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 Casidy를 위시로, 플리트우드 맥, 러브 액추얼리까지...
연휴의 마지막 날,
몸에 밴 피로감으로 나른하게 가라앉는 몸과 정신을 가다듬으며 오디오를 켭니다.
이러저러한 음악을 오가다가, 결국 쉼을 위해서는
그저 '꽉 찬' 음악이 아니라, 조금은 '여백이 있는' 노래를 필요로 합니다.
에바 캐시디 음악이 이때쯤에는 제격입니다.
그이의 "Songbird"를 듣습니다.
1.
음악 "Songbird"
‘Songbird’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먼저 그 시작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곡은 '플리트우드 맥'의 멤버였던 크리스틴 맥비가 1977년 앨범 ⟪Rumours⟫를 위해 쓴 작품이라고 알려졌습니다(전곡). 오래전 황학동의 시장통에서 구입했던 소위 '빽판'(흰색 레이블로 만들어진 불법 해적판)으로 즐겨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 앨범에서 우리가 익히 익숙한 노래로는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된 "Dream"이 될 것입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 열두 번째로 수록된 곡이 "Songbird"입니다.
전언에 의하면, 맥비가 한밤중에 문득 떠오른 멜로디와 가사를 놓칠까 두려워 밤을 새워 곡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원곡은 또 그 나름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 탄생 스토리를 담고 있어서겠죠. 그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텅 빈 강당에서 녹음되었다는 피아노 연주와 맥비의 담담한 보컬—공간의 울림까지 악기로 삼은 듯한 고독하고 정적인 발라드입니다. 담담하지만 진심이 깃든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에바 캐시디의 "Songbird" 버전은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이 곡을 포크와 재즈의 감성이 배어 있는 따뜻한 보컬 중심 편곡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악기가 되어 연주에 포함된다는 점일 겁니다. 그녀는 메인 보컬 외에도 스스로 코러스를 쌓아 올렸죠. 그래설까요. 마치 '성당에서 울리는 바로크 합창'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가 이 곡에서 사용한 다중 트래킹 방식으로 그러한 정서 즉 마치 지친 영혼에 쉼을 줄 것 같은 곡을 만들어냈습니다.
2.
Eva Casidy라는 가수
에바 캐시디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그녀가 몸담았던 1990년대 초반 워싱턴 D.C.의 음악적 풍경을 함께 떠올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시절 D.C.는 재즈 클럽 문화, 포크 신(Scene), 블루스 전통, 가스펠 합창, 그리고 지역 고유의 고고 리듬이 공존하던, 장르의 경계가 비교적 느슨한 도시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토양 속에서 활동했던 에바 캐시디는 애초에 특정 장르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재즈의 섬세한 프레이징, 포크의 서정성, 블루스의 정직한 감정, 가스펠의 영적 울림, R&B의 리듬감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하나의 그녀의 목소리로 표현해 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자유로움’이 당시 음악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죠.
당시 대형 레이블들은 아티스트에게 명확한 정체성을 요구했었답니다. 특정한 카테고리로 그 가수가 분류되어야 명징한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에바 캐시디는 그 틀에 좀처럼 가둬지지 않았던 것이죠. 후대에는 장점이 되었던 그녀의 장르적 모호성이, 당시의 상업 시스템 안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겁니다.
—
그녀의 삶 또한 복합적이었던 듯합니다. 낮에는 식물원에서 일하며 자연을 접하고, 밤이면 워싱턴의 명소인 Blues Alley 같은 클럽 무대에 올라 자신의 세계를 다져가게 됩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지역 무대에서 한 곡 한 곡 진심을 쌓아 올린 것이랄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음악적 동지였던 '크리스 비온도'는 그녀의 재능을 즉각 알아보고 사비를 들여 녹음을 지원합니다. 더불어 워싱턴 고고 음악의 대부로 알려진 척 브라운과의 협업을 주선하기도 하며, 애바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다양함을 알리려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에바 캐시디가 끝까지 ‘노래하는 즐거움’ 그 자체를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합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음악적 칼라를 희석시키지 않고, 여타 음악적 제안들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녀의 노래가 기능적 한계를 넘어선 진정성으로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의외의 대중적 알려짐 — 영국에서의 테리 워건과 BBC
에바 캐시디의 성공 스토리를 얘기할 때, 우리는 하나의 역설적인 장면 앞에 서게 됩니다. 생전에는 미국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그녀의 음악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1998년 영국에서 폭발적으로 재조명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대중음악사에서 이렇게 사후에 놀라운 성취를 이룬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 겁니다.
—
이 기적 같은 반전의 중심에는 BBC 라디오가 있었다는 전언입니다.
프로듀서 폴 월터스는 지인을 통해 받은 에바 캐시디의 앨범 "Songbird"의 다소 조악한 표지에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록곡 ‘Over the Rainbow’와 ‘Fields of Gold’를 듣는 순간, 그는 그 목소리의 순도와 감정의 깊이에 압도됩니다.
그는 곧바로 이 곡들을 전설적인 DJ 테리 워건에게 추천했고, 워건은 자신의 아침 프로그램 ‘Wake Up to Wogan’에서 그녀의 노래를 전파에 실었습니다. 그 방송 직후, BBC 라디오국에는 “이 가수가 누구냐”는 청취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는군요.
입소문은 곧 판매로 이어졌던 모양입니다. ‘Songbird’ 앨범은 발매 후 시간이 흐르며 꾸준히 상승했고, 마침내 2001년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사후 앨범이 100주가 넘는 기간 동안 차트 상위권을 지키며 정상을 탈환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음악 애호가의 귀가 먼저 반응했고, 시장은 그 뒤를 따라간 셈입니다.
—
라디오가 불씨를 지폈다면, 텔레비전은 그 불길에 형태를 부여했습니다. 2000년 말 BBC 프로그램 'Top of the Pops 2'를 통해, 워싱턴 D.C.의 Blues Alley에서 공연하던 에바 캐시디의 영상(공연실황)이 방영됩니다. 이 영상은 친구 브라이언 매컬리가 캠코더로 촬영한 것으로, 화려한 연출이나 편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거친 화질과 소박한 무대가 역설적으로 힘을 발휘했던 듯합니다. 관객 앞에서 기타를 들고 서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스타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니라 ‘순수한 음악가’의 실존을 보여주었던 겁니다. 이 영상은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많은 재방영 요청을 받은 장면 중 하나가 되었고, 영국 대중에게 에바 캐시디를 단순한 가수가 아닌 ‘시간 속에 멈춰 선 예술가’로 각인시킵니다.
이 성공은 마케팅 전략의 승리라기보다 ‘목소리 자체의 힘’이 국경과 시간을 넘어 증명된 사건이었습니다. 상업적 시스템이 미처 분류하지 못했던 한 예술가를, 청취자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선택한 드문 순간이었던 것이죠.
4.
영화 ⟪러브 액추얼리⟫와 에바 캐시디의 "Songbird"
매 년말이면 어김없이 TV에서 꾸준히 재방영되거나, 혹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는 영화로 언급되는 것이 ⟪러브 액추얼리⟫일 것입니다.
에바 캐시디의 ‘Songbird’가 대중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한 결정적 순간은 아마도 2003년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통해서였을 겁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이 곡이 지닌 맑고도 투명한 울림 이른바 ‘천사 같은’ 정서를, 오래도록 고독을—그러니까 2년간 동료인 칼(로드로고 산토로 분)을 짝사랑하며—견뎌온 인물 사라(로라 리니 분)의 감정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방식—그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본 것이죠. (인터뷰 및 영화 영상)
(짝사랑하던 칼과 년말 파티에서 만나 처음으로 블루스를 출 때 흐르는 음악은 노라존스의 "Turn Me On"입니다. 노래 선곡 참 절묘하죠. 그 가사하고 말입니다... 그 후 그 둘은 장소를 옮겨 사라의 집으로 향하죠. 둘이서 방으로 들어설때 이 음악, Songbird가 BGM으로 흐릅니다. 역시 그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오빠의 전화가 오기까지는...)
영화 속에서 ‘Songbird’는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아주 조용히 스며듭니다. 관객은 그 목소리를 마치 자신만을 향한 비밀스러운 고백처럼 듣게 되지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나 극적인 클라이맥스 대신, 숨결과 여백이 감정을 이끕니다. 음악 애호가라면 이 장면에서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감정의 밀도'가 서사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체감하실 것입니다.
이 영화적 배치는 단순한 삽입곡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Songbird’는 더 이상 특정 시대의 차트 히트곡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중요한 순간—결혼식, 추모식, 혹은 혼자만의 사적인 시간—에 함께하는 노래로 자리 잡아갑니다.
5.
마무리하며...
에바 캐시디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을 느끼는 이유는, 단지 그녀의 뛰어난 기교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너무도 짧고 고통스러웠던 그녀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6년, 에바 캐시디는 엉덩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이미 뼈와 폐로 전이된 흑색종 판정을 받습니다. 병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고 사망 몇 달 전, 그녀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마지막 공연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선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던 그녀가 부른 그 노래는 절망이 아니라 위로에 가까웠습니다. 음악 애호가라면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한 인간의 생이 저물어 가는 순간, 노래는 자기 연민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그녀의 보컬은 단순한 해석을 넘어 ‘증언’처럼 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이어진 이야기 역시 음악사에서 드문 장면입니다. 만약 주변 동료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 그녀의 목소리를 제대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음악적 동지였던 크리스 비온도는 그녀의 노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모든 세션을 녹음으로 남겼습니다. 그 ‘기록하려는 집요함’이 훗날 수많은 앨범의 토대가 되었다는 전언입니다.
또한 독립 레이블 'Blix Street Records'를 이끈 Bill Straw는 상업적 계산을 앞세우기보다, 한 예술가의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녀의 음원을 세상에 알렸던 모양입니다. 대형 시스템이 외면했던 목소리를, 작은 공동체가 지켜낸 셈입니다.
그렇게 에바 캐시디의 목소리는 대중문화 속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화려함이 아니라 진정성, 과시가 아니라 위로에 가까운 음악이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의 음악 "Songbird"는 그 상징처럼 남습니다.
듣는 이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투영할 수 있는, 조용하지만 깊은 치유의 찬가로 말입니다.
For you, there'll be no crying
For you, the sun will be shining
'Cause I feel that when I'm with you It's alright
I know it's right
And the songbirds keep singing like they know the score
And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Like never before
To you, I would give the world
To you, I'd never be cold
'Cause I feel that when I'm with you It's alright
I know it's right
And the songbirds keep singing like they know the score
And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Like never before
Like never before
Like never before
당신을 위해서는 눈물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는 햇살이 늘 비출 것입니다
당신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이 마음이 말하니까요
그것이 옳다는 걸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아는 듯 악보를 읽듯 노래를 이어가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이토록 사랑한 적 없듯이...
당신에게라면 나는 세상이라도 내어줄 수 있고
당신 곁이라면 나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이 마음이 말하니까요
그것이 옳다는 걸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들은
이미 결말을 아는 듯 계속 노래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이토록 사랑한 적 없듯이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느 때보다 더...
p.s.)
이 노래는, 가사에서처럼,
나의 사랑스런 아내의 61번째 생일을 위한 헌사이자 헌정곡입니다.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