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II-6권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시민도서선정단 3-4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김애란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의 소설들



0. Intro...


한국 문학의 지형도에서 김애란이라는 이름은 작가를 넘어, 하나의 현상이자 시대의 기록이라는 평입니다.

2002년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등단한 이후, 그는 한국 사회의 가장 예민하고도 취약한 신경망을 특유의 절제된 문장과 정교한 문학적 언어로 포착해 왔습니다.


2025년 6월 20일,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전작 『바깥은 여름』(2017) 이후 8년 만에 독자 앞에 놓인 작품집입니다.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은, 202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 고립, 관계의 균열과 같은 내밀한 풍경들을 서사화해 내고 있습니다.


그이의 그러한 문학적 성취와 작품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김애란의 문학


김애란은 2000년대 초반, IMF 외환위기 이후의 불안정한 경제 구조 속에서 성장한 청년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며 등장한 작가로 일컬어집니다. 초기 작품들이 협소한 자취방과 고시원, 반지하를 무대로 삼아, 가난의 비루함을 명랑한 재치와 활력으로 돌파해 나갔다면, 그 시기의 김애란 문학은 분명 ‘방’의 문학이라 부를 만했습니다.


이번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좀 더 확장된 시선을 보여줍니다. 무게중심을 ‘방’에서 ‘집’으로, ‘청춘’에서 ‘어른’으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평론가 신형철은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라고 평한 대목은 작가의 사유 지평을 정확히 짚어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서술 시선의 변화입니다.

김애란은 더 이상 1인칭 주인공의 자아에 기대지 않습니다. 대신 3인칭 관찰자의 위치에서 한 걸음 물러서, 공동체의 삶을 조망합니다. 그리고 그 거리 속에서, 이 세계는 과연 안녕한가, 우리는 서로에게 안녕을 묻고 있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작가가 지난 8년간 천착해 온 문제의식과 문학적 궤적을 집약한 소설집입니다. 2022년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좋은 이웃」과 같은 해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홈 파티」를 비롯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치는 ‘공간의 이동’입니다. 인물들은 누군가의 공간에 초대되고, 방문하고, 때로는 침입하며, 결국에는 도주합니다. 이 일련의 움직임을 통해 작가는 관계의 친밀함과 균열, 그리고 그 이면에 놓인 계급의 문제를 집요하게 탐색합니다.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은 더 이상 안온한 쉼터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삶의 조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식으로 기능합니다.


특히 작가는 거주지에 따라 인간의 ‘종’ 자체가 나뉘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 사회의 서글픈 단면을, 과장 없이 차분하게, 그러나 서늘할 만큼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이 작품들은 큰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집과 동네, 이웃이라는 일상의 풍경 속에 이미 깊숙이 각인된 불평등과 위계를 조용히 드러냅니다. 그 점에서 『안녕이라 그랬어』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가장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가장 또렷하게 증언하는 소설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공간


이 소설들에서 공간은 더 이상 인물들이 잠시 머무는 물리적 배경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인물의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아비투스—예를 들어 계층 간 미묘한 말투, 소비 패턴, 공간 사용 습관 등을 포착해 현대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갈등—를 응축해 드러내는 복합적인 기호이며, 삶의 조건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언어가 됩니다.


특히 202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격차’는 단순한 자산 차이를 넘어 개인의 성취와 실패를 가르는 사실상의 절대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김애란은 이러한 현실을 과장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인물들이 거주하는 공간 그 자체를 통해 조용히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 결과, 집과 동네는 더 이상 공동체를 이루는 토대가 아니라,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며 거리를 재는 잣대가 되는 것이죠.


이러한 공간의 분절은 결국 공동체 감각의 붕괴로 이어지고, 한 측면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는 감각, 다시 말해 끊임없는 인정 투쟁 속에서의 패배감으로 인물들을 몰아넣습니다. 김애란의 공간 서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상실과 불안을 가장 날카롭게 가시화하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고 하겠습니다.


► 「홈 파티」 — (2022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

수록작 「홈 파티」는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동기들이 주최하는, 겉으로는 세련되고 우아한 사교의 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이연은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수많은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온 인물로, 스스로를 편견 없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수양된 주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티에서 오가는 대화들은 그 믿음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뜨립니다.


파티의 담화는 은근하지만 노골적인 방식으로 계급적 경계를 긋습니다. 그중에서도 보육원 출신 아이들이 자립정착금으로 명품 가방을 산다는 이야기에 대해, 이연이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은 작품의 핵심적인 성찰을 압축합니다. 이 말은 연민처럼 들리지만, 실은 가난을 ‘관리되고 은폐되어야 할 상태’로 전제하는 시선임을 드러냅니다.


이어 이연이 오 대표의 팔십 년 된 빈티지 잔 세트를 실수로 깨뜨렸을 때, 오 대표가 보이는 태연하고 자애로운 용서는 문제를 더욱 날카롭게 만듭니다. 그 용서는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계급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순간 이연이 느끼는 깊은 수치심은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 결코 건너갈 수 없는 계급 간 거리의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이연은 파티라는 안전한 공간 한가운데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본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맞닥뜨립니다. 「홈 파티」는 타인을 이해한다고 믿는 태도 자체가 얼마나 쉽게 계급적 특권 위에 세워질 수 있는지를 차분하지만 냉정하게 드러내며, 김애란 문학이 도달한 윤리적 성찰의 깊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좋은 이웃」 — (2022년 오영수 문학상 수상작)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집의 각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았던 그이의 단편 「좋은 이웃」은 2020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첨예한 문제, 곧 아파트와 부동산이라는 현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서울의 오래된 전셋집에 사는 주희는 장애 학생 시우를 가르치며 자신의 일을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집값이 폭등하고 전세 만기가 다가오자, 그가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윤리적 확신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 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 욕구 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 (141쪽)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운 주희의 이 고백은 한 개인의 흔들림을 넘어, 오늘의 기성세대가 마주한 도덕적 파산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타인의 욕망은 탐욕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욕망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되는 이 이중 잣대야말로, 신자유주의적 경쟁 질서에 깊이 포획된 현대인의 초상이랄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특히 주희의 남편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장면을 통해, 한때 삶의 기준이자 윤리적 나침반이었던 가치들이 자본의 논리 앞에서 얼마나 손쉽게 폐기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독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아저씨."
신애는 낮게 말했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이상하게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희미한 노란 불빛 아래서 스무 살 무렵의 남편이 조심스레 밑줄 그은 부분을 가만 쳐다봤다. 내 배우자가 오늘 폐지 상자에 넣은, 나 역시 한때 사랑해 마지않은, 1970년대 한 작가가 슬픈 마음으로 쓴 소설을. 그러자 내 안에서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말이 쏟아져 나왔다.(140쪽)


결국 이 부부가 상실한 것은 전셋집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이라는 자각입니다. 「좋은 이웃」은 집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밀어내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뼈아프게 묻는 작품이었던 겁니다.



3. 음악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는 음악과 언어, 그리고 작별의 의미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서사의 리듬감을 살린 작품입니다. 어떤 평론가의 글을 보니 김애란의 이 작품을 클래식 음악의 소나타 형식을 서사 구조로 끌어와, 감정의 고조와 해소를 탁월하게 형상화했다고 평가하더군요. 공감이 가는 해석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 「안녕이라 그랬어」

이 소설의 핵심 모티브는 김 딜과 로버트 폴라드가 커버한 「Love Hurts」입니다. 7년 전, 은미는 동거인이었던 헌수와 이 노래를 듣다가 가사 “I’m young”을 한국어의 “안녕”으로 잘못 듣습니다. 이 언어적 오해는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소통의 한계주관적 해석의 불가피성을 상징합니다.


음악의 1:28 부분에서 예의 그 '안녕'이 발음됩니다...^^


헌수는 이 곡을 두고 “평소 자기 고통을 남에게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부른 이별 노래”라고 말합니다. 이 설명은 어머니의 병환을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며 사회적 삶이 붕괴되고, 결국 헌수와의 관계마저 끝내야 했던 은미의 침묵과 내면의 고통을 정확히 대변합니다.


현재의 은미는 온라인 영어 회화 플랫폼 에코스에서 로버트라는 강사와 수업을 합니다. 이 가상공간에서 은미는 자신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영어라는 낯선 언어로 번역해 나갑니다. 모국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슬픔이 영어의 단순한 문장으로 축약될 때, 역설적으로 은미는 자신의 상처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합니다.


수업 중 로버트가 한국어 ‘안녕’의 의미를 묻는 장면은 소설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은미는 만남과 이별에 동시에 쓰이는 이 단어의 모호함을 “그냥 안다”고 답합니다. 이는 정확한 정의를 넘어서는 상황적 공감의 시도입니다. 은미와 헌수, 로버트는 모두 부모의 병환이나 죽음이라는 인간적 취약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 공통의 경험은 언어와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는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는 소나타 형식입니다. 한양대 음악연구소장 정경영의 분석에 따르면, 이 소설은 소나타의 각 단계를 매우 충실하게 서사에 이식하고 있습니다. (참고, 김애란 음악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듣기)


먼저 제시부(Exposition)입니다. 주인공 현수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 즉 ‘제1영역’과 ‘에코스’로 상징되는 가상공간, 곧 ‘제2영역’이 나란히 제시되며 앞으로 전개될 긴장의 기본 동기를 형성합니다.


이어서 발전부(Development)에서는 로버트와 로즈 등 다른 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분절되고 불안정하게 변주됩니다. 서사는 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고 파편화되며, 소나타에서 주제가 해체되고 충돌하듯 인물들의 언어와 관계 역시 흔들립니다.


재현부(Recapitulation)에서는 다시 중심 주제로 돌아옵니다. 로버트의 아버지 이야기와 현수의 “I’m young”이라는 설명을 통해 앞서 흩어졌던 긴장은 점차 해소됩니다. 제시부의 핵심 동기가 변형된 형태로 귀환하면서 서사는 균형을 회복합니다.


마지막 코다에서 ‘안녕’은 인사도 이별도 아닌, “부디 평안하시라”는 제3의 의미로 승화됩니다. 이는 소나타의 여운처럼, 서사가 끝난 이후에도 독자의 내면에 오래 남는 울림을 남깁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작가는 ‘안녕’이라는 단어의 본질적인 애매함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고,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어른의 작별 방식을 정교하게 완성합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음악처럼 시작되고, 흔들리며, 다시 돌아와, 조용히 끝을 맺습니다.



4. 상실


김애란의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상실의 상투성’이라 부르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위의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231쪽)


이 문장은 상실을 대하는 김애란 문학의 태도를 정확히 드러냅니다. 상실을 특별한 비극으로 과장하거나, 서사의 클라이맥스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그냥’ 찾아오는 일임을 인정하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삶이 상투적인 것처럼, 죽음 역시 상투적이며, 그 반복 앞에서 감정을 과시하기보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예의라는 인식입니다.


김애란은 상실을 독점적인 고통이나 서사의 장식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상투성 자체를 정직하게 응시함으로써, 상실을 견디는 가장 성숙한 태도—과잉되지 않은 애도, 과장되지 않은 슬픔—를 보여줍니다. 이 반복되는 상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태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이번 소설집은 2020년대의 ‘어른됨’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사유하게 만든다고 할 것입니다.

— 사실 그래서 나,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순간 "나도"라고 답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 정말 반갑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246쪽)


「레몬케이크」의 주인공은 퇴사 후 전 재산을 털어 책방을 열지만, 어머니의 병환과 냉혹한 경영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자신의 고통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자연 앞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연이 여전히 무심한지를 확인하러 나섭니다. “세상에 고통을 해결해 주는 자연 따위는 없다”는 깨달음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고통을 제거해야 할 예외 상태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관조의 출발점입니다. 자연의 무심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의 고통을 과장 없이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이물감」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신체 증상이 주인공이 체감하는 사회적·정서적 불편함을 상징합니다. 은행원으로 살아오며 얻게 된 이 증상은 나이 들어감의 징표이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훈장처럼 제시됩니다. 그는 자신이 후배들에게 ‘꼰대’로 인식될 수 있음을 예리하게 자각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곱씹습니다. 동시에, 그 거리를 잠시 구겨버리고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두 작품에서 김애란은 고통과 불편을 제거해야 할 문제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 다시 말해 상처와 노쇠, 어긋남을 포함한 삶 전체를 감당하는 어른의 태도를 조용히 제시합니다. 고통 앞에서 해결책을 찾기보다, 그 무게를 인식하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들은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마지막 단편 「빗방울처럼」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삶을 통해, 부동산이라는 기준에 의해 ‘하급지’로 밀려난 이들의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인물들은 자신이 어느 순간 ‘상급지’와 ‘하급지’라는 냉혹한 언어 속에서, 마치 개천의 물고기처럼 분류되고 선별되는 존재가 되었음을 뼈아프게 자각합니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그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김애란은 이 무력한 대기 상태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 단순한 빈곤이나 상실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임을 또렷이 증언합니다. 이 기다림은 희망을 전제로 한 인내가 아니라, 희망조차 유예된 상태에서 버텨야 하는 시간이며, 작가는 그 시간을 빗방울처럼 차분하지만 집요하게 독자의 마음에 떨어뜨립니다.



5. 평론가들의 시선

김애란의 8년 만의 신작을 향해 평단은 한 목소리로 찬사를 보냈더군요. 초기작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언어가 훨씬 깊고 성숙한 차원으로 진화했다는 점에 특히 주목했습니다.


신형철은 이 소설집의 뒤편에 실린 글을 통해 김애란을 이제 ‘소설가 이전에 사회학자’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소설은 공동체로 하여금 자기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의식의 부패를 막는 하나의 약처럼 기능한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경제적 인간’으로 환원된 현대인의 내면을 포착하는 재현 능력은 지금의 시대 조건에 가장 정밀하게 조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김애란의 '재현'에 대해서는, 누군가를 사회학자라고 규정할 자격이 사회학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책의 서술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이 "계급의 표지"(171쪽)에 특히 잘 반응하는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화자본'이나 '아비투스' 같은 학술 개념 없이도 그와 관련 있는 사회학적 징후들을 포착하는데 뛰어나다. (311쪽)


신승민 평론가는 이 소설집이 보여주는 불안과 안녕의 변주가 아름다운 이유를, 작가의 관조의 힘에서 찾습니다. 세상사와 인간 군상을 지나치게 들뜨지도, 쉽게 절망하지도 않고 차분히 바라보는 태도, 그 일희일비하지 않는 시선이 작품 전체에 깊은 울림을 부여한다는 분석입니다.


또한 김유리 PD는 이 작품들을 두고, 우리 자신의 얼굴을 닮은 인물들을 통해 ‘뒤늦은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라고 평합니다. 서늘하면서도 반짝이는 이 단편들은 독자로 하여금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우리 모두의 안녕을 묻는 인사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가 품고 있는 중의적인 무게를 독자 앞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그것은 반가운 만남의 인사이자, 헤어짐의 작별이며, 무엇보다도 상대의 평안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말입니다. 작가는 공간과 자산을 둘러싼 노골적인 계급투쟁의 한가운데서도, 우리가 여전히 타인의 안녕을 묻고 건넬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 로버트.
— 응?
—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 고도 또 다른 의미가 있어.
— 어떤?
—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
— 그렇구나.
로버트의 순수하게 활짝 벌어진 동공을 보자 내가 생각보다 이 이별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254쪽)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잃었거나 내려놓은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무엇만큼은 끝내 지켜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사랑과 이해의 형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는, 삶에 대한 마지막 책임감처럼 보입니다. “돈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별게 맞다”는 냉정한 인식 위에서, 작가는 돈의 논리에 잠식되지 않으려 애쓰며 자신의 실존을 지켜내는 개인들의 분투를 담담하지만 존엄하게 그려냅니다.


결국 김애란이 건네는 이 인사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것입니다. 삶은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름’의 상태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이 있음을 작가는 소설로 증명합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상실이 반복되는 삶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건네는, 서늘하면서도 깊이 따뜻한 위로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 평가입니다만, 그간 검토해 온 18권의 평가 대상 도서 가운데 김애란의 소설집이 단연 수위였습니다.

슬픔을 꼭 "슬프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아픔을 굳이 "아프다"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슬픔과 고통을 감지합니다. 때로는 웅변적인 언어보다, 담담한 수필의 한 문장이 훨씬 깊은 지점에서 감정을 흔들어 놓는 경험을 우리는 삶 속에서 반복해 왔습니다.


김애란이 얘기하는 상실과 분리의 고통에 대한 '재현(re-present)'은 그 감각을 더 선명하게 다시 나타나게 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우리 시민들 또한 그가 전하고자 하는 공감의 언어를 풍성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을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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