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2/5)

김상근 교수의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통한 길 찾기 노력

by KEN

앞선 포스팅에서 김상근의 '길 없음' 곧 아포리아의 시대를 조명하는 글을 공유한 바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크세노폰이 『키루스의 교육』에서 제시한 리더십의 전형을 살펴보겠습니다.


'군주의 거울'은 기원후 8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부터 왕자들에게 리더십을 교육하기 위해 고안된 독특한 인문학 교육 방식이라는 것이 김상근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 교육의 핵심은 단순히 통치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한 위대한 영웅들의 삶과 행적을 연구하여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을 함양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죠.


저자는 이 책의 핵심 원전으로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스크린샷 2025-10-11 오후 1.03.10.png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CYROPAEDIA) 번역본, 현대지성, 2023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과 동문수학했던 크세노폰은 플라톤이 아카데미에서 이상적인 국가에 대해 사색에 잠겨있을 때, 직접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의 격동과 혼란의 시대에 몸을 던져 살았던 '경계인'이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었지만 페르시아의 용병 대장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고, 결국 조국 아테네로부터 추방당하는 비운의 삶을 살았습니다.


크세노폰이 이처럼 험난한 시기를 겪으며 참된 리더의 모습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고, 적국 페르시아의 건국 군주인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집필하게 된 것입니다. 크세노폰이 적국의 군주를 위대한 모범으로 삼은 것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리더십의 본질이 이념과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키루스가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을 해방하고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존중했던 것처럼, 그의 관용과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은 보편적인 덕목으로 여겨집니다. 김교수가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의 리더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민족주의나 지역주의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실천적인 리더십의 원형을 제시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키루스의 교육』을 단순히 역사서로 읽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에 적용 가능한 실천적 지혜의 원천으로 재해석합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뤘지만, 플라톤의 『국가』가 이상적인 국가를 사변적으로 다루었다면,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냉혹한 현실 속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실천적인 시선으로 치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군주의 거울'이 비추는 주된 대상이 지도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리더십 부재의 원인을 단순히 지도자에게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진정한 리더를 알아보고 선택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남을 탓하는 행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바람직한 민주사회는 모든 사람이 ‘군주처럼’ 사는 것이라고 주장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군주처럼 산다’는 것은 노예처럼 수동적인 삶이 아닌, 주체적이고 자유로우며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의미한 것입니다. 저자는 모든 시민이 이러한 '군주의 자질'을 갖추어야만 진정한 리더를 배출하고 올바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며,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자기 성찰의 인문학적 과제를 던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번호는 키루스 교육의 12가지 덕목 중 1, 2, 3 덕목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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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의 수호자가 되어야... _ 법과 원칙에 근거한 판단 및 내면의 힘을 길러야

무엇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판단일까요? 많은 이들이 모두에게 이로운 '공평함'이나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내는 '합리성'을 정의의 기준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의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면 어떨까요?

르네상스 시대의 한 명화와 고대 페르시아 왕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정의'의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1) 정의는 '누구에게 더 잘 맞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다

열두 살 소년 키루스는 어느 날 재판관 역할을 맡게 됩니다.
몸집이 큰 소년이 작은 튜닉(상의)을, 반대로 몸집이 작은 소년이 큰 튜닉을 입고 있었죠.
큰 소년은 작은 소년의 튜닉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가 입고, 자신의 작은 튜닉을 그에게 입혔습니다.

키루스는 이 사건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자기에게 맞는 튜닉을 입게 되었으므로 모두에게 좋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언뜻 보기에 지극히 합리적입니다.
사실 이 생각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정의, 즉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 혹은 ‘각자에게 어울리는 것을 주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키루스의 스승은 이 판결을 듣고 그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정의의 본질은 ‘소유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판단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 옷이 누구에게 더 잘 어울리는지가 아니라, 애초에 누구의 소유였는지를 묻는 것이 법에 근거한 정의의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이 일화는 현대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법과 원칙에 근거한 판단은 때로 비정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적인 합리성을 넘어,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의의 진정한 기반은 바로 정해진 법을 따르는 데 있습니다.


- 고대 페르시아에서 군주에 필요한 최고의 가치로 '정의'를 꼽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서 키루스가 어렸을때, 메디아의 왕인 외할아버지에게 조금 더 있고 싶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했을때 어머니가 이런 반문을 합니다. "얘야, 하지만 너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페르시아에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서 '정의'를 배울 수 있겠느냐?"고.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현대지성, 28쪽)


- 아울러 혼자만의 판단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말고 신탁을 의지하라는 가르침을 캄비세스는 아들 키루스에게 교훈합니다.


- 아울러, 메디아를 침략한 앗시리아를 상대하기 위해 출전하는 아들에게 여러가지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르치는 와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신들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뜻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들에게는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현대지성, 69쪽) 새겨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2) 리더의 가장 큰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무지, 의심, 그리고 질투심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산드로 보티첼리는 자신을 시기하던 경쟁자의 모함으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 넘겨집니다. 무죄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은 그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재판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스크린샷 2025-09-26 오후 3.32.51.png 산드로 보티첼리, <아펠레스의 중상모략>, 우피치미술관

그림의 오른쪽을 보시죠. 화려한 보좌에 앉은 군주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려던 탐욕의 왕 미다스를 연상시키는 ‘당나귀 귀’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관이지만, 그의 귀는 진실을 향해 닫혀 있습니다. 세 명의 인물이 그의 귀를 멀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여인은 각각 ‘무지’와 ‘의심’을, 그 앞에 선 남자는 ‘질투심’을 상징합니다. 군주는 이들의 감언이설에 휘둘려 피곤에 지친 눈을 내리깔고, 재판을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리더가 정의를 수호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위협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리더 자신의 귀를 멀게 하는 내면의 무지와 의심, 그리고 질투심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2. 세월의 변화를 읽고 전략적 대처가 필요 _ 루돌프 2세와 키루스의 대조

수많은 조직, 회사, 나라들이 바로 이 '시간의 흐름'을 읽지 못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합니다.

리더십의 성패는 바로 이 변화를 읽고 대처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루돌프 2세와 키루스 대왕은 놀라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을 낯선 외국의 궁정에서 보냈다는 점입니다. 비엔나에서 태어난 루돌프 2세는 스페인에서,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키루스는 메디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같은 환경 속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루돌프 2세는 외삼촌인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보호 아래 황제 훈련을 받았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은 세상과 단절된 채 은둔하는 습관이었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이었고,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혼자 골방에 틀어박히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반면 키루스는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메디아에서 의도적으로 통치 기술과 전쟁의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메디아의 사냥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적을 동물에 비유한 치밀한 전쟁 연습이었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술을 연마했을 뿐 아니라, 동료들을 지휘하며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또한 그는 사냥감을 독차지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는 관대함까지 보이며, 군사적 기술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십까지 연마했던 겁니다.


이처럼 '낯선 환경'이라는 동일한 토양 위에서, 한 명은 제국을 썩게 할 고립의 씨앗을 키웠고 다른 한 명은 제국을 건설할 전략적 지혜를 길렀습니다. 운명의 첫 번째 분기점은 환경이 아닌,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루돌프 2세의 리더십 실패는 한마디로 '변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수도를 비엔나에서 프라하로 옮긴 후, 더욱더 깊은 골방으로 숨어들어 세상의 흐름을 외면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연금술, 즉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질'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착은 그가 다스려야 할 세상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그의 통치 철학을 상징하는 완벽한 은유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지혜 있는 자가 넘쳤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변화를 읽지 못해 제국의 분열을 막지 못했고, 결국 반란을 일으킨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감방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의 삶은 "골방에서 감방으로" 끝을 맺었던 것이죠.


반면 키루스는 시간의 흐름을 읽는 데 탁월했습니다. 그는 메디아 국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며 메디아 군인들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바로 그 순간, 키루스는 돌연 고국 페르시아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모두가 의아해한 이 결정은 그의 놀라운 전략적 판단이었던 겁니다. 키루스는 자신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외할아버지인 메디아 왕과 외삼촌인 총사령관에게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킬 정치적 부담이 되리라는 것을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그것은 ‘눈물의 이별’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울지 않고서 뒤돌아서는 사람은 없었다’고 할 만큼 모두가 그의 떠남을 아쉬워했지만, 그는 자신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가 바로 물러서야 할 때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위기를 피하기 위한 후퇴가 아니었습니다. 키루스는 떠나면서 외할아버지에게 받은 모든 선물을 자신을 따르던 메디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는 훗날을 위한 단순한 기반 다지기를 넘어, 잠재적 동맹을 미래의 빚진 지지자로 만드는 고도의 정치적 투자였던 겁니다. 그는 친구들과 작별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머지않아 다시 올 것이며 나를 보게 될 것이오. 눈을 깜박일 필요도 없이 마음껏 보게 될 것이오."


이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메디아는 키루스에게 정복당해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키루스의 이야기는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인 것입니다.


이 두 인물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속한 조직, 회사, 그리고 우리 개인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 되겠습니다.

군주는 세월의 변화를 직시해야 하며, 시간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계절의 변화를 예측해야 합니다.


3. 불확실성에 의존하지 마라

첫 번째 지혜: 진정한 힘은 타인의 지원이 아닌, 스스로의 비축에서 나온다

왕자 키루스는 처음으로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합니다. 출정을 앞둔 그에게 아버지 캄비세스 왕은 군수품을 충분히 준비했는지 묻습니다. 키루스는 부족할 경우 외삼촌인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가 지원해 주기로 했다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합니다.


이 안일한 태도에 아버지는 “아들아, 너는 키악사레스가 주는 보급품을 믿고 네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떠난다는 말이냐?”라고 물으며 아들을 크게 꾸짖습니다. 전쟁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타인의 호의라는 ‘불확실성’에 결코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외삼촌이라도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자신의 군대를 먼저 챙길 것이기 때문이죠. 캄비세스는 경험 없는 아들에게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 즉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가르친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십과 위기관리는 행운이나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는 철저함, 그리고 필요가 없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인간 심리와 힘의 역학에 대한 정교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이처럼 외부의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행운에 기댄 삶에서 벗어나 지혜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지혜: 불확실성에 운명을 맡기는 것은 곧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과 같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높은 언덕 위에는 도시 시에나가 있습니다. 한때 피렌체와 패권을 다투던 이 도시는 끊임없는 분쟁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대표적인 산악도시입니다.


생존을 위해 불확실성과 싸워야 했던 도시의 심장부, 시에나 대성당 중앙 바닥에는 시선을 끄는 모자이크화가 있습니다.


1504년, 화가 핀투리키오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파올로 마누치가 제작한 이 작품에는 ‘포르투나 여신’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행운의 여신과는 사뭇 다릅니다.

포르투나 여신은 한 발은 둥근 공 위에, 다른 한 발은 돛대가 부러진 배 위에 위태롭게 얹고 있습니다. 손에는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을 가득 담은 돛을 들고 있죠. 육지에 둔 발도, 바다에 둔 발도 모두 불안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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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나 대성당(Siena Cathedral)의 바닥 모자이크 중 ‘행운의 여신(Fortuna)’ 패널


이 모습은 ‘행운’의 본질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변덕스러운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행운이란 결코 안정적인 기반이 될 수 없으며, 그것에 의지하는 삶은 언제든 파도에 휩쓸리거나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삶이라는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요새화해야 했던 시에나인들에게 이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뼈아픈 역사의 교훈이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지혜: 지혜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내면의 세 짐승

현자들은 불안정한 포르투나 여신을 등지고 '지혜의 언덕'을 향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시에나 대성당의 모자이크화는 포르투나를 떠난 현자들이 오르는 ‘지혜의 언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캄비세스의 가르침처럼 외부의 준비를 마쳤다 해도,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입니다. 현자들은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세 가지 내면의 유혹을 물리쳐야만 합니다. 이 유혹은 그들의 발아래 꿈틀거리는 세 마리의 동물로 상징됩니다.

• 뱀 (질투와 욕심): 뱀은 끝없는 욕심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질투를 상징
• 족제비 (요령과 속임수): 족제비는 정직한 노력이 아닌, 손쉬운 요령과 편법을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
• 거북이 (게으름과 나태): 이솝우화 속 꾸준함의 상징과는 정반대로, 여기서 거북이는 ‘나태함’을 상징

결국 우리가 포르투나를 어떻게 길들여 지혜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말해줍니다.

철저한 준비로 외부로부터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그 단단한 기반 위에서 욕심(뱀)을 버리고, 얄팍한 요령(족제비)을 피하며, 게으름(거북이)을 극복하는 내면의 투쟁을 통해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Hvc properate viri salebrosvm scandite montem pvlchra laboris ervnt premia parma qvies (비록 그것이 힘들더라도, 만약 당신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 거칠고 험한 언덕을 정복한다면, 영혼의 평화를 얻은 상징으로 이 종려나무 가지를 당신에게 주리라)


이제 우리들 차례입니다.

우리들 삶에서 '지혜의 언덕'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뱀, 족제비, 거북이는 무엇일까요?


(3편에서 계속)



[참고서적]

1.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2023, 현대지성

2.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2016, 21세기북스

3. EBS 인문학 특강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전 8강) (유료)

4. <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고대근동 3천 년> 주원준, 2022,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5. <고대 이스라엘 역사> 멕스웰&헤이스, 2004, 크리스천다이제스트

6. <고대근동 문학선집> 제임스 B. 프리처드, 2020, CLC

7. <고대 이집트> 강연, 곽민수, 2024, EBS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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