인데, 대표적인 예가 시켈리아 원정이다. (중략)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음모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어서 원정대가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도시가 처음으로 파쟁(표)에 말려들게 했기 때문이다." _ 투퀴디데스, 천병희 역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91쪽 제II권 65장 10-11절


아테네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실은, 그 흥망성쇠가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그리스 전체의 패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테미스토클레스와 페리클레스 같은 탁월한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테네의 부흥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리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테네를 위대하게 만든 바로 그 동력 즉 '사람'이라는 변수는 잔인하게도 아테네를 파멸로 이끈 방아쇠가 되기도 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페리클레스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자리에, 알키비아데스라는 원심력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그 재능을 공동체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조국을 팔아넘긴 인물이 나타나자 아테네는 걷잡을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겁니다.


한 국가의 운명은 결국 어떤 인물이 이끄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테네의 역사는 보여준 것이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전몰자 추도 연설을 하는 페리클레스

이렇듯 아테네의 흥망을 상징하는 두 인물, 페리클레스와 알키비아데스는 우리에게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아포리아의 시대'에는 더더욱 지도자의 자질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됩니다.


페리클레스를 통해 제시한 이상적 지도자상은 명확합니다.

그는 깊은 식견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그 비전을 공동체와 나눌 수 있는 소통 능력을 갖추었으며, 무엇보다 공동체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바탕으로 개인의 탐욕을 초월한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알키비아데스는 이와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알키비아데스의 비극은 재능의 부재가 아닌, 인격이 통제하지 못하는 재능의 폭주였습니다.

무능한 충신은 기회를 놓치지만, 유능한 배신자는 공동체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의 존재는 재능이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결합하지 않을 때,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원전) 플라톤의 『국가』, 그 위기 극복의 보고서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의해 사형당합니다.

당대 최고의 현자를 스스로 죽인 아테네 사회는 길을 잃고 헤매는 ‘아포리아’ 상태에 빠진 것이죠.

이 끔찍한 현실을 목도한 청년 플라톤은 깊은 충격과 절망 속에서 정치가의 꿈을 접고 아테네를 떠납니다.

다비드의 그림 <소크라테스의 최후>

지중해 연안을 떠돌며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배우고 돌아온 그는, 스승이 죽었던 바로 그 오명의 도시에서 미래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세웁니다.

그가 학교를 연 장소는 의미심장하게도 ‘아테네 인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오솔길 끝’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실패와 죽음의 상징 위에서, 그는 미래의 지도자들을 길러내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집단적 아포리아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담긴 책이 『국가』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관념론적인 철학책이기 이전에, 아포리아 시대를 마주한 한 철학자의 고뇌가 담긴 보고서이자, 후대의 지도자들을 위한 ‘군주의 거울’로서 쓰인 실천적인 시도였습니다.


'정의(Justice)'란 무엇일까요?

보통 우리는 평등, 인권, 공정한 분배 같은 개념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생각은 놀라울 만큼 직설적이고 단순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이상 국가는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정의란, 각자가 자기 할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입니다.


플라톤에게 정의란, 각 계층이 각자의 고유한 덕목을 완벽하게 실현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조화로운 상태 그 자체였습니다. 즉, 통치자는 지혜를, 수호자는 용기를, 그리고 시민은 절제를 실천하며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였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이나 잘하자’는 극도로 현실적인 원칙.

이것이 플라톤이 꿈꾼 이상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초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용기’를 불의에 맞서 싸우거나, 두려움을 이겨내는 기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국가의 수호자들이 지녀야 할 용기를 전혀 다르게 정의했습니다.

그에게 용기는 감정적인 투지나 신체적인 탁월함이 아니었습니다.


플라톤이 말하는 진정한 용기란, 교육을 통해 얻게 된 올바른 소신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고 지켜내는 능력, 즉 일종의 보전이었습니다.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거대한 욕망이나 공포에 사로잡힐 때도 원래 품었던 고결한 원칙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는 힘.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플라톤이 시민 계층에게 요구한 최고의 덕목은 ‘절제’였습니다.

이 역시 단순히 욕망을 참고 방탕하지 않는 삶을 살라는 도덕률이 아닙니다.

플라톤의 절제는 사회적 ‘질서’에 가까운 개념으로, 더 나은 부분과 못한 부분 가운데 어느 쪽이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시민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지혜와 용기를 가진 통치자와 수호자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그들의 통치에 참견하지 않고 기꺼이 따르기로 합의하는 상태가 바로 절제입니다.


플라톤은 왜 아테네가 길을 잃었다고 진단했을까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 ‘30인 참주’의 독재 정치? 그는 이런 정치적 사건들을 근본 원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문제의 본질은 훨씬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통해 당시 아테네 인들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는 아테네 인들이 “동굴의 암흑에 갇혀 있는 죄수들의 집단”과 같다고 말합니다.

쇠사슬에 묶인 채 평생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살아온 죄수들은, 그 그림자를 진짜 세상이라고 착각합니다.

<동굴의 비유(요약)>
……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빛으로 향한 동굴의 좁은 통로가 입구까지 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손과 발, 목이 속박되고 있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쭉 동굴의 안쪽을 보면서, 되돌아보는 것도 할 수 없다. 입구의 아득한 위쪽에 불이 불타고 있고, 사람들을 뒤로부터 비추고 있다. 불과 사람들의 사이에 길이 있어, 길을 따라서 낮은 벽이 만들어져 있다. …… 벽을 따라서, 여러 가지 종류의 도구, 나무나 돌 등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나 동물의 상이 벽 위에 옮겨져 간다. 옮겨 가는 사람들 속에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있으며, 입 다물고 있는 것도 있다. ……
_ 플라톤의 『국가』 제7권 (514a-519d), 천병희 역


사회 붕괴의 진짜 원인은 잘못된 정치 시스템이나 경제 위기가 아니라, 바로 이처럼 거짓을 진실로, 환영을 실제로 믿는 집단적 ‘인식의 왜곡’에 있다는 것. 이것이 플라톤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었습니다.

정치 개혁이나 제도 개선에 앞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진실이라 믿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행동으로 인생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굴 밖의 태양을 보고 난 뒤에는 다시금 수감자들이 갇혀 있는 동굴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동료들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스스로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플라톤이 말한 아포리아 시대를 위한 군주의 거울인 것입니다.


원전)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유대인들에게 키루스는...

고대 유대인들은 타민족에게 유난스러울 정도로 배타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이방 민족의 왕들은 멸시의 대상이었죠.

이집트의 파라오든, 아시리아의 왕이든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일 뿐이었고, 심지어 ‘악마시하고 폄훼하는 경향’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단 한 명, 완벽한 예외가 존재했습니다. 바로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입니다.

놀랍게도 유대인들은 이 이방인 군주를 ‘기름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라고 칭송했습니다.(역대기하 36:22-23; 에스라 1:1-11, 이사야 44:28-45:1) 자신들의 민족을 구원할 위대한 존재에게만 허락된 최고의 찬사를 이교도의 왕에게 바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만 강력했습니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까지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500년간의 고대근동(페르시아 포함) 국가들의 흥망성쇠 도표


이것은 단순한 관용을 넘어선 해방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억압과 정복이 당연했던 시대, 피정복민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재기를 돕는 키루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유대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과 배타성을 무너뜨릴 만큼 위대했고, 그들은 기꺼이 이방인 왕을 자신들의 구원자로 역사에 기록했습니다.


비엔나 의회 건물 앞에 세워진 크세노폰의 동상. 위기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모색하는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불멸이 <군주의 거울>을 남겼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선택한 역사적 인물 중 하나, 키루스

권모술수의 대명사 마키아벨리.

그는 『군주론』에서 행운이 아닌 오직 자신의 역량으로 군주가 된 가장 위대한 인물들을 거론합니다.

그 이름은 바로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진짜 속내가 드러납니다.

그가 꼽은 네 명 중 모세는 종교적 지도자, 로물루스와 테세우스는 각각 로마와 아테네의 신화 속 건국자입니다.

이들 가운데 역사성을 확신할 수 있는 실존 인물은 오직 페르시아의 건국자 ‘키루스 대왕’ 한 명뿐입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키루스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거울로 삼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힌 셈입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마키아벨리에 대한 통념을 뒤엎습니다.

정치 현실주의의 대가는 단순히 속임수와 무력을 찬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역사의 기록을 가리키며,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권력은 키루스가 몸소 보여준 실질적인 역량과 덕목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군주라면 역사 속 위인들의 행적을 연구하고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이 ‘위대함의 사슬’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스를 본받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로마 공화정 최고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역할 모델은 누구였을까요?

그가 선택한 청사진이 바로 키루스였습니다.


그리고 크세노폰이 저술한 키루스의 생애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키피오의 생애와 행적을 고려할 때, 크세노폰의 저작에 기록된 대로 키루스를 모방함으로써 스키피오가 영광을 성취하는 데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을 받았는지, 그리고 스키피오의 성적인 절제, 친절함, 예의 바름, 관후함이 얼마나 많이 키루스의 성품을 모방함으로써 얻은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스키피오가 모방한 것은 군사 전략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키루스의 인격 그 자체, 즉 그의 절제, 친절함, 예의 바름, 그리고 관후함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가 전하고자 한 궁극의 교훈입니다.


위대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고전을 통해 배우고 모방될 수 있으며, 책 한 권이 한 명의 장군을 역사의 전설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마시바를 풀어주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스키피오가 자신을 패전시킨 카르타고의 사령관 마시바가 노예로 팔려나가자 그를 석방시키고 그를 돌려보내는 장면


그렇다면,

저자가 아니 그전에 로마 공화정을 일으킨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리더십의 모형으로 삼았던 키루스의 리더십 그 본체는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편에서 계속)




[참고서적]

1.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2016, 21세기북스

2.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박문재 역, 2023, 현대지성

3.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 박현태 역, 2016, 동서문화동판

4.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2009, 도서출판 숲

5.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천병희 역, 2011, 도서출판 숲

6. ⟪국가⟫ 플라톤, 천병희 역, 2013, 도서출판 숲

7. ⟪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고대근동 3천 년⟫ 주원준, 2022,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8. ⟪고대 이스라엘 역사⟫ 멕스웰&헤이스, 2004, 크리스천다이제스트

9. ⟪고대근동 문학선집⟫ 제임스 B. 프리처드, 2020, CLC

10. ⟪고대 이집트⟫ 강연, 곽민수, 2024, EBS


[표지사진] <지혜의 언덕을 그린 우의화> 상단에 조각되어 있는 지혜의 여신의 말.

라틴어로 “비록 그것이 힘들더라도, 만약 당신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 거칠고 험한 언덕을 정복한다면,

영혼의 평화를 얻은 상징으로 이 종려나무 가지를 당신에게 주리라” 라는 뜻. _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224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