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가 말하는 물리학 관점으로 본 "시간" 이야기
0.
인간의 지각 세계에서 가장 확고하고 자명한 토대를 이루는 요소를 하나 꼽으라면, 우리는 주저 없이 ‘시간’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보편적이고 균일하게 흐른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의심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 직관을 정면으로 흔듭니다. 그는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 있는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시간 개념이 얼마나 철저히 해체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로벨리에게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변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구조물과 같습니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은 그 층을 하나씩 벗겨 내면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시간의 속성들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추적합니다.
오늘 우리는 로벨리가 제시한 시간의 세 단계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첫째, 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시간의 파편화와 붕괴 과정, 곧 ‘시간을 파헤치는 단계’입니다.
둘째, 시간이라는 변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근본적 우주의 모습, 즉 ‘시간이 없는 세계’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경험하는가라는 질문, 곧 ‘시간의 원천’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 여정은 어느새, 물리학을 넘어 철학과 문학, 그리고 인간 정체성에 이르는 광대한 사유의 지평에 서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저자가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시간을 설명하는 것을 너머,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였던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
시간이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관은 사실 세 가지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흐르는 하나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둘째,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분명한 방향성을 지닌다는 믿음입니다.
셋째, 모두에게 공통된 ‘현재’라는 보편적 순간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식이자 직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벨리는 현대 물리학의 증거를 통해 이 기둥들을 하나씩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너무도 확고하다고 여겼던 시간의 토대가 사실은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는 치밀하게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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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시간이 존재한다 — 그 '유일함'의 상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믿어 왔던 시간 개념에 결정적인 균열을 냈습니다. 시간은 어디서나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 배경이 아니라,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질량이 큰 물체에 가까울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흐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계의 오차가 아닙니다. 시공간의 구조 자체가 휘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물리적 현상입니다.
로벨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쌍둥이의 예를 듭니다.
한 쌍둥이는 산 위에서 살고, 다른 한 쌍둥이는 바닷가에서 살다가 다시 만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산에서 살았던 쌍둥이가 바닷가에서 살았던 쌍둥이보다 더 많이 늙어 있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 기회에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시 봤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주장을 실제적인 영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원자시계를 통해 측정 가능한 물리적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각 지점, 각 궤적, 각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살아간다.
- 시간은 하나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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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분명한 방향성을 지닌다? — 방향의 상실
물리학의 기본 방정식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방정식은 가역적입니다. 다시 말해,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와 미래를 뒤바꾸어 계산해도 법칙 자체는 전혀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철저히 비가역적입니다. 컵은 바닥에 떨어지면 산산이 깨지지만, 깨진 조각이 저절로 모여 다시 컵이 되지는 않습니다. 열은 언제나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를 뿐, 그 반대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로벨리는 여기서 루드비히 볼츠만의 통찰을 소환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 물리 법칙은 사실상 하나뿐이라면서 말입니다. 오로지 열만이 언제나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만 흐릅니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입니다. (제1법칙 = 에너지 보존 법칙)
그 핵심 수식은 간단합니다.
∆S ≥ 0
이 식은 고립계의 엔트로피 S는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무질서도는 줄어들지 않고 증가하거나 유지됩니다. (엔트로피 = 열이 역행 없이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는 상황을 측정하는 양)
열이 개입되지(발생하지) 않는 순수한 역학적 세계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방향성은 절대적 구조가 아니라, 엔트로피 증가라는 통계적 현상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욱 도전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가 시간을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세계를 미시적으로 완벽히 보지 못하고 거시적으로 뭉뚱그려 인식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효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화살은 우주의 근본 구조라기보다, 우리의 관점에서 드러나는 통계적 그림자일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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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라는 보편적 순간이 존재한다? — '지금 이 순간(현재)'는 불가능한 개념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주 전체가 하나의 ‘지금’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계가 존재하여, 모든 존재가 동일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은 이 믿음을 정면으로 무너뜨립니다. 빛의 속도는 유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이에는 절대적인 ‘동시성’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동시에 일어난다고 말하는 그 사건들은, 사실 서로 다른 시간 좌표 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로벨리는 이를 ‘확장된 현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우리 주변의 좁은 영역, 즉 일상적 거리 안에서는 ‘지금’이 비교적 명확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지금’은 점점 두터워집니다. 수년, 수천 년, 심지어 수만 년의 폭을 가진 불확실한 시간의 띠로 확장됩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 시간 = 대략 8분 20초, 즉 지금 보는 태양빛은 8분 20초 전의 것, 당연히 '지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
결국 우주는 과거, 현재, 미래가 층층이 정렬된 단단한 구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만 연결된 사건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그물망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우주의 보편적 구조가 아니라, 제한된 관점에서 형성된 국지적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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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독립성 상실 및 양자 역학에서의 시간 특징
뉴턴은 시간을 모든 사물과 무관하게 배경처럼 고정되어 있는 절대적 실재로 이해했습니다. 시간은 그 자체로 흐르며, 세계는 그 위에서 펼쳐진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관점을 근본적으로 수정했습니다. 시간은 더 이상 정적인 배경이 아니라, 중력장과 결합된 동적인 필드, 즉 상호작용하는 구조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로벨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을 통해 시간의 보다 급진적인 모습을 제시합니다. 양자 수준에서 시간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해 온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냅니다.
양자 역학이 밝혀낸 시간의 세 가지 근본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입자성입니다. 시간은 무한히 연속적인 흐름이 아닙니다. 시계로 측정한 시간은 양자화(알갱이화) 됩니다. 중력장에서 양자의 모든 현상은 최소 규모로 존재합니다. 이 규모를 플랑크 규모라 하며, 최소 시간을 플랑크 시간이라 부릅니다. 플랑크 시간은 약 10⁻⁴⁴초를 의미합니다. 시간은 부드러운 강물이 아니라, 극도로 미세한 불연속의 구조를 갖습니다. (= 10억분의 10억분의 10억분의 10억분의 1억분의 1초)
둘째, 불확정성입니다. 양자 수준에서 시간은 하나의 고정된 값이 아닙니다.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확률적 상태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확정적이라고 여겼던 시간조차, 근본 차원에서는 ‘구름’과 같은 존재입니다.
셋째, 관계성입니다. 시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변수가 아닙니다. 물리적 시스템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구체화되는 관계적 속성입니다. 시간은 사물과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의 산물입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단일하고, 연속적이며, 분명한 방향성을 지닌 시간이라는 우리의 직관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떠받치고 있던 상식의 기둥은, 현대 물리학 앞에서 하나씩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2.
시간이 없는 세상 —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
상황이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시간의 모든 전통적 속성이 제거된 후 남는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요?
로벨리는 그의 저서 2부에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을 기본 변수로 삼지 않고, 세계를 ‘사건 중심의 존재론’으로 재구성합니다.
즉, 사물이나 흐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그물망으로 우주를 이해하자는 제안입니다. 시간은 배경이 아니라, 사건들 사이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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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계
로벨리는 "세상은 사물(things)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events)의 총체"라고 단언한다. (책 105쪽)
우리는 사물을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실체로 이해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로벨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착각에 가깝습니다. 사물처럼 보이는 것조차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는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돌’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단단하고 고정된 물체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의 눈으로 보면, 돌은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이며, 다양한 힘들이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는 장기적 과정입니다. 돌은 정지된 존재가 아니라, 매우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존재(being)’의 관점이 아니라 ‘변화(becoming)’와 ‘과정’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로벨리에 따르면, 물리학의 궁극적 과제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어떤 사건들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기술하는 데 있습니다. (책 111쪽)
세계는 고정된 실체의 박물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의 역동적 네트워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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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동역학과 시간 변수의 제거
양자 중력 이론에서 가장 급진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는, 기본 방정식에서 시간 변수 t를 아예 제거하는 것입니다. (책 126쪽)
대표적인 예가 휠러–디윗 방정식입니다. 이 방정식은 시간이라는 파라미터 없이 우주의 양자 상태를 기술합니다. 다시 말해, 물리학은 더 이상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서술하는 학문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물리량들 사이의 상대적 상관관계를 기술하는 학문으로 전환됩니다. (책 130쪽)
우리가 일상에서 “지금은 3시다”라고 말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시간이라는 실체를 직접 본 것이 아닙니다. 시계 바늘의 위치라는 하나의 물리량과, 예컨대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사건이라는 또 다른 물리량 사이의 관계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로벨리는 이를 ‘관계적 역학’이라 부릅니다. 우주는 고정된 배경 위에서 시간이 흐르는 구조가 아니라, 무수한 관계들이 서로 얽혀 있는 네트워크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은 부차적인 설명에 가깝습니다. 더 근본적인 진술은 이것입니다.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특정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시간은 그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효과일 뿐, 궁극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 로벨리의 급진적인 통찰입니다. (132쪽)
3.
시간의 원천
— 모호함과 기억이 만든 환상
여기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도달합니다.
만약 물리적 실재의 근본 구조에서 시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강렬하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일까요?
로벨리는 이 거대한 역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의 책 3부에서 그는 단순히 물리학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열역학과 통계역학, 신경과학, 그리고 철학까지 아우르며, 우리가 경험하는 ‘흐르는 시간’의 정체를 탐구합니다.
즉, 우주의 근본 방정식에는 없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이 시간 감각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다층적인 학문적 접근을 통해 해명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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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역학적 시간 가설 — 무지가 만들어 낸 '시간'
알랭 콘과 카를로 로벨리가 함께 제안한 ‘열역학적 시간 가설’(Thermal Time Hypothesis)은 매우 도전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시간은 근본적 실체가 아니라, 통계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모든 미시적 상태, 다시 말해 모든 원자의 위치와 속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경우 시간이라는 개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단지 관계들의 총체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한 지능을 가진 존재입니다. 세계를 미시적으로 완벽히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세상을 거시적으로, 즉 뭉뚱그려 이해합니다.
"결국 물리학의 시간은 세상에 대한 우리 무지의 표현이다. 시간은 미지인 것이다."(책 149쪽)라고 기술합니다. 바로 이 ‘정보의 결핍’, 혹은 ‘무지’가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낳습니다.
통계역학에 따르면, 어떤 계의 평형 상태는 특정한 시간 흐름과 수학적으로 대응됩니다. 로벨리는 이 점을 역으로 해석합니다. 시간은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통계적 상태로 기술하기 때문에 정의된다는 것입니다.
즉, 시간은 우주의 근본적 성질이 아니라, 세계를 ‘모호하게(흐릿하게)’ 볼 수밖에 없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현상에 가깝다는 얘깁니다. "실재에 대한 우리의 희미하고 불확실한 이미지가 열적 시간이라는 변수를 결정한다. 그 변수는 분명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것과 닮은 어떤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고, 평형 상태와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다."(책 148쪽)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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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점의 특수성 — 낮은 엔트로피라는 우연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화살, 곧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느끼는 방향성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로벨리는 그 근원을 우주 초기 상태의 특수성에서 찾습니다. 다만 그는 우주 전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우주의 일부가, 과거에 매우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지각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접근은 일종의 인류 원리적 해석에 가깝습니다. 우주의 대부분은 이미 엔트로피 변화가 거의 없는 평형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과 지능은 엔트로피가 낮은,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의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시켜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듯, 우리가 느끼는 시간 역시 우주의 절대적 본질이라기보다, 특정한 조건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관점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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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와 흔적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되는 '시간'
로벨리는 물리적 시간의 해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심리적 시간의 기원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 탐구의 여정에서 뜻밖에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우리의 뇌는 과거의 사건들이 남긴 흔적을 저장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의 파편들을 현재의 감각 경험과 끊임없이 통합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지금’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로벨리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현재’는 찰나의 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상이 뒤섞여 형성된, 일정한 ‘시간적 두께’를 지닌 공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시간은 우리 내면에 있다”는 그의 통찰은 매우 급진적입니다. 시간은 객관적으로 흐르는 물리량이라기보다, 우리의 의식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서사적 구조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은 우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서 구성되고 경험되는 차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4.
내용 종합
카를로 로벨리의 논증은 대충 읽었을 때는 쉬워 보였습니다만, 이는 결코 물리학 대중서를 넘어선 듯합니다. 그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사유는 하나의 지적 계보를 따라 전개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시간, 곧 변화의 측정치로서의 시간 개념과, 뉴턴이 주장한 절대적 배경으로서의 시간 개념을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이론 안에서 재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통합된 구조를 다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으로 해체한 뒤, 열역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구성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붕괴와 재구성이라는 다층적 구조를 마주하게 됩니다. 현대 물리학이 드러낸 시간의 모습은 마치 양파 껍질처럼 여러 층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모든 층위가 겹쳐진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이 다층적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물리학적 지식을 확장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주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로벨리는 이렇게 역설합니다.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이 가진 ‘근사치’로서의 성격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5.
마무리하며...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시간을 정복하겠다는 과학적 오만의 선언이라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오히려 시간이라는 거대한 신비 앞에 선 인간의 겸허함을 보여줬다는 생각입니다.
물리학의 근본 구조 안에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사건들의 복잡하고 무질서한 춤사위뿐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무질서 속에서, 특수한 관점을 지닌 존재인 우리는 기억을 통해 질서를 부여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 위에 ‘시간’이라는 아름다운 구조를 세워,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했던 겁니다.
로벨리는 마지막 장에서 시간과 죽음, 그리고 고통의 문제로 나아갑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한, 우리는 상실을 경험하고, 결국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간의 화살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고통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시간이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기억과 인식이 만들어낸 구조라면 어떻겠습니까? 시간을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죽음의 공포를 다른 빛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갇힌 죄수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들을 엮어 마치 영원과도 같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결국 로벨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던 세계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그 파편 사이로 드러나는 우주의 모습은, 우리가 붙들고 있던 환상보다 훨씬 더 경이롭고 숭고합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흐르지 않는’ 우주 속에서 우리가 매 순간 체험하는 삶의 강렬함, 바로 그것이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가장 깊은 실재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는 마치 종교적이라는 생각까지 했더랬습니다.
카를로 로벨리가 다루는 ‘시간’은 분명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측정하고 공유하는 시간, 유일하고 공통적이며 현재적 의미를 지닌 그 시간 말입니다.
그런데 책의 결론에 이르면, 시간은 어느새 카이로스의 차원으로 옮겨가 있습니다. 단순히 흘러가는 양적 시간이 아니라, 의미가 발생하는 사건으로서의 시간, 결정적 순간으로서의 시간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단순한 물리학을 넘어선 느낌입니다. 분명 철학적이며, 어쩌면 종교적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는 사유의 지평이 열린 겁니다.
아무튼,
시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온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에서 오는 경이감 또한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물론, 카를로 로벨리라는 물리학자가 의도했던 바였을지는.... 아니었을 겁니다.^^
—
2020년 2월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독서토론에 임하게 될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세부적으로 읽어보니.... 이 책은 결코 만만히 대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던 겁니다.
[참고] — 독서 토론시 토론용 주제 질문
1.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 “물리학에서 절대적이고 동일하게 흐르는 시간(크로노스)는 없다는 결론입니다. 시간은 ‘사건’(카이로스)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정의를 접하면서 스스로 촉발된 생각은 무엇일까요?”
3.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느껴졌던 문장이 있습니다.
188쪽에서 음악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들을 때, 하나의 소리는 이전과 이후의 소리들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 이처럼 음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현재의 한순간만 포착한다면 어떻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라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입니까?”
[참고자료]
1.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쌤엔파커스, 2019
2.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 까치, 2021
3. 『나우: 시간의 물리학』 리처드 뮬러, 바다출판사, 2023
4.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쌤엔파커스, 2018
5.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쌤엔파커스, 2016
6.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카를로 로벨리, 쌤엔파커스, 2021
7. 영화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4
8. 『인듀어런스』 캐롤라인 알렉산더, 띄인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