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가장 견고했을 것으로 보이는 경전의 해석은?

고대 유대교와 헬레니즘 시대의 해석 전통 비교

by KEN

고대 세계로부터 이어져 온 끊임없이 반복되는(영원할 것 같은) 질문들


어떤 사안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관념이나 개인과 집단이 오랫동안 학습해 온 세계관에서 잠시 한 발짝 물러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겨 온 전제들을 그대로 붙든 채로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석학적 접근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전제 위에서 이해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능력, 저는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적인 역량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이러한 해석적 접근을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보수적으로 인식되는 기독교 전통 안에서 ‘성경’을 대하는 태도를 사례로 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해석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해석 행위가 결코 단일하지 않았고, 시대적 상황과 공동체의 필요, 그리고 세계관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인 점은, 유대교에서 출발해 기독교로 이어진 오랜 전통 안에서 이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내 개신교의 일부 흐름에서는 성경을 오로지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 나아가 극단화된 태도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진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석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적, 사상적, 학문적으로 분명한 퇴보로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현실을 문제 삼고 성찰하려는 움직임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교회와 학자들, 그리고 기독인들을 중심으로, 비판과 반성을 동반한 개혁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이미 해석된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해석을 통해 보다 건강한 세계관을 형성해 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런 기대를 안고,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1.

고대 유대교의 다양한 해석 전통


흔히 고대 유대교를 하나의 단일한 종교 전통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현실을 살펴보면, 고대 유대교 안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하나의 통일된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삶의 조건과 세계관 속에서 형성된 여러 공동체들이, 각기 고유한 신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해 왔다는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랍비 유대교가 있었고, 그리스 문화권 속에서 살아가며 헬레니즘 세계와 깊이 교류했던 디아스포라 유대교가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순결한 공동체적 삶을 추구했던 쿰란 공동체도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동일한 성경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그 성경을 바라보는 질문의 방향과 해석의 방식은 결코 같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해석적 다원성은 자연스럽게 매우 근본적인 질문들을 낳았습니다. 성경 본문은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문자 이면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단지 과거의 역사로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원리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언의 말씀은 과거에 한정된 메시지인가, 아니면 현재를 향해 새롭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인가라는 문제 역시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질문들이 결코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고대 유대교 내부에서, 매우 치열하고 진지하게 탐구되었던 문제들이었으며, 바로 이 질문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성경 연구의 ‘영속적인 질문들(Perennial Questions)’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먼저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랍비 유대교쿰란 공동체의 성경 해석 전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어서 그리스 철학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던 헬레니즘 유대교의 알레고리적 해석 방식을 검토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세계관 속에서 형성된 묵시문학의 독특한 해석 방식을 살펴보면서, 이 모든 해석 전통들이 후대의 종교 사상과 성경 이해에 어떠한 유산을 남겼는지를 함께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2.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해석 전통: 랍비 유대교와 쿰란 공동체


팔레스타인 지역에 기반을 둔 유대교 분파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신앙과 삶의 규범을 형성하는 중심 토대로 삼았습니다. 이들에게 성경은 과거의 사건을 기록한 문헌에 그치지 않고, 삶의 전 영역을 규정하고 인도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 이해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본 섹션에서는 먼저, 랍비 유대교가 직면했던 핵심 과제 곧 고정된 경전의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현실에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시킨 법적·윤리적 확장 해석의 전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어서 쿰란 공동체가 자신들이 경험한 소외와 박해의 현실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선과 악이 대립하는 우주적 투쟁의 일부로 이해하고자 했던 문제의식 속에서 형성한 예언적 검증 해석의 방식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이 두 해석 전통은 이후 유대교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초기 기독교 형성에도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1) 랍비 유대교의 해석 방법론

고대 유대교의 다양한 분파들은 한 가지 중요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지혜이며, 그 안의 모든 단어와 모든 구절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 공통된 전제 위에서, 랍비 유대교의 해석은 성경 본문을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찾아 나서는’ 활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다라쉬(darash)라고 불린 이 활동이 바로 미드라시, 곧 미드라시적 해석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미드라시란 성경을 설교하거나 주석하는 모든 해석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 본문을 오늘의 삶과 연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끌어내며, 때로는 확장하는 모든 시도가 미드라시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른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타르굼 전통입니다.


타르굼은 회당에서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을 위해 성경을 아람어로 구두 번역하던 관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번역이라는 작업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번역은 언제나 해석을 동반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타르굼은 단순한 언어 변환을 넘어, 적극적인 신학적 해석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었습니다. 번역자들은 이미 공동체 안에 공유되고 있던 하나님의 속성과 신학적 이해를 본문 속에 반영함으로써,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거나 때로는 확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33장 3절에서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라는 표현은 타르굼 네오피티에서 “내가 나의 임재, 곧 쉐키나를 너희에게서 거두지 않으리라”로 번역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분명히 드러내는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창세기 4장 14절에서 가인이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라고 말하는 장면은, 옹켈로스 타르굼에서 “주 앞에서 숨는 것은 불가능하나이다”로 옮겨져,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강조합니다.


때로는 본문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나오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라는 구절에 대해, 팔레스타인 타르굼은 “보라, 내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로 백이십 년을 주었으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다”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여기서는 단순한 시간의 언급이 도덕적 권면의 메시지로 전환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번역과 해석 사이의 긴장 관계는 랍비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랍비 유다 하나시는 이 복잡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는군요. “누군가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만 번역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요, 거기에 무엇을 덧붙인다면 그는 신성모독자요 비방하는 자이다.” 이 말은 본문에 충실하려는 태도와, 해석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사이에서 랍비들이 느꼈던 긴장을 잘 보여줬다는 해설입니다.


이러한 미드라시 전통은 이후 랍비 유대교의 핵심 문헌들 속에서 체계화되었습니다. 기원후 2세기 중반에 집대성된 미쉬나는 구전 율법을 성문화한 최초의 문헌으로, 성경이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구체적인 규범의 형태로 제시되었습니다. 이후 미쉬나를 보완하는 토세프타가 등장하고, 미쉬나의 법적 원리를 일상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기 위한 논의를 담은 게마라가 형성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미쉬나와 게마라가 결합된 탈무드는, 수세기에 걸친 랍비들의 지적 노력과 토론을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법적 미드라시, 곧 할라카 전통의 정수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깁니다.


한편, 해석의 자유가 자칫 무분별한 추측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해석의 논리적 규칙을 정립하려는 시도도 병행됩니다. 랍비 힐렐은 일곱 가지 해석 규칙을 제시하여 해석의 논리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랍비 아키바가 아가서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는 등 보다 자유로운 알레고리적 해석을 시도하자, 이에 대한 견제 역시 나타납니다. 힐렐의 제자였던 랍비 이스마엘은 힐렐의 규칙을 열세 가지로 확장함으로써, 해석에 보다 엄격한 논리적 통제를 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랍비 유대교의 해석 전통 안에는, 성경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적극적으로 읽으려는 자유와, 그 자유를 질서 안에 두려는 통제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 관계가 항상 공존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2) 쿰란 공동체의 독자적 해석: 페셔(Pesher)

사해 두루마리를 남긴 쿰란 공동체는 자신들을 세상의 타락으로부터 분리된 존재, 곧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선택받은 이들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들의 세계관은 철저히 종말론적이었고, 바로 그 점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의 매우 독특한 해석 전통을 발전시키게 만든 배경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직면한 신학적 질문은 분명했던 듯합니다. 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왜 이런 박해를 감내해야 하는가. 이 현실을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던 것이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형성된 쿰란의 핵심 해석 방식이 바로 페셔(pesher)입니다. 페셔 해석이란, 성경의 예언을 과거에 머무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자신들의 시대와 공동체를 향해 주어진 비밀스러운 메시지로 이해하고 이를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해석법입니다. 이들에게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투쟁을 예언하고 미래의 승리를 보증하는 일종의 암호문과 같았던 것이죠.


이러한 해석 방식은 하박국서 주석인 1QpHab, 곧 하박국 페셔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설명입니다. 이 문헌에서 하박국서의 예언은 단지 고대 예언자의 말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인 ‘의로운 스승’의 시대에 성취되고 있는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예언은 기다려야 할 말씀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로 이해된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하박국서에 등장하는 침략자 ‘깃딤’은 당대의 압제자인 로마인들로 동일시되었고, 나훔서에 나오는 ‘사자’ 역시 그리스의 왕 데메트리오스로 직접 해석되었습니다. 성경의 상징적 언어는 쿰란 공동체에게 있어 모호한 은유가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역사적 현실을 정확히 가리키는 표지였습니다.


이러한 페셔 해석은 랍비 유대교의 해석 전통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랍비들의 해석이 회당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토론되고, 다양한 의견 속에서 전승되었던 반면, 쿰란의 해석은 오직 공동체 내부의 선택된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계시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성경의 숨겨진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고 믿었고, 그 결과 쿰란의 해석은 본질적으로 폐쇄적이며 권위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팔레스타인 유대교 내부에는 두 가지 상이한 해석 전통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의 적용과 논리적 추론을 중시하는 랍비적 전통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재적 적용과 종말론적 기대를 강조하는 쿰란 공동체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팔레스타인 밖, 곧 디아스포라 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어떤 조건 속에서 또 다른 성경 해석 전통을 발전시켜 나갔을까 하는 것으로 말이죠.



3.

헬레니즘 유대교의 해석 전통: 그리스 철학과의 만남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같은 대도시에서 그리스–로마 문화와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성경은 여전히 신앙의 중심이었지만, 그 신앙을 둘러싼 지적 환경은 팔레스타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지적 도전은, 당대의 학문과 사유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 철학이었습니다. 질문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우리의 신앙을, 지적으로 세련되고 체계적인 그리스 철학의 언어 앞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변호할 것인가. 다시 말해, 히브리 성경의 세계를 헬레니즘 지성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던 겁니다.


이 과제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헬레니즘 유대인들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 철학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배척하기보다, 그 개념과 사유 도구를 일정 부분 수용했습니다. 특히 알레고리적 해석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성경의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재구성하고 보편적 진리의 언어로 풀어내려 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신앙을 지적으로 변증 하는 시도였으며, 일종의 ‘변증적 번역’이라 부를 수 있는 해석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더 이상 특정 민족의 전통 문헌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이성과 대화할 수 있는 텍스트로 재해석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헬레니즘 유대교 사상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후 유대교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성경 이해와 신학 형성에도 중요한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게 됩니다.


(1) 알레고리 해석의 그리스적 기원

헬레니즘 유대교가 알레고리 해석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이전에, 이 해석 방법 자체는 이미 고대 그리스 사상 안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알레고리, 곧 우의적 해석은 기원전 6세기경부터 등장하는데,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니라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합리주의적 비판이었습니다. 당시 지성인들에게 신들의 싸움과 음모, 욕망과 기만은 점점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고, 알레고리는 바로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변증의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겁니다.


가장 이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테아게네스(Theagenes)입니다. 그는 신들의 전쟁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읽기보다, 불을 상징하는 아폴론과 물을 상징하는 포세이돈 사이의 자연 현상적 대립으로 해석함으로써, 신화의 품위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신들의 갈등은 도덕적 문제를 드러내는 서사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상징하는 이야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인물이 메트로도로스(Metrodorus)입니다. 그는 신들을 자연 현상에 비유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폴론을 쓸개즙에, 데메테르를 간에 비유하는 등 인체의 각 기관과 연결시키는 생리학적 알레고리를 시도했습니다. 여기서 신화는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 존재 내부의 구조를 설명하는 상징체계로 전환됩니다.


이러한 알레고리 해석은 스토아 철학에 이르러 더욱 체계화됩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Zeno)과 그의 후계자 클레안테스(Cleanthes)알레고리를 우주의 질서와 신적 섭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철학적 도구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들에게 신화는 더 이상 문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해독해야 할 철학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철학자가 이러한 흐름에 동의했던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Plato)알레고리 해석의 남용에 대해 분명히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알레고리아’라는 용어 대신, 본문 이면에 숨겨진 뜻을 가리키는 ‘휘포노이아(hyponoia)’라는 표현을 선호했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신화를 문자 그대로 전달할 경우 미칠 수 있는 도덕적 해악을 우려했습니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알레고리로 바꾸는 해석의 자유가 아니라, 해석이 교육과 윤리에 미치는 영향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알레고리 해석은 헬레니즘 유대교가 새롭게 발명한 방법이 아니라, 이미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신화와 이성, 전통과 철학 사이의 긴장을 조정하기 위해 발전해 온 해석학적 도구였습니다. 바로 이 오래된 해석 전통이, 이후 유대교 사상과 만나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게 되는 것입니다.


(2) 헬레니즘 유대교 문헌에 나타난 해석 방식

헬레니즘 유대인들의 변증적 대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기존의 성경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히브리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 그리고 성경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한 필론의 작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헬레니즘 지성의 언어로 번역하고 설명함으로써, 유대 신앙이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후진적인 전통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둘째는, 헬레니즘 세계에 익숙한 문학 형식과 사유 방식을 차용하여, 유대 사상을 변호하는 새로운 문헌을 창작하는 방식입니다. 마카베오 4서나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작품들은 그 대표적인 예로, 유대 신앙의 핵심 가치를 그리스 철학과 수사학의 틀 안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헬레니즘 유대교의 변증은,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과 새로운 문헌을 창작하는 작업이라는 두 축을 통해 전개되었고, 이를 통해 유대 신앙은 헬레니즘 세계와 본격적인 지적 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1) 칠십인역(Septuagint, LXX)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은 헬레니즘 유대교 해석학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문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헬레니즘 세계 속에서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바로 이 칠십인역을 통해 결정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칠십인역의 기원과 관련해 언급되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나오는 설화¹는, 오늘날 학계에서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칠십인역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선전적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실제로 이 번역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두고는 카알레, 드 라가르드, 토브와 같은 학자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칠십인역의 정확한 기원 연대를 밝히는 문제라기보다, 그 성격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칠십인역은 단순히 히브리어 본문을 그리스어로 옮긴 중립적인 번역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히브리어 본문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때로는 확장하면서 분명한 신학적 입장을 반영한, 말 그대로 ‘해석된 번역’이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욥기 42장 17절의 경우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 “[욥은] 주께서 일으키시는 자들과 함께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문장이 칠십인역에 추가되어, 부활 신앙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단순한 번역상의 우연이라기보다, 당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던 신학적 확신이 본문 속에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3절에서 “여호와는 용사시니”라고 표현된 신인동형론적 언어는, 칠십인역에서 “주께서는 전쟁을 부수시는 분”으로 수정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인간 전사의 이미지로 묘사하기보다, 전쟁 자체를 초월적으로 다스리는 분으로 이해하려는 신학적 의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비슷하게 민수기 12장 8절에서 모세가 “주의 형상(form)을 본다”는 표현 역시, 칠십인역에서는 “주의 영광(glory)을 보았다”로 바뀝니다. 이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로 오해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신의 비가시성과 초월성을 유지하려는 해석적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어 본문 자체가 난해한 시편 40편 6절, 곧 칠십인역 기준으로는 39편 7절의 “주께서 내 귀를 파셨나이다”라는 표현은, “주께서 나를 위해 귀를 예비하셨나이다”로 번역되어 의미가 보다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정리됩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칠십인역 번역자들이 문자적 대응보다 의미 전달과 신학적 명료성을 우선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칠십인역은 헬레니즘 유대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고, 또 어떤 신학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해석학적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대로 옮겨지는 텍스트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와 사유의 틀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재구성되는 살아 있는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2) 기타 헬레니즘 유대 문헌

헬레니즘 유대교가 새로운 문헌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을 변증 했던 방식은, 구체적인 작품들 속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먼저 마카베오 4서를 살펴보면, 이 문헌은 그리스의 수사학과 변론술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여기서 유대 율법은 단순한 종교 규범이 아니라, 헬레니즘 세계가 추구하던 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가장 참된 철학’으로 제시됩니다. 특히 인간의 이성이 욕망을 통제하고 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며, 유대 율법은 바로 그러한 이성의 탁월함을 가장 잘 구현한 삶의 방식으로 옹호됩니다.


다음으로 솔로몬의 지혜헬레니즘 학문 세계의 방법론을 더욱 본격적으로 수용한 문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철학적 논증을 통해 우상숭배를 비판하고, 인간 영혼의 운명에 대해 논의하는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부활 신앙보다는 영혼의 불멸 사상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유대 전통이 헬레니즘 철학과 깊이 교차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를 보면, 유대 율법을 변호하는 방식이 보다 알레고리적이라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이 문헌은 레위기에 등장하는 정결법, 곧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짐승에 대한 규정을 단순한 식생활 규칙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를 인간에게 ‘지혜로운 분별력’을 훈련시키기 위한 상징적 가르침으로 해석함으로써, 유대 율법이 비합리적인 규범이 아니라 깊은 도덕적·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세 문헌을 함께 놓고 보면, 헬레니즘 유대교의 변증이 단일한 방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사학과 이성의 언어로, 어떤 경우에는 플라톤적 철학의 틀로, 또 어떤 경우에는 알레고리를 통해, 유대 신앙은 헬레니즘 세계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고 정당화해 나갔던 것입니다.


3)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이제 헬레니즘 유대교의 알레고리 해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 바로 필론을 살펴보겠습니다. 기원전 20년경에 태어나 기원후 50년경까지 활동한 필론은, 헬레니즘 유대교의 알레고리 해석을 사실상 하나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사상가라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 철학에 깊이 심취해 있던 필론에게 성경은, 문자 그대로 읽기 위해 주어진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게 보이거나, 신적 지혜를 지나치게 인간적인 범주 안에 가두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그 표면적 의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그 문자 아래에 숨겨진, 보다 깊은 철학적 진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3장 8절에서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숨는 장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숨는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필론은 이 장면을 역사적 사건으로 읽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이를,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악한 영혼의 상태를 묘사한 알레고리로 해석합니다.


창세기 2장 8절과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직접 나무를 심으신다는 묘사 역시 필론에게는 문제적입니다. 교육받은 이들에게 이러한 표현은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심지어 어리석게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장면을,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 안에 덕, 곧 선한 성품을 심으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나무는 식물이 아니라, 영혼 안에 자라야 할 도덕적·지성적 덕목을 가리키는 겁니다.


필론의 알레고리 해석은 창조 이야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는 창세기 1장 27절의 창조를 하늘에 속한 ‘영적인 아담’의 창조로 이해하고, 창세기 2장 7절의 창조를 땅에 속한 ‘육적인 아담’의 창조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두 개의 창조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는 서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이중적 차원을 설명하는 철학적 진술이 됩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필론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아브라함의 여정과 같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히려, 그러한 이야기들이 가리키는 보다 보편적인 원리, 곧 지혜 안에서 성장해 가는 영혼의 여정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데 있었습니다.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간에게 적용되는 철학적 교본이었던 셈입니다.


이 점을 현대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매우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에코에 따르면, 필론의 알레고리는 본문의 초점을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떼어내어,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 철학 원리로 확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후대의 알렉산드리아 교부들이 사용한 알레고리는 그와 반대로, 보편적 의미를 특정한 그리스도 중심적 적용, 다시 말해 기독론적 해석으로 수렴시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필론을 통해 헬레니즘 유대교는 성경을 철학적이고 합리적인 텍스트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교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 전통이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격동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 종말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해석 전통이었습니다.



4.

유대 묵시문학의 해석학적 특징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해석 전통은 묵시문학입니다. 묵시문학은 대략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100년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문학 양식으로, 그 핵심에는 매우 강한 비관론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묵시문학가들은 이 세상이 너무나 깊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이나 점진적인 개혁으로는 결코 바로잡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결정적인 역사 개입, 다시 말해 위로부터의 구원만이 이 세계를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성경을 읽는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은 더 이상 과거의 기록이나 단순한 교훈집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다가올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하는 암호문과 같은 텍스트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매우 독특한 해석학적 틀이 형성됩니다.


먼저. 솔로몬의 시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문헌은 기원전 1세기 중반, 유대가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성경의 여러 구절을 당시 유대를 점령한 로마, 특히 폼페이우스와 같은 정치적 억압자들에게 직접 적용합니다. 여기서 성경의 예언은 먼 미래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정치적 현실을 해석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앞서 살펴본 쿰란 공동체의 ‘페셔’ 해석과 매우 유사한데, 이는 성경을 현재의 압제자에게 직접 적용하는 해석법이 쿰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로마 지배라는 공통된 위기 속에서 형성된 묵시문학적 세계관의 일반적 특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에스드라 2서바룩 2서를 보면, 묵시문학의 상징성과 환상적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책들은 기원후 1세기 후반,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 기록되었으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다윗의 후손으로 등장하는 사자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에게 문자적 이해보다는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해석을 요구합니다.


또 다른 예로. 열두 족장의 유언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문헌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들 이야기를 자유롭게 확장하여, 후대 공동체를 위한 윤리적 교훈을 제시합니다. 여기서는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보다,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성경 이야기를 채우고 각색하여 의미를 확장하는 하가다 미드라시, 곧 서사적 미드라시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년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 책은 창세기 1장부터 출애굽기 12장까지의 내용을 단순히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율법의 천사적 기원이나 엄격한 달력 체계와 같은 자신들의 신학적 관점을 반영하여, 본문을 사실상 새롭게 재작성합니다. 이는 묵시문학적 해석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과감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묵시문학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성경을 다시 읽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개입과 구원의 약속을 발견하려는 신앙적·해석학적 시도의 산물입니다. 성경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무는 텍스트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재구성하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었던 것입니다.



5.



이제 전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고대 유대교의 성경 해석은 결코 하나의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환경, 그리고 신학적 문제의식 속에서, 매우 다채로운 해석학적 흐름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역동적으로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다양한 전통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묶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랍비적–논리적 전통, 곧 랍비 유대교의 해석입니다. 이 전통에서 성경은 삶의 특정 영역에만 적용되는 종교 문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규범적 텍스트였습니다. 랍비들은 논리적 규칙과 문헌적 전승을 바탕으로 성경 본문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며, 율법이 일상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둘째는 종말론적–적용적 전통, 곧 쿰란 공동체와 묵시문학으로 대표되는 해석 방식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다는 강한 확신 속에서, 성경을 단순한 교훈서가 아니라 현재 자신들의 공동체가 처한 위기를 해독하는 비밀의 책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언은 기다려야 할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직접 적용되어야 할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셋째는 철학적–알레고리적 전통, 곧 헬레니즘 유대교의 해석입니다. 이 전통에서는 그리스 철학과의 대화 속에서 성경이 읽혔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서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추어진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 이해되었고, 알레고리는 그러한 철학적 원리를 끌어내기 위한 핵심적인 해석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전통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졌고, 서로 다른 해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성경 본문의 의미를 둘러싼 끊임없는 탐구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랍비들의 치밀한 논리, 쿰란 공동체의 급진적인 현재적 적용, 그리고 필론의 철학적 사유는 모두 성경이라는 끝없이 열려 있는 텍스트 앞에서 인간의 지성이 감당해 낸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대 유대교의 다양한 해석학적 시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체계라기보다,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 신학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깊은 흔적을 남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고대 유대교의 성경 해석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지적 유산으로 남아,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합니다.



참고도서

⟪HERMENEUTICS⟫ Anthony C. Thiselton, 2009,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주 1)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나오는 “설화”는 칠십인역(70인역) 율법 번역의 기원을 전설적·기적적으로 꾸며 서술한 이야기, 즉 알렉산드리아에서 모세오경이 번역되었다는 일종의 기원 신화.

-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위해 유대 율법(모세오경)의 그리스어 번역을 원한다는 이야기.
- 왕이 예루살렘 대제사장 엘리아살에게 사신을 보내어 율법을 번역할 학식 있고 경건한 사람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12지파에서 6명씩, 모두 72명의 장로가 선발되어 이집트로 간다는 줄거리.

- 장로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 왕이 며칠 동안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각종 철학·종교적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지혜를 시험한다는 장면이 나옴.
- 이후 이들이 섬(전통적으로 파로스나 인근 섬으로 이해됨)에 머물며 일정 기간(전승에 따라 72일 등) 번역을 하고, 최종적으로 서로 독립적으로 번역했음에도 번역본이 기적적으로 동일하게 일치했다고 전해지는 부분이 설화의 핵심.

- 이 이야기는 역사 보고라기보다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가 사용하는 그리스어 율법 번역본의 권위를 높이려는 신화적 장치로 이해.
- 왕의 후원, 제사장의 공식 파송, 12지파 대표, 기적적 일치 등의 모티프를 통해 “이 번역은 하늘이 보증한 정경적 번역”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아폽크리팔한 전승으로 평가.

- 편지는 기원전 3세기 사건을 묘사하지만 실제 집필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작가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 학계 다수는 편지에 나오는 설화적 요소(72인, 72일, 기적적 일치 등)를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칠십인역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위한 후대의 문학적 구성으로 간주.


아리스테아스(Aristeas)란, 칠십인역(70인역)의 번역 배경을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명목상 필자. 이 편지는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 시대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위해 히브리어 성경(모세오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편지의 내용상 아리스테아스는 프톨레미 2세의 관리로, 왕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율법서 번역을 요청하는 사신으로 등장.

그러나 현대 학계는 이 편지가 실제 아리스테아스라는 실존 인물이 쓴 것이라기보다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가 70인역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후대에 쓴 문학적·전설적 서사로 보고 있음. 즉, 아리스테아스는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칠십인역의 신화적 기원을 전하는 서사 속의 등장인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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