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리더십의 완결이 아니라 과정 - 크로이소스 사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타난 자질 없는 리더의 전형

by KEN

#고전을 통해 살펴보는 리더십 시리즈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리더십은, 번영과 권위의 정점에서 예지와 겸허의 한계를 드러낸 리더십이며, 몰락을 통해 비로소 자기 성찰적 리더십으로 전환한 인간적 군주의 전형이다.


크로이소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리디아의 왕으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현자인 솔론을 궁전으로 초대해 극진히 대접하고, 자신의 보물창고를 보여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

그러나 솔론은 크로이소스를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는 먼저 이미 세상을 떠난 아테네 시민 텔로스(Telos)를 꼽았다. 텔로스는 번영한 나라에 태어나 훌륭한 자식을 두고 정직하게 살다가 전사해 명예로운 죽음을 맞은 인물이었다. 이어 솔론은 효심과 형제애가 깊은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을 두 번째로 언급했다. 두 사람은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힘을 다했고, 그 공덕으로 신들에 의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솔론은 이 예시들을 통해 물질적 부나 권력만으로는 행복을 판단할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은 끝날 때까지 그 결과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현재의 삶이 풍요롭더라도 죽음 이후의 운명을 알 수 없으므로, 섣불리 ‘행복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솔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쾌하게 여겼지만, 훗날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키루스왕의 포로가 된 뒤, 그 말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화형대 위에서 죽음을 앞두고 “솔론, 솔론, 솔론!”이라 세 번 외쳤다고 한다.


번영과 행복에 대한 대화: 크로이소스 vs. 솔론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과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만남은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es)』에 기록된 가장 상징적이고 교훈적인 대화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일화의 나열이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 부와 번영의 덧없음,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 장치로 작용한다.


헤로도토스는 이 대화를 『역사』의 서두에 배치하여, 이후 전개될 제국의 흥망성쇠 서사를 관통하는 도덕적·철학적 주제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τύχη, Tyche)과 인간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서사적 예시로 기능한다.


솔론과 크로이소스의 대화가 전하는 핵심 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 물질적 성공과 권력의 절정은 언제든 운명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번영을 영원히 보장할 수 없으며, 운명의 가변성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둘째, 진정한 행복은 일시적인 부나 권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 전체에서 드러나는 덕과 조화의 완성 속에서만 평가될 수 있다.


결국 헤로도토스는 이 대화를 통해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겸손과 성찰만이 권력의 정점에 선 리더가 지녀야 할 진정한 덕목이며, 행복은 부가 아니라 덕에 근거한 삶의 완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es)』 목차 중 일부


(1)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대비, 헤로도토스 서사의 의도

헤로도토스는 당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왕 크로이소스의 몰락을 통해, 자신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인간 번성(akmē)과 쇠퇴의 순환을 작품의 서두에서 제시한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Sardis), 곧 후대에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하나로 언급되는 사데교회가 있던 그 도시는, “부유함의 절정에 달했을 때” 솔론이 방문한 장소로 묘사된다.

이 설정은 이미 극도의 번영이 곧 몰락의 서막임을 암시한다.


솔론은 이야기의 초반부에서 윤리적·철학적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단기적 부(πλοῦτος, ploutos)에 근거한 리더십 평가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지도자의 도덕적 책임이 물질적 성공과는 별개임을 설파한다.

즉, 솔론은 헤로도토스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윤리적·종교적·철학적 통찰의 대변자로 기능한다.


이에 반해, 헤로도토스는 크로이소스부와 권력에 도취된 동방의 전제 군주(hybris의 화신)로, 솔론을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세운 절제된 입법자로 대조시킨다.

이 대비는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성품을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리더십의 윤리가 개인의 도덕성뿐 아니라, 그가 속한 정치적·문화적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다는 헤로도토스의 통찰을 드러낸다.

즉, 전제정은 오만을 낳고, 시민공동체는 절제를 가능케 한다는 구조적 인식을 담고 있다.


솔론은 법을 제정한 뒤, 자신이 만든 헌법이 변경되지 않도록 10년간 아테네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신이 만든 제도를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한, 사심 없는 공공성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반대로 크로이소스는 부와 권력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현자에게조차 아첨을 기대한 인물로, 전제군주의 오만(hybris)을 상징한다.


결국, 헤로도토스는 두 인물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다음의 역사철학적 명제를 제시한다.

“부와 권력의 정점에 이를지라도, 인간은 운명과 신 앞에서 겸손과 절제를 잃지 말아야 한다.”


이 대조는 『역사』 전체의 도덕적 축을 이루며, 리더십의 본질은 부가 아니라 덕에, 권력의 지속은 오만이 아니라 겸손에 있다는 고전적 교훈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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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더십의 두 가지 패러다임: Ploutos 대 Olbios

헤로도토스가 제시한 솔론과 크로이소스의 대화는 리더십을 판단하는 두 가지 상반된 기준,

Ploutos(물질적 부)Olbios 또는 Eudaimonia(삶의 완전한 행복)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개념은 단순히 부와 행복의 차이를 넘어, 리더십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의 방향을 결정짓는 철학적 축을 이룬다.


① 크로이소스적 패러다임: Ploutos — 부와 권세의 리더십

크로이소스는 물질적 부(Ploutos, Wealth)권력, 그리고 영토의 확장을 리더의 위대함과 행복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기원전 6세기 중반 리디아를 통치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as rich as Croesus(크로이소스만큼 부유한 사람)”이라는 관용구를 낳을 만큼 당대 최고의 부호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Ploutos 중심의 리더십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성공에 의존한다.

그는 자신의 부와 권세를 근거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라고 확신했지만, 솔론의 눈에는 그것이 오만(hybris)의 징후이자 몰락의 전조였다.


즉, 크로이소스의 리더십은 부를 축적하는 능력에는 탁월했으나, 그것을 덕과 공동선의 실현으로 전환시키는 통찰이 결여된 전형이었다.


② 솔론적 패러다임: Olbios / Eudaimonia — 덕과 완성의 리더십

이에 반해 솔론은 물질적 부의 덧없음을 지적하며, 진정한 행복(Olbios)은,

단기적 성취가 아니라 삶 전체의 조화로운 완성과 덕(ἀρετή, Arete)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행복을 텔로스(Telos, 삶의 궁극적 완성)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론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일화를 통해,

“행복은 재산의 양이 아니라, 덕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 그리고 명예로운 삶의 완성 속에서만 드러난다.”

는 철학적 진리를 제시한다.


그에게 리더의 번영은 금고에 쌓인 황금의 양이 아니라,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도덕적 일관성, 절제, 그리고 시민 공동체에 대한 봉사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Eudaimonia(참된 행복, 잘된 삶)의 리더십이라는 정리이다.



부와 오만의 왕: 크로이소스의 리더십 모델

크로이소스는 기원전 560년부터 546년경까지 리디아를 통치했으며, 그의 통치는 물질적 풍요와 권력의 정점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부와 권력이 결코 운명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오만함을 키워 파멸을 앞당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경고이다.


(1) 리디아 제국의 번영과 부(Ploutos)의 기반

크로이소스의 부는 전설적이었다. 그의 이름은 곧 부의 대명사가 되었고(“as rich as Croesus”), 그 막대한 재산의 근원은 리디아의 지리적 이점과 경제적 혁신에 있었다.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 인근을 흐르는 팍톨루스 강은 사금을 실어 나르며 이미 그의 부친 알리아테스 시대부터 왕국의 번영을 뒷받침했다. 리디아는 금을 정련하는 정교한 기술을 발전시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이는 당대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이어졌다.


특히 리디아가 세계 최초로 주화를 도입한 것은 경제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혁신이었다.

화폐 경제의 출현은 교역과 조세 제도를 효율화하고, 왕권의 재정 기반을 강화시켰다.

이를 통해 크로이소스는 리디아의 부를 국제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으며, 그의 이름은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크로이소스는 군사 정복을 통해서도 부를 확장했다.

그는 소아시아의 에올리스, 도리스, 이오니아 등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제압하고 조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통해 리디아 제국의 국경과 영향력을 크게 넓혔다.


그는 또한 사르디스를 화려하게 재건하고, 델피 신전에 황금 조각상과 정교한 제기를 봉헌하며 자신의 부와 신앙심을 과시했다. 이러한 행위는 한편으로 부유한 동방의 왕으로서 그리스 문화를 후원한 개방적 리더십의 일면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부와 권력에 대한 절대적 확신, 즉 오만(hybris)의 씨앗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크로이소스의 물질적 성공은 단순히 부의 축적을 넘어 그의 인식 구조를 왜곡시켰다.

그는 부(Ploutos)가 신의 질서와 운명(τύχη, Tyche)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확신은 곧 전략적 오판과 방심으로 이어졌다. 리디아의 부는 경제적 번영의 절정이었지만, 동시에 리더십의 근본적 취약성과 몰락의 원인을 잉태한 상태였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기업 환경에서도 낯설지 않다. 단기적인 실적과 풍부한 현금 흐름이 오히려 장기적 혁신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리스크 관리의 안일함을 낳는 경우가 많다.

성공이 지속될수록 경계심이 무뎌지고, 풍요가 쌓일수록 오만이 자라나는 것이다.


따라서 크로이소스의 사례는 단순한 고대 왕의 비극이 아니라, 부와 성공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하는 고전적 교훈으로 읽힌다. 헤로도토스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부는 신의 축복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을 시험하는 도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Hubris의 표출: 자만심과 단기적 성공의 덫

(Hubris: 인간의 한계를 불손하게 무시하는 오만이나 교만)


솔론이 사르디스를 방문했을 때,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보물창고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진정한 지혜를 구하기 위한 성찰의 시도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솔론이 그 확신을 아첨의 말로 확인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리더십의 근본적 결함, 즉 객관적 조언보다 찬사와 승인만을 원하는 전제적 리더의 심리 구조를 드러낸다. 크로이소스의 질문은 탐구가 아니라 자기 확신의 확인 절차였으며, 부와 권력이 결합한 자기 도취적 리더십(hubristic leadership)의 전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솔론의 대답은 크로이소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었다.

그는 가장 행복한 인물로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 텔루스(Tellus)를, 그 다음으로 효심 깊은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을 꼽았다. 솔론은 이들을 예로 들며, 행복은 부나 권세가 아니라 덕과 삶의 완성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격분한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가치 체계가 부정당했다는 모욕감에 사로잡혀 솔론을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솔론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운명은 변덕스러우며,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했는지는 죽은 뒤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크로이소스는 이 현자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부와 권력이 운명(τύχη, Tyche)조차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hybris)에 빠져 있었고, 그것이 바로 비극의 씨앗이었다.


크로이소스의 반응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리더의 전형적 오만을 보여준다.

그는 현실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혜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단기적 성공에 대한 맹목적 확신이 장기적 파멸로 이어지는 구조적 패턴을 재현했다.


결국, 이 일화는 성공의 절정에서 오만이 시작되고, 오만이 리더십의 몰락을 초래한다는 헤로도토스의 핵심 교훈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3) 운명에 대한 오판: 델피 신탁의 비극적(자의적) 해석

솔론의 경고가 끝난 직후, 크로이소스는 새롭게 부상하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 키루스 대제의 위협에 직면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전쟁을 결심했으며, 그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델피의 아폴론 신탁에 의존했다.

그러나 바로 이 선택이야말로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치명적 오판이었다.


델피 신탁은 이렇게 예언했다.

“크로이소스가 전쟁에 나서면, 하나의 위대한 제국이 무너질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이 말을 자신의 승리를 예고한 신의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막대한 부와 권력에서 비롯된 자기 확신(hubris)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 예언이 페르시아의 멸망을 뜻한다고 믿었다.

또 다른 신탁에서 “페르시아 왕이 노새가 될 때까지 통치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는 노새가 왕이 될 수 없다는 논리적 불가능성을 근거로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만을 강화했다.


그러나 비극의 원인은 신탁의 모호함에 있지 않았다.

진정한 문제는 그가 신탁을 자신의 기대에 맞춰 해석한 확증 편향(confimation bias)에 있었다.

델피 신탁의 애매한 언어는 성찰과 경계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경고였지만, 크로이소스는 이를 자신의 성공 신화에 맞춰 자의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신의 뜻을 듣기보다, 이미 정해둔 결론을 신의 언어로 정당화한 리더였다.


이러한 오판은 곧 전략적 실패로 이어졌다.

크로이소스는 바빌론의 나보니두스 왕과 스파르타 등과 동맹을 맺고, 겨울철이라는 비정상적인 시기에 메디아 왕국의 영향권에 있던 카파도키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프테리아 전투는 승패가 나지 않은 채 끝났고, 그는 군을 해산한 뒤 사르디스로 귀환하여 동맹군을 기다리는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

그 틈을 노린 키루스 대제는 즉각 리디아로 진격했다.


페르시아 군은 리디아 기병이 낙타 냄새를 두려워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낙타 부대를 전면에 배치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리디아 군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사르디스는 단 14일 만에 함락되었다.

‘난공불락의 도시’로 여겨졌던 아크로폴리스의 절벽에 있던 작은 취약 지점을 한 병사가 발견한 것이 결정타였다.

이로써 리디아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제7권, 제1~2장, 번역서 290~310쪽, 박문제역, 현대지성, 2023. 참조)


결국 델피 신탁의 예언대로 무너진 위대한 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리디아였다.

기원전 546년(혹은 547년), 크로이소스의 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의 몰락은 솔론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난 사건이었으며, 리더가 단기적 오만과 자기 확신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전적 사례가 되었다.


결국, 헤로도토스는 이 일화를 통해 신탁의 비극은 신의 침묵이 아니라 인간의 자만에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크로이소스는 신의 언어를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로 착각한 리더였다.

그의 몰락은 오만이 어떻게 지혜를 무력화시키고, 번영이 어떻게 자기파괴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역사적 비유로 남았다.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시기의 고대근동 지도



솔론의 행복론: Eudaimonia와 리더의 Telos (Solonian Eudaimonia)

솔론이 크로이소스에게 제시한 행복론은 당대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이르러 정립되는 윤리학의 주요 개념인 Eudaimonia(에우다이모니아)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1)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철학적 정의: 쾌락이 아닌 목적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Eudaimonia(에우다이모니아)는 흔히 ‘행복’으로 번역되지만, 이는 단순한 감정적 만족이나 일시적 쾌락(Hedonia)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어원적 의미는 ‘좋은 정신의 상태’를 뜻하며, 이는 덕(virtue), 지혜(phronēsis),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의미 있고 합리적인 활동을 통해 성취되는 충만하고 잘 사는 삶을 의미한다.

즉, 에우다이모니아는 외부 환경이 우연히 가져다주는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참된 본성과 목적(Telos)에 따라 살아가며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을 이루는 지속적이고 실천적인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솔론의 행복관은 크로이소스의 부(Ploutos) 중심 행복관과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크로이소스가 보물과 권력의 가시적 축적을 행복의 척도로 삼았다면, 솔론은 내면의 덕과 공동체적 조화, 그리고 삶의 최종적 완성(Telos)에서 행복의 기준을 찾았다.

그에게 ‘행복’은 소유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의 성숙을 통해 완성되는 윤리적 상태였다.


이 솔론적 관점은 현대 리더십 이론에도 깊이 연결된다.

오늘날의 리더십 역시 단기적 이익이나 주가 상승과 같은 즉각적 성과를 추구하기보다, 성숙(Growth), 진정성(Authenticity), 의미(Meaning), 탁월함(Excellence)을 실현하는 Eudaimonic 리더십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리더는 조직의 윤리적 목적과 지속가능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구축하며, 리더십의 본질을 ‘성과’가 아니라 ‘가치’와 ‘의미’의 창출에서 찾는다.


결국, 솔론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제시한다.

진정한 행복은 외적 성공이나 부의 총량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공동선의 추구를 통해 완성되는 삶의 질서이다.


(2) 행복의 시간성 (The Telos Principle)

솔론의 행복론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명제이자 핵심 교훈은 다음의 경고로 요약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크로이소스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솔론을 현실을 모르는 허황된 인물로 여겼다.

그러나 이 짧은 경구에는 솔론 철학의 핵심 원리, 곧 시간(Chronos)과 운명의 변동성(Tyche)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솔론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결코 신과 운명의 변덕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아무리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도 예기치 못한 불행, 이를테면 자식의 죽음이나 제국의 붕괴와 같은 사건으로 한순간에 삶의 기반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한 인간의 행복은 한 시점의 상태가 아니라, 일생 전체의 궤적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시련을 견디고, 그것을 명예롭게 극복한 뒤 생을 마쳤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이러한 텔로스(Telos, 궁극적 목적·완성)의 원리는 리더십 평가에도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지닌다.

리더의 성공은 재임 중의 단기적 성과, 예를 들어 경제 성장률, 전쟁의 승리, 정치적 인기 등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결정이 남긴 장기적 결과와 사후에 전해지는 유산, 그리고 공동체가 기억하는 도덕적 무게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얘기.


만약 리더가 현세의 명성과 이익을 좇아 비윤리적 선택을 하거나 오만(hybris)에 빠진다면,

그의 텔로스는 결국 비극적 몰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바로 크로이소스의 생애가 입증한 역사적 교훈이자,

“단기적 번영이 곧 장기적 파멸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헤로도토스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솔론의 “텔로스의 철학”은 이렇게 요약된다.

인간의 행복은 순간의 성취가 아니라, 시간과 운명의 시험을 통과한 삶 전체의 완성 속에서만 정의된다.



(3) 행복한 삶의 모범: 덕, 공동체, 그리고 명예로운 죽음

솔론은 크로이소스에게 부가 아닌 덕과 공동체 기여로써 진정한 번영(Olbios)을 달성한 세 명의 아테네 및 아르고스 시민을 제시했다.


3-1) 텔루스(Tellus): 공동체적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솔론이 삶의 모범으로 제시한 텔루스는 고대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중간 계층의 인물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가문의 명예를 세우고, 노년에 아테네 병사로 전쟁에 나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로 전해진다. 솔론은 크로이소스에게 텔루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진정한 행복은 부와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자손의 번영, 공동체에 대한 기여, 그리고 명예로운 죽음과 같은 삶의 본질적 가치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텔루스의 삶은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Eudaimonia)의 구성 요소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그의 행복은 공적 생활과 공동체적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다. 이러한 관점은 솔론이 입법자로서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하고, 모든 시민이 정치적 삶에 참여하도록 장려했던 아테네 개혁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솔론은 크로이소스에게 텔루스의 단순하고 덕스러운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 완성과 공동체적 조화를 이루는 것임을 가르치려 했다.


3-2) 클레오비스와 비톤(Kleobis and Biton): 경건함과 최상의 죽음

두 번째로 솔론이 꼽은 인물은 아르고스의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이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는 ‘충분히 살 만큼만 가진’ 소박한 삶을 살았지만, 강인한 체력과 덕성을 겸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체육 경기에서 우승할 만큼 뛰어난 체력을 지녔고, 무엇보다 효심과 경건함으로 이름이 높았다.


헤라 여신의 축제 날, 제사장인 어머니를 태울 수레를 끌 소가 늦자, 두 형제는 시간이 부족함을 알고 직접 멍에를 메어 약 45스타디온(약 8.3km)을 걸어 어머니를 헤라 신전까지 모시고 갔다. 이들의 효행에 감동한 어머니는 신상 앞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두 아들에게 내려달라”고 기도했고, 신은 그날 밤 형제에게 잠든 채 명예로운 죽음을 허락했다.


솔론은 이 일화를 “신이 인간에게, 사는 것보다 죽음이 더 복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두 형제의 사례는 물질적 번영이 없어도, 공공의 덕과 가족에 대한 헌신, 공동체적 명예, 그리고 고결한 죽음이 진정한 행복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특히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이야기는, 완전한 덕(virtue)에 이른 자는 운명의 변덕이 그를 해치기 전에 신이 그의 삶을 완성시켜 준다는, 즉 죽음이 번영의 최종 증명서(Telos)가 된다는 고대 그리스적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솔론이 크로이소스에게 제시한 행복론은 단순한 개인 윤리의 교훈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철학적 원칙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입법자로서 부자들의 탐욕과 빈자들의 무분별함을 모두 비판하며,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하고 시민적 참여를 확립함으로써 민주정의 기틀을 세웠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으로부터의 해방이자, 그 삶이 진정으로 완성되었음을 증명하는 ‘최종 인증서’가 된다. 마찬가지로 리더의 유산도 생전에 받는 찬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평가와 세월의 검증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정리: 오만(Hubris)의 함정과 지속 가능한 리더십을 위한 솔론의 경고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대화는 고대 세계에서 현대 경영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의 평가 기준과 지속 가능성에 관한 영원한 경고를 던진다. 이 서사는 부(Ploutos)가 결코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인간의 삶 특히 리더의 삶은 그 종말(Telos)이 드러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솔론의 근본적 철학을 피력한다.


(1) 크로이소스의 교훈: 고통을 통한 지혜의 획득

크로이소스는 처음에는 솔론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그를 내쫓았다. 그러나 제국이 멸망하고, 자신이 화형대에 묶여 생사의 기로에 선 순간, 그는 비로소 그 말의 참뜻을 깨달았다. 죽음을 앞둔 크로이소스는 “솔론, 솔론, 솔론!”이라 세 번 외쳤고, 이를 들은 키루스 대제는 그 뜻을 물었다. 크로이소스가 “운명은 가장 부유한 자에게도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솔론의 가르침을 전하자, 키루스는 깊이 감동했다.


이때 크로이소스가 보여준 오만(hybris)의 자각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도덕적 용기는 그의 실패를 개인적 성숙의 순간으로 전환시켰다. 키루스는 그를 용서하고 풀어주었으며, 훗날 지혜로운 조언자로 곁에 두었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이와 같은 리더십의 회복탄력성은 진정한 리더십의 Telos(완성점)이 단순한 권력의 유지에만 있지 않음을 일깨운다. 오히려 그것은 고통과 실패를 통해 얻은 통찰과 지혜를 후대에 전하는 일에 있다는 점을, 크로이소스의 마지막 장면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2) 영원한 리더십의 조건: 유산(Legacy)과 Telos

솔론의 행복론은 리더에게 현재의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사후에도 공동체와 조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윤리적인 유산의 구축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텔루스나 클레오비스·비톤의 삶이 공동체의 번영과 개인의 덕(virtue)을 통해 명예롭게 완성되었듯이, 지속 가능한 리더십 또한 Eudaimonia의 원칙에 따라 조직의 목적과 윤리를 확립하고, 구성원의 성장과 의미를 우선하는 리더십 문화를 조성하는 데 있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오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하게 대응하는 지혜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운명을 단지 ‘운(Tyche)’이라 여겼지만, 솔론은 ‘미덕(arete)’과 ‘명예로운 종말(telos)’을 통해 운명을 초월하는 길을 보여주었다.


(3) 솔론의 경고: 시간과 겸손의 미덕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이야기는 권력의 정점에 선 모든 리더들에게 던지는 영원한 경고다. 리더는 권세와 성공의 절정에 있을 때조차 운명의 변덕을 인식하고, 겸손과 선견지명으로 자신의 삶과 조직의 Telos(궁극적 목적)를 명예롭게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가,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권좌를 유지했는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불확실성의 순간에 얼마나 윤리적 결정을 내렸는가, 비판적 조언을 얼마나 경청했는가, 그리고 자신이 떠난 뒤에도 공동체에 어떤 긍정적 유산을 남겼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솔론의 지혜는 오늘날의 리더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단기적 성과가 아닌 장기적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즉 덕과 의미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번영을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경고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말은 리더가 성공의 순간에도 겸손과 성찰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함을 일깨우는, 시대를 초월한 리더십의 철학이다.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잘못된 리더십의 전형(典型)을 직접 목도하고야 말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는 부나 권력, 지위가 아니라 ‘덕(德)’ 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덕을 최고의 가치로 다시 일깨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참고자료

1.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09. 제1권 1-94장.

2.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 박현태 역, 동서문화동판, 2016.

3.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박문제 역, 현대지성, 2023.

4. ⟪군주의 거울⟫(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21세기북스, 2021.

5.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밀러 & 헤이스, 제14장 페르시아 제국 시대, CH북스, 1996.

6. '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1/5), 박정수 브런치 매거진, 2025.9월

7. 커버이미지) (좌) 리디아 왕국의 왕 크로이소스(모자 쓴 인물)가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에게 보물을 자랑하는 모습을 그린 벨기에 출신 화가 프란스 프랑컨 2세의 그림 일부.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려는 크로이소스에게 솔론은 인생의 변화무쌍함을 경고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우) 피레의 크로이수스, 붉은 항아리.(기원전 500년~기원전 490년, 루브르 박물관) 키루스 대제에게 붙잡혀 화형에 처해지는 모습. 결국에는 화형을 면하고 성찰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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