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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앞으로는 90년대생은 뽑지 않겠다는 대표의 말을 듣고나서다. 경영진 회의에서 불쑥 내뱉은 그의 말은 시선을 집중시켰다.
“제가 요새 ‘90년대생이 온다’도 봤거든요. 근데 90년대생들은 노력을 몰라요. 주장은 강하죠. 기준도 확실해요. 근데 그만큼의 노력은 하나요? 제가 꼰대같은 거 알지만 이만한 회사도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여기 아니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여기서 더 배우고 발전을 해야 저도 연봉을 올려주고 그 아이들이 더 좋은 직장으로 간다고 해도 응원해줄텐데요.”
회의 참석자 모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90년대생 회사 직원들의 심성, 태도, 의지와 관련한 제보가 쏟아졌다.
“0 과장 생각은 어때요?”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도 이 회의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잖아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머뭇거리는 찰나 대표가 대신 말을 했다.
“0 과장도 이제 꼰대에요. 밑에 있는 90년대생 제일 많이 욕해요. ㅎㅎㅎ”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욕을 한적이 있던가. 있었나?
다른 회사에 다니는 동갑내기 친구가 전화한 기억이 떠오른다. 격앙된 감정이 전화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묻자 입사 1년차 사원이 근로계약서를 보이며 ‘nine to six’ 보장을 요구하더란다. 이런 저런 사정을 설명하니 바로 부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부장은 바로 내 친구에게 ‘앞으로 야근이나 고생은 우리가 하자’는 식으로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는 대한민국이다. 오직 위로만 올라가려 노력했던 윗세대들. 올라가야 했기에 희생은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한민국도, 회사도, 조직도 그리 움직였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선진국이 됐다는데, GDP는 세계 상위수준인데 선진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래도 본 건 많아서 막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기준들은 생기고 있다. 선구자적 회사는 언론에 나온다. 대기업에서 먼저 시작하기도,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도 못하는 기준을 충족하니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나오는 기사와 사례들이 ‘보편’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를 보듯 우러러보는 것이다. 대다수 회사는 아래에 있다.
기준은 높아져야 한다. 누릴 권리가 있다. 정작 몸과 시간을 갈아넣은 꼰대들은 누릴 준비가 안돼있다. 높은 기준을 보고 배운 세대는 누릴 준비가 돼 있다. 그 사이에 있는 낀 세대가 나인 듯 하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90년대생이 요구하는 기준을 ‘네가 뭘 했다고’라고 눌러버리고 싶기도 하고, 나와 같은 꼰대 아저씨들의 요구에 ‘어이 선배, 그거 이제 폭력이야’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그냥 가장 용기없는 이도 저도 아닌 나라서 회의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워라벨이라는 단어를 지나 파이어족이라는 단어까지 나오는 요즘이다. ‘일과 나’의 구분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나에게는 구분이 점점 모호해진다. 일과 나를 분리하자니 능력이 없다. 능력이 있어 일을 적게 할 수도 없다.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일을 구할 수도 없다. 누군가 기준을 높이면 그 혜택이 언젠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길 바랄뿐이다. 비겁함은 익숙해진다. 90년대생의 기준에 ‘그래 네가 맞아’라기 보다는 ‘아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좀 어렵잖아. 조금더 해보고 우리가 그 기준을 올려보자’라고 거짓말하는게 더 편하다.
이러하니 백수가 되겠다는 뜻모를 깊은 결심도 점점 마음 저 구석으로 숨어버리는 것 아닌가.
‘아, 너무 속상하네. 퇴근 길에 술이나 먹고 갈까...’