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은 어떻게 리더를 무너뜨리는가 - 크세르크세스 사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타난 자질 없는 리더의 전형

by KEN

#고전을 통해 살펴보는 리더십 시리즈


말기의 크세르크세스는 초기의 균형 잡힌 의사소통과 배려심 있는 통치자상에서 멀어져, 권력 강화에 집착하고 정치적 음모와 강압적·독선적 태도가 두드러진 리더십의 전형적인 타락상을 보여준다.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 BCE 519 ~465년)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4대 황제로, 기원전 486년부터 465년까지 제국을 통치했다. 그는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이자,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의 외손자로, 왕조의 혈통과 정통성을 모두 계승한 인물이었다.

즉위 직후 그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했으며, 특히 바빌로니아에서는 신전을 파괴하고 종교적 권위를 억압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펼쳤다.

크세르크세스는 아버지 다리우스가 미처 완수하지 못한 그리스 정복 전쟁을 이어받아, 대규모 원정을 준비했다. 기원전 480년, 그는 헬레스폰투스 해협(오늘날의 다르다넬스 해협) 을 건너 그리스 침공을 감행했다. 그의 거대한 군대는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맞서 싸웠으나, 결국 결정적인 해전과 육전에서 패배하며 페르시아의 그리스 정복 시도는 좌절되었다.

이후 그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하며 제국의 위엄을 과시했으나, 말년에는 정치적 음모와 궁정 내 불안정 속에서 기원전 465년 신하들의 쿠데타로 암살당했다.

‘크세르크세스’라는 이름은 ‘영웅들의 지배자(Ruler of Heroes)’를 의미하며, 그리스어로는 크세르크세스(Xerxes),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한때 현명했던 리더는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괴물이 되는가?

2,500년 전,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그 비극적 여정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기원전 480년, 그는 아버지 다리우스 1세의 마라톤 전투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역사상 전례 없는 5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침공한다.

스크린샷 2025-10-10 오전 1.45.05.png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침략 전쟁 (BC480, 살라미스 해전)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다.

이것은 한 리더, 크세르크세스라는 인물에 대한 탐구다.

한때는 신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던 군주가, 어떻게 자신의 욕망과 비합리적 확신에 사로잡혀 오만한 폭군으로 변해가는가. 그 흥망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의 본질적 교훈을 배우게 된다.


갈림길에 선 리더: 신중함과 경청의 자세

(1) 전쟁의 명분과 왕의 고뇌

놀랍게도, 크세르크세스의 첫 번째 목표는 그리스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기원전 486년 반란을 일으킨 이집트 진압에 있었다.

그는 전쟁 준비에 한창이었으나, 그의 시선을 그리스로 돌리게 만든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고종사촌이자 측근 신하 마르도니오스였다.


마르도니오스는 크세르크세스의 정복욕과 자존심을 교묘하게 자극했다.

그는 그리스를 “온갖 과수들이 자라고, 땅이 비옥한 더없이 아름다운 나라”라 묘사하며, “그곳은 인간들 중 오직 페르시아의 왕만이 소유할 자격이 있는 땅”이라고 부추겼다.

그리스의 풍요로움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왕의 자격과 결부시켜, 왕의 자존심과 제국의 사명을 동시에 자극한 것이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는 이 감언이설에 즉시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페르시아의 주요 귀족과 장군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자신의 의도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나를 독단적인 군주로 여기지 않도록, 이 문제를 공론에 부치겠소.
각자 마음속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시오.”


이 장면은 정권 초기의 크세르크세스가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중시했던 리더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아직까지 공동의 의견을 구하고,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숙고형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었다.



(2) 두 명의 조언자: 간신과 충신

왕의 물음에 두 명의 조언자가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한 명은 왕의 욕망을 부추기는 간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오만을 경계하는 충신이었다.


- 마르도니오스 (간신) : "누가 전하에 맞서 싸우려 하겠사옵니까?"라며 왕의 정복욕을 자극하고 아테네 정벌을 강력히 주장. (페르시아의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승자의 논리)

- 아르타바노스 (충신) : "신께서는 월등히 큰 것은 무엇이든 줄이려 하옵니다"라며 강대국의 오만(Hubris)을 경계하고 신중할 것을 간언. (신은 교만한 강자를 벌한다는 역사적, 철학적 통찰)


크세르크세스의 숙부 아르타바노스(Artabanus)는 그에게 그리스를 작은 나라라고 얕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하늘의 신은 강한 자의 오만을 꺾기 위해 벼락을 내린다”는 비유를 들어, 페르시아가 빠질 수 있는 교만의 함정을 경고했다.


처음에 크세르크세스는 숙부의 조언에 벌컥 화를 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고, 이내 마음을 바꾼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신하들을 불러 이렇게 선언했다.

“페르시아인들이여, 내가 생각을 바꾼 것을 용서하시오.
지금은 그가 옳았음을 인정하고 그의 의견을 따르려 하오.
나는 헬라스 원정을 포기하기로 했으니,
여러분은 전쟁 준비를 중단하시오.”


이 시점까지의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더 합리적인 판단을 받아들일 줄 아는 현명한 리더였다.

그러나 이 신중한 군주는 곧 되돌릴 수 없는 오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의 결심을 흔든 것은 다름 아닌 ‘꿈(Dream)’이었다.


오만의 씨앗: 꿈과 비합리적 믿음

(1) 왕을 뒤흔든 꿈

그리스 원정 철회를 결정한 그날 밤, 크세르크세스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 한 남자가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군주가 한 번 내린 결정을 쉽게 번복한다면, 그 체통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크세르크세스는 그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문제는 그날 밤부터였다. 꿈속의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 이번에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지금 당장 그리스 원정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너는 왕좌를 잃고 비천한 운명에 떨어질 것이다.”


불길한 꿈이 밤마다 반복되자, 크세르크세스의 이성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리스 원정이야말로 신이 내게 내린 운명이 아닐까?’


그의 마음속에서 이성의 신중함은 점차 사라지고, 운명에 대한 강박적 믿음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 이성과 미신 사이의 마지막 저항

고민 끝에 크세르크세스는 다시 숙부 아르타바노스를 불러 꿈의 의미를 물었다. 아르타바노스는 흔들림 없는 이성적 조언을 내놓았다. 그는 차분히 말했다.

“전하, 꿈이란 신의 계시가 아니라, 대개는 낮 동안 품었던 생각이 잠들었을 때 다시 떠오르는 법이옵니다.”


그는 왕이 자신의 야망과 불안을 꿈속에 투영하고 있을 뿐이라 지적했다.

진정한 위험은 꿈이 아니라, “주위의 아첨꾼들이 전하를 오도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간신들의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언했다. 나아가 전쟁의 근본 원인은 크세르크세스가 “이미 가진 것보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탐하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그 교만의 뿌리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러나 불길한 꿈이 반복될수록 크세르크세스의 이성은 점점 무너져 갔다.

그는 숙부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황당한 제안을 내놓았다.

아르타바노스가 왕의 옷을 입고, 왕의 침대에서 잠들어 똑같은 꿈을 꾸는지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 어이없는 제안 앞에서, 충신의 마지막 저항은 무너졌다.

아르타바노스는 전쟁을 말리다 자칫 왕의 분노를 사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그는 체념한 듯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양보하고, 생각을 바꿀 차례인 듯하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굴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의 귀가 닫히고, 이성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충신의 마지막 조언마저 꺾은 크세르크세스는, 이제 자신의 오만을 신의 뜻으로 착각하며 폭주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폭주하는 권력: 과시욕과 어리석음의 발현

(1) 불필요한 과업: 아토스 운하 건설

자신의 결정을 신의 뜻이라 확신하게 된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원정을 시작하며 상식의 경계를 벗어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토스 반도를 통과할 때, 단순히 바다로 우회하면 될 길을 두고 굳이 반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뒤틀린 신념이 현실에 새긴 첫 번째 흉터였다.


군사적으로 아무런 실익이 없고, 오히려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한 이 토목 사업에 대해,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분명히 평가했다. 그는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후세에 기념비로 남기고자 하는 순전한 허영심에서 그 일을 명령했다.”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의지로 자연의 질서를 바꾸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가 신과 같은 존재임을 증명하려 한 것이었다.

그의 리더십은 이때 이미 현실 감각을 잃고, 신적 착각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2) 자연을 향한 분노: 바다에 채찍질하다

크세르크세스의 오만은 헬레스폰투스 해협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500만 대군을 유럽으로 건너게 하기 위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거대한 부교(浮橋)의 건설을 명령했다.

그러나 다리가 완성될 무렵, 거센 폭풍이 몰아쳐 부교는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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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지배하려던 그의 의지는 이제 자연 그 자체를 향한 분노로 폭발했다.

이성을 잃은 크세르크세스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마저 자신의 발아래 두려 했던 인간의 오만이 만들어낸 기괴한 장면이었다.


그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왕의 앞길을 가로막은 죄로 바다에 채찍 300대를 가하도록 했다.

채찍질을 하며 부하들에게 바다를 향해 모욕적인 말과 저주를 퍼붓게 했다.

아울러 그는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 부교 건설 책임자들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이 일련의 행동들은 크세르크세스가 얼마나 우유부단했고(자신의 불안을 신의 계시로 착각함), 과시욕에 사로잡혔으며(아토스 운하 건설), 어리석었는지(바다를 채찍질함)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한때 신중하고 합리적이던 군주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그는 이성 대신 오만, 숙고 대신 광신에 지배된 군주로 변해 있었다.


그렇다면 크세르크세스의 흥망성쇠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남기는가?

그의 이야기는 리더십이 겸손과 자기 성찰을 잃는 순간, 어떻게 권력의 정점이 파멸의 출발점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가장 생생한 경고다.



리더를 위한 교훈: 크세르크세스가 남긴 세 가지 경고

크세르크세스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실패를 넘어, 모든 시대의 리더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첫째, 간언(諫言)과 감언(甘言)을 구분해야 한다.

리더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마르도니오스의 달콤한 말(감언) 은 판단을 흐리고 욕망을 부추긴다. 반면, 진정한 충신은 듣기 불편하더라도 쓴소리로 위험을 경고하고 리더의 오만을 제어했던 아르타바노스와 같은 사람이다.

성공적인 리더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자가 아니라, 기꺼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둘째, 자신의 욕망을 신의 뜻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리더는 늘 자신의 내면을 감시해야 한다. 야망과 불안이 ‘사명’이나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되는 순간, 조직 전체는 비극의 길로 들어선다. 크세르크세스는 원정에 대한 자신의 불안과 욕망이 만들어낸 꿈을 ‘신의 계시’로 포장했고, 그 결과 제국을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셋째, 오만(Hubris)은 가장 확실한 실패의 전조다.

아토스 운하 건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오만의 상징이었다. 바다를 채찍질한 행위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마저 지배하려는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현실을 무시하며,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은 리더와 조직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역사가 우리에게 묻는 것

크세르크세스는 처음에는 신중히 의견을 구하던 현명한 리더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간신의 달콤한 말에 흔들리고, 자신의 꿈을 신의 뜻으로 착각하며, 끝내 자연마저 벌하려는 오만한 폭군으로 추락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2,500년 전 한 왕의 실패담만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 기업과 국가, 그리고 모든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들에게 역사가 던지는 준엄한 질문이다.


당신은 귀를 즐겁게 하는 ‘마르도니오스(감언, 간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아르타바노스(간언, 충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 선택이 곧 리더의 운명을 결정하고, 조직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참고자료

1.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박문제 역, 현대지성, 2023.

2.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 박현태 역, 동서문화동판, 2016.

3. ⟪군주의 거울⟫(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21세기북스, 2021.

4.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밀러 & 헤이스, 제14장 페르시아 제국 시대, CH북스, 1996.

5. '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1/5), 박정수 브런치 매거진, 2025.9월

6. 커버이미지) '영화 300'에서 묘사된 크세르크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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