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반려동물 서비스 트렌드 '사람 편' | 백승주
"선구자"는 영어로 'forerunner'로 번역된다.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앞서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가야 할 길에 대한 수색과 정담, 장애물 제거,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일과 '다른 사람이 따라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일'이 포함된다. 가야 할 길에 앞장서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옳은 신념을 갖고 나아가는 힘. 집단을 따라 주체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이 이치에 맞는지 끊임없이 고려한다는 것이다. 처음은 당연히 모두에게 낯설다. 집단과 사회가 받아들이기엔 다소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구자들은 당장을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현재 반려동물 선구자는 우리를 많이 기다려주고 있다. 더 나빠지지 않게 외치면서. 그들이 가려는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반려문화 신드롬 그 자체, 강형욱
우리나라에 부통령 제도가 시행된다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음을 전파한 개통령 ‘강형욱’을 추천하겠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은 있으니, 동물을 대표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그가 대중을 움직이고, 이전과는 다른 반려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개인이 아닌 다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입장, 그리고 사회적인 관점. 모든 입장을 사려 깊게 생각하고 훈련과 함께 '소통'을 한다. 이것이 그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방법이었다.
강형욱의 아버지는 강아지 공장을 운영했고, 집안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훈련사가 되고 싶었던 강형욱은 어머니의 절대반대를 진심으로 설득 후 결국 허락을 받아냈고, 16살의 크리스마스이브에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직접 80여 마리의 강아지 변을 먹어봤다는 그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강아지를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드라마 ‘허준’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 한 달 후 장염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중단했다고 하니, 그 간절함이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그때 당시 강압적인 훈련 방식이 싫어서 다른 교육 방법을 찾기 위해 노르웨이로 유학길을 떠난 것도, 바로 그 진심에서 시작된 것.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카밍 시그널: 강아지의 몸짓 신호>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이 교육을 기반으로 그는 훈련사를 다른 관점으로, 훈련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된다.
EBS 1TV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훈련사 강형욱의 존재를 알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카밍 시그널>을 기반으로 반려견의 문제행동 이유와 반려인의 관계를 짚어가며 훈련을 진행했다. 국내 첫 도입된 이 훈련법은 그때당시 모두에게 생소했으나, 그 자리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강아지를 보며, 결국 이 프로그램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걸 진짜 알리게 된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기점으로 강아지들의 문제행동과 보호자의 책임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형욱은 반려견 교육 업체 <보듬컴퍼니>를 운영, 각종 방송활동을 병행하면서 강아지의 입장에서 고찰한 훈련과 교육을 전파했다. 강형욱 신드롬은 그를 ‘개통령’으로 부를 만큼, 이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또 그렇지 않은 여론도 존재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보호자의 태도와 훈련으로 서로 행복할 수 있다는 방법을 탐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훈련방식과 반려동물에 대한 사고는 대중의 마음을 관철시켰고, 2015년을 기점으로 반려문화는 크게 변화했다.
작년 11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tvN STORY <고독한 훈련사>에서 강형욱은 고독한 훈련사를 맡았다. 훈련 솔루션에 맞춰진 <세.나.개>나 <개는 훌륭하다>와 달리, 전국을 여행하며 동네마다 반려견과 반려인의 이야기를 듣는 ‘독큐멘터리’ 형식인 것. 이 프로그램은 강형욱에게 느린 호흡과 가벼운 발걸음을 선물한다. 도시 풍경을 벗어나 한적한 동네에서 소소한 반려생활을 꾸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둘레길을 산책하거나, 주인과 함께 가게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혹은 작은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뛰놀면서. “이렇게 살고 싶다, 부럽다.”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강형욱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고독한 훈련사>는 도시에 살고 있는 반려인들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걸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강형욱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계기와 함께 살아가는 현재"를 묻고, 듣는다. <고독한 훈련사>는 이 부분을 조명한다. 그들이 만나게 된 순간은 모두 달랐으나, '가족'이라는 결론을 갖고 있었다. 적막한 시골길을 함께 걷는 친구이기도 하며, 함께 가게를 지키는 동지이자,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그들은 '함께'할 수 있음이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독한 훈련사>의 강형욱은 반려동물과 자신이 함께 가족이 된 시작점을 기억하길 당부한다.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유대감에 대해 무슨 훈련이 더 필요할까. 훈련이 필요 없는 프로그램으로 훈련사 강형욱은 고독하겠지만, 어쩐지 목소리는 밝고 편안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604만 가구를 넘긴 현재, 과거 반려동물 관련 프로그램은 '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도심의 반려가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다 보니, 비반려인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반려문화가 필요하다. 반려인들에게 펫티켓을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이 이유일 것. 시대에 맞는 반려문화, 인식개선을 만드는 프로그램의 등장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거꾸로 읽어도 올곧은, 이효리
이효리의 삶은 우리가 TV에서 알던 슈퍼스타에서 그 누구보다 동물보호에 진심인 사람으로 변화했다. 그 중심엔 첫 반려견, 순심이가 있었다. 2020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둔 날. 순심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2010년 이효리가 안성평강공주보호소에서 입양한 후로, 10년. 3647일의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이효리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2021년 5월, SBS <TV동물농장>에서는 이효리와 순심이의 마지막 순간과 함께 해온 시간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전하며, “순심이를 만나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그녀의 변화를 목격해 왔다.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 4마리를 입양하고 다복한 가족을 꾸린 모습에서(‘효리네 민박 1,2’), 10년째 진행 중인 보호소 봉사활동에서(‘KARA, 블루엔젤봉사단’), 해외입양을 보낸 유기견에게 안부를 묻는 모습에서(‘캐나다 체크인’). 이효리는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지난 12월부터 방영 중인 tvN <캐나다 체크인>은 해외로 입양을 보낸 유기견들을 이효리가 직접 만나러 가는 일종의 여행기다. 떠나보낸 아이들이 보고 싶어 개인적인 여행계획을 세우고, 김태호 PD에게 촬영하지 않겠냐고 직접 제안한 것.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촬영팀은 단출하게, 사전 협의된 입양가족에 맞춘 여행루트가 곧 기획의 전부였고,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공길언니(고인숙)가 동행했다. 짜인 각본이 없는 프로그램. 우려와 달리, 첫 회에서 우리는 그들의 웃음과 눈물에서 ‘진심 어린 안녕에 대한 이야기’을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 유기견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무엇보다 편안한 얼굴로 가장 행복한 삶을 맞이해 ‘반려견’이 된 아이들.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지 모르는 유기견을 구조하고, 씻고 먹이며, 다시 사람과 살아갈 수 있게 도운 '이효리'와 공길언니. 오랜만의 방문으로 기억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입양 전의 이름을 부르자, 기특하게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온다. 눈썹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는 '눈썹', 쓰레기통 밑에 숨어 있던 '레오', 제주 김녕 바닷가를 떠돌던 '링고', 새끼시절 밭에 버려져있던 '산', 묶여 방치되어 있던 생후 3개월의 '공손'까지. 아이들은 이효리와 공길언니를 기억했다. 그들의 만남은 다행이라는 안도와 끝까지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지나, 잊지 않았다는 반가움의 꼬리로 겹쳐졌다. 이효리는 만남을 수락해 준 입양한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입양 전 사진과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굳이 아픈 기억을 꺼내는 것이 아닌, 서로 기억을 채운 것이다.
첫 회 방송 이후, 유기동물의 해외입양과 이동봉사, 임시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건이 따를 뿐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봉사활동의 형태가 존재하며, 보호소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보다 먼저, 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캐나다 체크인>의 이효리는 보여준다. 아픈 기억도 포용하며 함께를 만드는 반려인들의 모습,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과거를 딛고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모습. 진짜 책임을 다하는 가족이 어떤 행복을 그리고 있는지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유기동물의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는 것. 현재 우리나라 반려문화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된다. 키울 수 있는 자신의 여건뿐만 아니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자기 검열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동물권 보호는 힘을 갖고 확대될 수 있다. 검토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순간이다.
2023년 반려동물 서비스 트렌드는 '사람 편'까지 총 3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들이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단 하나로 모인다. 반려동물의 일생을 책임지기로 한 반려인으로서의 소명감.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성장하기 전에, 당연히 자리 잡아야 했을 건강한 반려문화. 그 올곧은 책임의식이 내내 깨어있도록 하자. 모든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선구자들의 행렬을 따라가며 멈추지 않도록.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다.
가령, 왜 우리가 반려동물에 대해 면밀히 짚어야 했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에 대한 이야기랄까.
[사진 및 자료출처]
-커버: <고독한 훈련사>
-나무위키: 선구자
강형욱
-인스타그램: @hunter.kang
-유튜브: 강형욱의 보듬TV
-나무위키: 강형욱
-홈페이지: (주)보듬컴퍼니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티빙(tving): <고독한 훈련사>
-엑스포츠뉴스(사진): 강형욱 인터뷰
이효리
-나무위키: 이효리
-티빙(tving): <캐나다 체크인>
-홈페이지: (주)내추럴발란스코리아 '블루엔젤봉사단'
-홈페이지: 동물권행동 카라(KARA)
-보그코리아 기사: 이효리와 순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