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교수의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통한 길 찾기 노력
시리즈로 공유하고 있는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편입니다.
현재까지 공유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1/5)
2. '길 없음'의 시대, 길을 찾아서...(2/5)
이번 포스팅은 키루스 교육의 12가지 덕목 중 4, 5, 6번의 덕목입니다.
기업이든 사적 모임이든 리더들이 겪는 공통적인 고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팀원들의 자발적인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최신 경영 이론이나 리더십 세미나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가장 강력한 통찰이 가장 오래된 이야기 속에 숨어있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은 그의 책 『키루스의 교육』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십의 비밀을 풀어냈습니다.
첫 번째 비밀: '지식'이 아닌 '지혜'
리더십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리더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키루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가 그것을 이미 해봤기 때문에 잘 아는데······”라고 말하며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합니다. 키루스의 아버지는 이러한 지식 과시가 부하들의 판단을 멈추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많은 리더가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잘못이 있는 자에게 벌을 주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는 효과적인 통제 수단처럼 보이지만, 키루스의 아버지는 이것이 '강제적 복종'을 낳을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진정한 충성, 즉 '자발적 복종'은 권위나 지식의 강요가 아닌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죠. 리더가 부하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인정받을 때, 비로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키루스의 아버지는 조급해하는 아들에게 "빠른 길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지혜를 얻는 길에는 왕도가 없으며, 오직 부지런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죠. 그는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각 분야에서 정평이 난 전문가를 찾아가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리더가 지식의 정점에 선 사람이 아니라, 끝없이 배우고 탐구하는 '지혜의 추구자'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비밀: 최고의 설득은 '함께 고통받는 것'
고대 그리스 수사학은 효과적인 소통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는 리더십 소통의 단계로도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 1단계, 로고스(Logos): 이성과 논리로 설득하는 단계입니다. 정확한 데이터와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예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국제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논리적인. 연설)
- 2단계, 에토스(Ethos): 열정적인 태도로 감동을 주는 단계입니다. (예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청중을 사로잡는 열정적인 연설은 논리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듬)
하지만 논리와 열정만으로는 진정한 충성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설득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차원에 존재합니다.
- 3단계, 파토스(Pathos): 이것이 바로 '고난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비롯되는 설득의 힘입니다. (예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인종차별 범죄 희생자 추도 예배에서 희생자들과 함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연설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미국 사회 전체에 깊은 파토스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음)
리더의 '파토스'는 단순한 감정적 공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멤버들이 겪는 고통을 실제로 함께 겪고, 그들보다 더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용기인 것입니다.
세 번째 비밀: 자발적 복종은 통제의 결과가 아닌 '선물'
지금까지 논의한 두 가지 비밀, 즉 끊임없이 '지혜'를 추구하는 겸손함과 부하들과 고난을 함께 나누는 '용기'는 자연스럽게 마지막 비밀로 이어집니다. 바로 '자발적 복종'이죠.
자발적 복종은 권력으로 강제하거나 통제해서 얻어내는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혜와 용기라는 두 가지 덕목을 겸비한 리더에게 구성원들이 바치는 최고의 '존경과 찬사'입니다. 즉, 자발적 복종은 리더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뽐내기보다 지혜를 사랑하고 백성들보다 더 큰 시련을 앞장서서 견디는 리더에게 구성원들이 기꺼이 바치는 '선물'과 같습니다.
키루스는 이러한 리더십을 평생에 걸쳐 실천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직접 보지 않고서도 그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죠.
결국 리더십의 본질은 역설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지식이 아닌, 끝없이 배우는 지혜를, 높은 곳에서 명령하는 권위가 아닌, 낮은 곳에서 함께 고통받는 용기를, 강제하는 통제가 아닌, 기꺼이 바치는 선물로서의 복종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2,500년을 뛰어넘어 키루스 대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리더십의 핵심인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삶의 기로에 선 인간의 고뇌를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독백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려왔습니다.
하지만 이 유명한 번역이 사실은 오랜 오역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만약 이 대사의 진짜 의미가 단순한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여기에는 한 왕국의 운명을 짊어진 리더의 고뇌와 책임에 대한 훨씬 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햄릿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존경하던 아버지는 숙부 클로디우스가 잠든 그의 귀에 독약을 부어 살해했고, 어머니는 남편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원수와 재혼했습니다. 왕국은 혼란에 빠졌고, 이웃 나라 노르웨이는 이 틈을 타 전쟁을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햄릿은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고뇌를 단순한 나약함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에게 복수를 호소한 아버지의 유령이 과연 진실을 말하는 영혼인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악령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정보 앞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리더의 딜레마를 그는 온몸으로 겪고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윤혜준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죽느냐 사느냐"라는 번역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는 과거 일본 학자들의 실수를 그대로 따른 오역이며, 'be' 동사를 '살다(live)'가 아닌 본래의 의미인 '~이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대사의 진정한 의미는 "나는 덴마크의 왕자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실존적 고민이 됩니다.
이 새로운 해석은 햄릿의 고뇌를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비극에서, 엄중하고 정치적인 책임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그의 고민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왕자로서 짊어져야 할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외면하고 현실에 굴종할 것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나는 덴마크의 왕자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고도 마음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귀한 것일까?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에 맞서서 용감히 싸워, 그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햄릿은 왕자로서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왕자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고뇌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바로 이처럼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책임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그렇다면 햄릿과 같은 고뇌의 순간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결단한 리더는 없었을까요?
고대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자는 햄릿과 똑같은 질문 앞에 섰을 것입니다. 이웃 강대국 아르메니아가 동맹국 메디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역시 고뇌했을지 모릅니다. ‘나는 페르시아의 왕자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르메니아 군사에 맞서서 용감히 싸워, 그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햄릿이 고뇌에 머물렀다면, 키루스는 즉시 행동으로 답했습니다. 총사령관이 된 그가 전쟁 준비의 첫 조치로 택한 것은 부하들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귀족과 평민 병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신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고 공정한 기회와 보상을 약속하는 혁신적인 연설을 합니다.
“페르시아 동료 시민 여러분. ...신들의 도움으로 나는 여러분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받도록 할 것이며, 여러분이 원한다면 우리와 같은 무기를 받으며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위험을 겪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원정에서 어떤 정당한 성공이 주어지면 우리와 같은 몫을 받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습니다. 키루스는 태생에 기반한 신분제를 성과에 기반한 실력주의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약속은 평민 병사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을 폭발시켰습니다. 병사들은 스스로 무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훈련에 매진했고, 부대 전체에는 '공을 세우면 누구나 큰 희망을 품을 자격이 생긴다'는 강력한 믿음이 퍼져나갔습니다. 리더가 제시한 공정한 시스템은 구성원들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주체성을 부여했고, 이는 그 어떤 구호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리더는 앞에서 이끌되, '함께 갈 수 있는' 속도로 나아간다
키루스의 리더십은 단지 공정한 약속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접 병사들과 똑같이 땀 흘리며 훈련하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솔선수범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의 진면목은 특히 아르메니아의 험준한 산악 지대를 행군할 때 드러났습니다.
키루스는 체력이 뛰어난 장교들이 의욕에 넘쳐 너무 앞서 달려가면 일반 병사들이 뒤처져 대열이 무너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교들에게 먼저 "약간 빠르게만 이끌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강하고 열정적인 군사 몇 명을 대열의 뒤로 보내 뒤처지는 병사들을 격려하라는 놀라운 명령을 내립니다.
“그대가 산에서 달리는 데 익숙하다고 해서 군사들도 달리도록 하지 마시오. 대신 약간 빠르게만 이끄시오. 그래야만 군사들이 장군들을 쉽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가장 강하고 열정적인 군사 몇 명을 뒤로 보내 뒤따라오는 군사들을 격려하는 것도 때로는 유익하다오.”
이는 조직의 역동성을 완벽하게 이해한 리더의 통찰입니다. 리더십은 선두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미에서 뒤처지는 이들을 독려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닌, 가장 느린 사람의 보폭까지 헤아려 조직 전체가 함께 나아갈 때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의무감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선의와 우정'을 가진 사람을 택하라
탁월한 지휘 아래 페르시아 군대는 아르메니아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패전국의 왕자 티그라네스는 키루스에게 항복하며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을 신하로 받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이 왕자는 실로 한심한 인물이었습니다. 조국이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고 아버지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그는 태평하게 해외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티그라네스의 간청에 키루스는 자신의 인재 등용 철학을 명확히 밝힙니다. 그는 단순히 강요나 의무감, 혹은 금전적 보상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사람은 주군에 대한 '선의와 우정'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오직 강요에 의해 나를 섬기는 신하를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를 향한 선의와 우정을 의무로 여기는 신하가 있다면, 그가 잘못했을지라도 나를 싫어하면서 오직 강요에 의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신하보다 더 흡족해할 것이다.”
키루스는 강요에 의해 일하는 사람이 조직에 미치는 해악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의 사기까지 떨어뜨립니다. 반면, 리더에 대한 선의와 동료에 대한 우정을 가진 사람은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조직 전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명군(名君) 곁에 명장(名將)이 있다'는 말처럼, 어떤 사람을 곁에 두느냐가 리더의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그는 이 한심한 왕자 앞에서 분명히 한 것입니다.
나의 'To be or not to be'는 무엇인가
고전은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리더십의 지혜를 선사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실존적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키루스가 보여주었듯,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가장 강한 자의 속도와 가장 약한 자의 고통을 함께 살피는 공감으로 이끌며, 의무감이 아닌 선의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To be or not to be’의 순간을 마주하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과 조직에서 그 질문과 매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햄릿처럼 불확실성의 유령 앞에서 고뇌하며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키루스처럼 함께 행군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들어내며 행동으로 답할 것인가? 그 선택이 결국 나의 리더십을 결정하겠지요.
비극 속에서 지켜낸 존엄: 재클린 케네디
케네디 대통령 부부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방문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정보기관은 테러 위협을 감지했고, 경호실은 방탄차를 탈 것을 권했지만 케네디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시민들이 아름다운 영부인 재클린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오픈 리무진을 덮친 것은 시민들의 환호가 아닌 총성이었습니다. 총 네 발의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첫 번째 탄환은 빗나갔고, 두 번째 총알이 남편의 목을 관통했습니다. 재클린이 남편을 돌아보는 순간, 세 번째 총알이 그의 두개골을 파괴했습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위험 속에서 달리는 리무진 뒤편으로 기어 올라가 흩어진 남편의 두개골 파편을 수습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심지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본능이었습니다.
당시 리무진에 동승했던 텍사스 주지사는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재클린이 했던 말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나는 지금 남편의 뇌를 가지고 있다."
남편의 피로 온몸이 얼룩진 재클린은 그 순간부터 슬픔에 잠긴 미망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을 물러나게 한 뒤 가톨릭 신자인 남편을 위해 종부성사를 집전할 신부를 불렀고, 남편이 해군 장교로 복무했던 곳이라는 이유로 베데스다 해군 병원에서 부검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베데스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도 그녀는 앞 좌석이 아닌, 남편의 관이 실린 화물칸에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 행동은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에어포스 원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남편의 관이 비행기 화물칸에 실리자, 그녀는 일등석을 거절하고 그 곁을 지켰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린든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할 때, 그녀는 남편의 체온이 채 식기도 전에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담담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이 공식화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함께 비행기 계단을 내려가자고 제안했지만, 재클린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관이 내려지는 비행기 후미의 화물 탑승구를 통해 남편과 함께 땅을 밟았습니다.
재클린 케네디의 행동은 일관된 패턴을 보입니다. 구급차에서든 대통령 전용기에서든, 그녀는 남편의 시신과 자신을 분리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 정치적 편의나 의전 절차에 의해 비극의 본질이 희석되는 것을 막으려는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세계가 이 끔찍한 사건을 어떤 수사나 상징 없이, 날것 그대로 마주하도록 만들며 남편과 그가 맡았던 직책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지켜냈습니다.
2. 왕의 마음만을 본 여인: 아르메니아의 왕비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는 패전국의 왕비가 보여준 놀라운 기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아르메니아를 정복했지만, 오랜 친구였던 티그라네스 왕자와의 우정을 고려해 왕실을 사면하는 아량을 베풉니다.
정복자 키루스는 친구인 티그라네스에게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전쟁에 져서 그의 아내 역시 자신의 포로가 되었으니, 아내의 자유를 위해 얼마를 내겠냐고 말입니다. 티그라네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제 부인을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면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 말에 감동한 키루스는 아무런 대가 없이 그의 아내를 풀어주었습니다.
왕실로 돌아가는 길에 티그라네스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위대한 정복자 키루스 대왕을 직접 보니 어떻더냐고, 그의 잘생긴 외모와 지혜가 놀랍지 않았냐고 말입니다. 그때 왕비는 남편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우스신에 맹세코 저는 그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중략) 제우스신에 맹세코 저를 노예에서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하던 사람을 보았습니다."
아르메니아 왕비의 시선은 정복자의 권력이나 외모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 했던 남편의 사랑과 희생만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짧은 대답은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을 보여줍니다. 리더의 힘은 때로 그를 향한 가장 가까운 이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3. 명예를 위해 죽음을 택한 동반자: 수사의 왕비 판테아
『키루스의 교육』 후반부에는 명예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또 다른 고귀한 여인, 수사의 왕비 판테아의 비극적이고 숭고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녀의 남편인 아브라다타스 왕은 키루스의 동맹으로, 바빌로니아와의 결전에서 가장 위험한 최전방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장으로 떠나는 남편에게 판테아는 눈물을 감추며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사랑을 넘어, 명예를 공유하는 동반자로서의 강한 신념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브라다타스, 만약 자기 목숨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바로 나란 사실을 당신도 아실 것입니다.(중략)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과 저의 사랑에 두고 진실로 맹세합니다. 당신께서 용감한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면, 불명예스러운 사람과 함께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당신과 함께 무덤 속에라도 갈 것입니다."
아브라다타스는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최전방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지옥 같던 전투가 승리로 끝났을 때, 키루스 대왕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아브라다타스였습니다. “누구, 아브라다타스를 본 사람이 있는가?” 그의 전사 소식을 들은 키루스는 무릎을 탁 치더니 즉시 말을 몰아 슬픔의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아브라다타스의 시신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오,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영혼이여! 그대는 정녕 우리 곁을 떠났단 말인가?”
키루스가 슬퍼하자, 판테아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명예롭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 저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키루스가 떠난 후, 판테아는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의 시신 곁에서 단도를 꺼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숨을 거두며, 유모에게 남편과 자신을 같은 천으로 덮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판테아는 단순히 남편을 지지하는 배우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명예 규범을 함께 만든 ‘공동 저자’였고, 그 명예가 요구하는 대가에 대해 동등한 책임을 느꼈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의 명예로운 죽음 이후에 홀로 살아남는 것은 그들이 함께 쌓아 올린 가치를 배신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녀의 비극적 선택은 군주의 의무와 명예는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온전히 공유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숭고하게 증명합니다.
(4편에서 계속)
[참고서적]
1.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2016, 21세기북스
2. EBS 인문학 특강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전 8강)
3. <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고대근동 3천 년> 주원준, 2022,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4. <고대 이스라엘 역사> 멕스웰&헤이스, 2004, 크리스천다이제스트
5. <고대근동 문학선집> 제임스 B. 프리처드, 2020, CLC
6. <고대 이집트> 강연, 곽민수, 2024,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