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II-4권 『슬픔의 틈새』 이금이

시민도서선정단 3-4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슬픔의 틈새 — 조선 - 일본 - 사할린으로 이어진 디아스포라 한인, 그 80년의 기록



0. Intro...

— 기억


2025년, 광복 80주년이라는 상징적 시점에 출간된 이금이의 장편소설 《슬픔의 틈새》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오랫동안 유예되고 은폐되어 온 비극, 곧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집요하게 천착해 온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완결편이라는 평가입니다.


이금이는 국가 중심의 거대 서사 보다는, 역사가 포착하지 못한 개인의 생활사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특히 이중, 삼중의 억압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 온 여성들의 목소리에 더 깊은 관심을 뒀습니다.


소설은 1943년 일제 말기, 강제 징용된 아버지를 찾아 사할린으로 향한 한 가족의 여정에서 출발해, 해방과 분단, 냉전과 데탕트를 거쳐 2025년에 이르기까지 80여 년의 시간을 펼쳐 보입니다. 이 긴 시간에 대한 단순한 연대기적 접근이 아니라, 국가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으로 인해 종국에는 ‘무국적자’로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삶을 지속해 왔는가에 대한 치열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금이의 소설을 통해 바로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소설이 지칭하는 지명을, 지도를 찾아가며 꼼꼼히 확인하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썼던 작가는 오죽했을까 싶은 마음을 가지면서 말이죠...



1.

— 맥락


이중 징용 — 조선 - 사할린, 다시 일본으로

소설의 주요 배경인 사할린은 흔히 ‘망각의 섬’, ‘귀환이 봉쇄된 땅’으로 불려 왔던 모양입니다.

1930년대 후반, 일제는 전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조선인들을 사할린의 탄광과 벌목장, 비행장 건설 현장으로 강제 동원했습니다. 작품의 출발점인 1943년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로, 수탈과 강제 징용이 극단에 이르렀던 시기입니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역사적 증언은 이른바 ‘이중 징용’ 문제입니다.

주인공 단옥의 아버지 만석은 1940년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데 이어, 전쟁 말기인 1944년 다시 일본 본토의 탄광으로 재징용됩니다. 이는 허구적 설정이 아니라, 당시 사할린에 체류하던 조선인 남성들에게 실제로 빈번하게 발생했던 역사적 현실이었다고 하는군요. 문제는 그 결과입니다. 남성 가장의 이중적 부재는 곧바로 여성과 아동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고,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공동체를 사실상 해체시켜 버렸던 겁니다.


작가는 이 ‘이중 징용’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할린 한인 문제가 단순한 강제 이주의 문제만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가족의 분리와 재결합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던 제국의 폭력이었고, 생활인의 삶을 장기적으로 파괴해 버린 체계적 기획의 산물이었던 겁니다.


《슬픔의 틈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사할린을 단순한 역사적 장소만이 아니라, 귀환이 차단된 자들의 삶의 현장 그 자체를 드러내며, 국가 폭력이 한 개인의 생애를 어떻게 영구히 뒤틀어 놓았지를 집요하게 표출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은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오히려 고립의 시작이었던 듯합니다.

일본은 자국민만을 우선적으로 귀환시키는 정책을 시행했고, 소련은 전후 복구를 위한 노동력 확보를 이유로 한인들의 출국을 통제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오랜 시간 이들의 존재를 끌어안지 못하고, 국적법을 비롯한 법적 보호 장치에서도 사할린 한인들은 사실상 배제시켰던 겁니다.


이로써 소설 속 인물들은 일본 국적의 상실은 물론 소련 국적마저도 부여받지 못한 채, 돌아갈 ‘조국’조차 명확하지 않은 무국적자로 전락합니다. 이 법적·정치적 공백 상태야말로 작품의 제목인 ‘틈새’가 가리키는 핵심 조건인 것입니다. 그들은 제국과 국가, 이념과 체제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여 존재 자체가 유예된 사람들, 다시 말해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2.

— 서사 구조


소설은 모두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는 주인공 주단옥의 생애와 사할린 한인 역사의 결정적 변곡 시점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1부

소제목인 「따뜻한 겨울 1943년」과 「서늘한 여름 1944년」은 계절의 역설을 통해 전쟁의 비정함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떠나온 고향은 따뜻해야 할 공간이지만 상실의 기억으로 얼어 있고, 가족이 잠시나마 함께 모였던 여름은 아버지의 재징용으로 인해 오히려 서늘한 공포의 계절이 되어버리는 식이죠. 이 시기는 단옥이 ‘다래울의 소녀’에서 ‘식민지 이주민’으로 정체성이 강제 전환되는 국면이며, 이후 전개될 삶의 균열이 예고되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2부·3부

이 부분은 귀환이 좌절된 이후, 사할린이라는 ‘임시 거처’가 점차 ‘삶의 터전’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혼담(1950)」, 「결혼(1951)」과 같은 장면들은 거대한 역사적 비극 속에서도 개인의 일상과 생애가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는 사실을 그려냅니다. 어느 학자의 지적처럼, 이 시기의 ‘틈새’는 공백이나 정지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치열하고 자신감 있게” 삶을 구축해 나가는 역동적 공간으로 재해석됩니다. 인물들은 소련 체제 아래에서 러시아어를 익히고, 텃밭을 일구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실천을 통해 생존을 넘어 생활을 만들어 갑니다. 이는 사할린 한인을 단순한 희생자로 환원해버리지 않고, 강인한 생활인으로 조명하는 중요한 서사적 전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전개되는 4부는 단절되었던 조국과의 연결이 재개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단순한 귀환 서사나 해피엔딩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무너지는 둑(1992)」과 「뿌리」 장 등에서 50년 만의 귀환이 안겨주는 낯섦과, 사할린에 남겨두고 온 가족과 삶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교차시킵니다. 그리고 2025년 「유언」에 이르러 단옥은 자신의 삶을 실패나 상실의 연쇄로 규정하지 않죠. 단옥, 타마코, 올가라는 세 개의 이름을 통해 확장되어졌던 자아와 그 세계를 긍정함으로써, 변화된 정체성 사이의 분절된 삶을 하나의 의미 있는 일생으로 통합해 내고 있습니다.



3.

— 인물들


작가는 인물들의 이름을 통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과 변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주인공 주단옥의 이름 변화는 근현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궤적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단옥 - 야케모토 타마코 - 올가 송

주단옥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은, 역사적 강제와 삶의 선택 속에서 겹겹이 형성된 세 개의 이름으로 구성되어진 존재입니다. 이 이름들은 서로서로가 단옥의 내면에서 중첩되고 충돌하며 공존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주단옥은 1943년 이전, 충남 공주 다래울에서 형성된 원초적 자아입니다. 한국어, 한국적 정서, 고향에 대한 감각이 이 이름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고향에 동생 영옥을 남겨두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기억은, 단옥이 평생 짊어지고 가는 부채감이자 상실의 원형으로 남습니다.


야케모토 타마코는 일제강점기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 교육을 통해 덧씌워진 식민지적 자아입니다. 단옥은 학교에 다니며 일본어를 배우고 교사를 꿈꾸지만, 이는 꿈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적응의 전략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분열시키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이기도 했습니다.


올가 송은 해방 이후 소련, 그리고 러시아 사회에 적응하며 획득한 세 번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무국적 상태에서 벗어나 현지에 뿌리내린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타자의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단옥의 주체적 결단이 담겨 있어 보입니다.


이 세 개의 이름은 단절된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삶 속에서 축적된 시간의 층위들입니다. 작가는 단옥이 타의에 의해 이름을 바꿔야 했던 역사적 조건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이름들 안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단옥은 단순한 ‘피해자’로 고정되지 않고, 억압의 틈새 속에서도 스스로를 재구성해 온 능동적 디아스포라 주체로 형상화됩니다.


여성 연대 — 돌봄

《슬픔의 틈새》가 기존의 소위 민족주의적 역사소설과 구별되는 지점은, 역사의 동력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여성들의 연대에서 포착한다는 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징용과 전쟁, 정치적 폭력으로 남성들이 부재하거나 무력화된 자리에서, 삶을 지탱하고 생명을 이어간 주체는 다름 아닌 여성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힘에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먼저 덕춘과 치요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단옥의 어머니 덕춘과 일본인 이웃 치요―유키에의 어머니―는 피지배국과 지배국이라는 적대적 위치에 놓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남편의 부재, 생계를 위협하는 가난이라는 공통의 현실은 이들을 이념과 국적 이전의 자리로 이끕니다. 두 여성은 서로의 고통을 돌보고 버티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이 개인의 삶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동시에 이 관계는 고통받는 이들의 연대가 국경과 적대의 선을 넘어설 수 있음을 조용히, 그러나 매우 단호한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단옥과 유키에의 우정 역시 이 소설의 핵심적인 여성 연대의 형식입니다. 유키에는 일본인 아버지가 아닌 조선인 계부 정만과 함께 사할린에 남겨진 인물로, 패전 이후 일본인 공동체에서도, 조선인 공동체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중의 타자’가 됩니다. 단옥과 유키에의 관계는 바로 이 배제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들의 우정은 상처의 교환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며, 서로를 ‘틈새’에서 끌어올리는 구원의 서사로 작동합니다.


소설은 또한 고향에 남겨진 이들과 사할린에서 새로 태어난 세대의 삶을 교차 배치함으로써 디아스포라적 균열을 드러냅니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기억을 간직한 세대와 기억조차 갖지 못한 세대를 병치함으로써, 단절이 한쪽의 고통으로만 귀결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영옥은 고향에 남아 있는 존재이자, 사할린으로 떠난 가족이 언젠가 돌아와야 할 이유로 기능합니다. 그러나 50년에 이르는 시간의 공백은 혈연마저 쉽게 복원되지 않음을 냉정하게 증언합니다. 재회 이후의 자매는 더 이상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탓에, 때로는 ‘남보다 못한’ 서먹함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귀환이 곧 회복이나 화해로 이어진다는 통념을 해체하고, 단절의 시간 그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이 됨을 강조합니다.


한편 해옥광복은 사할린에서 태어난 2세대로서,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정체성 갈등을 보입니다. 해옥은 우미코, 해자, 해옥으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을 거치며 언어와 문화, 소속의 경계를 떠도는 존재가 되고, 해방의 해에 태어나 ‘광복’이라는 이름의 동생은 정작 해방된 조국에 대한 기억을 갖지 못한 아이로 성장합니다. 이들은 한반도를 기억하지 않는 세대, 다시 말해 ‘사할린 2세’로서 러시아 사회로의 동화와 한인으로서의 뿌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가 됩니다.



4.

— 주제에 대한 생각


'틈새'

소설의 제목 『슬픔의 틈새』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로서,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여러 층위의 현실과 감정을 동시에 포착하는 듯합니다.


첫째, 역사적 틈새입니다. 사할린 한인들이 놓인 자리는 일본 제국주의와 소련 공산주의, 그리고 분단 이후의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 그 어느 체제에도 온전히 귀속되지 못한 공백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경계 바깥에 놓인 채 법적·정치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무국적자’로 살아가야 했고, 바로 이 틈새가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구조적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삶의 틈새가 두 번째입니다. 작가는 고통과 억압으로 밀봉된 역사 속에서도 삶이 완전히 정지되지는 않았음을 집요하게 포착합니다. 절망의 시간들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소소한 기쁨, 사랑, 출산과 양육, 일상의 지속은 억압을 뚫고 솟아나는 생명의 힘을 증언합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꽉꽉 짓눌린 것 같지만 그 틈새를 비집고 나와서 생명이 움트고 사랑을 하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결국, 이 소설이 단순한 비극 서사가 아니라 삶의 지속에 대한 기록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심리적 틈새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할린에서 형성된 삶에 대한 애착 사이의 갈등,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적대적 구도가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은 인물들의 내면에 지속적인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감정의 회색지대, 바로 그 모호한 지점이 ‘틈새’로 명명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자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이 한 개인의 밥상과 잠자리, 다시 말해 일상의 가장 낮은 층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에 시선을 둡니다. 이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영웅적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낸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 보입니다. 소설 속에서 밥을 짓고, 옷을 기워 입히고, 텃밭을 일구는 행위는 단순한 생계의 반복이 아니라, 죽음과 소멸의 공포에 맞서 삶을 지속해 나가는 숭고한 저항인 것입니다. 이러한 미시적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도 호흡하고 있는 살아있는 현재의 고통으로 감각하게 만듭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기존 디아스포라 문학이 주로 얘기하던 ‘귀환의 열망’이나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서사를 넘어섭니다. 단옥은 끝내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설령 돌아가더라도 그곳에서 이방인의 감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이를 실패나 결핍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할린이라는 제3의 공간을 스스로의 고향으로 다시 정의하고, 그곳에서 형성된 관계와 기억을 긍정하는 결말을 통해, 식민과 분단의 상처 이후를 사유하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 지점이 정말 중요한 감상 포인트라는 생각입니다.



정리를 정리하며...


광복 80주년을 맞은 한국 사회에 소설 《슬픔의 틈새》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강제로 잊혀졌던 존재들을 향한 뜨거운 애가일 것입니다. 작가는 많은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 축적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줬습니다. 국가들은 끌려간 국민을 사실상 버렸지만, 남겨진 이들은 그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차갑고 가혹한 땅에서조차 사랑과 우정을 꽃피우고 삶을 영위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작품은 단단하게 증명합니다.


주단옥의 일대기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거울이자, 그 비극을 딛고 일어선 인간 정신의 끈질긴 존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은 우리에게 ‘민족’이나 ‘국가’라는 추상적 범주로 바라보지 말고, 그 경계의 틈새에서 신음해 온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라고 요구하는 듯합니다.


2025년의 올가 송이 된 단옥이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시선은, 분노나 원망을 넘어선 깊은 연민과 화해의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슬픔의 틈새》는 그저 그런 역사 소설을 넘어, 비어 있던 우리들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 넣는 기록물이자, 상처 입은 모든 디아스포라에게 바치는 문학적 헌사가 아닌가 싶어 집니다.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무척 반갑고 소중합니다. 거대한 사건의 윤곽만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밀하게 축적된 역사적 사실 위에 한 개인의 삶을 미시적으로 엮어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작가의 작업은, 범인인 저와 같은 독자에게도 언제나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그 완성도와 성실함 앞에서는 한없는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작품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유되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왔던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더듬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책에 기꺼이 추천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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