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도서선정단 3-4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금주 목요일로 예정된 선정단 최종 미팅을 앞두고, 그동안 마무리하지 못했던 책들에 대한 저 나름의 평가를 서둘러 정리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고, 현실적으로 앞으로 2~3일은 이 작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아무튼, 이제는 미룰 수 없는 마지막 정리의 시간입니다. 차분히, 그러나 단단하게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Intro...
현대 사회에서 빈곤을 정의하는 방식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집단적이고 연대적인 빈곤의 모습에서 벗어나, 오늘의 빈곤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 가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변화의 한복판에서 안온의 저작 『일인칭 가난』은 매우 독특한 문제 제기를 시도합니다. 가난을 ‘설명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경험으로 전면에 세우기 때문입니다.
1997년생인 저자는 태어날 때부터 약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기록합니다. 이 서사는 외부의 시선이 만들어 온 빈곤의 이미지와 언어를 돌파하며, 현대 한국 사회가 가난을 어떻게 관리하고, 소비하고, 때로는 외면해 왔는지를 드러냅니다.
가난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해 온 기존의 성공 신화적 서사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점에서, 안온의 서사는 분명한 독특성을 지닙니다. 저자는 가난을 삶의 한 과정이 아니라, 삶의 한 자리이자 결론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미화하거나 감상적으로 소비하지도 않습니다. 동정의 언어로도, 낭만의 서사로도 쉽게 환원되지 않는 태도로 말입니다.
저자의 서사는 풍요의 한가운데에서 철저히 고립된 소수자적 가난, 다시 말해 개인화된 빈곤의 실상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그것은 개인의 체험을 넘어, 복지 국가로 불리는 한국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과, 청년 빈곤이 마주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고발하는 텍스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단순한 에세이로만 소비될 수 없습니다. 저자는 가난을 ‘설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로 전환시키는 시도를 한 것이며, 문학의 형식을 빌려 결국 사회과학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 문제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
1997년은 한국 사회에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구조적 균열이 발생된 해입니다. 바로 그 해에 태어난 안온 작가의 삶은, IMF 이후 체제의 무한경쟁 구조와 맞물려 하나의 사회적 실험장이 된 듯 읽힙니다. 약 20여 년에 걸친 수급자 생활은, 빈곤이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지속적 환경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저자는 자신의 가난이 단순한 경제적 결핍을 넘어,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자살 생존자로서의 트라우마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처럼 장기화된 빈곤의 궤적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무의식적 성향 체계(아비투스)가 된 듯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빈곤의 감각은, 성인이 되어 경제적 조건이 일부 개선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그것은 “오장육부에 붙어 쉬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로 남아, 삶의 저변을 끈질기게 규정하곤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이 확인됩니다. 가난은 통장 잔고의 숫자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언어의 선택, 타인과의 거리 감각, 나아가 신체가 위협에 반응하는 방식에까지 스며드는 일종의 문화적·사회적 낙인이라는 것입니다.
안온의 서사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층위를 가시화함으로써, 빈곤을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 낸 삶의 조건으로 다시 사유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2.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멸균우유 — 복지 시스템의 몰지각적 폭력
저자는 책을 통해, 현대 우리의 복지 전달 체계가 수혜자의 존엄을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인 장면들로 드러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이른바 ‘멸균우유’ 에피소드입니다.
학교에서 제공되는 무료 우유 급식은 표면적으로는 효율적인 영양 지원 정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교실 한가운데서 이름이나 번호가 불리고, 공개적으로 우유를 받아야 하는 방식은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가난한 사람’으로 증명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지원이 아니라, 노출을 대가로 한 생존 허가에 가깝다는 설명입니다. 행정의 편의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존엄을 뿌리부터 흔들어대고 있다는 겁니다. 이 장면은 낙인효과를 일으키는 전형적인 사례로까지 읽힙니다.
아울러 복지 시스템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대신, 수혜자에게 자신의 결핍과 무능, 불행을 끊임없이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겪어야 하는 모욕의 순간들은, 단순한 절차상의 불편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등급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징적 폭력입니다. 안온의 서사는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지만 담담하게 비춥니다. 복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그리고 그 제도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도록 요구받고 있는가. 『일인칭 가난』은 이 질문을 추상적 논의가 아니라, 몸의 기억과 수치의 경험으로 우리 앞에 내놓고 있습니다.
② 주공아파트 — 공간으로 구획된 가난의 낙인
가난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과 사물을 통해 시각화되는 모습을 저자는 명징하게 기술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른바 주공아파트, 오늘날의 LH 임대아파트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공간입니다. 저렴한 주거비를 보장하는 보호 장치인 동시에, 그 거주자를 하나의 사회적 계급으로 고정시키는 물리적 낙인이 되어버린 듯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부산의 화명주공아파트와 금곡주공아파트를 오가며 겪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그 공간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정치인이나 사회봉사자가 ‘가난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선의를 과시하는 장면은, 타자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도취의 제스처에 가깝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불평등을 소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저자가 구분하는 이른바 ‘진짜 가난’과 ‘가짜 가난’의 문제 제기는, 빈곤을 바라보는 사회의 협소한 시야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학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혹은 가끔 스시 오마카세를 먹는다는 이유로 “정말 가난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태도 말입니다. 이는 가난을 오직 아사 직전의 절대적 결핍으로만 규정하려는 편견이며, 가난한 자에게는 어떠한 취향과 욕망도 허락되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 통제의 논리라고 꼬집습니다.
안온은 이러한 진부하고 상투적인 관념(클리셰)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가난 속에서도 개인은 여전히 취향을 지니고, 선택을 하며, 삶을 구성한다는 강변입니다. 그의 서사는 바로 이 지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가난은 인간을 욕망 없는 존재로 만들지도 않으며, 취향을 가질 권리와 존엄은 소득 수준에 따라 박탈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통찰은 빈곤을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해 온 우리의 편협된 시선을 근본적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인 것입니다.
③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환상 — 결국 항상적 과로로 내몰고
저자의 생애에서 교육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개천의 용’ 사다리로 인식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수급비와 저임금 노동으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자녀의 학원비에 쏟아부은 선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이 지닌 상징적 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반영한 듯합니다. 이 장면은 어느 교육사회학자가 언급한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계층이 교육을 통해 계급 재생산의 고리를 끊어 보려는 절박 하면서도 위험한 시도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교육은 기대와 달리 계층 이동의 통로가 되기보다, 가난한 이들을 더 가혹한 노동의 조건으로 밀어 넣는 장치로 작동하였던 겁니다. 저자 안온은 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음에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3~4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겁니다. 성적을 유지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과, 당장의 생계를 위한 노동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는 늘 ‘항상적 과로’의 상태에 놓였었다고 증언합니다.
이 경험은 교육이 약속한 상승의 서사가 얼마나 쉽게 소진의 현실로 전환되는지를 보여 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취를 요구하는 제도와 생존을 요구하는 노동 사이에서 개인은 선택할 수 없었단 얘깁니다. 그 결과는 신체적·정신적 소모였을 뿐이며, 이는 가난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 삶의 여지를 구조적으로 박탈하는 조건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④ 청년 빈곤의 메커니즘
저자의 현재 직업인 학원 강사는, 가난을 견디기 위해 선택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곧 “생존의 방식이 그대로 미래가 되어 버린” 청년 빈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꿈과 적성을 탐색하며 자아실현의 경로를 밟아 가는 중산층의 생애 주기와 달리, 빈곤 청년의 삶은 당장의 결핍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들의 누적으로 구성된다는 겁니다. 선택은 늘 현재형이고, 미래는 유예된다는 그것 말이죠.
이 지점에서 저자가 겪는 ‘석사 수료’라는 학문적 중단은 상징적입니다. 그것은 지적 성취의 가능성과 경제적 좌절이 정면으로 충돌되는 순간입니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더 오랜 시간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성에 묶어 두는 역설이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를 “가성비가 좋아 공부를 했다”는 건조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이 짧은 고백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교육조차도 이상이나 소명, 자기실현의 언어가 아니라, 철저히 생존 전략의 계산 속에서 선택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여기서 공부는 더 나은 삶을 향한 투자라기보다, 당장의 생존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비용 대비 효율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⑤ 젠더, 가족, 그리고 폭력의 교차성
저자는 책을 통해 빈곤이 단지 경제적 결핍에 그치지 않고, 젠더 문제와 가족 내 폭력과 어떻게 깊게 얽혀 있는지를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과 가정폭력의 가해자였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연이어 자살에 이르는 비극적인 가족사는 빈곤이 축적해 온 상처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이런 극한의 환경 속에서 저자는 스스로에게 ‘자살 DNA가 흐르는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역설적으로 “안 죽고 싶다”는 강렬한 생존 의지를 단단히 붙잡습니다.
빈곤한 가정에서 여성은 이중의 고통을 감내합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무릎 부상 등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자녀의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희생합니다. 이 장면은 가난이 얼마나 자주 여성의 희생과 노동, 그 헌신 위에 유지되어 왔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저자의 필명입니다. 저자 스스로가 밝히듯 어머니의 성인 ‘안’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부계 중심의 폭력적 역사로부터 거리를 두고, 모계적 유대와 연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상징적 선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⑥ 자살 생존자와 트라우마
가족 구성원의 연이은 자살은, 빈곤이 한 개인을 어떻게 극단적인 심리적 위기로 몰아넣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자살 생존자’로 명명하며, 가난이 단순한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생존 의지를 근본에서 잠식하는 실존적 위기임을 증언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들이 감내해 온 심리적 붕괴와 트라우마는 말없이 지워져 버리고 마는 겁니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이 비극을 신파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끝까지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를 유지함으로써, 독자가 감정적 연민에 머무르기보다 빈곤이 지닌 구조적 잔인함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고통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깊이를 전달하는 이 방식은, 문학적 절제이자 사회학적 증언인 것 같습니다.
3.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일인칭 가난’은 매우 의도적인 중의성을 품는 듯합니다. 먼저는, 빈곤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요구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한국 사회의 모든 가난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같은 수급자라 하더라도 노동 조건과 건강 상태, 가족 구성에 따라 가난의 결은 전혀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하나의 통계 모델이나 평균값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가난한 개인이 살아온 구체적인 삶의 궤적을 지워 버리는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동시에 ‘일인칭’은 보다 강력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가난의 당사자가 서사의 주체가 되겠다는 선언인 겁니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책을 쓰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라는 저자의 외침은 도발적이지만 정확합니다. 가난은 부끄러워 숨겨야 할 사적 결함이 아니라, 사회가 가장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공적 의제라는 주장입니다.
이 선언은 외부 관찰자가 가난을 설명하고 분류해 온 ‘삼인칭의 시선’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대신 저자는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정의하고, 명명하고, 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인 것입니다. 가난을 말할 권리를 되찾는 일, 그리고 그 언어의 주체가 되겠다는 선택 말입니다.
4.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가난을 팔아먹는다”는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가난의 상품화 가능성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성공한 부자들의 서사는 찬양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데, 왜 가난의 이야기는 늘 침묵 속에 묻혀야 하는가—바로 그 질문이 이 책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안온은 자신의 가난을 감정적으로 전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치밀하게 기록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이 가난을 소비해 온 익숙한 방식에 균열을 만들어 내고야 만 겁니다.
이 문제의식은 이른바 ‘스시 오마카세’와 반려묘 ‘등단이’의 에피소드에서 특히 선명해집니다. 수급자가 값비싼 음식을 먹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위는 곧잘 도덕적 해이나 부정수급의 의심으로 이어진다는 얘깁니다. 참 어이없는 얘깁니다만, 사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만을 허용할 뿐, 취향과 선택의 권리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언입니다.
그러나 저자에게 고양이는 사치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유일한 정서적 가족이라고 항변합니다. 오마카세 역시 과시가 아니라, 가혹한 생존의 시간을 견딘 끝에 자신에게 허락한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라는 얘깁니다. 이 대목은 어느 철학자이자 사회학자가 말한 ‘취향이 어떻게 계급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언어로 작동하는지'(피에르 부르디외)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읽기를 정리하며...
『일인칭 가난』은 개인적으로 우리 집 둘째보다도 어린 1997년생 한 청년의 고통스러운 회고를 넘어, 현대 한국 사회의 복지 시스템·교육 제도·가족 윤리를 가로지르는 전방위적 사회학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가난이 결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합니다. 가난은 ‘일인칭’으로 기록되었지만, 그 원인과 해법은 철저히 ‘삼인칭’—곧 우리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던 듯합니다.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고 극복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또 다른 안온들의 존엄을 훼손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가난을 한 개인의 불행으로 가두지 말고, 그 불행이 어떻게 제도의 모순과 맞물려 재생산되는지를 직시하라는 요청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빈곤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자의 건조하고 밀도 높은 문장은 읽는 내내 독자인 나의 내면에 균열을 내며, 우리가 외면해 온 가난의 실재를 직면하게 했던 듯합니다. 이 불온한 기록은 수상 내역이 증명하듯, 당대 한국 사회가 반드시 읽어야 할 텍스트로 자리 잡았고 있습니다. 가난의 솔직한 이야기가 더 두꺼워지고 더 많이 겹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안온의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듯합니다. 비록 책은 끝났지만 그의 가난은 여전히 현재형이며,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 역시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남긴 질문이 감정의 소모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동하기를 애써 기대합니다. 가난해도 괜찮을 수 있는 사회, 빈곤이 삶의 가능성을 제약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여정—그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믿음이 작동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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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 책은 시민들과 함께 읽고 토론해 봄직한 내용이라는 생각입니다.
강하게 추천의 의사를 표합니다.
안온 작가를 초청하여, 그이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시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지 등등등...
그런데, 이 책 2025년에 출간된 책 맞나???? 확인 필요한 사항같습니다.
올해의 책 선정 대상범위의 포함 여부 말입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7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