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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밍고 Mar 07. 2024

꿈 일기

매일 밤 꿈을 꾼다. 대부분 긴장 속에서 쫓기듯 뭘 하는 꿈이다. 보통 악이나 위험을 상징하는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뱀, 흉악범죄자, 맹수 등.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왔으면 좋으련만. 가끔 오래전에 알고 지낸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지금 다시 만날 필요는 없는, 시절인연이지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연속극의 조연처럼 성실히도 등장한다. 꿈속에서 그들과 다시 친밀한 사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가족이 등장해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동거인에게 제일 먼저 방금 전까지 꾸고 있던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거인에겐 남의 꿈이니 별 영양가 없을 텐데도 내 말을 경청해 준다. 동거인은 잠자코 듣다 나름의 해몽을 해주기도 하지만 누가 알까, 그 의미를. 그냥 내가 줄곧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연출하여 만들어낸 비전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현실의 영화감독은 못 되어도 꿈에서는 될 수 있다.


내가 꿈을 많이 꾸는 것에 대해 무속인과 얘길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라 꿈을 많이 꾸는 거란다. 그는 내게 “하루 일기를 쓰듯 꿈 일기를 써 보라“고 했다. 꿈속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머리맡에 꿈에 대한 기록을 할 노트라도 가져다 두고 꿈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기록을 해두라 했지만 들은 얘긴 금세 잊고 그냥 꿈을 흘려보냈다. 최근 꿈자리가 자주 뒤숭숭해서 그때 그 무속인의 말이 생각났다.


기록을 해서 어떤 패턴이라도 발견하는 게 도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늘 해왔다. 꿈에서의 나 또한 깨어있는 동안의 나처럼 나일 테니 그 기록도 중요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 변수를 제한하며 백 퍼센트 내가 연출한 장면들이 오히려 나를 더 잘 묘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이해하기에는 좋은 방법일 거다. 그 이점은 나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내가 꿈에서 느끼는 감정과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내가 얻지 못한 것, 후회되는 것,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과 결부돼 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현실에선 이룰 수 없거나 바로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 꿈을 분석해서 내 현재를 들여다보고 이해한다는 건 내게 부관참시 같다. 난 나를 깊이 파헤치고 현실과 직면하는 게 무서워서 아직도 꿈 일기를 쓰지 못했다. 때로는 나의 안녕을 위해서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심야에 잠도 못 들고 “꿈은 환영에 불과하다”며 나를 세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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