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II-5권 『외로움의 습격』 김만권

시민도서선정단 3-4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김만권의 『외로움의 습격』



0. prologue


한 정치학자는 21세기를 ‘외로운 세기’라고 명명합니다.

그렇듯 현대 사회는 역설적으로 고립의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로움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심리적 문제에 머물지 않고 인류 공동체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조건이 된 모양새입니다. 영국에 이어 일본까지 이른바 ‘고독부 장관’을 임명한 현실은, 외로움이 이제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다루어야 할 정치적 의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준 듯 합니다.


김만권은 그의 저서 『외로움의 습격』에서 이러한 시대적 징후를 철학적·사회정치적으로 정면에서 분석합니다. 그는 외로움이 인간의 본래적 감정이 아니라, 사회 변동 속에서 새롭게 ‘학습된’ 감정이라고 진단하며, 개인적 위로나 단발성 처방들을 거부합니다.


외로움은 개인의 의지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능력주의가 결합된 구조적 조건 속에서 탄생한 사회적 재앙의 징후로써, 그 해법 또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와 제도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접근은 전통적인 국가 복지의 안전망으로는 이러한 비물질적 소외와 고립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무한경쟁과 능력주의가 낳은 이 구조적 실패 앞에서, 외로움을 개인의 감정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이 시스템 자체를 성찰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일, 바로 거기에 정치철학의 책임과 사명이 놓여 있다는 것이죠.



1. '외로워진다'는 것


김만권은 외로움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호출합니다. 고독과 외로움을 엄격하게 구분하면서 말입니다. 이 구별은 외로움 문제를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철학의 차원에서 사유하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먼저 고독(Solitude)은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상태입니다.

타인으로부터 물러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며, 사유를 확장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자아는 바로 이 고독 속에서 비로소 성립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외로움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타의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자아가 붕괴되고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된 병리적 조건인 것입니다.

핵심은 정체성의 확인 가능성에 있습니다. 아렌트가 강조하듯, 정체성은 고독 속에서 형성되지만, 그 정체성이 참으로 확인되는 순간은 “나와 동등한 사람과 신뢰할 수 있는 교제를 나눌 때”가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Loneliness)은 바로 이 신뢰 가능한 교제가 부재할 때 발생됩니다.

이는 곧 개인이 자신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외로움의 치명적 폐해는 관계의 단절 그 자체에 있답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결국 공동체의 토대마저 잠식하는 위협으로 작동되기 때문이죠.


김만권이 외로움의 핵심을 ‘쓸모없음’으로 규정하면서 아렌트를 인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개인을 오직 경제적 효용성과 성과로만 평가하는 순간,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주체성과 존재감은 박탈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좌절감은 개인에게는 극심한 무력감을 낳고, 그 결과 공동체를 지탱해 온 ‘공통감각’은 붕괴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균열 위에서 포퓰리즘이나 전체주의적 유혹이 자라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로움은 결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공적인, 정치적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입니다.



2. 외로움이 '디지털'을 만날 때


저자는 외로움이라는 질병이 현재의 디지털 문명 속에서 어떻게 구조적으로 형성되고, 또 어떻게 심화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되었던 디지털 기술은, 역설적으로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이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메커니즘은 단순한 ‘디지털 격차’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는 세 가지 구조적 분배 격차에 의해 작동되죠.


첫째는 경이적인 발전 속도에 따른 뒤처짐입니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사회 제도와 개인의 적응 능력을 압도하면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이들은 심각한 소외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발전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낙오를 구조적으로 생산하는 장치가 됩니다.


둘째는 네트워크 효과에 의한 부의 집중입니다. 소수의 플랫폼과 기술 우위가 승자 독식 구조를 강화하면서, 부와 기회는 극소수에게 집중되고 분배의 불균형은 가속화됩니다. 연결될수록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신화와 달리, 실제로는 연결의 과실이 극단적으로 편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됩니다.


셋째이자 가장 직접적으로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요인은 중숙련 일자리의 붕괴와 저숙련 일자리의 확산입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중간 숙련 노동을 대체하는 반면, 고숙련 전문직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독점합니다. 그 결과 다수의 사람들은 저임금·저숙련 노동, 이른바 ‘컨시어지 경제’나 ‘고스트 워크’로 밀려나며, 노동의 사회적 가치 자체가 급격히 축소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정은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들고, 외로움의 핵심 원인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죠.


게다가 플랫폼 경제는 공동체적 관계를 결정적으로 와해시킵니다. 플랫폼은 언제든 연결될 수 있고, 언제든 일을 찾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관계는 대부분 일회적이며 제공되는 노동의 질 또한 낮습니다. 사람들은 관계 유지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플랫폼을 선택하지만, 그 대가로 신뢰와 지속성에 기반한 공동체적 관계는 사라지고, 피상적 연결이 이를 대체해 버리고 마는 겁니다.


이처럼 기술은 관계의 질을 양으로 대체하고, 인간의 노동과 존재 가치를 소모적으로 전환시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점점 더 고립된 존재, 김만권이 말하는 소위 론리 사피엔스로 변모되어버리는 것입니다.



3. 데이터가 '편견'을 만날 때


기술의 확산은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형태의 감시와 분류 체계를 탄생시켰고, 이는 외로움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을 형성한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입니다. 김만권은 현대 사회가 인간을 점점 더 객관적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하며, 빅데이터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존재 가치를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합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축적·분석되는 방대한 데이터는 이미 사회에 내재해 있던 편견—인종, 성별, 연령, 학력, 출신 배경—을 그대로 반영하고, 이를 기술적 객관성이라는 외피로 정당화시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통계와 알고리즘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분류되고, 기존의 차별은 오히려 기술의 권위를 빌려 더 공고해진다는 겁니다. 빅데이터는 학연과 지연, 성별과 같은 인간 사회의 낡은 편견조차 버리지 못한 채, 그것을 시스템 속에서 반복·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거죠.


이러한 편향된 분류 체계는 특히 취약 계층에게 더욱 가혹하게 적용됩니다. 빅데이터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엄격하고, 이미 노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냉혹한 기준을 들이댑니다. 이는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이 기술 시스템을 통해 재현되고 강화되었던 전형적 사례로, 기술이 더 이상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계층 차별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비인간적이고 편향된 평가는 하위 계층의 노동 가치를 절하하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체성의 기반을 박탈한다는 거죠. 그 결과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상태를 넘어, 제도와 시스템이 생산하는 구조적 조건으로 확장되어집니다. 저자가 “빅데이터는 인간을 넘어 지구마저 외롭게 만든다”고까지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은 감시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서, 기술 시스템이 인간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평가 절하하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이제 개인의 내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가치화하는가라는 정치적·윤리적 선택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4. 외로움이 '능력주의'를 만날 때


저자는 외로움의 구조적 원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능력주의를 지목합니다.

능력주의는 모든 성취가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서 비롯되었다는 믿음을 주입하고, 바로 그 믿음이 공동체를 잠식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합니다. 이 논리는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진 이들이 ‘능력’이라는 명분 아래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현실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파괴적인 결과는 ‘실패’에 가해지는 도덕적 폭력입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곧바로 ‘능력 없는 자’, ‘게으른 자’로 낙인찍히고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저자는 이를 굴욕의 정치라고 명명하는데, 이러한 굴욕감과 수치심은 도움이 절실한 순간에도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손을 내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사회적 도움 요청이 좌절되고, 타인에게 기댈 수 있다는 신뢰 자체가 붕괴되는 지점에서 능력주의는 개인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외로움의 조건을 완성하는 겁니다. 저자는 바로 이 굴욕의 정서가 우파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심리적·정치적 토양이 된다고 분석합니다.


더 나아가 능력주의의 해악은 실패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능력주의는 ‘능력 역시 상속된다’는 사실을 교묘히 은폐하는 동시에, 성공한 이들에게조차 끝없는 경쟁과 자기 증명의 압박을 강요함으로써 그들 역시 소진시킵니다. 김만권이 중산층마저 외로워진다고 진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며, 계층을 가로지르는 연대의 토대를 허물어뜨립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고용 신분 사회’를 고착화시키고, 젊음·1인 가구·저소득이라는 조건이 중첩된 청년 세대의 외로움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처럼 능력주의는 개인의 성취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고 외로움을 구조화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외로움의 습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외로움이 구조적 위협이라면, 그 해법은 결코 개인에게만 떠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개인에게 “인공지능이 못 하는 일을 고민해 보라”, “창의력을 더 길러 보라”는 식의 조언은 자기계발서적 수준의 무책임한 처방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그것은 결국 디지털 격차와 능력주의라는 지배적 질서를 그대로 수용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해법은 개인의 각성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함께 모색하는 대답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저자가 보기에 위기의 시대에 정치철학의 임무란, 불안에 노출된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설계하고, 사람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첫째, 사회·문화적 대안, 곧 공통감각의 회복입니다. 궁극적으로 외로움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가치의 회복이 필요하는 논리입니다. 저자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경청의 문화’를 사회적으로 형성하고, 이를 시민 교육의 핵심 과제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더 나아가 공감과 역지사지의 정신을 토대로, 함께 살아가는 정책과 문화적 토양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둘째, 경제적 시스템 대안, 곧 분배 격차의 완화입니다. 외로움의 밑바탕에 놓인 ‘쓸모없음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저자는 기초자산에 기반한 ‘생애 주기 자본금’과 기본소득의 발상을 확장한 ‘인생 위기·전환 대응 자금’을 제안합니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최소한의 자산과 소득을 보장받음으로써 사회로부터 완전히 밀려나 고립되는 것을 막고,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시키지 않는 보호 장치로 기능합니다.


셋째, 권리적 시스템 대안, 즉 디지털 격차에 대한 대응입니다. 기술 발전이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인 만큼, 이에 대한 권리 차원의 개입은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디지털 시민권’의 제정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기술 발전에서 소외된 이들을 사회적 안전망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고자 합니다. 이는 디지털 소외와 빅데이터의 편향적 평가가 낳는 외로움에 대한 직접적이고 제도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 인간의 정신이 깨어나 공통감각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결국 파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경고를 덧붙입니다. 동시에 그는 외로움에 주목하는 일이야말로 공동체적으로 성숙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임을 분명히 합니다. 외로움은 회피해야 할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묻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결론: 외로움으로부터 공동체로


김만권의 『외로움의 습격』은 외로움을 개인의 내면적 고통이라는 틀에서 끌어내어, 사회 구조 전체를 진단하는 문제로 확장시키며 공동체의 재건을 요구하는 급진적 질문을 던지는, 21세기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비평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철학이 결코 관념에 머무는 학문이 아니라,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사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외로움이라는 철학적 화두를 통해 현대 사회의 핵심 병리를 해부하고, 나아가 구체적인 정책적 상상력까지 제시함으로써 정치철학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보고서의 출발점에 놓인 저자의 개인적 고백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외로운 세계’를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는 고백은 그저 사적 감상에 머물지 않아 보입니다. 내 아이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아이와 함께 살아갈 다른 아이들, 다시 말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은 외로움 문제가 곧 공동체적 책임의 문제임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현실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바로 그 지점에서 철학적 실천은 출발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외로움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그에 상응하는 해법의 모색은,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의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우리 사회와 이 시대에 팽배한 외로움에 정면으로 주목하라는 것과, 그것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로 끌어안으라는 것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사회가 다시 공동체적으로 성장하는 시대를 열어갈 첫걸음이 시작될 것이라는 제언 말입니다.


외로움이라는 현상을 출발점으로, 한 철학자가 자신의 인식과 진단을 토대로 사회에 나타난 병리를 분석하고, 그 해소 방안을 철학적 사유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의미 있고 인상적인 작업이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외로움을 개인의 감정 차원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끌어올린 문제 설정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독자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다만,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이 곧바로 유일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외로움이라는 복합적 현상에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접근과 상이한 처방이 공존할 수밖에 없고, 이 책이 제시하는 길 또한 그중 하나의 철학적 제안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 해법을 곧바로 수용하기보다, 충분한 숙고와 비판적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4장까지 제시되는 문제 진단에는 깊이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외로움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심화되는지에 대한 분석은 설득력이 높았고, 현재 사회의 병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장에서 제안되는 해법, 특히 경제적 접근의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적지 않은 검토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상이 앞서는 면이랄까요, 현실 조건과의 간극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 책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시민적 토론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문제 제기와 진단의 차원에서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지만, 해법까지를 포함해 사회적 합의의 기초로 삼기에는 아직 '유보적'이라는 판단입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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